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귀환-196화 (196/1,567)

196화. 억울하면 너도 살아나든가. (1)

"으아아아아아아!"

두 눈에 핏발을 세우며 달려 나가려는 조걸을 백천이 꽉 움켜잡는다.

"놔! 이거 놔 봐! 죽여 버릴 거야!"

"진정해!"

"뭘 진정하란 겁니까! 저 새끼가 청명을……!"

"안 죽었다고, 인마!"

"……네?"

그 순간.

타악.

추락하던 청명이 몸을 빙글 돌리더니 바닥으로 착지한다.

"허……."

그 광경을 본 조걸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윤종도 그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놀란 모양이군.'

하기야 백천 그도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뻔했는데 저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조걸은 이미 넋이 나간 얼굴이고 윤종은 눈이 반쯤 풀려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던 유이설이 검을 다시 집어넣…….

응?

사매?

검은 왜 뽑았어?

그걸로 뭐 하려고?

그때, 마른침을 꿀꺽 삼킨 윤종이 고개를 돌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착지한 청명이 고개를 든다. 그의 입에 당군악이 날린 비도가 물려 있었다.

"퉤엣!"

까강.

바닥으로 비도를 뱉어 낸 청명이 뭉클뭉클 솟아나는 피를 꿀꺽 삼킨다.

"뒈질 뻔했네."

순간적으로 입에 경기를 불어넣고 비도를 이로 물지 않았다면 얼굴이 꿰뚫렸을 것이다.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 수였다.

"비도 뒤에 비도를 숨길 줄은 몰랐네요."

날아든 비도는 처음부터 하나가 아니었다. 시선을 끄는 비도 뒤에 교묘한 각도로 날아드는 또 하나의 비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들키지 않기 위해 그 위력을 죽였기에 이런 방식으로도 막을 수 있었지만.

"멋지군."

당군악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면 단순한 임기응변.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에 그런 임기응변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어쩌면 청명이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무위보다 이 임기응변 한 번이 더 대단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자기가 가진 것을 써먹지 못하고 죽는 애송이는 아니라는 의미로군.'

저만한 무위에 저만한 임기응변. 그리고 이상할 정도의 능숙함까지.

'귀재라는 말은 감히 이놈을 담지 못한다.'

그럼 대체 저 괴물을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까?

당군악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고정되었다.

"팔 초."

청명이 핏덩어리를 한 번 더 뱉어 낸다. 혀가 반 치쯤 베여 피가 뭉클뭉클 배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청명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당군악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두 초식 남았어요."

"흠."

당군악은 더는 미소 짓지 않았다.

그는 청명을 인정했다. 자신이 인정한 자를 상대하는 데는 예의를 갖춰야 하는 법.

"두 초식이면 충분하지."

상대의 기세가 일변한 것을 확인한 청명이 얼굴을 굳혔다.

당군악의 손에 하나의 비도가 올려진다.

"이것마저 받아 낼 수 있다면, 네 승리다."

당군악이 손에 올린 비도에 내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

살짝살짝 흔들리던 비도가 이내 살아 있는 잉어처럼 펄떡이기 시작한다. 주입되는 가공할 내력에, 흡사 비도가 생명을 얻은 듯 요동친다.

청명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기세다.

이 일격은 지금껏 청명이 상대했던 당군악의 비도술과는 그 격을 달리할 것이 분명하다.

하나.

'이 초.'

이제 남은 것은 겨우 두 번의 공격.

그 두 번의 공격만 버텨 낼 수 있다면 청명의 승리다!

청명은 똑똑히 보았다.

지금까지 여유 넘치던 당군악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말이다. 그 역시 이 일격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는 의미다.

'온다!'

"받아 봐라!"

당군악의 손바닥 위에 얹혀 있던 비도가 절로 둥실 떠오르더니 청명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이건 쏘아진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개미가 기는 속도보다 더 느리게 날아오는 비도에 쏘아진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암폭비(暗爆匕).

당잔이 조걸을 쓰러뜨리기 위해 사용했던 비장의 초식!

그 암폭비가 당잔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위력으로 당군악의 손에서 펼쳐졌다.

고오오오오오오.

청명의 몸이 잔뜩 긴장한다.

미칠 듯이 느리게 날아오는 비도가 주변의 대기를 휘감기 시작한다. 이내 비도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만들어졌다.

흙먼지가 용오름처럼 휘말려 올라오고, 어마어마한 풍압이 밀려든다.

꾸우우욱!

청명의 검의 손잡이를 부러질 듯 부여잡았다.

일격필살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암폭비가 가공할 속도로 청명에게 쏘아졌다.

직감한다.

저건 받아칠 수 없다!

하지만 달아날 수도 없다. 가공할 속도로 회전하는 암폭비는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있으니까.

하면?

청명이 검을 앞으로 세운다.

'고민하지 마라.'

머리로 생각해서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믿는다!'

그의 검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의 검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의 검이 화산이고, 화산이 곧 그의 검이다.

믿어야 할 건 스스로의 검!

'피어나라!'

검이 유려하게 움직인다.

느리게. 너무도 느리게.

하지만 그 검은 결코 느리지 않다. 세상이 그의 검보다 더 느리게 흐르고 있으니까.

피어난다.

검 끝에서.

처음에는 작은 매화 꽃송이.

하지만 이내 수십 송이의 매화가 그의 검 끝을 둘러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최강의 방어 초식이 청명의 검 끝에서 백 년 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가 겹치고 또 겹쳐지며 결코 뚫을 수 없는 견고한 꽃의 벽을 만들어 낸다.

매화난벽(梅花難壁).

청명의 단전에서 솟아오른 내력이 검을 타고 수백 송이의 매화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매화는 날아드는 암폭비의 경로를 덮고, 덮고 또 뒤덮었다.

암폭비가 매화를 단숨에 꿰뚫는다. 단도에 실린 가공할 위력을 버텨 내지 못한 매화가 순식간에 이지러지며 사라진다.

카가가가가각!

수백송이의 매화라도 이 하나의 비도를 막아 낼 수 없다는 듯이 암폭비는 그 기세를 잃지 않고 매화의 벽을 꿰뚫으며 전진했다.

"하아아아아아앗!"

기세 좋은 고함 소리와는 다르게 청명의 발은 뒤로, 또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그는 검 끝으로 끊임없이 매화를 만들어 냈다.

한 번에 막을 수 없다면 수십 번이라도 휘두른다. 수십 번을 휘둘러도 막을 수 없다면 수백 번이라도 휘두른다.

화산의 매화는 끊임없이 피어난다.

낮이 가고, 밤이 와도.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그리고 해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도.

잠시 질 뿐, 다시 흐드러진다. 청명의 검도 끝없는 매화를 피워 낸다.

그 어떤 강한 힘도 순환의 이치를 부술 수는 없는 법.

카칵! 카가가각!

귀에 거슬리는 금속음을 만들며 쏘아지던 암폭비가 점점 그 기세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청명의 눈에 희열이 피어난다.

단전이 터져라 내력을 끌어 올린 청명이 더 가열한 기세로 매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아!

청명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또 한 자루의 비도!

어느새 당군악이 발출한 또 한 자루의 비도가 가공할 기세로 날아들고 있었다.

청명에게로?

아니!

당군악이 날린 비도가 기세를 잃어 가던 암폭비의 뒤를 정확하게 가격한다.

콰아아아앙!

귀를 찢어 낼 것 같은 폭음이 터지며 암폭비가 그 기세를 배로 올리며 앞을 막아서던 매화를 모조리 찢어발겼다.

콰아아아아아!

그러더니 바닥의 청석을 모조리 휘감아 올릴 정도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 내며 청명을 향해 그대로 날아들었다.

'십 초!'

청명이 이를 악물었다.

"마지막이다! 타아아앗!"

그리고 되레 앞으로 돌진한다.

우둑. 우두둑.

검의 손잡이가 움켜쥔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댄다.

닿는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것 같은 기의 폭풍에 몸을 내던지는 청명의 모습에, 모두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악!"

"청명아아아아아!"

하나, 단 한 사람!

백천만은 그저 주먹을 꽉 움켜쥘 뿐이었다.

'가라!'

보여 줘라. 화산의 검이 무엇인지!

기와 흙먼지를 휘감아 올리며 거대한 흙색의 용으로 화한 암폭비를 향해 청명이 달려든다.

단전의 기운이 모조리 뽑혀 나와 전신을 휘돈다. 그 강한 내기에 호응한 외기들이 청명의 몸 안으로 빨려든다.

마지막 한 줌의 기운까지 모조리 끌어낸 청명이 기운을 최대한 검으로 밀어 넣는다.

우우우우우우우웅!

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검이 비명을 지른다. 매화검의 끝이 쩌적쩌적 갈라지고 있었다.

하나 청명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오로지 한곳!

"으아아아아아아앗!"

터질 듯한 기합과 함께 청명의 발이 진각을 밟는다.

쿠우우웅!

바닥이 움푹 파이며 쩌억 갈라진다. 그 가공할 진각의 반동을 모조리 허리로 끌어 올린 청명이 검을 아래에서 위로 단숨에 올려 친다.

매화폭(梅畫爆)!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검과 맞부딪힌 당군악의 암폭비가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청명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켜 지나간다!

울컥!

청명의 입에서 선지피가 폭포처럼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쳐 냈다!

몸을 가눌 틈도 없이 청명의 발이 바닥을 박찬다.

'아직 아니야!'

온다.

바로 지금!

등 뒤에서 섬뜩한 살기가 느껴진다.

청명이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뒤쪽으로 빙글 돌았다.

그의 눈에 똑똑히 보였다.

쇄애애애애액!

분명 쳐 내었던 암폭비가 허공에서 회전하며 그의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모습을 말이다.

'회선비!'

저 악랄한 수에 죽어 간 고수가 몇이었던가?

암폭비를 막아 냈다고 안심한 이는 여지없이 등 뒤를 노리고 날아드는 회선비에 그 목숨을 잃었다. 암폭에서 회선으로 이어지는 이 연격은 생전의 당보가 가장 자랑하던 일 수였다.

"와라!"

허공으로 몸을 띄워 날린 청명이 검을 바짝 끌어당긴다. 그리고는 날아드는 비수를 검면으로 정확하게 받아 낸다.

콰아아아앙!

팔이 부러지고 내부가 모두 터져 나가는 것 같은 충격이 몸을 덮쳤다.

그 충격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청명은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동을 이용하여 몸을 앞쪽으로 날렸다.

보인다.

시위를 떠난 살처럼 쏘아져 오는 청명을 보며 경악하는 당군악의 얼굴이!

암폭비와 회선비를 모두 막아 낸 청명이 무방비가 된 당군악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날아들었다.

"끝이다!"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꽉 쥐여진 손이 검의 손잡이를 반쯤 부러뜨린다.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끌어낸 청명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악!

검 끝이 공기를 찢어발기며 당군악의 어깨를 내리친다.

그리고!

푸우우욱!

날카로운 날이 사람의 몸을 파고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퍼져나간다.

두 사람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린다.

시간이 정지한 듯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한쪽은 고통.

다른 한쪽은 당혹.

상반된 감정이 교차한다.

청명이 바닥으로 내려선다.

탓.

청명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반면에 당군악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청명이었다.

"십……초."

"……."

"야, 이……."

청명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진다.

"사기꾼 새끼……."

털썩.

청명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당군악이 멍한 눈으로 쓰러진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의 복부께에 손잡이까지 틀어박힌 당가의 비도가 보인다.

"이……."

당군악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그의 고개가 천천히 뒤쪽으로 돌아간다.

세상 모든 노기를 다 담은 듯한 그의 눈에 한 손을 앞으로 뻗은 채 굳어 있는 당패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버러지 같은 놈이!"

당군악의 노기를 정면으로 마주한 당패가 몸을 덜덜 떨었다.

"가, 가주님. 저, 저는……."

"명예가 뭔지도 모르는 놈이, 감히 내 승부를 더럽혀?"

"저, 저는…… 가주님을 위해……."

"입 닥쳐라!"

당군악이 분노의 일갈을 터트리며 장력을 내뿜었다. 그 장력에 얻어맞은 당패가 피를 뿌리며 날아가 전각에 처박혔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듯이 당군악이 이를 갈아붙인다.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패배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청명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이 개 같은 새끼들아!"

화산의 제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바닥에 쓰러진 청명을 끌어당긴다.

자신을 노려보는, 화산 제자들의 원독에 찬 눈을 보며 당군악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비(一匕)."

스슷.

당군악의 등 뒤에서 검은 야행복을 입은 인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예, 가주님."

"화산신룡을 의약당으로 옮겨라.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살려 내라고 전해라."

"예!"

"만약 화산신룡이 죽을 시에는 의약당주는 물론, 의약당의 수뇌부를 모조리 참할 것이고……."

북풍한설을 담은 듯 싸늘한 당군악의 눈이 무너진 전각으로 향한다.

"소가주도 죽는다."

"……."

그 무겁기 짝이 없는 말에 일비의 전신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반드시 살려 내겠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다."

일비가 청명에게로 다가가자 화산의 제자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중 가장 앞에서 살기 어린 눈으로 당군악을 노려보던 백천이 검을 뽑아 든다.

"접근하지 마시오."

"침착해라, 화정검."

"침착한 상태이니 당신 목에 칼을 꽂아 넣지 않는 것입니다."

당군악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가의 의술은 천하제일에 버금간다. 이 사천에서 화산신룡을 가장 잘 치료할 수 있는 곳이 당가다."

"하나, 지금 가장 믿을 수 없는 곳도 당가겠지요."

당군악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평소 같으면 어린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듣고 참을 리 없었겠지만, 당패가 저지른 일은 그의 입에서 반박할 모든 기회를 앗아 갔다.

"……내가 졌다."

백천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 승부는 내가 패했다. 그것도 가장 비참한 몰골로 패했다. 그러니 최소한 내가 나의 명예를 회복하고 당가가 비겁한 곳이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다오."

"……."

"부탁한다."

당군악이 백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백천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희도 함께 갑니다."

"물론이다."

백천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청명과 혼신의 힘을 다해 지혈하고 있는 사형제들이 보인다.

"……살 수는 있는 거겠죠?"

"살려 낸다."

당군악이 이를 악물었다.

"당가의 모든 비전을 다 사용해서라도!"

시체처럼 창백한 청명의 낯빛을 보며, 백천은 이를 갈았다.

"그 말 반드시 지키시는 게 좋을 겁니다."

백천이 직접 청명을 안아 들었다.

"안내하십시오."

청명의 옷자락을 움켜쥔 그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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