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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47화 (247/1,567)

247화. 아직은 그리 말하지 마라. (2)

이른 아침.

대연무장에 화산의 모든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긴장한 얼굴로 줄을 맞춰 선 그들은 슬쩍슬쩍 주변을 둘러보며 속닥거렸다.

"무슨 일이래?"

"글쎄? 누구 들은 사람 없어?"

"아무 말도 못 들었는데. 그냥 다 모이라고만……."

결국 백자 배 중 하나가 앞쪽에 선 백천에게 작게 물었다.

"대사형. 혹시 들으신 것 있습니까?"

"곧 알게 될 테니, 조용히 하거라."

"……예."

백천은 슬쩍 앞쪽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공한 모양이군.'

하기야.

그 망할 놈이 나섰는데 실패할 리가 있겠는가? 실패하면 다시 그 먼 운남까지 가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라도 어떻게든 성공시킬 놈이다.

그의 눈에 그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종이 보였다.

살짝 미소를 짓고 앞을 바라보던 윤종의 눈썹이 꿈틀대더니,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로 돌아간다.

그가 속닥이던 청자 배들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입이 쉬질 않는 걸 보니 수련이 편한 모양이군."

"……."

윤종의 옆에 선 조걸이 맞장구를 쳤다.

"우리가 사제들을 너무 과소평가한 모양입니다. 사형."

"음. 그런 것 같구나. 오늘부터는 수련량을 좀 늘려야겠군."

청자 배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갔다.

'아니, 사형들 얼마 전까지는 같은 처지 아니었습니까!'

'대체 운남에서 뭔 일을 겪고 온 겁니까! 대체!'

'아이고오. 청명이 셋이네. 청명이 셋이야.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그 모습을 보며 백자 배들이 키득댄다.

그 웃음소리에 백천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웃어?"

"……."

백천이 이렇게 눈을 희번덕대는 걸 처음 본 백자 배들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잘하자."

"……예."

동병상련의 처지가 된 백자 배와 청자 배가 서로를 보며 눈물지었다.

예전에는 참 착하고 부드럽던 사형들이었는데, 어쩌다 저리되어 버렸다는 말인가?

이게 다 그 마귀 놈 때문이다.

근묵자흑이라고, 그 마귀 놈 옆에 있다 보니 다들 물들어 버린 게 아닌가?

하지만 백천은 서글픈 얼굴로 서 있는 사제들을 뒤에서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청명과 백천들이 왜 운남으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운자 배 중 몇몇뿐이다. 그 외의 이들은 혼원단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아는 이를 줄이면 최소한 그 비밀이 퍼지는 시간 정도는 줄일 수 있다. 그렇기에 같은 화산의 제자들에게도 비밀로 한 것이다.

물론 오늘은 대충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아마 다들 깜짝 놀라겠지.

그때였다.

"모두 모였느냐?"

의약당주 운각이 대연무장으로 들어섰다.

"예!"

우렁찬 대답이 쏟아져 나왔다.

운자 배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운암이 운각을 보며 물었다.

"의약당주. 장문인께서는?"

"지금 오십니다."

운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금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였다.

"먼저……."

운각이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잇는다.

"이렇게 모두를 모이라고 한 이유는 화산에서 연단한 영단을 나눠 주기 위함이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역시 모두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영단?"

"화산에 영단이 있었다고?"

"아니, 지금 연단했다고 하잖습니까. 새로 만들었다는 거죠."

"새로 연단을 했다고?"

백상이 눈을 크게 뜨고는 백천을 보며 물었다.

"사형. 혹시 그럼 운남까지 다녀오신 이유가……?"

"그렇다."

이제는 숨길 필요가 없어지자 백천이 순순히 인정했다.

"영단의 재료를 구하러 갔었지."

"그, 그럼 그 재료를 구했고, 이제는 연단까지 성공했다는 겁니까?"

"사숙께서 그리 말씀하시잖느냐."

"세상에……."

백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 연단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그때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운각이 고개를 끄덕이자 손을 들었던 이가 빠르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 나눠 주신다는 영단이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대답은 지체 없이 나왔다.

"자소단이다."

"자소……. 예? 자소단이요?"

질문을 한 이가 눈을 크게 뜬다.

자소단이라니.

그건 실전된 화산 최고의 영단이 아니던가?

"자, 자소단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운각이 단호하게 말했다.

"긴 노력 끝에 자소단의 연단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재료도 빠짐없이 구할 수 있었다."

"그럼 장문인께서 열흘이나 자리를 비우신 이유가……."

"연단을 하느라 바쁘셨지."

"아……."

백천이 고소를 머금었다.

물론 화산은 자소단의 연단법을 복원한 적이 없다. 그들이 찾아 온 것은 혼원단의 연단법이다.

하나 때로는 진실보다 거짓이 더 유용할 때도 있는 법이다.

화산의 제자들조차 그리 알고 있게 된다면 화산이 혼원단의 연단법을 얻었다는 소문은 영원히 퍼지지 않을 것이다.

'약선이 땅을 치겠군.'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하필이면 청명에게 걸린 것을 탓해야지.

"그, 그럼 저희 모두에게 자소단을 나눠 주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모두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영단이 조금 작아지기는 했지만, 장로님들부터 청자 배의 막내들까지 모두가 공평히 가지게 될 것이다."

연무장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무인이라면 꿈에도 바라는 것이 신병(神兵)과 영약(靈藥)아니겠는가?

그 영약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 영단이고, 그 영단 중에서도 최상품으로 치던 것이 화산의 자소단이다.

물론 소림의 대환단이나, 무당의 태청단보단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인가?

제자들의 수군거림을 들은 운각은 남몰래 웃음을 삼켜야 했다.

'이게 대환단보다 나을 거다 이놈들아!'

물론 영단이 작아 대환단만 한 효과는 아닐지 모르나, 같은 양을 복용한다고 전제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새로이 화산이 만들어 낸 자소단은 절대 대환단보다 못할 것이 없다. 오히려 뛰어났으면 뛰어났지.

이들이 자소단을 복용하면 얼마나 강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운각이었다.

하지만 제자 모두의 반응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괜찮은 건가?"

"뭐가?"

"새로 만든 영단이라잖아. 부작용 같은 건 없나? 잘못 만든 영단을 섭취하면 주화입마에 든다는데."

"에이, 설마."

"아니, 따지고 보면 화산은 벌써 백 년 가까이 영단을 만들어 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뭘 믿고?"

듣기에 좋은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새로운 영단을 만들었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의 효과와 안정성을 자신의 몸으로 실험해 보고 싶은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흥분과 기대, 그리고 불안과 의심이 동시에 연무장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본 운각은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운암이 그런 그를 가만히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운각."

"예, 사형."

"영단의 안정성은 확실하더냐?"

"예, 사형. 이미 실험을 마쳤습니다."

"누가?"

"아, 그건……."

말을 하던 운각이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씨익 미소를 짓는다.

"직접 보시면 됩니다. 저기 오시네요."

"응?"

운암은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다름이 아니라, 왜 이 모든 설명을 운각이 하느냐는 점이었다.

물론 그는 의약당주이니 이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자소단을 만들었으니 제자들에게 나눠 준다는 말은 그가 아닌 장문인인 현종이 하는 쪽이 더 옳다.

그런데 왜 현종이 아니라 운각이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는가?

저벅. 저벅.

천천히 대연무장으로 걸어오는 이들을 본 운암은 그 즉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의 입이 서서히 벌어진다.

저벅. 저벅.

네 사람.

대연무장을 향해 네 사람이 걸어오고 있다.

운암이 자신의 눈을 연신 비벼 댔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비고 볼을 꼬집어도 눈앞의 광경은 그대로였다.

'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태연하게 걸어온 네 사람이 단상 위로 올라간다. 운각이 자연스레 옆으로 물러나 중앙의 자리를 비워 주었다.

"흠."

가장 앞으로 나선 이가 모두를 보며 묵직하게 입을 연다.

"상황은 운각이 설명을 했겠지만……."

"저!"

그 순간 백천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말이 끊긴 사내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시선을 던졌다.

"왜 그러느냐?"

"저, 이게…… 어……. 질문이 무척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해 보아라."

백천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나 이상한 질문이지만 할 수밖에 없다.

"누, 누구십니까?"

"허허허허허."

중앙에 선 자.

그러니까 현종이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이 녀석이 이제는 장문인도 알아보지 못하느냐?"

"지, 진짜로 자, 장문인?"

백천이 입을 쩍 벌렸다.

'아, 아니. 그래, 맞긴 맞는데…….'

분명 화산의 무복을 입고 있다. 풍채나 머리에 쓴 도관을 보면, 그가 아는 화산 장문인 현종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니, 누가 봐도 다른 사람이잖아?'

백천이 놀란 이유는 현종의 얼굴 때문이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했던 그의 얼굴은 아이처럼 새하얗고 탱탱한 피부를 자랑했고, 서리라도 낀 양 희끗희끗했던 머리는 먹물이라도 바른 듯 윤기 있는 흑색으로 변해 있었다.

"회, 회춘(回春)?"

백천이 당황하여 눈을 끔뻑이자 현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허허. 이 모습이 어색한 모양이구나."

현종뿐만이 아니었다.

"서, 설마 그럼 그 옆은 현영 장로님? 현상 장로님?"

현종의 좌우로 자리한 이들도 현종처럼 회춘한 듯 이십 년은 젊어 보이지 않는가?

"당연한 것을 묻는구나. 그럼 누구겠느냐?"

"……세상에."

아니……. 자세히 보면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것도 같고…….

그때 백천의 옆에 서 있던 유이설이 중얼거렸다.

"예전 얼굴."

"으응?"

"제가 화산에 처음 왔을 때, 그때 얼굴. 아니……. 그것보다 좀 더?"

유이설이 고개를 갸웃한다.

'적어도 이십 년은 더 젊어졌다는 거로군.'

운암이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장문인과 장로들을 보며 포권을 했다.

"세 분이 회춘하신 모습을 보니 제자의 마음도 기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한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리 좋은 일이 벌어졌는지 제자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유가 따로 있겠느냐?"

현종이 빙그레 웃더니 슬쩍 현상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현상이 들고 온 비단을 쫙 펼치고 자소단을 늘어놓았다.

"혹여 문제가 있을까 싶어 먼저 복용해 보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더구나. 허허. 효과가 너무 확실해서 큰일이지."

그러자 곁에 있던 현영이 웃으며 말했다.

"뭐, 새 장가라도 드시려고 그러십니까?"

"첫 장가다 이놈아!"

현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랬지."

세 사람이 앞에서 유쾌하게 농을 주고받는 모습에도, 다른 이들은 웃을 수 없었다. 이 상황만큼은 농담이 아니었으니까.

화산 제자들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효과 죽인다!'

'이런 미친! 뭐 저런 게 다 있어?'

'저건 죽어도 먹어야 해! 아니, 먹고 죽는다고 해도 먹어야 해!'

이 이상 확실한 효과가 어디에 있겠는가?

설사 영약을 먹은 이가 일수(一手)로 산을 뚫어 버린다고 해도 이토록 와 닿지는 않을 것이다.

'먹으면 이십 년은 더 산다!'

'이십 년이 뭐야! 삼십 년은 더 살겠는데?'

'와, 저 머리에 윤기 봐. 세상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에서, 저자에 나가면 눈길을 받을 만큼의 장년인이 된 현자 배들을 보며 제자들이 몸을 들썩였다.

심지어 침착하기로는 화산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운암조차도 움찔움찔하며 자소단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니, 저 미친놈이 대체 뭘 만든 거야?'

'저거 혼원단 맞나? 절대 아닌 것 같은데?'

'제발 평범하게 좀 가자, 청명아!'

혼원단의 효능과 형태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백천 무리는 황당한 얼굴로 영단과 청명, 그리고 현자 배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단 혼원단에는 절대 저런 효능이 없다. 그들은 이미 혼원단을 먹어 보지 않았던가! 그리고 저 은은하게 자색이 어린 영단은 절대 혼원단이 아니다.

무엇보다!

'저 새끼, 저거 표정 어색한 거 봐.'

뭔가 미묘한 청명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분명 저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이다.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쏟아지는 그들의 시선에, 청명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청명도 이런 상황까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예전에 영단을 먹고 젊어진 이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보았지만, 저렇게 세 사람이 동시에 젊어질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아마도 그가 모아 온, 세상에서 가장 정순한 기운이 영단에 스며들어 저런 효과를 낸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 분명 내가 인생을 되찾아 준다고는 했는데…….'

그게 이런 방식은 아니었는데 말이야.

허허.

허허허허.

아니.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잘됐으면 된 거지 뭐.

청명은 백천 무리의 시선을 슬쩍 피하며 웃었다.

그때 현종이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부터 화산의 제자들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자소단을 복용할 것이다. 제자들은 배분대로 나와 영단을 받아 가거라!"

"예! 장문인!"

우렁찬 목소리들을 들으며 청명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찌됐든 이걸로 큰 산 하나는 넘었네.'

이제 화산은 종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것이다.

'아이고. 이것들은 또 언제 키우나.'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청명이 해야 할 일도 끝없이 많았다.

다만…….

청명이 슬쩍 장문인, 장로들과 백천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키우는 맛은 있네.'

사형도 이런 기분으로 절 키운 거죠?

주면 주는 대로 쭉쭉 받아먹고 크는 맛에? 그렇죠?

- 헛소리하지 마라! 남의 밥그릇도 뺏어 가던 놈이 받아먹기는 개뿔이!

"……."

거, 모함이 심하시네.

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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