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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44화 (244/1,567)

244화. 이렇게 아낌없이 주시다니! (4)

의약당.

이곳은 본디 싸우다가 부상을 입거나, 수련을 하다 주화입마에 걸린 제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존재한다.

무인의 부상은 양민들의 부상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법. 그렇기에 대문파라는 이름을 걸고 있는 문파들은 자체적으로 의술을 연구하여 의약당을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명문 거파에 있어서 의약당이란 크게 눈에 띄지 않아도 반드시 필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아.

물론 화산은 빼고.

화산의 의약당은 좋게 말하면 빛 좋은 개살구고 나쁘게 말하면 밥만 축내는 식충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생각해 보라.

어딜 가서 싸워야 다치는 이가 나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화산은 그동안 반쯤 봉문한 상태로 산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 그러니 어디 가서 제자들이 다칠 일도 없었다.

더구나 과한 수련을 해야 주화입마가 오는 것인데, 화산은 제자 하나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기에, 그들이 몸 상할 만한 수련은 전혀 시키지 않았다.

그러니 의약당이 하는 일이라고는 쓸데없이 건강하고 튼튼한 제자 놈들이 가끔 배탈이 나면 약이나 지어 주는 게 전부였다.

치료할 사람이 없고, 영단도 만들지 못하는 의약당을 대체 어디다 써먹겠는가?

상황이 그렇다 보니 지난 세월 의약당은 재경각주 현영의 위장병을 초래하는 가장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있다고, 마침내 화산이 그 의약당에 모든 기대를 쏟아붓는 날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다.

부산스러운 의약당 안에서 기이한 신음이 흘러나온다.

"끄으으으으으응."

"으으으으으으으으."

"쉬, 쉬지 마십시오. 절대…… 절대 쉬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의약당주 운각의 눈에 핏발이 섰다.

쇠 주걱으로 솥을 젓는 그의 팔뚝에 힘줄이 잔뜩 튀어나와 있었다.

하지만 그 강렬한 팔뚝과는 반대로 얼굴은 거의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눈 밑의 거뭇한 음영은 거의 턱 끝까지 내려와 있고, 수북하게 자라난 수염은 산적이 형님을 외치며 인사부터 하고 볼 판이다.

거무튀튀하게 색이 바랜 얼굴은 차마 보고 있기 힘들 정도였고, 흐른 땀이 말라붙어 허연 소금까지 툭툭 떨어질 지경이었다.

의원보다는 장의사를 찾는 게 빨라 보일 운각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부분이 바로 두 눈이었다.

"성…공한다! 반드시!"

그의 눈이 섬뜩한 광망을 내뿜었다.

몰골은 더할 나위 없이 초췌했지만, 의지만큼은 지금 이 순간도 처음과 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내력이 약해지면 안 됩니다! 열기를 유지해야 합니다! 장문인! 장로님!"

"끄으으으으으……."

"주, 죽을 것 같다."

현종과 현상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솥을 부여잡은 그들은 거의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삐쩍 말라 버린 현종이 앙상한 팔로 솥을 잡고는 신음한다.

"얼마나 더 해야 하더냐?"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하, 하루나 더……."

현종의 얼굴이 답지 않게 일그러졌다.

이쯤 되면 사람이라기보다는 인간 모닥불 수준이다.

하루 종일 내력을 불어넣다가 다른 장로들이 교대를 해주는 틈을 타 잠시 바짝 운공을 하여 내력을 회복한 후, 바로 다시 투입되는 짓거리를 자그마치 구 일 동안 하고 있다.

완전히 교대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 화산에 그들만큼 내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로들은 불과 한 시진도 버티지 못한다. 그러니 두 사람이 피를 토하도록 내력을 뿜어낼 수밖에.

"끄으으으으……."

참을 수 없는 신음을 내뱉는 현종의 귀로 나직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쯧쯧쯧. 뭐가 그리 힘들다고."

"……."

현종과 현상이 눈에 독기를 담고 고개를 돌렸다.

"자. 아, 하십쇼!"

"……아."

현종이 삐걱거리는 입을 아 벌리자, 현영이 그 안으로 죽을 부어 넣었다. 자리를 비우지 못하니 이렇게라도 먹어야 한다며 매일 죽을 쒀 오는 현영이었다.

"사형도 아, 하십쇼."

"괘, 괜찮……."

"시끄럽고 입 벌리십쇼!"

"끄응."

현상도 아기 새처럼 현영이 부어 주는 죽을 받아먹는다.

이제는 손자도 아니라 증손자의 재롱을 보며 미음을 떠먹여 줘야 할 나이에, 애처럼 죽을 받아먹고 있으니 서글픔이 물밀듯 밀려왔다.

하지만 현영은 그런 사형들을 보면서도 조금의 안쓰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힘들다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힘들다 싶으면 삼 년 전을 떠올리란 말입니다! 길바닥에 나앉게 되어 힘든 것보다는 백 배 낫잖습니까!"

"……그래!"

"그 말이 맞다!"

거의 꺼져 가던 두 사람의 눈에 다시 독기가 차올랐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미래로 가기 위한 힘겨움이다. 당장 제자들을 먹일 곡식도 없어서 이리저리 돈을 꾸러 다닐 때의 힘겨움에 비할 바 있겠는가?

'성공해야 한다!'

'내가 여기서 서서 죽더라도 영단은 완성시키고 죽는다!'

현상의 코에서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현영은 익숙하다는 듯 옆에 있던 천으로 현상의 코를 대충 문질러 닦아 주었다.

"집중하십시오! 장문인! 집중하셔야 합니다!"

운각이 눈을 부라리며 솥을 저어 댄다. 조금의 차이도 없도록 일정한 속도로 주걱을 움직이는 그의 눈에서는 광기마저 엿보였다.

"이제 하루! 딱 하루만 더 고생하면 됩니다!"

"그래! 하루!"

"고작 하루다! 고작!"

아흐레를 버텼는데 고작 하루를 더 못 버티겠는가?

의약당 안이 후끈하게 달아올랐다. 문파의 미래를 위해 제 한 몸쯤은 얼마든지 희생할 준비가 된 화산의 어른들은 제 몸을 돌보지 않고 혼원단에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확실히 뭔가 되어 간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혼원단의 완성이 눈에 보인다는 점이었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호화롭기 짝이 없는 솥 안에서 새하얀 빛깔의 액체가 끓고 있다.

이미 처음 넣었던 재료는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다.

"으으음. 확실히 향이 짙어지는구나."

하루하루 갈수록 솥 안의 액체가 그윽하고도 청아한 향을 내뿜고 있었다. 이건 분명 뭔가 되어 간다는 의미다.

세 사람의 부리부리한 눈이 솥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스으으읏.

스으으읏.

쇠 주걱이 솥에 스치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린다. 구 일 동안 이 소리를 듣고 있으니 이제는 꿈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

"장로님! 내력이 약해집니다!"

"끄으으응. 하고 있다!"

현상이 검게 죽은 얼굴로 솥에 내력을 불어넣는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러내렸다.

적지 않은 나이에 아흐레나 이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이제는 뼈마디에 성한 곳이 없을 지경이다.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마음을 다잡으려는 찰나, 그들의 귀로 태연자약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힘드세요?"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한쪽으로 돌아간다.

의자의 앉아 내내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던 이가 옆에 있는 육포를 들어 오물오물 씹기 시작한다.

"……."

"……."

청명아.

물론 어…….

그래, 네가 그동안 공을 많이 세웠지. 세워도 너무 많이 세웠지. 그러니 혼원단이 완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한다만…….

'왜 여기서 밥을 처먹냐고! 왜!'

장문인과 장로들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린 육포로 쏠리자 청명이 해맑게 웃었다.

"드실래요?"

"……아니다."

참 마음이 고운 아이였지만, 눈치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어색하게 헛기침을 한 현종이 슬그머니 입을 연다.

"딱히 할 일도 없어 보이는데, 굳이 거기 있어야 하느냐?"

"아, 저도 가고 싶은데요."

"응?"

대답은 그들의 옆에서 들려왔다.

"어림도 없는 소리!"

현영이 눈을 부라린다.

"이게 어떤 일인 줄 알고 우리끼리 한다는 말입니까!"

"또 왜……."

"막말로 사형들이랑 저. 그리고 저 운각이 놈이 같이 해서 뭐 잘된 게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다 말아 처먹고 돈만 날렸지!"

"……."

지난 뼈아픈 역사들을 생각하니 차마 입을 열 수 없는 현종과 현영이었다.

"……저 녀석이 있다고 뭐 할 게 있는 것도 아니잖으냐!"

"부적은 괜히 씁니까! 좀 산다 하는 집들이 괜히 금두꺼비를 가져다 두는 게 아닙니다! 저놈이 옆에 있어야 안심이 되니까 쫓아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야, 이놈아.

네가 도사다.

부적을 직접 써도 모자랄 사람이 부적 삼아 사람을 가져다 놓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더냐?

언제부터인가 화산이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현종 역시 굳이 억지로 청명을 내보내려 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좀 불안하다.'

이 일이 워낙에 큰일이다 보니 그들끼리 뚝딱 처리하기는 영 찝찝하다. 게다가 이렇게 손이 묶여 있는 동안 청명이 놈이 사고라도 치면 어쩐단 말인가?

저리 옆에 있으니 차라리 안심이 되는 기분이다.

찹찹찹찹.

"……."

지옥같이 얄밉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육포를 찰떡같이 씹어 먹던 청명이 눈을 살짝 찌푸린다.

"의약당주님. 손이 조금 느려지신 것 같은데."

"그, 그러냐?"

"장로님. 내력도 조금 약해졌어요."

"……그, 그래?"

"그렇게 들쭉날쭉하면 약효가 떨어진단 말입니다, 약효가! 기껏 좋은 재료 다 모아 왔는데 약발이 떨어지면 되겠어요?"

"끄으으응."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짜증이 난다. 예로부터 왜 바른말 하던 이들의 목이 먼저 잘려 나갔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하루! 이제 딱 하루예요! 천추의 한을 남기지 말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낸다는 마음으로!"

"으으으으으!"

모두가 다시 의욕을 곧추세우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 어?"

긴 쇠 주걱을 잡고 있던 운각의 팔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이, 이거 왜 이러……. 허어어억!"

발작이라도 하는 듯 손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도무지 주걱을 잡고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 안 돼!"

운각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혼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속도로 끝없이 재료들을 저어 주어야 한다. 그뿐이랴. 적절한 내력을 담아 솥에서 올라온 내력을 재료들로 밀어 넣어 줘야 한다.

이 과정에 실패하면 이 재료들은 비싼 쓰레기가 될 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손에 힘을 주려고 해도 그의 손은 이제 더는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즉시 사태를 파악한 운각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누, 누가! 대신 좀!"

"뭘?"

"이, 이걸 저어 주십시오! 저는 더는 안 됩니다!"

"의약당원을 불러 올까?"

현영이 다급하게 말하자 운각이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들로는 안 됩니다! 장로님들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내력이 충만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럼 내가?"

"다, 다른 장로님 없습니까?"

현영의 무위가 장로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야 모두가 아는 바가 아니던가?

"빨리! 아, 안 돼! 이대로는 재료가!"

운각의 처절한 외침에 결국 청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에라!"

그러더니 부리나케 달려와 운각의 주걱을 뺏어 들었다.

"고작 며칠 저었다고 벌써 탈진해서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뭔가 변명을 하려던 운각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풀리자마자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의식이 아득하게 멀어진다.

"어엇……."

한 사람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연쇄적으로 문제가 일어났다.

"끄르르륵."

털썩.

"아이고! 사형!"

현상이 코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나가떨어진다.

현영이 기겁을 하여 현상에게 달려들었다. 현종과 함께 내력을 불어넣어 가며 지금까지 버텨 냈지만, 더 이상은 무리인 모양이었다.

"혀, 현상……. 으으음?"

풀썩.

현종도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전신에서 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내력까지는 어떻게 보충할 수 있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체력이 더 이상 받쳐 주지 않는 것이다.

무너져 버린 현상과 현종을, 현영이 망연하게 바라보았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이제 하루 남았는데 다들 나가떨어져 버리면 혼원단은 어쩌라는 말인가? 정녕 이게 끝이란 말인가?

현영이 절망에 빠지려는 바로 그때였다.

"아오! 진짜!"

그의 시야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내가 앓느니 죽어야지! 내가!"

청명이 버럭 고함을 내지르더니 한 손으로 솥의 가장자리를 부여잡은 것이다. 그러더니 다른 손으로 주걱을 잡고 맹렬하게 휘젓기 시작했다.

"내가 이걸 어떻게 구해 왔는데! 죽어도 실패는 없다!"

현영은 눈을 부라리며 한 손으로는 솥에 내력을 불어넣고 다른 손으로는 주걱을 휘젓는 청명의 등 뒤에서, 손이 여러 개 뻗어 나오는 걸 본 것만 같았다.

그는 냅다 사형들을 내팽개치고 청명에게 달려갔다.

"처, 청명아! 괜찮겠느냐?"

"안 괜찮아도 괜찮게 만들어야죠!"

"그래, 그렇지! 옳지! 그래야 우리 청명이지!"

"잠깐 떨어져 계세요."

"오냐!"

현영이 바로 뒤쪽으로 훌쩍 물러났다. 이제는 청명이 하는 말에는 이유도 묻지 않는 그였다.

"하아아압!"

힘이 실린 기합과 함께 청명이 기감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그의 기감에 솥 안의 재료들이 잡힌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전히 녹아든 재료들이지만, 청명의 기감은 미세하게 흐트러진 기운들을 놓치지 않았다. 어떤 곳은 과하고, 어떤 곳은 모자란다. 이 기운들을 완벽히 균등하게 만들어 내야 한다.

아마 그것이 혼원단의 비법일 것이다.

"오냐.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한번 해 주지!"

약선의 혼원단이 완벽한 조화의 결정체라면?

'거기에 내 기운을 더한다.'

가장 그 완벽한 조화에 세상에서 가장 맑은 기운을 더해 보면 뭐가 나올까?

청명이 천천히 무아지경에 빠져들며 솥을 휘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현종은 똑똑히 보았다.

청명의 등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이 영롱한 오색으로 빛나는 모습을 말이다.

"……."

청명아.

적당히 하거라.

너 그러다가 등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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