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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32화 (232/1,567)

232화. 그쪽이 왜 그러세요? (2)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은 다 범인이여!"

"……뭐래?"

"이해하십쇼. 하루 이틀 저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백천은 독 오른 독사처럼 하악대는 청명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청명의 등 뒤에 자목초 자루가 있다. 야수궁으로 돌아오자마자 자목초 자루를 뺏어 가더니 자기가 지켜야 한다며 저러고 있는 것이다.

"귀엽다, 귀여워."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진짠 줄 알잖습니까."

조걸의 몸서리에 백천이 피식 웃는다.

물론 청명의 꼴이 정말 기가 막힌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

생각했던 것보다 쉽게 손에 넣었다고 해서 자목초의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바로 저 자목초가 있어야 혼원단을 제조할 수 있고, 혼원단을 제조할 수 있어야 화산이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지금 화산에게 저 자목초는 천금보다 귀한 물건이었다. 청명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게 중요하면 여기다 놓고 지킬 게 아니라. 빨리 화산으로 돌아가야지."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너무 길어졌어. 장로님들 목이 한 치씩은 길어졌을 거야."

"……."

목이 길어진 장로들을 상상한 백천이 재빨리 머리를 털어 삿된 상념들을 날려 버린다.

'그래, 생각보다 여정이 너무 길어지기는 했어.'

설마 저 풀떼기를 얻어 가는 데 이리 많은 일들을 겪어야 할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 생각하니 자목초 자루가 더욱 귀중하게 느껴지는 백천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다른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떠날 준비는 다 끝났나?"

"딱히 준비라고 할 게 없습니다. 짐도 별로 없고."

"음, 그렇지."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청명을 보며 살짝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야수궁주님께 인사를 드리고 떠나도록 하자. 우리에게 많은 호의를 보이셨으니 인사는 제대로 해야겠지."

"음, 그래야지."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같아서는 인사고 뭐고 바로 섬서로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야수궁주와의 관계는 좋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다.

'자목초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까.'

청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야수궁주는 똑똑한 사람이다. 자신들에게는 별것도 아닌 자목초를 내어 주며 화산의 환심을 샀고, 심지어 신담 주변에 자목초 밭을 만들어 놓아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을 토대를 쌓아 놓았다.

물론 화산의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자목초를 나름 쉽게 손에 넣은 데다 앞으로의 공급처도 확보한 셈이니까.

그때 윤종과 조걸이 슬그머니 청명에게 다가왔다.

"뭐야! 함부로 접근하지 마!"

"안 뺏어 가, 인마! 우리도 화산인이야!"

조걸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억울해했다.

윤종이 살짝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청명아."

"응?"

"잠깐 할 이야기가 있다."

"응?"

사뭇 진지한 그의 태도에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우리가 왜 해?"

청명의 언성이 버럭 높아졌다. 반면 말을 꺼낸 윤종은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듯 침착했다.

"아니, 잘 생각해 보거라."

"우리가 뭐 운남으로 가는 상행 틀어막고 못 가게 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지들이 안 하겠다는데 그걸 우리가 왜 설득해야 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또 사람들이 굶주리니 어쩌니 하려는 거지? 사형. 윤종 사형. 그건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야. 아니, 물론 나도 안타깝지.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잖아."

"아니, 비단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때 곁에서 잠자코 듣기만 하던 조걸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보탰다.

"청명아. 사형이 또 측은지심만으로 일을 벌이겠다 하는 거라면 네게 말이 들어가기 전에 내가 먼저 말렸을 거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번 일은 그리 단순한 게 아니야."

조걸의 말에 청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럼?"

"돈이 된다."

"응?"

"돈!"

조걸이 눈을 빛냈다.

돈이라는 말에 청명이 묘한 표정으로 둘을 보았다.

"그러니까……."

"내가 설명을 하……."

하지만 조걸이 입을 열기도 전에 청명이 바로 줄줄 말했다.

"운남의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아 보이니까, 우리가 식량을 사다가 운남의 차와 교환해서 팔아먹을 수 있다면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어……."

"물론 지금도 소규모의 상행은 있지만 그것만으론 공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운남의 차 무역권을 손에 넣을 수 있으면 중원 10대 상단이 버는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

"……."

"그리고 그걸 사형 집이 대리할 수 있으니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다? 이 말이지?"

조걸이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생각하고 있었냐?"

"누굴 바보로 아나?"

"응."

"뭐?"

"아, 아니."

청명이 피식 웃는다.

"사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야.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운남에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야수궁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야."

"……."

"상대를 위한답시고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돈?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세상에는 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도 있어."

윤종과 조걸이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슬쩍 눈길을 교환한다.

'돈 번다고 이야기하면 미쳐서 달려들 거라며.'

'사형도 그런 줄 알았잖습니까! 저 돈 귀신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런 둘을 청명이 한심하다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짐이나 싸."

"……끄응."

윤종이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럼 그냥 운이라도 한번 떼 주면 안 될까?"

"허어."

그런 그를 청명은 영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윤종은 쉽사리 뜻을 꺾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야수궁주님이 너를 각별히 여기시지 않느냐. 네 말은 들으실지도 모른다. 사실 야수궁이 차 무역을 막고 있는 이유도 중원인들이 싫어서 그런 건데, 네가 직접 나선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청명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생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은 또 아닌데…….

잠깐의 고민 끝에 그는 결국 입을 열었다.

"진짜 딱 운만 떼는 거다."

"그래. 더 이상은 바라지 않으마."

"대신!"

"응?"

청명이 씨익 웃었다.

"사형들이 준비해 줘야 할 게 있어."

"응?"

"별건 아니고."

청명이 씨익 웃었다.

"협상을 좀 더 쉽게 풀어 갈 수 있는 복장이라고나 할까?"

윤종과 조걸의 얼굴에 불안함이 어렸다.

"……."

백천이 멍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

"왜?"

"……아니."

그의 시선이 청명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는 훑고 지나갔다.

"……왜 이러는 거냐?"

"그러니까, 뭐가?"

"끄으으응."

백천이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빛의 학창의를 입은 청명이 한 손에는 새하얀 꼬리깃으로 만든 부채를 들고 있다.

흡사 제갈량의 그것 같았지만, 뭔가 만듦새가 조악한 것이 영 모양이 나지 않는다.

그 조악한 백우선으로 얼굴을 두어 번 부친 청명이 뿌듯한 듯 어깨를 쭉 폈다.

"운남에서 협상을 하려면 이 정도는 입어 줘야 하는 법이지."

답지 않게 뒷짐을 지고 후후후 웃는 모습을 보던 백천은 결국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마자 더한 놈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희는 또 꼴이 왜 그러냐?"

"……."

윤종과 조걸이 습기가 차오른 눈가를 말없이 소매로 훔쳤다.

사실 청명의 손에 들린 백우선은 어디서 사 온 게 아니라 바로 두 사람이 직접 만든 것이다.

청명은 그들에게 학창의와 백우선을 요구했고, 곤명의 시전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한 두 사람은 밀림으로 들어가 직접 발로 뛰며 꽁지깃이 긴 새를 쫓아다녔다.

덕분에 여기저기 가지에 긁히고, 풀독이 오르고, 새의 발톱에 잔뜩 할퀴어져 엉망진창이 되고 만 것이다.

'저 망할 새끼.'

'개도 안 물어 갈 놈!'

덕분에 시간 내에 어떻게든 그럴싸해 보이는 백우선을 만들어 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 눈물과 슬픔의 결과물이 지금 청명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후후.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지! 이쯤 되면 알아서 내 말을 듣지 않겠어? 낄낄낄낄."

혼자 웃어 대는 청명을 보며 백천이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들 잘 들어라."

"예. 사숙."

"중원에 돌아가면 이 일은 절대 비밀이다. 제갈세가에서 알면 칼 들고 쫓아올지도 모른다."

"……그러겠습니다."

화산의 제자들이 연이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명은 자신의 옷이 마음에 드는 듯 좌우로 팔을 펼치고는 엣헴 하고 헛기침을 해 댔다.

"자, 이제 궁주님을……."

그때였다.

"안에 계신지요."

"응?"

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청명이 문을 열었다. 야수궁도 하나가 그를 기다리며 시립하고 있었다.

"궁주님께서 청명 도장님을 찾으십니다."

"엥?"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이유는 저도 알지 못합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궁주실에 들러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떻게 찾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으니 차라리 잘됐다.

"그럼 나는 다녀올게."

"으음……."

"걱정하지 마. 내가 잘 말해 볼 테니까. 내가 이래 봬도 예전에는 제갈청명 소리 듣던 사람이야."

"……제갈청명은 얼어 죽을."

"엣헴!"

뒷짐을 지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청명을 보며 백천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예, 사형!"

"짐 챙겨라."

"예?"

"언제든 토낄 수 있도록 짐을 항상 쥐고 있어라."

"……예."

백천이 못내 불안한 시선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제발 사고 치지 말자. 청명아.'

제발.

* * *

"왔느냐?"

"네. 간밤에 별일은 없으셨어요?"

"내가 무슨 일이 있을……. 그런데 복장이 왜 그런가?"

"신경 좀 써 봤어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이리 보니 문사 같은걸?"

"그렇죠? 히힛!"

청명이 슬쩍 팔을 벌리고는 앞으로 쪼르르 걸어가 야수궁주의 앞쪽에 앉았다.

"부르셨다고 해서 왔어요."

"음, 그렇지. 내가 할 말이 조금 있어서 너를 불렀다."

"네, 말씀하세요."

야수궁주가 부리부리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야수궁이 화산의 편의를 많이 봐주지 않았더냐."

"크,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건 진심이었다.

과거의 매화검존이 운남의 영웅이라지만, 그 본인도 아닌 후예를 이렇게나 대접하고 배려해 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감사할 수밖에.

그런데 야수궁주가 답지 않게 조금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꼭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다만……."

"예?"

그 강렬한 얼굴이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청명이 되레 몸이 배배 꼬일 판이었다.

"부탁할 게 하나 있다."

"부탁이요?"

"그래."

야수궁주가 한숨을 내쉬고는 청명을 바라본다.

"이건 야수궁이 화산에 하는 부탁이기도 하고, 야수궁주인 나 맹소(孟小)의……."

"잠깐만요."

"응?"

"성함이 맹소(孟小)라고요?"

"그렇다."

"소(小)요?"

야수궁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태어났을 때 너무 작아서 아버지께서 그런 이름을 붙여 주셨다더군."

"……."

아니.

태어날 때 그리 작았던 분이 자라면서 대체 무슨 일을 겪으시면 이렇게 되시는 건데요?

이유식으로 묵린혈망이라도 드셨나?

"크흠, 여하튼!"

야수궁주 맹소가 살짝 민망한 얼굴로 말을 이어 갔다.

"이건 야수궁주인 나 맹소가 화산의 청명 도장에게 하는 부탁이기도 하다."

청명이 허리를 쭉 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뭔가 진지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호의를 베풀어 준 이에게는 그에 걸맞은 대접이 필요한 법. 청명이 답지 않게 얼굴을 굳혔다.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몇 번이고 말을 고르는 듯 입을 우물거리던 맹소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어려운 부탁인 줄은 알고 있지만……. 혹시 화산이 직접 나서서 운남과 무역을 해 줄 수는 없겠는가?"

"……네?"

"무역을……."

"네?"

"그러니까 차 무역을……."

"……네?"

"물론 어려운 줄은 알고 있지만."

청명이 멍한 얼굴로 되물었다.

"차 무역을 해 달라고요?"

"그렇네."

"화산이요?"

"그렇다네."

"……."

청명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맹소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쪽이 왜 그러세요?'

그거 내가 부탁해야 할 일인데?

뭔 일이 이렇게 돌아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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