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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42화 (242/1,567)

242화. 이렇게 아낌없이 주시다니! (2)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연무장을 울렸다.

엄청난 기세의 짜증에, 화산의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이 일제히 몸을 움츠렸다.

"겨우 한 달 정도 자리 좀 비웠기로서니, 그새를 못 참고 탱자탱자 놀아 젖혀?"

"……."

"이러니 내가 자리를 못 비우지!"

백상이 멍한 눈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억울하다.

너무 억울하다.

청명 일행이 자리를 비웠다고 남은 제자들이 마냥 놀아 댄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트집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수련을 했다.

그래서 억울한 거냐고?

아니, 그건 아니다.

어떻게 수련을 했든 청명은 기어코 트집을 잡았을 놈이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조금도 억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그럼 뭐가 억울하냐고?

백상이 고개를 들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왜 사형이?'

익숙하다.

너무 익숙한 얼굴이다.

그럴 수밖에. 지금 그들을 구박하고 있는 이는 저 청명이 놈이 아니라 백천이니까.

"……사형?"

백천이 백상을 향해 고개를 획 돌린다. 살기로 번들거리는 두 눈을 본 백상은 다시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다.

"쓰읍!"

"……."

아니, 사형.

불과 한 달 자리 비우시더니 왜 청명이 되어 오셨습니까?

기절할 노릇이다.

막상 그들이 내도록 걱정했던 청명이 놈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백천을 비롯한 유이설과 윤종, 조걸이 앞쪽에 쭈르륵 서서 각각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을 다그치고 있고, 청명이 놈은 그저 뒤쪽 나무 그늘에 드러누워 탱자탱자 놀고 있을 뿐이다.

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지?

"영약도 기본 실력이 있어야 활용을 할 게 아니냐! 도대체 한 달 동안 뭘 했기에 이렇게 실력이 떨어진 것이더냐?"

예?

실력이 떨어져요? 저희가요?

그 순간이었다.

백천이 노기를 가득 담은 목소리로 백상에게 일갈했다.

"백상!"

"예? 예! 사형!"

"너는 뭘 했느냐?"

예?

……저요?

백상이 멍한 눈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내가 없으면 네가 대제자인 것을! 어떻게 관리했기에 이 모양 이 꼴이냔 말이다!"

"예?"

아니, 아까부터 대체 무슨 말씀을……?

사실 백상은 백천에게 변명 한마디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오히려 직언을 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뭐랄까…….

'사람이 왜 이리 살벌해져서 돌아왔지?'

지금의 백천에게는 그 간단한 변명 한마디도 꺼내기가 쉽지 않다. 한 번씩 입을 열 때마다 뿜어지는 기세가 절로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긴말할 것 없다!"

백천이 검을 뽑아 저 위를 가리켰다.

"일단 낙안봉부터 찍고 와라. 늦게 오는 절반은 한 번 더 간다!"

"……."

"뛰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내가 먼저 간다!"

잠깐 주춤했던 이대제자들이 전력을 다해 낙안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쯧!"

백천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본 윤종이 가만히 고개를 돌려 청자 배를 바라본다.

"뭐 해?"

"예?"

"사숙들이 낙안봉으로 갔으니 너희는 연화봉으로 가자."

"……예?"

"사숙들이 절반은 다시 간다니까. 너희는 음……. 그래."

윤종이 빙그레 웃었다.

"열 명 빼고 다시 간다."

"……."

"가."

"예?"

"가라고."

"……."

분위기를 파악한 몇몇이 재빠르게 연화봉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나머지도 너나 할 것 없이 연화봉으로 내달린다.

전력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그들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불만이 튀어나왔다.

"아, 아니! 사형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조걸 사형은 왜 안 말리고 저러시는 건데?"

"나라고 알겠냐고!"

막상 걱정했던 청명은 한 마디도 안 하는데, 예전부터 그들의 편이었던 백천이나 윤종이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게 뭔 괴이한 상황이란 말인가?

죽어라고 달려가는 제자들을 보면서 윤종도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쯧."

고개를 두어 번 내저은 윤종이 백천을 바라본다.

"사숙."

"끄응."

백천이 한숨을 내쉬더니 영 못마땅하다는 투로 말했다.

"청명이 놈이 평소에 왜 우리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는지 알겠다. 불과 한 달 떠나 있었을 뿐인데 저 모양이라니!"

"저도 조금 이해가 갑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백천의 눈이 불타올랐다.

"사흘. 딱 사흘이다. 사흘 내로 기강을 다잡아 놓겠다!"

뒤쪽의 나무 그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청명이 피식 웃었다.

아마 지금쯤 다른 제자들이 당황스러운 만큼 백천과 윤종, 조걸, 유이설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저 운남에 갔다 왔을 뿐인데, 화산에 남은 제자들이 하나같이 약해 빠져 보일 테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다만 한 가지.

'지들이 세진 건 생각 안 하고.'

강함이라는 건 상대적인 법이다.

백천들은 운남으로 가는 내내 청명에게 집중적으로 얻어맞……. 아니, 집중적으로 수련을 받았다. 덕분에 지금 그들의 무위는 이곳을 떠나기 전의 무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떠나기 전 섭취했던 혼원단의 내력을 완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고, 초식은 더더욱 정교해졌다. 다시 말하자면 운남을 다녀오는 동안 저들의 무위는 몇 단계는 더 강해졌다.

그것뿐인가?

청명과 당가주의 비무를 보면서 절대고수의 능력을 체감했고, 청명과 당외의 비무를 보면서 실전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게다가 야수궁주를 바로 앞에서 겪었고, 강병이라 할 수 있는 야수궁도들을 보았다.

눈이 높아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그러니 떠나기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평범한 화산의 제자들이 눈에 찰 리가 있는가?

아마 지금부터 백천과 윤종들은 사제들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다그치고 또 다그칠 것이다.

'그래, 문파라는 건 이렇게 강해지는 법이지.'

지금껏 없었던 고수 하나가 등장하면 그 고수는 자신의 주변을 제가 만족할 때까지 쥐 잡듯 잡아 댄다. 그럼 거기에 당하며 강해진 이들이 다시 제 주변을 뒤집어 댄다.

그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되면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모두가 채근을 당하게 된다.

그럼?

당연히 강해질 수밖에!

이제야 청명이 흘려 내던 물줄기가 백천과 윤종들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 되면 청명은 그저 지켜보다가 어긋나는 것들만 조금씩 고쳐 주면 된다.

'한 일 년만 있으면 다들 자체적으로 수련하는 기조가 잡히겠지.'

그렇게 되면 그제야 화산은 명문이라 불릴 최소한 자격을 손에 넣을 것이다.

명문이란 뛰어난 곳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성과를 내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니까.

청명이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야 좀 편해지겠네.'

뿌린 씨앗이 발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화산의 기조가 잡히고 거기에 혼원단을 끼얹어 버리면 화산은 급속도로 강해질 것이다.

그럼 과거의 명성을 되찾는 것 역시 머지 않…….

"청명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청명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저 멀리서 달려오는 장문인과 장로들, 그리고 의약당주가 보인다.

"……."

다급한 그들의 얼굴을 본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렇지.'

편해질 리가 있나.

보나마나 또 무슨 사건이 터졌겠지!

앓느니 죽지! 앓느니 죽어!

청명이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이고, 장문사형."

문파 꼬라지가……. 예?

이걸 나보고, 어?

어휴!

장문사형의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엄살 부리지 마라, 이놈아. 그거 죄다 합쳐도 내가 네놈 사고 친 것 뒤치다꺼리하던 것에 못 미친다.

"에라이!"

청명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장문인과 의약당주가 그의 앞에 도달했다.

고개를 꾸벅하며 청명이 포권 했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아니! 지금 인사를 할 때가 아니고!"

"네?"

"이리 좀 오거라! 가서 봐야 한다!"

장문인이 청명의 목덜미를 움켜잡더니 다짜고짜 달리기 시작했다.

목덜미를 잡힌 채 허공에 떠오른 청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양반도 많이 과격해졌네.'

허허허허.

"봐라!"

"……."

"이걸 어찌하면 좋겠느냐?"

청명이 심드렁한 눈으로 앞에 놓인 거대한 솥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요?"

"잘 보거라! 아래쪽을."

"네?"

청명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솥의 아랫부분을 보았다.

"어? 이게 왜 갈라져 있지? 누가 주먹질이라도 했어요?"

"주먹질이 아니라 내력을 불어넣었다."

"네? 솥에요? 검도 아니고 솥에 무슨 내력이에요. 솥을 쓰는 새로운 무학이라도 창안하시려고?"

"그런 게 아니라!"

현종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친다.

그러자 의약당주 운각이 재빨리 현종의 말을 받아 설명을 시작했다.

"혼원단의 제조법 중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과정이 이거다. 자목초는 과거에는 흔했던 재료가 지금 귀해진 것뿐이지만, 이건 다르다. 혼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방대한 내력을 가진 내가 고수가 내력으로 솥을 달궈야 한다."

"……그럼 뭐가 달라요?"

"나도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만 그렇게 하면 내력이 혼원단 안으로 스며들어 잡스러운 기운을 정화하는 모양이다."

응? 그런 것도 되나?

여하튼 약선 그 양반 대단하긴 대단하네.

"신기하네요. 그래서요?"

"그래서 바로 연단에 들어가기 전에 혹시나 싶어서 장문인을 모셔 내력을 불어넣어 봤는데. 솥이 버티지를 못한다. 지금 이게 세 개째다."

"……."

"만일에 대비해 실험해 보지 않았으면 재료고 뭐고 다 날려 먹을 뻔했지 무어냐."

"그러니까, 정리하면……."

청명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혼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솥에 내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이런 무쇠 솥은 내력을 감당하지 못해서 깨진다 이거죠?"

"그렇다."

"그럼 검이랑 같은 금속으로 만들면 안 되나요?"

"검과 솥은 주조법이 다르다. 기본적으로 검은 두드려 접어 펴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만한 솥을 그런 방식으로 만들기는 힘들다더구나. 소소에게 물어봤는데 당가에서도 어려울 거라 했다."

"끄응. 그럼요?"

"내 생각에는 그냥 강한 철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이만한 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의 귀한 철이 흔치가 않다."

"……작은 냄비에 조금씩 만들면 안 되나요?"

의약당주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약선의 가르침에는 오직 한 가지의 배율만이 나와 있다. 양이 줄어들면 배합도 달라져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는 그 배합을 알아낼 수가 없다."

거 진퇴양난이네.

"그럼 결론은…… 그 막대한 내력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강한 철을 구해다가 이만한 솥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허허."

청명이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니, 뭔!

하나 해결했다 싶으면 문제가 또 생기고, 또 하나 해결했다 싶으면 다른 문제가 생기고!

지금 누가 일부러 날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아니! 그만한 철을 대체 어디서……. 어디……. 철?"

발작하려던 청명이 문득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했다.

내력을 버틸 만큼 특수한 철? 그게 이만한 솥을 만들 만큼 많이?

그러니까 예를 들면……?

"만년한철 같은 거?"

"그렇지! 만년한철이면 더 바랄 게 없겠지."

"……."

"그게 쉽지 않아서 일단 네게 상의를 한 것이다. 혹시 만년한철을 빠르게 구할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느냐?"

아…….

생각이요?

허허허허허.

청명이 피식 웃자 현종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아무리 너라고 해도 그 귀한 만년한철을 대량으로 구할 수는 없겠지. 일단은 은하상단의 황 대인께……."

"오늘."

"응?"

"아, 오늘은 안 되고. 내일 가져다드릴게요."

"……."

대뜸 자신 있게 말하는 청명을 보며, 현종이 황망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뭘 가져다준단 말이냐?"

"만년한철이요."

"……."

"아. 아예 솥을 만들어 드릴까요?"

현종과 운각이

'이놈이 맛이 가 버렸나?'

하는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청명은 그 반응을 보면서도 연신 피식피식 웃을 뿐이었다.

만년한철?

있지.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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