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왜 너희가 그걸 모르느냐? (4)
하아아아아아악!
하아아아아아악!
앞에서 털을 잔뜩 세우는 담비를 보며, 청명이 피식 웃었다.
"앉아."
착!
털을 곤두세우고 위협을 하던 담비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부동자세를 취한다.
"이리 와."
쪼르르르르르.
"쯧."
그가 담비를 한 손으로 안아 들었다. 그러자 담비가 필사적으로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앞발을 바동거리기도 하고 몸을 이리저리 틀며 배를 까뒤집고는 예쁜 짓을 해 댔다.
그 모습이 더없이 귀엽기는 한데.
'불쌍해.'
'지금 쟤 눈에는 청명이 저승사자쯤으로 보이지 않을까?'
'살려면 필사적이어야지. 그렇지.'
한편으로는 너무 간절해 보여서 안타깝다.
그때 옆에서 실컷 토하고 속을 잠깐 추스른 야수궁주가 그 광경을 보더니 말했다.
"으음. 신기하군. 백아는 외인을 잘 따르지 않는데."
"백아요?"
"이 담비의 이름이다. 하얀 섬전이라는 의미로 백전(白電)이라고 하지."
"백천이요?"
"백전."
"백천이요?"
고마해, 이 미친놈아!
백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고, 성질이 표독스럽지."
"아. 그렇죠. 분명 그렇죠."
"그런 주제에 까탈스럽기 그지없다. 뭘 믿고 이러는지 나도 한 번씩 이해가 안 갈 때가 있단다."
"크으. 진짜 잘 아시네요."
윤종과 조걸이 잽싸게 몸을 들썩이는 백천의 양팔을 잡았다. 그러지 않았다면 백천이 금방이라도 튀어나가 난동을 피웠을 것이다.
"진정하십시오. 사숙!"
"사숙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잖습니까!"
"끄으으으응."
백천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야수궁주는 아니겠지! 그런데 저 새끼는 맞잖아!
이제는 하다하다 담비를 가지고 와서 사람을 까네!
청명이 백'전'의 뒷목을 쥐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슬쩍 그의 눈치를 본 백전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야수궁주는 진심으로 감탄한 눈치였다.
"허허. 야수궁의 동물들도 잘 따르다니. 동물은 사람의 선함을 알아본다고 하지. 그런 걸 보면 너는 꽤 선한 사람인가 보구나."
"도인이니까요."
그 자연스러운 대화에 화산 제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이 도인이라 선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저 청명 놈의 뻔뻔스러움에 놀라야 할지, 야수궁의 궁주가 저걸 잘 따른다고 받아들이는 데 놀라야 할지.
'여하튼 둘 다 이상해.'
'집에 가고 싶다.'
"그런데 성질도 더럽고 말도 잘 안 듣는 놈을 굳이 키우실 필요가 있나요?"
"그래 봬도 그놈이 영물 중의 영물이다. 집채만 한 호랑이도 그놈 앞에서는 꼼짝을 못 한단다."
"요만한 게요?"
"크기가 전부는 아니지."
야수궁주가 덩치에 걸맞지 않은 말을 했다. 이제 화산의 제자들은 놀라는 데도 지쳐 버렸다.
"자, 이제 출발하자꾸나."
"네."
청명이 야수궁주를 따라서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뒤를 흘끗 보며 외쳤다.
"가자, 백아!"
"저 새끼가……!"
"참으십쇼, 사숙!"
"사숙한테 하는 말이 아닐 겁니다!"
"끄으으으응!"
백천이 앓는 소리를 내며 터덜터덜 야수궁주와 청명의 뒤를 따랐다.
사실 설사 이들이 말리지 않았다 한들, 야수궁주의 앞에서 뭘 하겠는가? 단지 화가 치밀 뿐이다.
그렇게 방을 나서서 광장을 가로지르자 호법들이 우르르 달려와 야수궁주에게 깊이 고개를 조아렸다.
"궁주님!"
"궁주님, 어디로 가시옵니까?"
야수궁주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신담(神潭)으로 간다."
"시, 신담이라고 하셨습니까?"
호법들의 시선이 그의 뒤를 따르고 있던 화산의 제자들에게 날카롭게 꽂혔다.
순간적으로 뒤바뀐 그 눈빛에 백천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아무래도 신담이라는 곳이 예사로운 공간은 아닌 모양이군.'
그러니 저런 눈으로 보지 않겠는가? 만일 그곳이 외인의 출입을 금하는 곳이라면…….
"손님들께서 무슨 커다란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입니까? 신담이라니요?"
엥?
뭐라고?
호법들의 시선에는 의심과 의문이 가득했다. 화산의 제자들 역시 지지 않고 이게 뭔 소리냐는 눈으로 그들을 보았다.
야수궁주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잘못은 무슨 잘못! 신담에서 할 일이 있을 뿐이다!"
"하나, 궁주님! 신담은……."
"내가 그런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야수궁주가 불퉁 튀어나온 눈을 부라리자 호법들이 즉시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궁주님! 속하들이 어리석었습니다!"
"쯧!"
야수궁주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자 호법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와.'
'굉장하다.'
새삼 야수궁주가 야수궁에서 가지는 힘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광경이다.
보아하니 이곳의 호법이면 화산에서는 장로쯤 되는 신분 같은데, 궁주에게 제대로 말도 붙이지 못한다.
물론 화산의 장문인 현종도 나름 장로들에게 우대를 받고 있지만, 야수궁에 비하면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당가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야수궁의 특성인지, 운남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남만야수궁의 궁주가 가지는 권위는 중원의 문파에서 장문인들이 가지는 권위를 확연히 뛰어넘는 것 같았다.
"비켜라!"
야수궁주가 앞으로 나서자 호법들이 화들짝하며 물러났다. 정문을 지키고 있던 호위들도 얼른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재빨리 문을 열었다.
"궁주님 만세!"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는 궁도들을 보며 윤종이 혀를 내둘렀다.
"야수궁주가 운남에서는 거의 왕이라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입니다."
"으음, 그렇구나. 남만야수궁이 이런 체계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오히려 중원보다 더 고하가 확실하구나."
백천의 대답이었다.
그때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닐걸?"
"응?"
청명이 양손을 머리 뒤로 깍지 끼며 뚱하게 말했다.
"야수궁이 궁주를 우대한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 했어. 오히려 궁주가 자주 바뀐다는 말은 들어 봤어도."
"……그럼 왜?"
"뭐 뻔한 소리를. 저 근육 보고도 대들고 싶은 마음이 생겨?"
백천들의 시선이 앞서가는 야수궁주에게로 향했다.
등에 태산을 짊어지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 아니, 그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던가?
여하튼 마치 태산이 움직이는 것 같다. 반쯤 드러낸 상체 덕분에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등 근육이 힘 있게 꿈틀거리며 약동한다.
게다가 여지껏 보아 왔던 야수궁주의 급한 성질까지 감안한다면…….
"……아니."
"죽어도 싫다."
"그냥 목을 매는 쪽이 빠르지 않을까?"
그제야 저 과한 충성심이 이해가 가는 모두였다.
청명도 궁주의 등에 시선을 꽂은 채로 말했다.
"크. 화산도 이리되어야 하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마라!"
"나의 화산을 망치지 마!"
"큰일 날 소리를!"
그러나 화산의 제자들이 뭐라 하든 청명은 무척이나 감명받은 얼굴로 야수궁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광경에 화산의 제자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요즘들어 화산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져만 가는 이들이었다.
"어서 오거라!"
"네."
야수궁주의 말에 모두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발길은 야수궁의 뒤쪽에 펼쳐진 드넓은 숲으로 향했다.
"이 정도면 밀림(密林)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네."
"정말 나무가 빽빽하구나. 중원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야."
"여길 지나야 그 신담이라는 곳에 도착한다는 거군요. 그런데 대체 어떤 곳이기에 아까 그분들이 그런 반응을 보인 걸까요?"
앞서 가던 야수궁주가 그 말을 들었는지 입을 열었다.
"신담은 야수궁의 성지다."
"예?"
"말 그대로다. 성지인 동시에 금지지. 이곳에서는 신담을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접근하는 걸 금하고 있다. 야수의 궁도라면 누구도 신담에 발을 들일 수 없지. 그건 궁주인 나도 마찬가지다."
"……아. 그래서?"
"하지만 외인은 아니지. 외인은 신담에 들어도 된다."
"……네?"
백천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다. 신담은 야수궁의 성지다. 그러니 야수궁의 누구도 함부로 신담에 발을 들일 수 없다. 하지만 너희는 야수궁의 궁도가 아니니 상관없겠지."
"……보통은 성지나 금지인 곳은 외인의 출입을 막지 않나요?"
"그럴 필요가 있느냐? 출입을 막으려면 동물들의 출입도 막아야 할 텐데."
"사람과 동물은 다르잖습니까?"
"다르지 않다."
야수궁주가 고개를 저었다.
"결국 사람도 머리가 좀 똑똑한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 중원인들은 우리가 동물과 짐승을 어여삐 여겨 키운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더구나."
"그런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틀린 말이다. 야수궁은 동물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동물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러니 어우러져 함께 사는 것이다."
백천이 조금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물을 막지 않을 거라면 사람도 막지 않는다. 어차피 성지라고 해 봐야 우리끼리의 성지가 아니더냐? 그래 봐야 자연의 일부. 우리의 성지라 해서 타인도 성지로 받아 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다 성지를 훼손하기라도 하면요?"
"그럼 뭐가 달라지느냐?"
"……."
야수궁주가 피식 웃는다.
"성지는 성지다. 어떤 모습이건 간에 성지지. 훼손되었다 해서 성지가 아닌 게 아니다. 그 겉모습에 연연하는 건 성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아집일 뿐이지. 내가 성지로 여긴다면 그곳은 어떤 모습이든 성지가 되는 것이다."
"아……."
백천이 놀란 눈으로 야수궁주를 바라보았다.
의외로 말 속에 깊은 현기가 묻어난다.
'확실히. 세외오궁의 궁주 자리를 그저 완력만으로 손에 넣을 수는 없겠지.'
어쩌면 야수궁주가 보이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그 속이 깊고 현명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백천이었다.
하지만 청명은 야수궁주의 말에 별다른 감명을 받지 못한 듯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그럼 굳이 성지라고 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응? 그런가? 그건 생각 안 해 봤는데?"
"……."
아니. 아닌가 보다.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숲이 울창해졌다. 이제는 빛 한 점도 제대로 들지 않는 느낌이다. 사위가 컴컴해지고 습해졌다.
워낙 깊은 숲까지 들어와서인지 중간중간 짐승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람을 대여섯은 눕혀야 겨우 비슷한 길이가 될 것 같은 커다란 구렁이, 그리고 중원에서 보던 것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호랑이까지.
응?
위험하지 않냐고?
글쎄.
"껄껄껄. 호아, 이놈! 많이 컸구나!"
호랑이가 모공이 송연해질 정도로 우렁찬 울음을 토하며 벼락같이 달려들더니 야수궁주의 앞에 배를 까고 애교를 부렸다.
'그래, 너도 살아야지.'
'근육 앞에 모두가 평등하네.'
사람이고 짐승이고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커다란 호랑이가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무척이나 이질적이었지만, 야수궁주와 함께 있으면 호랑이도 고양이처럼 보이니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는 길에 틈틈이 짐승들을 쓰다듬어 준 야수궁주가 저 앞쪽을 바라보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저 앞이 신담이다."
"아, 드디어 도착했군요."
오는 길에서 보였던 모습과 달리 야수궁주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희가 찾는 자목초, 그러니까 운남에서 말하는 신령초는 원래는 그리 채취하기 어려운 풀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주 드넓은 자생지가 있을 정도였지. 하지만 지금은 그 자생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왜요?"
"백 년 전 마교 놈들이 쳐들어왔을 때, 화공으로 공격한답시고 불을 질러 버렸거든."
"……."
"그놈들이 싸그리 타 죽는 모습을 내가 봤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효과는 있었데요?"
"아니. 별 효과는 없었다는구나. 무인이라 불이 번지는 것보다 빨라서 그냥 다 피해 버렸다는데?"
그럼 왜 태웠는데?
아니, 일을 저지르기 전에 생각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덮어 놓고 저지르고 나서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여하튼 그 이후로 운남에서 신령초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밖에 없다. 바로 신담이지."
야수궁주가 눈앞에 우거진 수풀을 손으로 헤쳤다.
"오?"
"와아……."
펼쳐진 광경을 본 화산의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아름답다.
아니, 아름답다기보다는 신성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사방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 거대한 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니, 이 정도 크기라면 연못이 아니라 호수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너무 투명해서 겁이 날 정도로 맑은 물이 가득 찬 호수 주위로, 여태껏 살며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얼마나 깊은 거야?'
분명 물은 더없이 투명한데 그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푸른빛이 짙어지는 것이, 자칫 잘못 다가섰다간 빨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
'신담이라.'
신이 머무는 연못이란 뜻인가?
그렇다면 정말 잘 지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신이 있다면 분명 이런 곳에 머물 테니까.
"이곳이 신담이다. 나는 여기서부터 더 갈 수가 없다."
"그럼 저희가……."
"잠깐."
야수궁주가 눈을 찌푸린다.
"……들어가면 안 됩니까?"
"아니다. 너희는 자유로이 신담을 왕래할 수 있다.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그런데 왜?"
"……아주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예."
"으음. 눈으로 보는 게 낫겠지."
잠깐 망설이던 야수궁주가 손을 뻗었다.
우웅.
지나가던 토끼 한 마리가 허공으로 붕 떠오르더니 야수궁주의 손아귀에 잡혔다. 조금 놀란 토끼가 코를 찡긋거렸다.
"응? 갑자기 토끼는 왜?"
"으음. 잘 보거라."
야수궁주가 토끼를 호수 쪽으로 가볍게 던진다.
찰박.
호수 가장자리에 사뿐 내려앉은 토끼가 의아한 듯 주변을 돌아보며 귀를 털었다.
어쩐지 마음이 평온해지는 광경이었다.
"대체 뭐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백천의 눈이 불뚝 튀어나왔다.
호수 저 아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갑자기 시커먼 뭔가가 솟아오르더니 이내 수면 위로 튀어나왔다.
"뭐, 뭐야!"
"히이이이이익!"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는 동굴처럼 커다란 입과 그 안에 박혀 있는 기다란 송곳니뿐이었다.
그 거대한 입은 이내 토끼가 있는 곳의 주변을 통째로 베어 물었다.
콰아아아아아앙!
"……."
바닥째로 토끼를 집어삼킨 그 무언가는 거대한 머리를 획획 돌리며 주변을 응시하고는 이내 다시 호수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
"……."
토끼가 있던 곳에 남은 것이라고는 사람 하나가 충분히 눕고도 남을 만한 거대한 구덩이뿐이었다.
눈이 툭 튀어나온 화산의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호수의 파문이 사그라들 때까지 망연하게.
한참의 정적 후, 드물게 유이설이 입을 열었다.
"……바, 방금 그게……?"
그러자 그제야 나머지도 황급히 입을 떼기 시작했다.
"커, 컸는데. 엄청 컸는데?"
"사, 사람도 한입에 삼키겠던데?"
야수궁주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묵린혈망(墨鱗血蟒)이라는 놈이다. 신담에 사는 거대한 뱀이지."
네?
뱀이요?
저쯤 되면 용 아닌가요? 용?
신성한 곳이라 출입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저 괴물 때문에 출입을 못 해서 강제로 신성해진 거 아닙니까……?
"허……. 허허허허."
천하의 청명의 입에서마저 어이없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