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뭔 일이야. (2)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화산의 제자들을 태운 마차가 사천성 성도로 들어섰다.
"워어어어."
성문 바로 앞에 사두마차가 서자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된다. 사두마차를 탈 만한 재력이라면 당연히 귀한 사람들이 타고 있을 터.
궁금증이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고삐를 당겨 말을 세운 이보가 슬쩍 뒤를 돌아보며 소리친다.
"성도에 도착했습니다!"
마차 안에서 움찔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끼이이이익.
이내 마차의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화산의 제자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뭐지?"
"저 사람들 몰골이 왜 저래?"
"어디 전쟁터라도 다녀왔나?"
중인들이 수군대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마차에서 내린 화산 문도들의 모습은 가히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으……. 죽을 것 같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사천이면 이제 반 온 거잖아. 대체 운남까지 언제 가지?"
마차에서 내린 화산문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병자를 연상케 했다.
퀭한 눈과 후들거리는 다리, 그리고 축 처진 어깨까지.
심지어 그 청명마저도 비슷한 몰골이었다.
"정말 지옥 같은 여정이었다."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고 싶어."
"……반 남았다고, 반."
낯선 사천의 성문이 선계로 가는 문처럼 보인다. 일단은 그 망할 수련의 반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화산의 문하들이었다.
"하……. 이틀 정도만 더 했으면 뭔가 될 것 같았는데!"
청명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사방에서 원성이 쏟아졌다.
"됐겠지! 당연히 됐겠지, 이 새끼야! 내가 시체가 됐겠지!"
"차라리 죽여라, 죽여!"
"너한테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없냐? 어?"
살벌한 그 기세에 청명마저 움찔했다.
"아, 뭐 여하튼 살아서 도착했으니 됐잖아."
"끄응."
화산의 문하들이 아웅다웅 대화를 나누는 동안 이보가 마차에서 내려 다가왔다.
"어쩌시겠습니까? 함께 은하상단의 사천 지부로 가 보시겠습니까?"
"음……."
백천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 모습을 보며 이보가 덧붙였다.
"사천 지부에 운남에 대한 정보를 모아 보라고 지시를 내려 두었습니다."
"그걸로 충분하겠습니까?"
"으음."
이보가 슬쩍 인상을 찌푸리곤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씀을 드리면 은하상단의 정보력이 운남까지는 미치지 못합니다. 과거에 운남의 물건을 취급하긴 했지만, 그때도 직접 행상을 꾸리는 것보다는 작은 상단들이 가져오는 물건을 중개하는 쪽에 가까웠지요."
"그렇군요."
"다시 말하자면 은하상단의 능력으로는 운남으로 들어갈 방도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대신 숙소는 이쪽에서 얼마든지 제공을 해 드릴 테니, 묵을 곳이 필요하시면 지부로 와 주십시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충분히 상황을 알아보고 은하상단에도 들를 예정이니, 일단 여독도 풀 겸 쉬어 두시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지부에 머무르며 마차를 정비할 테니, 성도에서의 조사가 끝나면 말씀해 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백천이 포권 하자 이보가 깊이 고개를 숙이고는 마차로 돌아갔다. 그가 마차를 몰고 성도 안으로 들어가자 백천이 사질들을 돌아본다.
"우리도 들어가자."
"예."
"다만 한 가지 명심해 두거라."
그는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이곳에 운남으로 들어갈 방도를 알아보러 온 거지, 문제를 일으키러 온 것이 아니다. 사천의 성도는 사천 당가의 영역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청성파가 있어서 청성의 도인들이 왕래하는 경우가 잦고, 흔치는 않지만 아미파의 여승들도 마주할 수 있으니 몸가짐을 바로 하도록 해라."
"걱정 마, 사숙! 사형들도 잘 알아들었을 거야."
백천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너 말이다, 너! 이놈아! 너! 다른 놈들은 아무 걱정이 없다! 네가 문제라고!"
"내가 사고 치는 것 봤어?"
"사고 안 치는 걸 못 봤지!"
길게 숨을 내쉬어 달아오른 열을 애써 식힌 백천은 심각한 어조로 덧붙였다.
"명심해라. 우린 운남으로 들어갈 방법만 찾으면 바로 떠날 거다. 제발 사고 치지 마라! 지금도 화산에서는 장문인과 장로님들께서 눈이 빠져라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루라도 빨리 자목초를 구해 화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거 걱정도 팔자시네."
"……."
어디서 사람을 벙어리로 만드는 약이 있으면 하나쯤 구하고 싶다 생각하는 백천이었다.
"일단은 개방의 성도 분타를 들러 보겠지만, 아무래도 운남에 대한 정보는 개방보다 상인들이 더 잘 알 확률이 높을 듯하다. 그러니 그쪽으로 조사를 해 보는 쪽이 좋을 것 같구나."
"그렇게 해 보죠."
유이설의 대답에 백천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성도 안으로 들어선 화산의 일행들은 부지런히 개방의 분타를 돌고 운남에 대한 소문을 수소문했다.
청명은 이 모든 과정이 쓸데없는 짓이라고 투덜댔지만, 백천의 입장은 달랐다.
사소한 정보 하나가 결과를 바꿀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교류가 끊긴 땅으로 가는 마당이니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어 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하아……."
객잔에 둘러앉은 화산의 문하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천이면 운남과 바로 붙어 있는 곳인데, 이렇게 정보가 없어도 되나?"
"개방이 제일 충격적이었습니다."
윤종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 운남으로 들어갈 방도? 그런 걸 왜 우리한테 묻는가?
개방의 성도 분타주가 태연하게 한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그럼 관련된 정보라도 얻을 수 없겠냐는 말에 성도 분타주는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 운남에는 거지가 못 사는데 개방이 무슨 수로 정보를 얻는가?
반박의 여지를 아예 짓밟는 말이었다.
워낙 척박한 땅이라 빌어먹는 사람이 있을 수 없고, 그렇다 보니 개방의 거지들도 함부로 운남으로 향할 수 없다. 일단 밥은 얻어먹을 수 있어야 활동이든 뭐든 할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남만야수궁에서 개방을 경계하여 거지를 배척하다 보니, 운남에서는 영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 성도 분타주의 설명이었다.
"상단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갈 도리가 없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고."
"끄응."
윤종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상행은커녕 운남에 대한 정보 자체가 없다는데 별수 없죠. 그러니……."
"아마 그게 아닐 겁니다."
"응?"
윤종이 고개를 돌렸다. 조걸이 조금 뚱한 얼굴로 말했다.
"개방은 정말로 운남에 대한 정보가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가들은 아닐 겁니다. 그들은 알고 있어도 우리에게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어째서냐?"
"……줄 이유가 없으니까요. 이득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정보료는 충분히 지급하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것만으론 안 됩니다. 그러려면 최소한 매화 문양은 떼고 왔어야죠."
"……아."
백천이 조걸의 말에 그제야 감이 온다는 듯 탄성을 흘렸다.
"외지에서 온 우리를 배척한다는 뜻이냐?"
조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천은 생각 이상으로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심한 곳입니다. 기본적으로 중원의 중심과 멀기도 하고 역사적으로도 문제가 좀 있죠."
"으음, 그렇지."
심지어 관아에서도 사천 출신은 관원으로 뽑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중원의 땅이지만, 중원에서 배척받는 외인들의 땅. 그곳이 바로 사천이었다.
"이곳은 사천 당가의 영향력이 큰 곳입니다. 성도에서 먹고살기 위해서는 당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죠. 그런 이들이 당당하게 타 문파 문양이 새겨진 무복을 입고 온 외지인들을 반기겠습니까?"
가만히 듣고 있던 청명이 입을 삐죽였다.
"그럼 진즉에 말하지!"
"말한다고 벗었겠냐고!"
"그건 아니지. 내가 뭐가 아쉬워서!"
청명이 배를 쭉 내밀었다.
화산의 문하라는 걸 숨긴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배척을 받으면 받았지!
"복면은 잘만 쓰고 나가더만!"
"그거랑은 다르지!"
"여하튼 이런 식으로는 안 됩니다. 정말 정보를 얻고 싶다면 사천 당가의 협조를 얻든가, 그도 아니라면 최소한 우리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합니다."
백천이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음.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럼……."
그때 문득 윤종이 조걸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는 이런 사실을 어떻게……. 잠깐. 너 사천 출신이었던가?"
"……."
조걸의 얼굴이 미묘해진다.
"그러고 보니 네 집이 사천에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냐?"
"으……."
조걸이 죽을상을 하고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맞습니다."
"아, 그래서……."
백천이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이 탄성을 질렀다.
사천 사람이 아니면 이런 사실을 쉽사리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었다.
청명이 눈을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조걸 사형은 상가의 자제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저리 돌 것 없이 조걸 사형네 집에 가면 되는 거였잖아?"
"어……."
"아니! 성격이 얼마나 나쁘면 자기 집에 객 들이기 싫다고 성도를 뺑뺑 돌게 만들어?! 진짜 인성 답도 없네!"
"너한테만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조걸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순간 모든 화산의 제자들이 조걸의 말에 동조했다. 확실히 청명에게 저런 말을 듣는 건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이다.
"그런 게 아니라……. 하아……."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됐어, 됐어."
청명이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탕탕 두드렸다.
"다 똑같지 뭐. 어차피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겠지. 그러니 집에 다시 들어가기 싫었을 테고."
"……."
"괜찮아, 괜찮아. 백천 사숙이 그 마음 이해해 줄 거야."
"나, 나는 내 발로 나왔다! 내 발로!"
"거 분위기 파악 좀 합시다, 사숙!"
"끄응."
청명이 히죽 웃으며 조걸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하튼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집에 들러나 보자, 사형."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래야겠지. 이것도 다 사문을 위한 일이니까."
"그럼 바로 출발하자꾸나."
"예, 사숙."
모두가 조금 밝아진 얼굴로 객잔을 나섰다. 그리고 조걸을 따라 성도를 걷기 시작했다.
청명은 깍지 낀 손을 뒤통수에 얹으면서 휘파람을 불어 대었다.
"어떻게 가문에서 예쁨받는 사람이 하나도 없냐?"
바늘이 등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에, 백천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돌아보았다.
"아니, 뭐 사숙 이야기는 아니고. 다 그렇다는 거지, 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백천이 이를 갈았다.
"가문에서 예쁨받고 잘나가는 놈이 왜 화산에 입문하냐!"
"어? 그 말은 그냥 넘길 수 없는데? 삐뚤어지지 않았다면 종남에 갔을 거라는 말 아냐, 그거? 이걸 장문인이 들으셔야 하는데!"
"끄으으으응."
청명의 반박에 백천이 고개를 휘휘 내젓는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화산의 문하라는 거지."
"그건 그래. 종남에 갔으면 지금도 친형 수발들고 있었을 텐데."
백천이 조용히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윤종이 그런 사숙의 팔을 잡고 고개를 내저었다.
"진정하시지요."
"……하아."
귀를 막자. 귀를 막고 눈을 감자.
망할 시어머니 같은 놈.
그러는 사이 조걸은 그들을 성도 구석진 곳까지 이끌었다.
"오? 저긴가 본데?"
청명의 눈에 작은 상가 하나가 들어왔다.
성도상단(成都商團).
뭔가 막 지은 이름처럼 느껴졌지만, 여하튼 상단은 확실해 보인다.
살짝 낡아 보이는 전각과 아담한 규모가 더없이 귀여웠다.
"크으. 가문의 기대를 품고 화산에 입문한 둘째라니."
"……."
"여하튼 조걸 사형도 귀여운 면이 있다니까. 그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면 되나?"
청명이 휘적휘적 걸어가자 조걸이 한숨을 쉬며 청명을 불렀다.
"어디 가?"
"응? 사형이 먼저 가게?"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야."
"응? 어디?"
"이쪽."
청명의 시선이 조걸이 가리키는 곳으로 돌아갔다.
'벽인데?'
벽이 계속 보인다.
아까부터 한참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 같은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붉게 칠해진 커다란 벽밖에 없다.
목이 거의 꺾일 정도로 돌아가서야 커다란…… 엄청 커다란 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해상회(四海商會).
"……."
청명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드넓은 담과 그 위로 삐죽삐죽 솟아 있는 수많은 전각.
그 어마어마한 광경과 조걸을 몇 번 번갈아 바라보던 청명이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지?"
"맞는데?"
"이거라고?"
"응."
"여기가 조걸 사형네 집이라고? 황제라도 살 것 같은 이 저택이?"
"……그렇다고."
어…….
사형 있는 집 자식이었어?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뭔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