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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87화 (187/1,567)

187화. 그 실력으로 말입니까? (2)

당잔의 얼굴에 귀기가 어렸다.

'이 작자가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지?'

검증?

누가 누구를?

화산의 제자가 당문의 가솔인 그를?

우득.

당잔이 주먹을 움켜쥔다. 그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좌우에 서 있던 동생들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님. 아무래도 저놈들이 제정신이 아닌 모양입니다."

"화산과는 왕래가 없어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 했지만, 저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건 다른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의 동생들도 노기를 참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들이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겠는가?

'화산 놈들은 단체로 머리가 돌아 버리기라도 한 건가?'

저 주정뱅이 놈까지는 이해했다. 문파의 규모가 커지다 보면 한두 놈쯤은 제정신이 아닌 놈이 나오기 마련이다. 당가만 해도 도저히 남 앞에는 못 내놓을 망나니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화정검 백천마저 시비를 걸어온다면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화산이 당가를 아주 졸로 본다는 말과 다르지 않으니까.

으드드득.

이를 갈아붙인 당잔이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죽일 듯한 눈으로 백천을 노려보았다.

"그 말에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저는 언제나 제 발언에 책임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이번이라 하여 딱히 다를 이유도 없습니다."

백천이 여유롭게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당잔은 오히려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침착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화산은 대단한 문파인 모양입니다. 제자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감히 당가의 앞을 막아서다니. 이 일을 정녕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백천이 피식 웃는다.

"당가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지만, 화산은 문파의 제자를 보호함에 있어서 계산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 있는데 뭘 고민한다는 말입니까?"

"……."

"그럴 리도 없겠지만, 설사 이 일로 화산이 멸문한다고 해도 화산의 제자 중 누구도 저를 탓하지 않을 겁니다. 그게 화산입니다."

감격적인 말이었다.

제자들의 반응이 전혀 다르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뭐래?"

"원망할 건데요?"

"혼자서 너무 나가신다."

백천이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입을 꾹 닫았다.

저 망할 놈의 사질들은 이럴 때까지 주둥아리를 못 닫아서!

여하튼 화산의 제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당잔은 굳이 감안해 줄 필요가 없었다. 중요한 건 감히 당가를 무시한 저자를 어찌 응징하느냐니까.

"화정검……. 무당의 검룡을 쓰러뜨린 화산의 후기지수."

평가하는 이들에 따라서는 화정검을 화산신룡의 앞에 두는 이들도 있었다.

너무 어마어마하고 괴이한 업적들만 가득해서 반드시 과장이 있을 거라 생각되는 화산신룡과는 다르게 화정검이 해 온 일은 그 실체가 분명하니까.

특히나 오룡 중 하나로 불리던 검룡을 쓰러뜨린 일은 그를 새로운 오룡의 일원으로 평가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건이지 않은가?

"상대로서 부족함은 없겠지."

당잔이 앞으로 한발 나섰다.

"사천당가의 당잔이오. 내 손은 자비를 모르니 조심하시오."

"화산의 백천이오. 걱정하실 것 없소. 내 검은 자비로우니까."

"이 작자가 끝까지……."

막 당잔이 소매에 손을 밀어 넣으려는 찰나였다.

백천의 등 뒤에서 청명이 여전히 불콰한 얼굴을 쏙 내민다.

"그런데 왜 사숙이 싸워?"

"응?"

백천이 반쯤 비무 준비에 들어간 당잔을 두고 뒤를 돌아본다.

"……어?"

저놈이 진짜 미쳤나?

상대를 앞에 두고 등을 돌린다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또한 돌아선 상대의 등을 노리는 것 역시 정파를 자처하는 이들이라면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덕분에 당잔은 두 눈을 멀뚱히 뜬 채 백천이 하는 꼴을 그저 구경해야 했다.

"아까부터 자꾸 사숙이 나서는데 이건 조걸 사형의 일이잖아?"

"……조걸이를 내보내자고?"

"사숙이 그런 쪽으로 욕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충분히 멋졌으니까. 이제 조걸 사형도 뽐낼 기회를 줘야지. 간만에 부모님도 만났는데."

백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놈은 대체 당가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가. 사천당가.

독과 암기로 유명한 사천의 명문.

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도 사천당가의 고수를 상대할 때는 아주 작은 실수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하다. 그런데 실전 경험도 적은 조걸에게 다짜고짜 당가의 인물들을 상대하게 한다고?

"너무 위험하지 않겠느냐?"

"괜찮아, 괜찮아. 범은 자기 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린다고 했어."

"그러면 죽어, 인마!"

호랑이가 들었으면 기함할 소리를 잘도 하는 청명이었다.

백천의 다급한 반응에 청명이 혀를 찼다.

"쯧쯧. 이래서 윗사람들은."

청명 역시 백천이 무얼 우려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아끼고 감싸는 행위가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후인을 아낀다는 말은 후인의 경험을 앗아 간다는 말과도 같다.

청명이 가장 경계하는 일 또한 동일하다.

자신이 모든 일을 해치워 버린다면 그의 후예들은 올바르게 자라날 기회를 잃게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청명으로 인해 얻는 것을 최대한 얻게 하되, 청명으로 인해 잃는 것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조걸 사형이 그렇게 약해 보여?"

"……."

청명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런 애들한테는 안 져."

백천의 얼굴이 살짝 굳는다. 그 말에서 조걸에 대한 믿음이 확연하게 묻어난다. 확실히…….

"내가 어떻게 굴렸는데!"

"……."

뒷말만 안 붙였어도 살짝 감동할 뻔했다.

그런 백천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명이 고개를 획 돌려 조걸을 바라본다.

"안 그래? 사형?"

조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진다. 지지 않는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다.

이건 조걸과 사천당가 사이의 문제다. 그러니 해결 역시 조걸이 해야 한다.

조걸이 청명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여하튼 이놈은.'

청명이 나서 준다면 이 일은 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저놈은 무슨 일이든 어떻게든 해결하고 마는 도깨비 같은 놈이니까.

하지만 조걸은 알고 있다.

'언제까지 청명의 등 뒤에 숨어 있을 수는 없어.'

청명의 짐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이번 운남행에 따라나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등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청명과 함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고, 조걸은 생각했다.

이런 일 하나 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얼어 죽을 도움인가?

"사숙."

백천이 조걸과 시선을 마주한다.

"사숙의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제가 해결해야 할 일입니다."

백천의 시선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할 수 있겠느냐?"

조걸이 씨익 웃었다.

"저도 화산의 제자입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 그 어떤 말도 이 말보다 더 믿음직할 수 없을 것이다.

백천이 미소로 조걸의 웃음을 받았다.

"가라."

"예!"

백천과 청명을 뒤로 하고 조걸이 걸어 나오자 당잔이 미간을 좁힌다.

"그대가?"

"처음부터 원한 건 나였지 않소?"

조걸이 자신의 허리춤에 찬 검을 툭 쳤다.

"그러니 내가 상대해 드리는 것이 도리에 맞지 않겠소?"

당잔이 미간을 확 일그러뜨렸다.

'감히.'

백천과 청명이 건방지게 구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룻강아지가 범의 무서움을 알지 못하는 일은 의외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조걸은 아니다.

성도 출신인 그가 사천당가의 무서움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지금 그를 상대하겠답시고 당당히 나서고 있는 것이다.

당잔은 더 이상의 대화가 불필요하다 느꼈다.

이제는 차릴 예의도 남아 있지 않다. 처음 이곳에 왔던 목적대로 저 조걸을 가차 없이 꺾어 성도에서 당가를 거스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두에게 경고하면 그만이다.

다만 한 가지 추가된 것은.

'몸 성히 끝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 받은 모든 모욕을 조걸에게 풀어내기로 다짐한 당잔이 가만히 녹피 장갑을 꼈다.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지니고 다니는 녹피 장갑은, 사슴 가죽을 특수한 약품으로 처리하여 독이 스며들지 않게 만든 것이다.

녹피 장갑을 낀다는 것은 독을 쓰겠다는 신호로 쓰이기도 하지만 상대와의 비무에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걸이 가라앉은 눈으로 당잔을 바라본다.

두 사람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모두가 나름의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도무지 평정을 유지할 수 없는 이가 있었다.

조평.

조평은 그의 아들이 앞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거의 이성을 잃고 있었다.

세상에!

저 사천당가의 당잔을 상대하겠답시고 조걸이 나서고 있다.

당잔이 누구인가?

저 무서운 당가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그 재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이다. 그런 이를 아들인 조걸이 상대한다고 나서니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말려야 한다!'

조평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직접 나서서 조걸을 보호하려 든다면 당가의 분노가 사해상회에 떨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지금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 당 소협! 이 일은!"

어떻게든 이 상황을 무마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하나, 그 순간.

"아버지!"

"……걸아?"

조걸이 단호한 눈으로 조평을 바라본다.

"이건 사해방의 일이기도 하지만 화산의 일이기도 합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십시오."

"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게냐?"

스르르릉.

조걸의 대답은 말이 아닌 그 손에서 나왔다. 검을 뽑아 든 조걸이 가만히 당잔을 응시한다.

'사천당가라.'

한때 그에게 당가의 이름은 두려움과 공포의 상징이자, 극복할 수 없는 벽과도 같았다. 성도 상가의 자제로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사천당가는 언제고 그의 머리 위에 존재하는 천형(天刑)과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겁내는 게 더 웃기지.'

저 뒤쪽에서 술을 꼴꼴 마셔 대고 있는 놈을 생각하면 당잔 따위는 착한 아이에 불과하다. 저런 괴물과 싸워 온 조걸이 무슨 수로 당잔에게 지겠는가?

화산에서 무엇을 얻어 왔냐고?

'너무 많아서 입으로는 설명할 수도 없어.'

그러니 이 검으로 보여줄 수밖에.

차갑게 가라앉는 조걸의 눈을 보며 당잔이 출수를 하려는 찰나였다.

"형님."

당잔이 고개를 뒤로 돌린다.

"닭 잡는 일에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그의 동생인 당호(當浩)가 이죽이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건 내가……."

"화정검이 나서지 않는데 형님이 나서면 모양새가 좋지 않습니다."

당잔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격에 맞게 행동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당잔이 낮게 속삭이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절대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라."

"물론입니다."

당호가 조걸의 앞에 서 소매 안으로 손을 쑤셔 넣었다.

사천당가의 무인을 직접 본 적 없는 이라도 소문만은 들어 봤을, 사천당가 특유의 기수식이다. 저 소매 안에서 당가의 모든 암기가 발출된다.

"사천당가의 당호요."

"화산의 조걸이외다."

당호의 눈에 새파란 살기가 어렸다.

조걸의 얼굴은 그의 기억에도 있다. 사해상회의 자제를 모를 리가 없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들이 다스려야 하는 이들의 얼굴을 모조리 머릿속에 박아 넣으라 교육받으니까.

과거에는 그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던 조걸이 지금 감히 그에게 검을 겨누고 있다.

'건방진 놈.'

저 팔 하나 정도는 못 쓰게 만들어 줘야 분이 풀릴 것 같다.

당호가 소매 안에 든 우모침(牛毛針)을 살짝 어루만지다가 빛살처럼 흩뿌렸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은 극세한 우모침 수십 가닥이 가공할 속도로 조걸에게 쏘아진다.

'뭐야? 별것도 아니잖아?'

조걸이 전혀 반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본 당호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일단 우모침을 명중시키고,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그때 조걸을…….

"엇?"

그때였다.

파아아아아앗!

반응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던 조걸의 검이 가공할 속도로 휘둘러진다.

카카카카카캉!

수십 개에 달하는 우모침을 조걸의 검이 일일이 튕겨 낸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당호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그는 이내 깨달았다.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걸.

타탓!

조걸의 발이 바닥을 박찼다. 그의 몸이 벼락처럼 당호를 향해 쏘아진다.

"어……?"

파아아앙!

평정을 잃은 자는 승리할 수 없는 법.

자신의 목을 후려쳐 오는 조걸의 검면(劍面)을 느끼며 당호는 스르르 허물어졌다.

'마, 말도 안…….'

털썩.

조걸이 바닥에 쓰러진 당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가를 실룩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당잔을 바라보며 묵직하게 외쳤다.

"다음!"

나 이거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어!

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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