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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80화 (180/1,567)

180화. 속 터져 죽는 것보다는 낫잖습니까. (5)

다음 날.

윤종이 반쯤 눈을 떴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지?'

기억이…….

아!

어제 그렇게 청명이 놈한테 한 번 더 늘씬하게 얻어맞고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었지.

응? 그걸 기절이라고 하던가?

여하튼…….

'일어나기 싫다.'

눈을 뜨면 다시 그 지옥 같은 일이 반복되겠지. 수련을 피할 생각은 아니지만 솔직히 이건 정말…….

"어흑……."

윤종이 고개를 획 들었다.

그의 귓가에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울어?'

몸을 일으킨 윤종이 고개를 휘휘 돌려 울음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엎어져 있는 조걸이었다. 윤종은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로 달려갔다.

"걸아! 걸아! 괜찮으냐?"

"사, 사형……. 어흐흐흐흑! 사형!"

"혹여 부상이라도 입은 것이냐?"

조걸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윤종은 더없이 심각한 얼굴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는 조걸은 더없이 사내답고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남자 중의 남자다. 그런 조걸이 이리 눈물 콧물을 짜내는 것을 보면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진 게 분명하다.

"사형……. 내력이……. 제 내력이."

"내력? 설마 내상이라도 입은 게냐?"

"어흐흐흑. 내력이 늘었습니다……. 빌어먹을 내력이 늘어났다구요."

"……."

뭐래, 이 새끼?

"……그런데 왜 울어?"

"사형! 내력이 늘었다니까요!"

"그런데 왜 우냐고! 이 미친놈아!"

조걸이 답답해 뒈지겠다는 듯이 난장을 부렸다.

"빌어먹을 내력이 늘었으니 이 짓을 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

듣고 보니 그러네?

"차라리 몸뚱이라도 망가졌으면 오늘부터는 안 맞아도 되는데! 왜 맞았는데 몸에 힘이 나냐구요! 왜!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

윤종이 자신도 모르게 기운을 돌렸다.

"……진짜네?"

내력이 늘어났다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이건 정말 경악할 일이었다.

내력이 무엇인가?

평생을 두고 쌓고 또 쌓아야 하는 것이 내력이다. 일 년 내내 운공을 하고서야

'오? 일 년 전에 비해서 늘었는걸?'

하고 실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내력이 늘었다는 게 몸으로 느껴지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되네. 이게 흡수가 되네."

윤종이 자신도 모르게 단전께를 움켜잡았다. 단전에 꽉 차 있던 혼원단의 기운이 몸 안으로 흡수가 된 게 분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추궁과혈……이라고 불러야 할지, 전신 폭행이라 불러야 할지 모를 그 망할 짓이 효과가 있었다는 거군."

어느새 다가온 백천이었다. 표정이 더없이 씁쓸해 보였다.

"……그렇네요."

윤종은 이 미묘한 상황에 살짝 혼란스러웠다.

이걸 과연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싫어해야 하나?

"거……."

백천이 말문이 막힌다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짓이 먹히다니.'

사람을 패는 걸로 기운을 흡수시킬 수 있다니, 이게 된다면 중원의 모든 문파들은 폭력 집단이 되었겠……. 아? 지금도 폭력 집단인가?

그때 모든 일의 근원이 어슬렁어슬렁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뭘 그렇게 소곤대고 있어."

"끄으으응."

백천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내력이 늘어서."

"당연한 소리를. 그것 때문에 어제 그렇게 고생을 했는데!"

아, 그러세요?

그런데 고생하신 분 얼굴이 굉장히 상쾌해 보이십니다?

"당연한 소리가 아니라……."

백천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왔으니 할 말은 없다만, 도무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추궁과혈이라는 건 막힌 혈을 푸는 것 아니었느냐?"

"비슷하지. 그리고 내가 한 건 추궁과혈이랑 좀 달라."

"……그럼?"

"그냥 냅다 후려 패는 거지."

"……."

백천의 손이 검 위에서 움찔거렸다.

어쩌면 이놈을 여기서 베어 버려야 세상에 평화가 오지 않을까?

할 수 있다면 말이지만.

"그게 어떻게 효과가 있는 거냐?"

"쯧."

청명이 귀찮다는 듯이 혀를 찼다.

예전이었다면 설명하기 성가시니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갔겠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설명을 해야 한다.

청명이 손을 뻗어 백천의 가슴을 두드렸다.

"이건 어떻게 만들었는데?"

"응?"

"이 근육 말이야."

백천이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의 가슴께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곳에는 탄탄한 근육이 자리하고 있다. 청명에게서 수련을 받기 전에는 근육이 이만큼 탄탄하지 않았다.

삼대제자들과 함께 철 덩어리를 들고 몸을 혹사시킨 결과 이런 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수련을 했지."

"그럼 왜 수련을 하면 근육이 생기는 걸까?"

"그야……."

백천이 입을 다물었다.

너무 당연한 일이라 딱히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대답할 말은 수도 없이 많은데 그중 어느 것도 명확하지가 않다.

"간단해. 상처가 생기거든."

"……그게 무슨 소리냐?"

"근육이 찢어진다고."

청명이 손을 살짝 비틀었다.

옆에서 말을 듣고 있던 윤종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근육이 다치면 근육이 커진다는 거야?"

"근육뿐이 아니야. 모든 곳은 다치면 이전보다 커지지. 상처가 생긴 곳은 부풀어 오르고, 부러진 뼈는 이전보다 굵어져. 상황에 따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청명이 씨익 웃었다.

"거꾸로 말하면 몸을 단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처를 입는다."

"무식하게 들리지만 이건 사실이야. 심지어 이건 외공 쪽에서는 정석이 된 수련법이지. 뭐 소림에서 몸뚱이에 채찍질을 한다거나 뜨겁게 달군 모래에 손을 쑤셔 넣는 식으로 외공을 단련한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잖아?"

백천이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수이므로 공감하기 힘든 이야기이긴 하지만, 소림을 비롯한 외공을 사용하는 문파에서는 그런 수련을 한다 들어 본 적 있다.

"하지만 그건 외공을 단련하는 방법이지 않느냐?"

"화산에서도 비슷한 수련 하잖아."

"응? 우리?"

"처음 목검 쓸 때, 손아귀가 수도 없이 찢어지지 않았어?"

백천이 슬쩍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검수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단단한 굳은살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안 찢어지지?"

"그렇지."

"인간의 육체라는 건 상처를 입을수록 더 단단해져. 과하면 독이 되지만 적절한 상처는 오히려 몸을 강하게 만든다는 거야."

"우와……."

백천이 감탄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왜?"

"아니, 어……."

그리고 살짝 미묘한 시선으로 청명을 보며 말한다.

"설마 네 머리에 이런 이론이 들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으니까."

"……."

그러자 곁에서 듣고 있던 이들도 한마디씩 거든다.

"놀랄 노자지."

"그냥 배고프면 먹고, 화나면 싸우는 인종인 줄 알았는데."

"머리가 있었어."

"……."

아니. 이 새끼들이?

청명의 볼이 푸들푸들 떨렸다.

"내가 진짜 머리가 없는 게 뭔지 보여 줘?"

"크흐흐흠."

"비가 오려나? 날씨가 영……."

다들 딴청을 피우자 청명이 도끼눈으로 그들 모두를 한번 쏘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같은 이야기야."

"……뭐가?"

"내력도 마찬가지라는 거지."

"……."

백천의 눈에 황당함이 어렸다.

그러니까 지금 청명이 하는 말은?

"내상을 입으면 내력이 는다고?"

"그렇지."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내상이 어떻게 외상과 같을 수가 있어! 내상은 심하면 사람이 죽는다."

"외상이 심해도 사람은 죽잖아."

"그, 그건 그렇지."

청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력이라고 다를 게 없어. 내상이라는 건 결국 기운이 상한다는 뜻이지. 상한 기운이 다시 회복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과거보다 더 강하게 회복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당연하지. 운공으로 모을 수 있는 기운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사숙의 몸 안에는 굳이 운공을 하지 않아도 흡수할 수 있는 기운이 있잖아?"

"어……."

백천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그의 몸속에는 혼원단의 기운이 있다. 그의 능력으로는 이 기운을 단기간에 흡수할 수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육체가 알아서 흡수한다는 건가?"

"결과가 그렇잖아?"

청명이 어깨를 으쓱한다.

"별로 어려울 것 없는 이야기야. 기혈이 있는 부분을 적당하게 잘 패서 적절한 내상을 입혀 주면, 몸은 그 내상을 회복하기 위해 기운을 갈구하게 되지. 그럼 알아서 몸 안에 있는 다른 기운을 찾아내 끌어다 쓰는 거야. 그 과정에서 기운은 과거보다 더 강해진다."

청명이 손가락을 까딱 흔들었다.

"기운. 육체. 어느 쪽이든 통용되는 간단한 논리지."

"……."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단 얼굴로 멀뚱히 바라만 보는 사형제들의 모습에, 청명은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렵겠지.'

이건 문파에서 가르쳐 주는 지식이 아니니까.

청명이 수도 없이 전장을 헤매며 터득한 지식이다.

사형제들의 수준과 안전에 맞춰서 굉장히 가볍게 적용한 결과일 뿐, 실제 이 이론은 생과 사가 오가는 죽음의 갈림길에서 완성되었다.

몸으로 체득하지 못한 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뭐 굳이 이해할 것 없어."

우드드득!

청명의 주먹에서 뼈마디 꺾는 소리가 났다.

"머리가 이해 못 하면 몸이 이해할 테니까!"

"……."

우득. 우득.

목을 좌우로 꺾은 청명이 양손을 휘저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그냥 사숙은 편안하게 대련이라고 생각해. 대련하면 어차피 맞는 거니까 그냥 마음 편하잖아?"

아니.

그거 조금도 안 편한데.

청명아. 아무래도 네가 생각을 무척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맞으면서 마음 편한 경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사숙 말 이해하겠니?

"이보다 좋은 수련이 어디 있어? 실전 경험시켜 주지. 정말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다 쓰게 해 주지. 그 와중에 내력까지 늘려 주지. 크으, 나도 이런 사부가 있었으면 두 배는 더 강해졌을 텐데."

"그 전에 도망갔겠지, 이 미친놈아!"

"낄낄낄낄."

청명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괜찮아. 안 죽어. 안 죽어. 수련하다 죽었다는 사람 들어 봤어?"

못 들어 봤지.

당연히 못 듣겠지. 이러다 내가 죽으면 나는 그 사실을 들을 일이 없을 테니까.

어차피 못 듣는 거잖아, 인마!

백천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속에는 천불이 끓어올랐지만, 일단은 그 불평불만을 꾹꾹 눌러 놓았다.

그리고 돌연 진중해진 얼굴로 검 손잡이를 움켜잡고는 앞에서 떠벌거리는 청명을 향해 외쳤다.

"됐고!"

"응?"

"그러니까, 지금 이 수련을 빙자한 폭행을 버텨 내면 단기간에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소리겠지?"

"물론이지."

청명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거 참 마음에 드는 소리군."

생각해 보면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다.

내력은 둘째 치고 저 괴물이랑 하루에 두 번씩 대련을 한다? 이건 무인이라면 꿈에라도 그리던 기회나 다름없다.

"다만."

백천이 이를 갈았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얼굴에 칼자국이 생기면 안 그래도 안 좋은 인상이 더 험악해질 테니까."

"호오."

청명이 씨익 웃었다.

'이리 나와야지.'

이래서 백천이 좋다.

아무리 후리고 패고 까도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까.

"할 수 있다면 해보시지!"

"바라던 바다! 이 자식아!"

백천이 검을 뽑으며 청명에게 달려들었다.

"죽어어어어어어어!"

"그거로는 안 되지!"

뒤엉키기 시작하는 두 사람을 보며 조걸이 한탄하듯 말했다.

"저 양반은 언제부터 저놈과 저리 쿵짝이 맞았답니까?"

"……글쎄다."

윤종도 한숨을 푹 내쉰다.

"운남에 도착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

운남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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