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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11화 (211/1,567)

211화. 잘 가게나, 친구들. (1)

비무대를 내려온 청명은 그의 사형제들에게 가 양팔을 벌렸다.

"하하. 뭐 그런 얼굴들을 하고 있어. 내가 누군……. 응?"

그의 사형제들이 슬금슬금 그에게서 물러난다.

"뭐 해?"

"아, 아니."

백천이 어색하게 웃는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다.

"흐음?"

그 기묘한 반응에 청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다 돌연 빠르게 움직여 보았다.

호다닥.

"……."

그가 다가간 만큼 후다닥 물러나는 사형제들을 보며 청명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물러나?'

더구나 모두 표정이 영 좋지 않다. 마치 마마에 걸린 사람이라도 보는 것 같은 얼굴들이다.

"아니, 누가 병 걸렸나! 왜 사람을 피하고 난리야!"

"야! 인마! 생각을 하고 사람한테 다가와야 할 것 아냐! 전신에 독을 철철 바르고 뭘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어! 우리는 중독되면 바로 죽는다고!"

"어?"

그러네?

청명이 슬쩍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그는 중독이 되지 않았지만, 그의 전신에는 당외가 뿌린 독이 잔뜩 묻어 있었다.

청명이야 몸이 알아서 해독한다지만, 그의 사형제들은 독이 묻는 순간 염라대왕에게

'빌어먹을 사제 놈이 실수로 독을 묻히는 바람에 죽었습니다.'

라는 황당한 말을 해야 한다.

청명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라이!"

그러고 보니 그의 사형제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슬슬 눈치만 보고 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무슨 역신(疫神) 보듯이 하나 그래.

응?

"당가주님?"

"……."

댁은 왜 그렇게 떨어져 계십니까?

명색이 당가의 가주라는 사람이?

"크흠."

당군악이 낮게 헛기침을 하더니 느릿하게, 아주 느릿하게 청명을 향해 다가왔다.

청명이 돌연 당군악을 향해 콱 한 걸음을 내딛자 당군악이 화들짝 놀라며 뒤로 획 물러난다.

"가, 가만히 좀 있게!"

"……."

어…….

나 이거 뭔가 익숙한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그가 뭘 하려고만 해도 사형제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나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거지?'

새삼 매화검존 청명이 얼마나 개차반이었는지를 실감한 청명은 자신도 모르게 시큰해진 눈가를 훔쳤다.

'미안하다. 사제들아.'

이 사형이 잘못했다.

청명이 한숨을 쉬며 회개하는 동안, 당군악은 뒤에서 달려온 누군가에게서 작은 병을 수십 개 정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가차 없이 청명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에, 에취!"

"가만히! 가만히 있게! 기침도 하지 말게!"

아니! 이 양반들이!

십여 가지의 가루와 십여 가지의 물약을 골고루 뿌리고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당군악은 미묘한 표정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독기가 느껴지는가?"

"……."

"일단 한 일주일 정도 격리를 해 볼까 하는데 협조를 해 주겠……."

"에라이! 빌어먹을!"

그 순간 청명의 전신이 화염으로 뒤덮였다.

"오?"

몸 주위의 독 기운이 삼매진화에 완전히 타 버렸다. 청명은 헐떡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투덜거렸다.

"아오, 진짜 내공 더럽게 잡아먹네."

손끝에서 작은 불을 일으키는 것쯤이야 적당한 내공으로 때울 수 있다. 하지만 이만한 불을 일으키는 건 보통 내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격전을 치르면서 내공이 반쯤 동나 버린 상황이라 기력이 바닥나는 걸 어찌할 수 없었다.

"에고. 이제 알아서 하세요."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비무대 위로 올라선다.

"원로원주 당외는 들으시오."

당외가 힙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지만 더는 힘이 없는지, 그의 몸은 여전히 비무대에 쓰러진 채였다.

당군악이 목소리에 내공을 싣는다.

그의 목소리가 우렁우렁 퍼져 나갔다.

"당신의 죄를 알겠소?"

당외의 눈이 핏발이 선다.

"……내, 내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

단전이 파괴되어 기력 하나 없는 당외였지만, 독기만은 아직 멀쩡했다. 소리치는 기세만 보면 금방이라도 당군악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줄기를 물어뜯을 것 같다.

"저 괴물 같은 놈에게 패한 게 죄라면 죄겠지! 하나, 그건 가주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피를 토할 기세로 악을 쓰는 당외를 보며, 당군악이 고개를 내저었다.

"승패가 죄가 될 수는 없는 법이지. 내가 말하는 그대의 죄는 따로 있소."

"……."

"끌고 와라!"

당군악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한다.

자연히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당가의 가솔들의 시선도 당군악을 따라 한쪽으로 돌아갔다.

"저……."

"소가주?"

"소가주가 어찌?"

당가의 소가주였던 당패가 한 사람을 포박해 끌고 오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당패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당외만은 당패에게 끌려 오는 이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 어찌……."

당패가 포박한 이를 비무대 위에 팽개쳤다.

"끌고 왔습니다, 가주님."

"음."

당군악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당화!"

"가, 가주님……."

당화라 불린 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네가 네 모든 죄를 이곳에서 고백한다면, 그 목숨은 부지하게 해 주겠다."

그 말을 들은 당화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어차피 끝났다.'

그를 비호해 줄 당외는 이미 힘을 잃었고, 저 모양 저 꼴이 되어 쓰러져 있다.

이곳에서 의리를 지킨다고 해도 그에게 남는 것은 처참한 죽음이나 지하뇌옥에서 평생을 보내는 길뿐이다.

무얼 위해 그 길을 택하겠는가?

"저, 저는……."

"당화 이놈!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당외가 처절하게 외쳤지만 당화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당외…… 원로원주의 지시로 화산신룡이 먹을 술과 음식에 천일취를 탔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비무에 극독을 쓴 것?

그건 끔찍한 짓이다.

가주에게 대항한 것?

그것 역시 논란이 있을 만한 일이다.

하나.

그것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비무를 할 이를 미리 중독시키려 한 죄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건 당가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뒤흔들어 버리는 일이니까.

독을 쓰는 당가인으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될 일이 바로 이런 짓거리다.

"천일취라니! 그런 끔찍한 짓을!"

"잠깐만. 천일취에 중독이 되었다면 어떻게 싸운 거지?"

"귀왕령도 안 통하는 사람에게 천일취가 통하는 게 더 이상하지."

"……그도 그렇군."

수군대던 사람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청명을 바라본다.

저 화산신룡이 얼마나 괴물 같은 이인지 실감하고 만 것이다.

모두의 반응이 진정되기를 기다린 당군악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원로원주 당외의 지시가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당군악의 차가운 시선이 당외에게로 떨어졌다.

"변명할 게 있소?"

"……."

당외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다.

이제 다시는 당가의 원로로 대접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파벌을 이루었다는 이유만으로, 원로원의 태상장로들은 모두 힘을 잃고 뒷방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이 하나의 사건으로 당군악은 완전무결한 권력을 손에 넣고 당가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주……. 나는 정말 당가를 위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내기 위해 뭐든 해도 되는 것은 아니오."

당군악이 감정이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정성이란 올바른 과정이 함께했을 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법이지. 더는 지껄이지 마시오. 내 귀가 더러워질 것 같으니까."

"……."

당외에게서 시선을 뗀 당군악이 식솔들 모두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대사천당가의 가주로서 명한다!"

"예!"

당가의 식솔들이 모두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참담한 죄를 저지른 당외를 원로원주의 자리에서 폐하고 하옥한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원로원은 그 기능을 정지시키고, 원로원의 태상장로들은 가택을 벗어나지 않도록 한다! 이 모든 일의 전말이 명명백백히 밝혀질 때까지 모든 당가의 식솔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가주님의 명을 받듭니다!"

"그리고!"

당군악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화신신룡 청명!"

"넵!"

청명도 이번에는 너스레를 떨지 않고 자세를 바로한 채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대의 노력과 헌신 덕에 당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일들을 알고 바로잡을 기회를 얻게 되었소. 대사천당가의 가주로서 그대와 그대의 사형제들에게, 그리고 화산파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하오!"

당군악이 양손을 꽉 맞잡고는 앞으로 내밀며 청명을 향해 고개 숙였다.

정중한 포권.

일가의 가주로서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예의였다.

그 예의에 당가의 식솔들 역시 반응했다.

"화산에 감사드립니다!"

"화산신룡께 감사드립니다!"

"화산의 제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했다.

그 인사를 받는 화산의 제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당가의 인정을 받았구나.'

구파에서 쫓겨난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았던 화산이 불과 몇 년 만에 사천의 지배자인 당가에게 인정을 받는 입장이 되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때 청명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화산의 삼대제자 청명이 화산을 대표하여 사천당가의 감사를 받습니다."

청명이 당군악을 향해 마주 포권을 했다.

"그리고…… 어……."

그러더니 문득 고개를 갸웃하며 포권을 풀더니 한 발짝 물러났다.

"사숙."

"어?"

"이건 사숙이 해야지."

"……."

"뭐 해?"

"크흠."

헛기침을 한 백천이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당군악에게 맞포권을 하며 입을 열었다.

"화산 이대제자 백천이 화산을 대표하여 당가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 일을 통해 양 문파의 우애가 더욱 깊어지고, 진심으로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당연히!"

당군악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그리될 것이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사천당가 만세!"

"화산 만세!"

당가주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군악이 원로원을 누르고 완벽한 권력을 손에 넣은 순간인 동시에, 저 당외를 쓰러뜨린 화산신룡이 있는 화산과 공식적으로 동맹을 맺는 순간이다.

일이 너무도 급박하게 전개되는 바람에 모두가 이 사태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가주와 화산제자들의 태도만 보아도 이게 당가에 득이 되는 일이라는 것쯤은 모두가 이해할 수 있었다.

쏟아지는 환호.

그 속에서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대단한 일 했다고. 환호가 과한걸."

"청명아."

그때 백천이 굳은 얼굴로 청명을 돌아본다. 심지어 목소리마저도 사뭇 진지했다.

"응?"

"너는 대단한 일을 했다."

"헤헤. 당연한 소리……."

"하지만!"

"응?"

청명을 노려보는 백천의 얼굴이 노기로 가득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을 벌일 거라면 먼저 우리에게 말을 해라!"

"아니, 뭐 그런 걸 굳이……."

"반드시!"

"……."

뭔가 말을 하려던 청명은 백천의 눈빛을 보고 움찔했다. 정말로 드물게 노기 어린 눈빛이었다.

"네놈이야 그 독이 아무렇지도 않았겠지만, 우리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이 빌어먹을 놈아!"

그러자 뒤쪽에서 윤종이 말을 보태었다.

"……솔직히 거기까진 아닌데."

"그러게요."

백천이 휙 뒤를 돌아보며 노려보자 윤종과 조걸이 찔끔하여 눈을 내리깐다. 백천은 다시 청명을 보며 거듭 말했다.

"내 말 명심해라.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네 마음대로 벌이면 그때는 절대 참지 않겠다."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벌리던 청명이 다시 입을 꾹 다문다.

살짝 얼굴을 움찔움찔 일그러뜨리던 청명이 결국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알았어, 알았어. 앞으로는 그럴게."

"빌어먹을 놈."

백천이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내젓는다.

"일단은 몸부터 돌려라!"

"응?"

백천이 청명의 어깨를 잡아 뒤로 돌렸다. 그러자 청명의 시야에 환호하는 당가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네게 보내는 환호다."

"……."

청명이 쏟아지는 환호를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화산 외에서 이런 환호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글쎄.

예전 매화검존일 때는 이보다 더 굉장한 일을 수도 없이 해냈지만, 이토록 순수한 환호는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손이라도 흔들어 줘라."

청명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뭐.

아무려면 어때!

"아이고! 감사합니다. 아이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이러세요. 하하하핫! 네네! 감사합니다."

너스레를 떠는 청명을 보며 화산의 제자들이 다들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와……. 정말 대단하다."

당잔은 먼 곳의 청명을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내가 저런 사람에게 시비를 걸려고 했다니.'

목이 붙어 있는 게 다행이었다.

"누님,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대단하지."

"화산신룡은 정말 천하제일 후기지수입니다. 너무 대단합니다."

"그쪽 말고."

"네?"

당잔이 의아한 얼굴로 누이의 얼굴을 보았다.

당소소의 시선은 한곳에 완전히 꽂혀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간 당잔은 의외의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찌푸렸다.

"유이설?"

"잔아."

"예, 누님."

"나 결심했다."

"네?"

마치 절대로 눈을 뗄 수 없는 것처럼, 당소소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유이설을 보고 있었다.

"나……."

살짝 입술을 깨문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화산에 입문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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