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이렇게 아낌없이 주시다니! (1)
재경각에 폭탄이 떨어졌다.
"이게 뭔 소리야! 사천에 상단을 만들어야 한다니!"
"뭐? 지금 사천당가에서 만든 검이 오고 있다고? 그, 그럼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일단 창고에 쌓아야 하나?"
"운남에 쌀은 또 무슨 소리야? 그건 누가 관리하는데?"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문파를 뒤집어 버리고도 남을 일이다. 그런 폭탄이 몇 개나 떨어졌으니 재경각은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쯧쯧쯧. 녀석들 참."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현영이 흐뭇하게 웃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 호들갑을 떠는 게냐."
"각주님, 대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제가 재경각에 든 이래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 없었지."
현영의 입꼬리가 점점 더 말려 올라갔다. 이젠 거의 귀에 닿을 지경이었다.
"그때는 화산에 우리 청명이가 없었지 않느냐?"
"……."
우리 청명이요?
각주님이 그런 말투 쓰시는 것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놀랄 것 없다. 아암, 놀랄 게 아니지. 앞으로 놀랄 일이 더 많이 벌어질 텐데 뭘 벌써부터 그리 호들갑을 떨고 그러느냐!"
운방(雲防)은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현영의 얼굴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저 행복을 깨는 것도 제자로서 도리가 아니다.
벌컥!
그때 재경각의 문이 열리더니 한 제자가 커다란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각주님! 구해 왔습니다!"
"오!"
현영이 벌떡 일어나 달려가더니, 바구니를 획 낚아챘다.
바구니 위에 덮인 보자기를 젖히자 펄떡이는 커다란 장어와 삼(蔘), 그리고 묶어 놓은 닭이 빼꼼 고개를 들었다.
"……그건 뭡니까, 각주님?"
"애가 운남까지 다녀오느라 기력이 쇠했을 텐데, 용봉탕 정도는 해 먹여야 기운을 차리지 않겠느냐!"
"용봉탕에는 장어가 안 들어갑니다."
"뭐? 그럼 왜 용봉탕이야?"
"……."
"……."
운방이 입에 주먹을 대고 낮게 헛기침을 했다.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아, 아니, 화산이 아무리 육식을 금하지 않는다고 해도 명색이 도가인데 살아 있는 애들을……."
"괜찮다. 괜찮아. 가치 있는 죽음이야. 얘들도 기뻐하겠지."
그건 장어의 말도 들어 봐야하지 않을까요?
정말 그걸로 괜찮은 겁니까?
운방의 걱정은 가뿐하게 무시한 현영이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가엽게도. 애가 얼굴이 반쪽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느냐? 청명이를 잘 먹이고 잘 키워야 화산이 크는 법이다."
"빵빵하던데."
"어허!"
"친손주에게도 그렇게는 안 하겠습니다."
"어디 손주 같은 걸 청명이에게 비교하느냐!"
답도 없으시네.
"여하튼 그러니 이 일들은 너희가 처리하고 있거라. 나는 가서 이놈들이나 고아야겠다."
"저, 저희가요?"
"그럼!"
현영은 주저 없이 획 돌아서더니 희희낙락하며 주방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망연하게 보던 운방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가만히 미소 지었다.
'그리도 좋으실까.'
예전의 현영을 생각하면 한숨을 내쉬는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하루 종일 장부를 뒤적이며 한숨을 쉬고 다시 고민하다 또 한숨을 내쉬는 것이 현영의 하루 일과였다. 미간에는 언제나 깊은 주름이 잡혀 있었고, 눈은 퀭하게 패여 있었다.
언제 망할지 모르는 화산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있던 사람.
그게 운방이 기억하는 현영이었다.
그러던 사람이 저리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니 일은 둘째 치고 운방마저 기분이 좋아진다.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불과 이 년 사이에 다른 문파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당장 자신만 해도 언제 현영을 보며 이리 기분 좋게 웃은 적이 있었던가?
"쯧. 이래서야."
현영이 청명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화산에 입문한 이후로 지금까지 현영을 모셔 온 그보다 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청명을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그 아이가 화산의 모두를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부각주님. 어떻게 합니까?"
"정말 저희끼리 처리합니까?"
당황하여 묻는 제자들을 보며 운방이 미간을 좁혔다.
"엄살 부리지 말거라."
"하지만……."
"우리가 엄살을 부려서 되겠느냐? 의약당이 지금 무슨 꼴인지 알면서."
"아……."
의약당이라는 말이 나오자 제자들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안쓰러운 눈으로 의약당 쪽을 바라보았다.
"인형자삼(人形紫蔘) 두 근 석 량!"
"두 근 석 량!"
삼이 세심한 손길로 잘리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신중에 신중을 기한 손길이었다.
"두 근 석 량이요!"
"가져와 봐!"
"예!"
의약당원이 잘린 것들을 조심스레 들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여기 있습니다."
의약당주 운각이 마른침을 삼키며 인형자삼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저울 위에 올렸다.
저울의 침이 두 근 석 량을 살짝 지나치는 순간 운각이 눈을 뒤집어 깠다.
"두 근 석 량을 잘라 오라니까! 이놈이 넉 량을 잘라 와?! 네 눈은 옹이구멍이냐!"
"아, 아니 그게 아니고."
"이놈이 이게 어떤 일인 줄 알고! 네놈 때문에 혼원단……. 아니! 자소단이 잘못 만들어지기라도 하면 네놈이 그 책임을 다 질 테냐? 이 답답한 놈!"
불같이 터져 나오는 노기에, 의약당원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얼른 허리를 숙였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무인이라는 놈이 그것 하나 제대로 못 잰단 말이더냐?"
"제, 제 저울로는 분명히 두 근 석 량이었습니다!"
"뭐라?"
운각이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그의 눈에 들어간 힘을 뺀다.
"저울이 전부 너무 낡아서 서로 맞아떨어지지 않는 모양이에요."
"으음?"
운각이 고개를 돌렸다.
화산의 무복을 입은 당소소가 손에 든 동전을 이 저울 저 저울에 올려 보고 있었다.
"저울끼리 맞지 않는 게 문제 같습니다, 당주님. 한 저울만 사용하든가, 아니면 저울을 모두 교체해야 할 것 같아요."
"으으음. 그런가?"
"예. 가장 중요한 게 비율인데, 이렇게 서로 눈금이 다른 저울을 써서 오차가 나면 그 비율이 달라져요."
"으으음. 하지만 한 저울만을 쓰면 시간이 너무 걸리겠지."
의약당주가 고개를 획 돌렸다.
"당장 화음에 가서 새 저울을 구입해 와라! 당장! 돈은 재경각에서 내어 줄 것이다."
"예! 그럼 저울 하나를……."
"하나는 무슨 하나야! 다 바꿔!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대신 정확한 저울만 골라서 구입해 와야 한다!"
"예!"
당장이라도 저울들을 죄다 입으로 씹어 먹을 듯한 운각의 기세에 의약당원이 기겁을 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의약당주 운각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다들 잘 들어라."
"예!"
의약당원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즉각 대답했다.
그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다.
"이 일에 화산의 운명이 걸려 있다! 조금이라도 소홀히 하는 놈이 있다면 매화동에 처박아 삼 년 동안 면벽만 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알겠느냐?"
"예, 당주님!"
운각이 소매를 들어 이마에 배어난 땀을 닦았다.
'끄으으응. 쉽지 않구나.'
물론 혼원단을 만드는 과정 자체는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약왕이 워낙 세세히 설명해 놓기도 했고, 특별한 연단법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양과 비율만 잘 맞추고, 약왕의 비법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문제는 부담감이었다.
영단이란 섬세하기 짝이 없어서 정말 좁쌀 하나만큼만 비율이 달라져도 약효가 급격히 떨어진다.
'운남까지 가서 힘들게 구해 온 자목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할 수 없다!'
운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저 아이가 있어서 다행이지.'
사실 화산에는 영단의 제조법이 남아 있지 않다. 그 말인즉슨 근 백 년 사이에는 영단을 제조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나름 의약당을 이으면서 영단을 어떤 식으로 제조하는지 그 이론에 대해선 배웠지만 그의 손으로 직접 영단을 제조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소소가 제때 와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 수도 없는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을 것이다.
'제조법 전부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준비 과정까지는 당소소의 조언을 듣는 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여하튼 혼원단을 제조하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부담감이 심한데…… 심지어 여기에 다른 문제도 있다.
"크흠. 안에 있는가?"
"……."
제조실의 문이 열리고, 현종과 현상이 들어섰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의약당원들이 일제히 읍을 했다. 현종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들 바쁠 텐데, 내가 괜히 온 건 아닌가 싶구나."
운각이 아연한 눈으로 현종을 바라보았다.
장문인.
오늘만 이걸로 여섯 번째입니다.
그럴 거면 그냥 차라리 거기 의자 하나 놓고 앉아 계시지. 왜 자꾸 왔다 갔다 하십니까?
"크흐흠. 고생이 많다. 다름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던 현종이 슬쩍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다들 바빠서 신경을 못 쓰는 것 같은데……. 바닥에 먼지가 너무 많지 않느냐?"
"……예?"
"괜히 영단을 제조할 때 이물질이 끼어들까 싶어서 말이다. 창도 이리 활짝 열어 놓으면 지나가던 벌레가 들어올 수도 있고."
"아……. 예."
"크흠. 그리고 음……. 저리 재료를 늘어놓으면 수분이 빠져 무게가 달라질 텐데. 혹여 그것 때문에 약효가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라……."
운각이 입을 다물었다.
이게 오늘만 여섯 번째다.
격려를 하겠다고 찾아와 잔소리를 늘어놓으니 일을 하다가도 정리를 하고, 도로 일을 하다가도 또다시 정리하게 된다.
"장문인……."
"으음? 왜 그러느냐?"
"제가……. 제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으흐흠! 내가 의약당주의 권한을 침범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늙어서 잔걱정이 많다 보니 그런 게지."
조금 머쓱한 듯 말하는 현종을 보며 결국 운각이 눈가를 훔쳤다.
차라리 욕을 하고 패는 게 낫지.
저렇게 못 믿겠다는 얼굴을 하고 하루에 열댓 번씩 고개를 내미니 환장할 판이었다.
"그래, 그럼 혼……. 아니, 자소단을 완전히 제작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
"열흘입니다."
"그, 그렇게나?"
현종이 움찔한다.
그가 얼굴로
'아니. 지금도 목이 빠지게 생겼는데, 열흘이나 더 기다리라고?'
를 말하는 신기를 보여 주자 운각이 참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문인. 대부분의 영단은 사십구 일의 연단과 사십구 일의 건조, 숙성을 하는 게 기본입니다. 그나마 자소단은 다른 영단과는 달리 그 제조가 간단하여 시일이 덜 걸리는 편입니다."
"그, 그래?"
현종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영단을 만드는 과정에 내가기공의 달인이 필요하니 그때는 장문인께서 직접 점검하실 일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 지금은 제발……. 제발 좀!"
"크흠. 그, 그렇구나. 아니 나는 뭐 내가 도울 일이 없는가 싶어서 그랬지……."
"그럴 일이 생기면 제가 직접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그, 그러자꾸나."
머쓱한 얼굴로 슬쩍 주변을 둘러본 현종은 크게 헛기침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래. 그럼 다들 고생하거라."
"살펴 가십시오, 장문인!"
현종이 아쉬운 얼굴로 다시 나갔다. 문이 닫히자 의약당원 하나가 무척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기대가 크신 모양입니다."
"그렇지. 그러시겠지……."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큰일인가? 현종이 저러는 것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해는 이해고, 방해는 방해. 대업을 이루어야 하는 그들에게는 조금이라도 신경 쓰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다들 다시 긴장하거라. 이 일은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
"예, 당주님!"
"화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실패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운각이 살짝 말끝을 흐렸다.
"생각해 보거라. 이 영단을 만들기 위해 청명이 놈이 그 먼 운남까지 다녀왔다."
"예!"
"……그런데 이걸 실패하면 그놈이 운남에 다시 다녀와야 한다."
"……."
주변의 분위기가 급격히 식었다.
"얌전히 다녀올 것 같으냐? 그 청명이?"
"……아니죠."
의약당원들의 머릿속에 눈을 까뒤집고 미쳐 날뛰는 청명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절로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죽어도 성공시켜야 돼!'
모두가 두 눈을 부릅뜨고 혼원단의 재료들을 노려보았다.
운각의 두 눈 역시 낮게 가라앉았다.
'여기에 내 모든 걸 건다!'
의약당에 뜨거운 열기가 들어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