264화. 아니, 근데 저 새끼들이? (4)
"여기입니다."
"감사하외다."
"별말씀을. 그럼 편히 쉬십시오. 저녁쯤에 따로 일정을 말씀드리겠지만, 아마 내일쯤 장문인 회합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여 불편한 것이 있으시면 안내를 맡은 이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알겠소."
"예, 그럼."
안내를 맡은 소림승이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소림승이 사라지자 화산의 제자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래도 객청 하나를 따로 내 주네요."
"금첩까지는 객청을 따로 주는 모양이구나. 은첩부터는 큰 곳에 같이 거하는 모양이고."
현영의 말에 운검이 고개를 끄덕인다.
청명이 난리를 쳐 금첩을 받아 낸 덕에 번잡함을 피할 수 있었다.
여러 문파가 같이 쓰는 커다란 객청에 들어갔다면 아무래도 신경 쓸 것이 많았을 것이다.
"한데, 과연 소림은 소림입니다."
"그렇구나. 이 많은 이들을 수용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객청 하나를 이리 떡하니 내어 주다니. 얼마나 많은 전각과 불전이 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구나."
오늘만 해도 여러 번 소림의 재력에 놀랐다.
"듣자 하니 내일은 장문인들의 회합이 있을 예정이고, 모레부터 대회를 열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실제 중심이 되는 것이 비무 대회라고는 하나, 여하튼 천하대회라는 형식을 갖췄으니 그에 걸맞은 모양새를 갖춰야겠지."
현종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형식이란 대체로 별 쓸모가 없지만, 알맹이를 포장하는 데에는 퍽 유용한 역할을 한다.
현종 역시 그 포장지를 예쁘게 다듬는 것을 거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저 아이들의 활약이 조금 더 빛이 날 테니까.'
이곳까지 오면서 기가 눌릴 만도 한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당당하게…….
'아니, 오히려 좀 껄렁한데?'
불전함을 털러 온 산적 같은 모양새로 서 있는 아이들을 보니 뿌듯함과 서글픔이 함께 밀려오는 현종이었다.
"현영."
"예, 장문인."
"아이들이 짐을 풀고 쉴 수 있게 해 주거라. 나는 조금 둘러볼 것이 있다."
"예, 장문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현종이 밖으로 나가자, 현영이 아이들을 보며 말했다.
"적당히 방에 짐을 풀거라. 오늘은 저녁 먹기 전까지는 쉬는 걸로 하겠다. 대신 사고 치지 말고. 백천! 윤종!"
"예, 장로님!"
"말씀하십시오!"
앞으로 튀어나온 백천과 윤종을 보며 현영이 비장하게 말했다.
"너희는 각 항렬의 대제자로서!"
"예!"
"청명이 놈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말거라!"
"……."
어…….
아, 예…….
그거 무척 중요한 일이지요.
그때 청명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제가 왜요?"
"청명아."
"네?"
현영이 빙그레 웃는다.
"내가 너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만, 여기는 공을 벌어 오는 곳이 아니라, 체면을 생각해야 하는 곳이다. 이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하여 절대 사고를 치지 말거라."
"에이, 장로님도. 제가 애도 아니고."
"애면 걱정도 안 하지."
애가 아니니까 문제다. 애라면 사고를 쳐 봐야 뭐 얼마나 치겠는가?
애가 아닌 청명이니까 걱정하는 것이다.
"여하튼 이곳에는 각파의 중진들이 모두 모여 있고, 혈기 왕성한 각 문파의 제자들이 우글우글 몰려다니고 있다. 그러니 다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거라. 알겠느냐?"
"예, 장로님!"
"그래."
현영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봇짐을 들었다. 그에게도 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운검이도 방을 잡거라."
"예."
웃어른들이 이 층으로 올라가자 아이들이 저마다 주섬주섬 봇짐을 집어 들었다.
비어 있는 방을 찾아다니면서도 그들의 입은 쉬지 않았다.
"걸어올 땐 그렇게 복잡하더니, 숙소가 있는 곳은 나름 한적하네?"
"향화객들의 출입을 막아서 그래. 여기 안 그래도 신경 날카로운 놈들이 많을 텐데 사람마저 북적이면 칼부림은 일도 아니지."
"그렇겠지?"
"어휴. 그러니까 조심해라. 아까 마주친 놈들 눈빛 봤지? 애들이 얼마나 험악한지……."
뒤에서 듣고 있던 백천이 황당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얘들은 자기들이 어떻게 보이는 줄 모르나?'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알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한 법이다.
산에 처박혀 검술만을 익혀 온 화산의 제자들은 자신들이 험악하게 보인다는 인식이 없는 모양이다.
참 순진하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사람들이 슬슬 피하는 기색이 역력한데도,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자각이 조금도 없다는 건 역시 문제 아닐까?
대충 짐을 푼 화산의 제자들은 다시 일 층의 거실로 모여들었다.
"장로님 두 분과 운검 사숙은 자리를 비우신 모양입니다."
백상의 말에 백천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어딜 가셨지?"
"글쎄요……."
그때 청명이 귀신같이 입을 뗀다.
"가자."
"뭘?"
"나가야지!"
백천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장로님 말씀 못 들었어?"
"장로님이 뭘?"
"사고 치지 말라고 하셨잖느냐!"
"쯧쯧. 이래서 사람은 말귀를 잘 알아먹어야 한다니까. 장로님이 뭐라고 하셨는데?
"응?"
백천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고 사고 치지 말라고 하셨잖아."
"그래! 잘 들었구나!"
"거기 어디에 나가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응?"
어?
그러고 보니……?
"쯧쯧쯧쯧."
혀를 찬 청명은 대놓고 백천을 비난해 댔다.
"윗분이 하는 말씀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도 제자 된 덕목인 것을. 사숙은 아직 멀었구나?"
이 새끼가?
백천의 눈이 살짝 돌아갔다. 다른 놈도 아니고 저놈에게 '제자 된 덕목'이라는 말을 듣다니. 이보다 더한 수치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여하튼 안 된다!"
"뭘?"
"못 나간다! 꿈도 꾸지 말거라."
단호한 말에 청명은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사숙."
"뭔 말을 하려고! 안 된다니까?"
"아니야. 아니야. 사숙 내 말을 일단 들어 봐."
"……."
"봐 봐. 여기는 소림이잖아."
"그렇지."
"우리가 소림에 언제 다시 오겠어? 어쩌면 이번이 소림을 보는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런데 소림에 와서 소림 구경도 못 하고 이 객청 안에서 벽이나 보다가 돌아가자고?"
"……."
백천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잘 생각해 봐, 사숙. 진짜 괜찮아?"
주변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하긴, 그래도 소림까지 왔는데……."
"아까 보니까 다른 문파 애들은 다 구경 다니는 것 같던데."
"화산에서 지옥같이 구르다가 왔는데……. 여기서도 벽만 보고 돌아가야 한다니. 이거 너무 가혹한데."
백천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확실히 청명은 몰라도 다른 제자들에게는 너무한 짓이다 싶었다.
그러자 청명이 혀를 날름거리며 유혹을 시작했다.
"잘 생각해 봐, 사숙. 사숙은 죽으나 사나 내 옆에 붙어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내가 여기에 계속 있으면 사숙도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해!"
움찔.
백천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보고 싶잖아. 솔직히 보고 싶을 거야. 얼마나 대단하기에 다들 소림, 소림 하는지. 잠깐 나가서 구경만 하고 오는 게 뭐 그리 대단할까? 그치?"
'이 사갈 같은 놈이!'
문제는 저 말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점이다.
백천도 사람인데 왜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강호의 북두라는 소림에 왔는데 구경도 못 해 본다니, 이건 고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사숙. 내가 사고를 안 치면 되잖아? 그렇지? 잘 생각해 봐. 사숙이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데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윤종과 조걸이 뒤쪽에서 속닥거렸다.
"거의 넘어온 것 같죠?"
"다리가 들썩이시는데?"
유혹에 넘어가기 직전인 백천의 앞에서 청명은 한없이 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청명의 엉덩이 쪽에서 여우 꼬리가 살랑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신 절대로 사고 치면 안 된다."
"헤헤. 당연하지."
"끄응."
뭔가 속아 넘어가는 기분이었지만…….
'어차피 장로님들 없이 저놈을 여기 잡아 놓을 자신도 없다.'
그럴 바에야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주는 대신, 적절히 통제를 해 보는 게 나을 것이다.
백천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에게로 획 고개를 돌렸다.
"대신 너희 모두 함께 움직인다."
"예? 갑자기 왜……."
백천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나 혼자서는 못 막아."
"……."
청명을 바라본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무조건 함께 간다! 반론은 받지 않는다!"
일견 타당한 결정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백천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타당한 결정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말이다.
"오오. 고풍스럽다."
"저 전각은 못해도 몇백 년은 된 것 같은데?"
화산의 제자들이 이곳저곳을 우르르 몰려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향화객이 미친 듯이 몰려 있던 산문과는 다르게, 내부는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바쁘게 다니는 소림승들의 모습이 눈에 띄고, 화산의 제자들처럼 소림의 내부를 구경하는 타문파의 제자가 몇몇 보일 뿐이었다.
"사형! 여기 불상이 있습니다!"
"이놈아! 이건 석불이라고 하는 거다!"
"석불이 불상 아닙니까! 뭐 다르다고!"
"달라!"
신이 나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백천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부끄럽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이 모습은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 주고 싶지 않다.
화산을 세상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기는 백천이지만…… 옥에도 티가 있기 마련이고, 그 옥의 티는 남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게 인지상정이니까.
"뭔 절이 이렇게 넓습니까? 끝가지 가려면 한참 걸리겠습니다."
화산도 넓다, 얘들아.
왜 이리 과장하니.
"히익. 저 전각에는 백 명도 들어가겠는데?"
화산에도 저만한 건 있잖니.
얘들아, 제발 진정 좀 해라.
백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사실 이들이 정말 소림의 규모에 놀라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다. 화산을 벗어나 처음으로 와 본 타문파가 신기한 것이리라.
아마 지나가는 고양이를 보고도 놀랄 준비가 되어 있겠지.
하지만 그런 그들의 모습이 꼴같잖게 느껴지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쟤들은 뭐야?"
"촌놈들인가?"
귓가를 파고드는 목소리에 화산의 제자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엇?"
그 작은 속닥거림을 저 인원이 모두 들을 줄은 몰랐는지, 촌놈 운운하던 놈들이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백천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리 보일 만도 하지.'
어쨌든 굳이 일을 키울 것 없이 좋게 넘기려던 그 순간이었다.
"……화산?"
그들의 가슴팍에 수놓인 매화의 문양을 본 그들이 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표정은 금세 적나라한 비웃음으로 변해 갔다.
"누군가 했더니 이거, 화산 분들이셨군. 설마 화산도 초청을 받았을 줄이야. 소림은 대자대비하다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았군."
백상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둘을 바라보았다.
"저것들은 뭐야?"
"어? 사, 사형. 쟤들……."
"응?"
백상이 눈을 가늘게 뜬다.
'엇?'
그의 눈에 그들의 오른쪽 가슴에 새겨진 물결 무늬가 들어왔다.
푸른색으로 수놓인 세 개의 물결무늬.
천하에 저 표식을 문파의 상징으로 삼는 문파는 단 하나뿐이다.
"삼파랑(三波浪)! 해남파(海南派)!"
해남파라는 말에 화산의 제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화산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문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종남이다.
하지만 화산의 제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고 싶어 하는 문파는 따로 있었다.
그게 바로 해남파다.
"응? 다들 표정이 왜 이래?"
청명이 고개를 갸웃하자 백천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한다.
"해남이다."
"그게 왜?"
"구파일방의 해남이라고."
"구파일……. 해남파가 구파일방이라고?"
백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이 빠진 뒤 구파일방에 들어앉은 게 바로 해남파다."
"어?"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었던 것도 같다. 워낙 관심이 없어서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제자들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 해남은 존재만으로도 화산의 현실을 떠올리게 만드는 곳일 테니까.
'쯧. 뭐 그런 걸 가지고.'
스스로의 힘을 회복하면 언제든 되찾을 수 있는 자린데, 이리 적의를 보일 필요까지는…….
그때였다.
"뭐야! 무슨 일이야!"
"야! 애들 다 불러 와!"
자신들의 동기들 앞에 수십 명이 몰려 있는 걸 본 해남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
그리고 순식간에 대치 상황이 만들어졌다.
백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어렸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장로님이 사고 치지 말라고 했는데. 장문인도 그렇고.
생각보다 일이 좀 커졌지만 어떻게든 좋게 끝내야 한다.
그런데 해남파의 제자들이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냐?"
"대사형, 화산 놈들입니다."
"뭐?"
대사형이라 불린 이가 도끼눈을 뜨고 이쪽을 바라본다.
백천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왜 니들이 우릴 그렇게 보냐.'
화를 내려면 이쪽이 내야지. 남의 자리까지 차지한 주제에 적의까지 보일 필요는 없을 텐데.
여하튼.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화산의 이대……."
"망한 문파 놈들이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여기까지 기어 왔느냐?"
"……제자……. 뭐, 인마? 야. 너 이리 와 봐."
백천이 욱하자, 윤종과 조걸이 황급히 그의 양쪽 어깨에 손을 올렸다.
"사숙."
"워워워."
"끄으응."
발끈한 백천이 그 만류에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저쪽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구파일방에서 쫓겨났으면 창피한 줄 알고 현판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부끄러움도 모르고 여기까지 기어들었구나. 천하에 이름 높던 화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느냐."
"하하하하하핫!"
"그러지 마십시오. 사형. 안 그래도 쫄쫄 굶고 산다는데 절밥 소리만 들어도 군침이 흐르지 않겠습니까?"
"식당은 저쪽이다. 얼른 가 봐라. 식은 밥 정도는 남았을 게다!"
백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건 화가 나서 떠는 게 아니었다.
저놈들의 말이 정도를 벗어난 건 사실이지만, 백천은 이정도로 화를 낼만큼 수양이 얕……. 아니, 뭐 방금 아주 조금 발끈하기는 했지만, 여하튼 이 정도는 참을 수 있다.
문제는…….
"아니, 근데 저 새끼들이?"
그 말을 참아 낼 인내심이 없는 놈이 여기에 껴 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장 위험한 놈이.
백천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청명이 회까닥 돌아 버린 눈을 희번덕대고 있었다.
"……처, 청명아."
청명이 씨익 웃으며 혀를 내어 입술을 핥는다.
"걱정하지 마, 사숙. 나는 절대 사고 안 쳐."
"그래. 네가 참아야지."
"그런데."
"……응?"
"사문이 모욕을 당했는데 참는 놈이 화산에서 밥을 처먹을 자격이 있어?"
"……."
"저 새끼들이 화산을 욕했는데?"
"……."
백천이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그런데 어째 그의 고개도 청명과 마찬가지로 삐딱하게 꺾여 있다.
"어이."
"음?"
백천의 말에 해남파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어디 해남도 촌놈들이 그딴 말을 지껄이는 거냐?"
"……저놈이?"
"저게 미쳤나?"
"됐고."
백천이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이 사고 치지 말자. 괜히 여기서 입 털어 봐야 서로 좋을 거 없으니까."
윤종과 조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역시 백천 사숙…….
그 순간이었다.
푸욱!
백천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검집째 빼 들더니 바닥에 그대로 꽂아 버렸다.
"그러니까 불만 있는 새끼는 나와. 해남도까지 기어가게 해 줄 테니까."
"……."
윤종과 조걸이 서로를 돌아본다.
……그래, 그러고 보니 저 양반도 제정신은 아니었지.
자꾸 예전 이미지 때문에 까먹는단 말이야…….
새삼스러운 사실을 절절히 깨닫는 두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