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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45화 (245/1,567)

245화. 이렇게 아낌없이 주시다니! (5)

"괜찮을까요?"

"뭐가 말이더냐?"

"……저래도 괜찮은 겁니까?"

현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현종의 눈에 오색의 광채를 뿜어내며 솥을 저어 대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난들 알겠느냐?"

아무도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걱정이 되어 편히 운기를 하거나 자리를 떠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감히 다가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딱히 무학을 알지 못하는 이라 해도 지금 저곳에서 뭔가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보니 완전히 탈진한 세 사람도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해가 지고 다시 뜨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벌써 하루가 다 되어 갑니다."

"……그렇지."

현종이 살짝 떨리는 눈으로 청명이 하는 노릇을 바라보았다.

'세 사람이 해야 했던 일인데.'

'저럴 수가 있나?'

장로 둘이 내력을 밀어 넣고, 운자 배 하나가 세심하게 내력을 조절하여 저어야 할 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다.

그런데 청명이 놈은 양손으로 서로 다른 양의 내력을 끌어올려 달구고 젓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그것도 벌써 하루 꼬박!

그것만 해도 혀를 내두를 일인데, 대체 쉼 없이 뿜어지는 저 광채는 또 뭐란 말인가?

"운각……. 아니, 의약당주."

"예, 장문인."

"약선의 연단법에 저런 내용이 나와 있었느냐? 연단을 하는 이가 광채를 내뿜는다고?"

"……금시초문입니다."

"그렇지?"

그럼 저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어안이 벙벙하여 청명을 바라보던 현종은 홀린 듯이 입을 열었다.

"어, 얼마나 남았지?"

"그게 무슨……."

"얼마나 더 저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아! 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미시에 시작했었으니까, 이제 한 시진쯤 남았습니다."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알 방법이 있더냐?"

"거기까지는 저도 잘……."

주먹을 꽉 움켜쥔 현종이 간절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해내야 한다.'

하나는 알 수 있다.

지금 청명은 아마 그들이 이해하지 못할 영역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달관한 듯 반개한 눈과 몸에서 뿜어지는 오색의 광채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짐작 가능했다.

'청명아! 조금만 더 힘을 내거라……!'

현종이 속으로 간절한 응원을 건네는 그때, 운각이 눈을 크게 치떴다.

"어?"

"왜, 왜 그러느냐?"

"저거 보십시오! 저거!"

"응?"

운각이 손을 뻗어 솥을 가리켰다.

"허어?"

"저, 저게 뭔?"

현자 배들이 일제히 경악하여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의 시선이 가 닿은 곳은 청명이 젓고 있는 솥이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솥에서 미약한 오색의 빛이 내뿜어진다. 그 빛은 점점 더 강해지더니, 이내 눈을 아프게 할 만큼 눈부신 광채로 화해 의약당을 가득 메웠다.

"읏!"

잠깐 눈을 질끈 감았던 현종이 서서히 눈꺼풀을 열었을 때…….

'이 향은?'

짙은 향.

너무도 짙은 향이 그의 코를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이건 분명히 그가 혼원단의 상자를 열었을 때 맡았던 바로 그 향이다!

"설마!"

"벌써?"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들의 집요한 시선이 빛을 내뿜는 솥과 청명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편, 청명은 등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솥 안에 완전하게 쏠려 있었다.

'조화.'

약선은 대단한 사람이다.

평범한 재료들로 혼원단을 만들어 낸 게 아니었다.

이 재료들은 서로 완벽하게 조화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약재 중 가장 완벽한 합을 빚을 수 있는 조합을 약선은 찾아내고 만 것이다.

솥과 주걱에 불어넣는 내력은 그 약재들이 가진 기운을 북돋워 줄 뿐.

혼원단을 만드는 이가 해야 할 일은 이 완벽한 조화를 빚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열흘 동안 내력을 넣어 저으라.]

그저 그 말밖에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기운을 완벽히 조화시키라는 말을 쓴다고 한들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있겠는가?

뜻을 글로 온전히 전한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 뜻을 전해들을 이가 어떤 수준인지를 모른다면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방법은 약선이 고심 끝에 생각해 낸 가장 쉬운 방법일 것이다. 그의 뜻을 이어 혼원비결을 이어받을 이가 누구라도 혼원단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비록 자신이 만들었던 본래의 혼원단에 비해 그 수준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여겼겠지.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혼원비결을 얻은 이는 바로 청명이었다.

기감 하나만큼은 전생의 자신조차 뛰어넘은 사람.

그렇기에 그는 약선이 본래 만들었던 혼원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솥 안으로 기운을 흘려 넣는다.

도가의 기운을 품은, 세상에서 가장 맑은 기운이 조화롭게 휘돌고 있는 혼원(混元)의 기운과 뒤섞여 들어간다.

'그래서 혼원단(混元丹)이구나.'

혼원(混元).

천지. 그리고 우주.

하늘 아래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세상을 이루고, 더 나아가 우주를 이룬다.

이 솥 안에는 약선이 꿈꾸던 하나의 세상이 있다.

모두가 조화롭게 사는 세상.

서로 다투지 않고 모두 얽혀들어 사는 세상.

약선의 사상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자신의 의지를 영단에마저 투영하는 그의 집념과 의지에는 찬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약선과 혼원.'

청명의 이마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솥 안에 들끓던 화기(火氣)가 천천히 가라앉는다.

응어리졌던 냉기(冷氣)가 조금씩 그 차가움을 걷어 내며 수기(水氣)로 화한다.

땅에서 자란 것들에서 흘러나온 토기가 바닥을 다지고, 근본이 되는 목기가 넉넉히 감싸 안는다.

거기에 한철에서 흘러나온 금기(金氣)까지.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

즉 오행(五行)이라.

이곳에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 있다.

약선이 추구했던 완벽히 조화로운 세상.

청명은 그저 그 세상에 하나를 더할 뿐이다.

도(道).

약선이 만들어 낸 세상에 하나의 길을 낸다. 세상이란 존재하는 것이고, 길이란 걸어가야 하는 것.

길이란 곧 의지.

결국 인간의 마음이리라.

오행에 도기(道氣)를 더하고, 마음을 더한다.

그가 불어넣은 도기가 오행의 세상과 함께 휘돌기 시작한다. 밀어 내고 거부하고, 또 다투던 기운들이 이내 새로운 기운을 받아들여 함께 휘돌기 시작한다.

세상이란 그런 것.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함께 어울리는 것.

이 안에 세상이 있다.

약선이 꿈꾸던 세상이 청명이 꿈꾸는 세상으로 화한다.

괜찮을까?

그래. 괜찮다.

세상이란 그런 것. 변해도 세상이고, 변하지 않아도 세상이다.

어떤 형태를 갖추든 세상은 그저 세상일 뿐이다.

청명이 천천히 눈을 떴다.

마지막 기운까지 모조리 밀어 넣은 그는 솥에서 손을 떼고 쇠 주걱을 움켜잡았다.

기운들이 녹아내린다.

오행도 청명의 기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듯 녹아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리고 마침내!

화아아아아악!

뿜어져 나오던 오색의 광채가 하나로 뭉치며 은은한 자색을 띤다. 찬란한 광채가 아닌, 은은하게 감싸 안는 듯한 자줏빛의 광채.

홀린 것처럼 가만히 솥을 바라보던 청명은, 이내 쇠 주걱을 든 채 뒤로 한발 물러섰다.

"……."

쩔그렁.

힘이 풀린 손아귀에서 주걱이 떨어진다. 청명은 그 사실도 모르고 멍한 눈으로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을 바라보았다.

"청명아?"

"……."

"……청명아?"

이윽고 고개를 돌리는 청명의 얼굴은 멍하기만 했다.

그의 등 뒤에서는 현자 배들과 운각이 숨도 쉬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현종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 어떻게 됐느냐?"

"어……."

청명이 그들과 솥을 번갈아 바라본다.

솔직하게 대답해야겠지?

"일단 혼원단을 만드는 건 실패했어요."

"……."

현종의 눈에 일순 암담함이 어린다.

입을 닫아 버린 현종 대신 현상이 눈을 크게 뜨며 묻는다.

"시, 실패?"

"……."

"이, 이게 실패해서 나오는 빛이라고?"

현영도 이해를 못 하겠다는 듯 다급하게 입을 연다.

"무슨 일이더냐, 이게! 설명을……."

"조용."

하지만 이내 현종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그들의 경거망동을 막았다. 아우성치려던 장로들이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말없이 청명을 바라보던 현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쉽게 되었구나. 하지만 다시 해 보면 될 일이지. 조금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급히 생각하지 말자꾸나. 네가 너무도 고생이 많았다. 심려치 말거라."

청명이 그런 현종을 보며 씨익 웃는다.

'여하튼 대단한 사람이야.'

실패.

이 말 앞에 세상 누구도 실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종은 그 짧은 시간 만에 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고생이 무위로 돌아간 것보다, 청명이 실망할까 봐 더 걱정한다.

'그래야 장문인이지.'

그리고 그래야 도인이다.

이 사람이 장문인이라 다행이다, 정말.

살짝 고소를 머금은 청명이 말을 이었다.

"혼원단은 실패했거든요."

"그래. 괜찮다. 신경 쓰지……."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응?"

청명이 고개를 돌려 자줏빛 광채를 내뿜는 솥을 바라보았다.

저걸 뭐라 불러야 할까?

그래.

그것밖에 없겠지.

"……자소단(紫霄丹)을 만들어 버린 것 같은데요?"

"엥?"

"자소단?"

현종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게 무슨 말이더냐? 자소단이라니?"

자소단은 과거 화산에서 가장 뛰어난 영단이었다. 하지만 그 영단의 연단법은 마교의 침공과 함께 실전되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자소단이라니?

청명이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원래 화산에 전해지던 자소단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이건 혼원단도 아니거든요."

약선의 의도와는 조금 달라졌다.

이건 세상에서 오로지 청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영단이다.

"혼원단에서 더 나아간 영단이 화산에서 만들어졌으니, 자소단이라고 할 수밖에요."

현종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지금 저 녀석이 뭐라고 한 거지?

"더, 더 나아갔다고?"

"네."

"본래 만들려던 혼원단에서 더 나아갔다는 말이더냐?"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니까요."

"그, 그럼."

"네."

청명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성공했어요!"

장로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의약당주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로들과 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호, 혼원! 아니, 자소단!"

"내 눈으로 봐야겠다! 내 눈으로!"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다 죽어 가던 장로들이 어마어마한 기세로 솥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더니 그 안으로 고개를 쭉 내민다.

"오!"

"오오오오오!"

은은한 자색의 광채를 뿜는 흰빛의 무언가를 눈으로 확인한 현영이 고개를 획 돌려 의약당주에게 말했다.

"영단이 아닌데?"

"마, 맞습니다! 이게 영단입니다."

"그냥 덩어리 아니더냐!"

"이, 이걸 둥글게 빚어 말리면 그게 영단이 됩니다! 자, 장로님! 성공입니다!"

"성공이라고?"

"예! 성공하지 못하면 이런 향은 결코 나지 않습니다! 빛을 뿜는 영단이라니, 저는 난생처음 봅니다! 이게 영단이 아니면 세상 무엇이 영단이겠습니까!"

현영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솥과 의약당주, 그리고 청명을 연신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이 도깨비 같은 놈아!"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달려들어 청명을 와락 끌어안았다.

"아악! 아파요!"

"참아라, 참아! 하하하하하하하! 이 복덩이 놈이 이제는 하다 하다 영단까지 만드는구나! 뭐가 먹고 싶더냐, 이놈아!"

그리고 그거로도 모자라 청명을 번쩍 들고는 빙글빙글 돌았다.

"아아아! 어지럽다니까!"

"요 귀여운 놈!"

현상은 아예 눈물까지 글썽이며 소리쳤다.

"장문인! 성공, 성공입니다!"

"그래……. 그래. 그렇구나."

정작 장문인인 현종은 밀려드는 감격을 어찌할 수 없는 듯 말을 더듬었다. 가만히 솥을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선조들이시여.'

마침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까지.

지켜보고 계십니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현종을 뒤흔든다.

'다 저 녀석이 나타나 준 덕분이지.'

선조들께서 청명을 보내 주지 않았다면 지금 화산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화산이라는 이름조차 지금쯤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자꾸 주책없게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현종이 막 감동에 젖어 뭔가를 말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아니, 아직 이럴 때가 아니라니까!"

"응?"

청명이 부리나케 현영을 밀어 내고는 눈에 불을 켰다.

"세상일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벌써 잔치 벌이려고 하지 말고 빨리 영단부터 만들어요! 그 영단이 입으로 다 들어가기 전까지는 절대 안심 못 하니까!"

그렇지!

"움직여요, 움직여!"

"오, 오냐!"

"지금 바로 시작하마!"

장로들이 허겁지겁 솥으로 달려들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런데 지금 우리가 누구 말을 듣고 있는 거지?

"얼른!"

"오, 오냐! 그래!"

아무려면 어때.

아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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