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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4화 (164/1,567)

164화.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4)

"아, 아니 이게 다 무슨 일이란 말인가?"

화영문의 관주 위립산이 넋이 나간 얼굴로 앞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남영에 못 보던 무인들이 쏟아지고, 화산의 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뛰쳐나갔다. 그런 마당에 명색이 화영을 대표하는 무관의 관주인 그가 손가락을 빨고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 위립산도 서둘러 제자들을 이끌고 중인들이 몰려든 곳으로 향한 것이다.

이곳으로 오르는 유일한 산길을 타고 검총에 도착했을 땐 수많은 이들이 분노에 차 웅성거리고 있었다.

"이제 와 이곳에 와 봐야 소용이 없소! 이미 무당 놈들과 다른 놈들이 들어가서 입구를 막아 버렸소."

"입구를 막았다 하셨소?"

"마지막으로 들어간 간악한 어린놈이 입구를 무너뜨렸소! 내 살다 살다 그런 망할 놈은 처음 보오! 에잉!"

슬프게도, 위립산은 간악과 망할이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마지막에 들어갔다는 그 어린놈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채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 이게 뭔 일이야!"

"무너진다! 당장 여기서 피해! 당장!"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검총의 입구를 살펴보던 이들과, 어차피 누가 신병을 얻든 이곳으로 다시 나올 확률이 높으니 기다렸다가 약탈할 계략을 세우던 이들까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기겁을 하며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콰르르르르르릉!

하늘이 붕괴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검총의 입구 주변의 땅이 통째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허어어어?"

"세, 세상에!"

뒤로 물러났던 이들이 기겁을 하여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무너진 곳을 바라본다. 적어도 이십여 장 이상은 꺼져 버린 것 같다.

저 아래에 있을 사람들?

'절대로 못 살아남는다.'

무인이라고 해도 사람은 사람이다. 감당할 수 있는 게 있고, 감당하지 못하는 게 있다. 이건 명백히 후자였다.

아래로 내려간 이들이 제아무리 강호에 이름 높은 이들이라고 해도, 이만한 붕괴 아래서는 한낱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일 뿐이다.

"이럴 수가, 여기가 무너지다니……!"

"그, 그럼 신병은 어떻게 된 거요?"

"신병이고 나발이고 다 끝난 거지. 괜히 안으로 들어간 이들만 가엽게 됐구만."

신병을 영영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허탈함과, 그래도 내가 아닌 이들도 신병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하지만 위립산이 느낀 감정은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아, 안 돼……."

그는 무너진 검총을 찢어질 듯한 커다랗게 벌어진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 이럴 수가."

이래서는 안 된다.

적어도 이리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다.

'이제야 화산의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물론 화산에는 이곳에 온 이들 말고도 더 많은 제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립산은 알고 있다. 설사 화산이 인재들이 솟아나는 화수분 같은 곳이라 해도, 이곳에 온 이들을 대체할 사람은 없을 것이란 걸.

특히나 화산신룡.

청명을 대체할 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런 이는 키운다고 키워지는 것이 아니니까.

"어찌 이런 일이……."

새삼 왜 그들을 말리지 못했을까 후회되는 위립산이었다. 아무리 그들이 화산의 본산에서 내려온 제자들이고, 위립산은 차마 손을 섞을 엄두도 나지 않는 고수들이라고는 하나, 강호 경험이 일천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했어야 하는데.'

물론 말린다고 들었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이토록 뼈에 사무치도록 후회를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청명이 제게 했던 말을 떠올린 위립산의 눈앞은 그만 뿌옇게 흐려지고 말았다.

"이보시게, 화산신룡……. 화영문을 반석에 올려 주겠다 하지 않았는가?"

화산의 미래를 그 어깨에 기꺼이 짊어질 것처럼 말하더니 이게 웬 봉변이라는 말인가?

"……아버님."

위립산이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위소행을 바라보았다.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저 안에서 살아남을 확률은……."

위립산은 참담한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지금이라도 파내 보면!"

"소행아."

위립산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슬픔까지 어찌할 순 없지만, 어쨌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이제 그만 마음을 정리하거라."

"그렇지만……."

위소행이 못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얼굴로 무너진 검총을 바라보았다.

물론 위소행도 알고 있다. 웬만해서는 저 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껏 함께했던 화산의 제자들을 생각하니 차마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위소행이 눈가를 가리고 낮게 흐느꼈다.

그때였다.

"빌어먹을, 다 죽었구나! 차라리 잘됐지!"

"어차피 우리가 못 얻을 바에야 아무도 얻지 못하는 게 나아! 무당 놈들이나 다른 문파 놈들이 저 밑에서 죽어 나갔을 걸 생각하니 쌤통이군!"

"에이. 공쳤네! 공쳤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과격한 반응이 위소행의 얼굴이 분노로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내버려 두어라."

"하나 아버님! 너무나 무도하지 않습니까?"

"강호가 원래 그런 곳이다."

"……."

위립산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강호는 더없이 무정하다. 수많은 이들이 타인의 불행에 기뻐하고, 가진 자를 헐뜯는다. 심지어 이곳에는 신병을 얻기 위해 타인을 해할 각오가 된 이들이 모여 있다. 망자의 안식을 빌어 줄 만한 이가 있을 리 없다.

만약 저 안에서 신병을 얻어 나온 자들이 있었다면, 이들과 또 한 번 격전을 치러야 했을 것이다. 잔뜩 지친 데다 신병까지 가지고 있으니 그만 한 먹잇감이 없다.

그리고 애초에 남이 신병을 얻어 무사히 돌아가는 꼴을 볼 거라면 여기서 지키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영이 피로 물들고 강호에 새로운 혈사가 벌어지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젊은 위소행은 참아 낼 수가 없었다.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이까!"

순간 주변의 시선이 위소행에게로 집중되었다.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르는데 쌤통이라니! 그게 인두겁을 쓴 자가 할 말입니까?"

"저 새끼는 또 뭐야?"

"몰라.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놈인 모양이지. 아가야, 아서라. 그러다가 죽는다."

"이익!"

위소행이 울컥하여 반박하려는 찰나였다.

위립산이 한숨을 쉬며 아들의 앞을 가로막는다.

"나는 남영 화영문의 문주인 위립산이오."

"……화영문?"

"그런 곳도 있었나?"

위립산은 그들의 반응을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얻을 것이 없는 분들은 이만 돌아가 주시오. 남영의 주민들이 몰려온 강호인들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소."

"그쪽이 뭔데 우리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요!"

"듣도 보도 못 한 문파의 문주가 무슨 자격으로!"

정중하게 말했지만 모욕만이 돌아오자, 위립산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최대한 참으려고 애를 썼을 뿐. 속이 뒤집어진 걸로 따지면 위립산이 위소행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내 그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고인들을 모욕하지 말고 당장 이곳에서 꺼지라고 했소! 내 그대들의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것을 참는 중이니까!"

"허어?"

"저 작자가 미쳤나?"

"저 안에서 친지라도 죽은 모양이지. 낄낄낄."

위립산이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적어도 이들이 검총에서 죽은 이들을 모욕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가 화산의 제자들에게 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위령(慰靈)이 될 것이다.

그가 막 고함을 내지르려는 찰나였다.

콕콕.

위소행이 위립산의 등을 찌른다.

"만류하지 말거라!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 더는 저 무도한 작자들의 언행을 참고 넘길 수가 없구나!"

"아, 아버님! 그게 아닙니다. 저, 저기! 저기!"

"응?"

위립산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위소행을 한번 훑었다가 위소행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 천천히 이동했다.

'으응?'

위소행이 가리킨 곳은 무너진 검총의 한가운데였다.

아니, 저기가 왜?

그때였다.

들썩!

"어?"

위립산이 눈을 끔벅였다.

'잘못 봤나?'

분명 방금 저곳이 들썩이는 것을 본 것 같…….

들썩!

"어어엇!"

위립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이번에는 절대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분명히 들썩였다.

'서, 설마……!'

위립산이 막 아래로 뛰어내리려던 그 순간이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다. 그것의 정체가 사람의 팔이라는 것을 알아채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듬더듬.

바닥을 뚫고 올라온 팔이 주위를 느리게 더듬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파아아아아악!

토사가 사방으로 튀어오르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가 상체를 불쑥 내밀었다.

"아오오오오! 진짜 뒈질 뻔했네!"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얼굴.

그리고 더욱 익숙한 짜증 섞인 말투였다.

"처, 청명 도장!"

위립산이 지체 없이 바닥으로 뛰어들었다. 청명에게로 달려가는 그의 눈에 눈물이 핑 고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청명이 결국은 살아서 검총을 빠져나온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약선 이 개 같은 늙은이! 으아아아! 사형! 장문사형! 그 개새끼 좀 패 주십쇼!"

뭐라고 지껄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청명이 악을 쓰며 하늘을 향해 몇 번 삿대질을 해 댄다.

그때 구멍 안쪽에서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좀 나가! 이 빌어먹을 놈아!"

"나간다고! 지금 나갈 거라고!"

청명이 오만상을 쓰며 밖으로 빨빨 기어 나왔다. 그러자 그 뒤로 줄줄이 화산의 제자들이 밖으로 기어 나온다.

"끄으으으응."

"진짜 뒈질 뻔했네."

"내가 다시 동굴이나 지하로 들어가면 사람이 아니다."

상거지꼴이 된 화산의 제자들이 밖으로 나오자마자 털썩털썩 바닥에 주저앉는다. 얼마나 힘겹게 저곳을 빠져나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광경이다.

위립산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화산의 제자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영문을 모르니 당황한 화산의 제자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위립산을 보았다.

"헐! 이 아저씨 왜 이러시지?"

"무, 문주님?"

위립산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행이오. 다행이오! 다들 정말…… 정말 잘 돌아왔소!"

청명과 백천이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었다. 여하튼 반겨 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기는 한데.

"으아아아! 화산신룡! 나 좀! 나 좀 끌어내 다오! 다리가 걸렸다."

"아 저 거지 아저씨! 진짜!"

청명이 이를 갈며 버둥거리는 홍대광을 끌어올렸다. 그와 함께 홍대광에게 매달린 개방도들이 뿌리에 달린 고구마처럼 줄줄이 튀어나온다.

"아오! 따로따로 좀 나오라고! 무겁다고 좀!"

청명이 짜증을 부렸지만 홍대광은 대꾸할 기력도 없다는 듯이 나오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허억! 허억! 진짜……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진짜로……."

화산과 개방을 시작으로 살아남은 이들이 비척비척 안쪽에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밖으로 나온 후에야 무당이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왔다.

허산자가 살짝 허탈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본다.

"……다시 해를 보게 될 줄이야."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다.

위기의 순간에 청명이 기지를 발휘하지 못했다면 정말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이나 위기일발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검총에 들었던 이들이 빠져나오는 것을 본 무리들이 붕괴하여 움푹 꺼진 구덩이를 둥글게 둘러싸기 시작한 것이다.

그 흉흉한 기세에 허산자가 눈을 찌푸린다.

그리고…….

"아니. 저 새끼들이?"

그렇잖아도 짜증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한계까지 치밀었던 청명의 눈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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