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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81화 (181/1,567)

181화. 어머나, 세상에. 이게 뭔 일이야. (1)

마차는 쉼 없이……. 아니, 중간 중간 잘 쉬면서 나아갔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말을 바꿔 가며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사천까지 단번에 가야 했다. 그러나 청명의 수련 계획이 중간에 끼어들게 되며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덕분에 이보는 때가 되면 마차를 세우고 청명의 사형제들이 신나게 얻어맞기를 기다렸다가 널브러진 그들을 다시 마차에 싣고 나아가기를 반복해야 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지?'

이보의 입장에서는 양측 모두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요할 정도로 사형제들을 작신작신 패는 청명이나, 그렇게 얻어맞고 기절하고도 다음 수련 시간이 되면 눈에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그의 사형제들이나.

'언제부터 화산이 이리 살벌한 문파였지?'

하나 확실한 것은 있다.

화산이 몰락했다 어쨌다 모두 떠들어 대지만, 화산의 문하 모두가 저들처럼 수련을 한다면 백 년 전의 명성을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 전에 골병들어 죽지만 않으면 말이지."

이보는 박살이 나고 있는 화산의 제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의 상식으로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까지 오는 오 일 동안 저 화산의 제자들은 청명의 손에 말 그대로 개 맞듯이 얻어맞았다.

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그만큼 맞았으면 몸을 가누기가 힘든 게 정상이다. 심지어 청명이라는 무림의 고수에게 오 일 내내 얻어맞지 않았는가.

그런데 저들은 오히려 저 기괴한 수련 첫날보다 지금 더 쌩쌩하게 달려들고 있다.

맞으면 맞을수록 강해진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믿을 수 있든 말든, 그 일이 이보의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어느 쪽이 더 대단한 건지 모를 판이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끄륵."

윤종이 게거품을 물며 옆으로 넘어간다.

털썩.

그러더니 바닥에 쓰러진 채 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했다.

청명이 혀를 끌끌 찼다.

"하체! 하체! 그놈의 하체는 일 년 내내 강조해도 달라지는 게 없냐! 하체에 중심을 더 잡으라고, 하체에!"

청명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쓰러진 사형제들을 바라본다.

모두가 바닥에 널브러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청명이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찬다.

"다들 엄살만 늘어서는!"

"엄살이라니!"

분명 청명과의 대련을 마치고 나면 내력이 확연히 늘어나고 몸은 더 강건해진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없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대련이 끝날 때마다 정말 몸을 가누기도 힘든 고통이 밀려든다. 그걸 버텨 내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운기하고, 몸 정비해!"

청명이 몸을 획 돌렸다. 그러더니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휘적휘적 걸어 들어간다.

"어디 가?"

"소피보러 간다, 왜!"

그러자 조걸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주먹감자를 먹였다.

"콱 엎어져서 코나 깨져라."

옆에 엎어져 있던 윤종이 힘없이 말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바닥이 깨지겠지."

"끄응."

조걸이 몸을 뒤집더니 하늘을 보며 헐떡였다.

"사형."

"왜?"

"이러면 정말 강해지는 건 맞죠?"

"……당연하지."

윤종은 이미 느끼고 있다.

수련을 며칠 하지도 않았는데도 그의 내력은 확연하게 늘어났다. 심지어 검도 더욱 날카로워졌다.

저 청명과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순식간에 경지를 높이고 있었다.

물론 청명은 맨손으로 그들을 상대하고 있으니, 검을 맞댄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끄응. 그래야 할 텐데."

조걸이 한숨을 푹 내쉰다.

물론 효과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수련이 너무 험난한 것도 사실이니까.

'이렇게까지 하는데 강해지지 않으면 너무 억울하지!'

조걸이 의욕 아닌 의욕을 불태우고 있는 그 순간, 백천은 또 다른 이유로 청명의 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숙?"

"음?"

"뭘 그렇게 보십니까?"

"아……."

백천이 그답지 않게 말을 얼버무린다. 한참 뭔가를 생각하던 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 말이다."

"예. 사숙."

"청명이 놈이 땀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있느냐?"

"예?"

이게 뭔 뜬금없는 소린가?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다. 저 녀석이 땀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있냐고."

"하하. 그거 참 이상한 말이네요. 그야 당연히……."

윤종의 고개가 모로 꺾였다.

"없네요?"

"저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형."

"생각해 보면 그 검총에서도 청명이 땀 흘리는 모습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그 말을 들은 백천의 표정이 더욱 묘해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아니, 아무 것도 아니다."

백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선이 다시 청명이 간 곳을 쫓기 시작한다.

'뒷머리가 완전히 젖어 있었다.'

저 괴물 같은 놈이.

무당의 장로와도 호각으로 붙었던 놈이 지금 그들과 대련을 하면서 지쳤다는 의미다.

다른 이들이라면 스스로의 성장에 뿌듯해했겠지만, 백천은 냉정한 사람이었다. 자신들의 힘이 허산자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다는 건…….

백천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눈이 무시무시한 광망을 담고는 청명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았다.

한참 동안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백천이 씹어 먹듯 말했다.

"다들 들어라!"

"……예?"

그리고 무거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입을 떼었다.

"끄으으응."

사형제들에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걸어온 청명이 그 자리에 드러누웠다.

"아이고……. 아이고, 죽겠다."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이 보인다.

"사형, 이 사제 죽습니다. 진짜 죽어요."

드러누워서 헐떡이는 청명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끄응. 진짜 이러다가 내가 먼저 쓰러지겠네."

추궁과혈.

말은 쉽다.

하지만 어중이떠중이들이 대충 주무르는 추궁과혈이 아니라, 제대로 된 추궁과혈은 화경에 이른 고수도 힘겹게 시전하는 비술 중의 비술이다.

타인의 육체 안에 자신의 기운을 밀어 넣어 적절한 수준으로 타격을 준다는 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과해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된다.

과하면 기혈이 심하게 상하고, 모자라면 추궁과혈을 하는 의미가 없다. 딱 적절한 힘.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른 기운의 정도를 파악해서 정확하게 타격할 때나 의미가 있는 기술이다.

청명도 혼원단을 먹고 한 단계 더 나아갔기에 시도할 엄두라도 낼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시전할 때마다 머리가 텅 비어 버릴 것 같은 집중력이 소모되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예전의 청명이었다면 다른 이에게 이런 과한 노력을 들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시간에 청명이 수련을 하는 쪽이 차라리 강함의 총합은 더욱 빨리 상승한다는 계산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의 청명은 과거의 청명이 아니었다.

- 네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달라질 게 무엇이더냐? 결국 너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있고,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알아요! 안다구요! 잔소리는……. 쯧."

청명이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사실 그가 돕지 않아도 언젠가 저들은 혼원단의 기운을 남김없이 흡수할 것이다. 혼원단의 기운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그리 흡수하기 어렵지 않은 데다가, 저들의 경지 역시 이제 그 수준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거로는 충분하지 않아.'

'언젠가는'으로는 안 된다.

높지 않은 산을 오르는 이는 누구나 노력만 하면 정상을 밟아 볼 수 있겠지만, 그 정상을 일찍 밟은 사람과 늦게 밟은 사람과는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남들보다 몇 년 일찍 강해진다는 건 훗날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청명은 저들은 한시라도 더 빨리 강하게 만들고 싶었다.

비록 그 방법이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어려운 길이라도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거 근성 하나는 끝내주네."

닷새 동안 죽도록 얻어맞고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던 사형제들을 떠올리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온다.

예전에는 청명이 대련 한번 하자고 하면 다들 엉덩이를 쭉 빼고 피하기 바빴다. 물론 청명이 지금처럼 인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하튼 근성 하나는 왕년의 청자 배들을 확실하게 뛰어넘네.'

흥이 난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지는 저들을 보고 있으면, 조금 더 가르치고 조금 더 키워 보고 싶다는 욕구가 스멀스멀 솟아오른다.

그래서 이리 무리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청명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저 녀석들을 가르치면 저 녀석들이 다른 사형제들을 가르치거나 제자를 키우고, 그게 반복되다 보면 화산 전체가 강해진다는 거죠, 장문사형?"

청문이 그렇다며 나직하게 웃는 것 같았다.

"끄응. 안다구요."

참 웃긴 일이지.

매화검존 청명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릴 때는 걱정도 하지 않던 일이 지금은 이토록 무겁게 다가오다니 말이다.

"쯧!"

청명은 내력을 쭉 끌어모아 전신에 흐른 땀을 날려 버리고, 의복을 깔끔하게 정비했다. 이제는 지친 기색이 밖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속 편한 것들 같으니!"

내가 이리 고생하는 걸 니들이 알겠냐? 응? 니들이!

에라!

입을 삐죽이며 투덜댄 청명이 다시 사형제들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래도…….'

어쩌면 그 시기가 생각보다 빨리 올지 모른다.

저들이 지금 같은 짐 덩어리가 아니라 든든한 동료가 되어 그의 등을 받칠 날이 말이다.

"에이. 바랄 걸 바라야지."

저 애송이들을 언제 키워서 써먹겠는가? 그 시기를 당기려면 적어도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과격하게 수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은 과하면 망가지는 법. 억지로 시키는 수련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과욕은 화를 부른다.

청명은 안달하지 않고 더 길게 보려 애썼다. 그때까지는 청명 혼자서 어떻게든…….

"어?"

청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마차에 실려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형제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고 있어? 안 쉬어?"

"쉬어?"

백천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는다.

"겨우 이 정도 수련을 하고 쉴 수는 없지. 한판 더 붙자!"

"……허."

청명이 헛웃음을 흘린다.

저기요?

지금 다리가 엄청 후들거리시는데요?

설 수는 있으세요?

조걸 역시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청명을 도발한다.

"뭐, 청명이 네가 힘들다면 쉬어 줄 수는 있고."

"허어?"

윤종도 지지 않는다.

"벌써 지친 건 아니겠지?"

"하아?"

아니, 이 양반들이 단체로 약이라도 먹었나?

유이설이 검을 뽑아 청명을 겨누고는 말한.

"바람구멍 나면 시원하겠지. 그 몸에 말야."

"……."

청명의 이마에 핏대가 선다.

"아무래도……."

우드드득.

이마에 선 핏대가 손등으로 옮겨 간다. 꾹 쥐여진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교육이 좀 부족했던 모양인데!"

청명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길게 끌 것 없으니까 한 번에 덤벼!"

"가자!"

"대가리를 깨 버리겠다!"

"한 대는 패고 죽는다! 딱 한 대!"

사형제들이 모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그 광경에 청명은 그만 낮게 웃고 말았다.

'정말 더럽게 마음에 드는 녀석들이라니까.'

사형.

장문사형.

이 화산도 나름 괜찮다니까요.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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