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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63화 (163/1,567)

163화. 아니!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3)

쏟아진다.

가공할 크기의 바위들과 토사가 아래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흡사 거대한 황토색의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고, 바위가 폭발하듯 아래로, 또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뛰어내려어어어어어어어!"

청명이 고함을 친 그 순간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청명이 소리를 내지르자마자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바닥을 향해 몸을 날렸다. 머리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신뢰 관계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미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 등신들아! 당장 뛰어내리라고! 말귀를 못 알아 처먹어!"

청명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되는 대로 걷어차 아래로 날려 버렸다.

"이게 무, 무슨……!"

"무슨은 얼어 죽을!"

옆 사람의 멱살을 움켜잡은 청명이 지체 없이 그를 절벽 바깥으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저 미친놈이이이이이!"

그리고 벼락처럼 절벽 위를 헤집으며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이!"

뻐엉!

"말을 하면!"

뻐어어엉!

"들어 처먹어야 될 거 아냐!"

폭풍처럼 절벽 위를 휘몰아치며 걸리는 인간들을 모조리 걷어차 날렸다. 그 모습을 본 이들이 기겁을 하며 절벽 아래로 몸을 날린다.

"말코!"

청명이 허산자에게 소리쳤다.

"아래로 당장 뛰어내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그건 죽음을 재촉하는 일일 뿐이다!"

"알았으니까 뛰라고! 당장!"

그 말을 남기고 청명도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허산자가 그 모습을 보고 입술을 질끈 깨문다.

"장로님?"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이다. 오래 생각할 시간 따윈 없었다.

"뛰어내려라! 아래로 간다!"

"예!"

줄줄이 아래로 뛰기 시작하는 제자들을 보며 허산자도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렸다.

'저 아해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녀석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운명을 맡겨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으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청명이 허공을 몇 번이나 박찼다.

낙하할 때는 보통 몸을 가벼이 하고 진기를 바닥으로 뿜어 속도를 줄이는 것이 기본이지만, 지금 청명은 반대로 속력을 올려 바닥으로 있는 힘껏 쏘아져 내려가고 있었다.

'빌어먹을, 시간이 없어!'

까마득한 곳의 천정이 무너졌기에 시간을 잠시 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곧 저 바위들이 바닥에 처박힐 것이고, 그 뒤에는 이 곳의 모든 이들이 사이좋게 매장되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쿠우우우우우웅!

청명이 바닥에 내리꽂히자 굉음과 함께 돌조각들이 허공으로 이리저리 튀었다.

"끄으으으."

"청명아! 왔던 길이 모두 막혔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이 개 같은 영감탱이!"

청명이 이를 갈았다. 그들이 이곳으로 올 때 지나왔던 곳은 이미 단단한 석벽으로 막혀 있었다.

베어 낸다?

'그게 될 리가 없지.'

이만한 곳을 만들어 낸 놈이 그 정도 대비도 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아마 저 석벽을 베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설령 힘들게 베어 내고 돌아간다 해도 저곳이 함께 무너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청명의 처음 자신이 했던 생각을 밀고 나가기로 했다. 약선이라는 놈이 정말 정신 줄을 완전히 놓아 버린 미친놈이 아니라면 반드시 살 방법이 있을 것이다.

"청명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

"바닥!"

청명이 지체 없이 외쳤다.

"바닥 까! 지금 당장! 바닥에 뭔가 있을 거야!"

"바닥?"

"묻지 말고 움직여!"

청명도 검을 뽑아 들고는 바닥에 무작정 찔러 넣었다. 처음 무당이 검총의 입구를 찾아내던 때처럼 말이다.

그의 행동을 본 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병기를 바닥으로 찔러 넣었다. 지금은 일단 저놈을 따라야 한다.

"있다!"

"여기도 있어! 검이 안 들어가!"

"이쪽에도!"

하지만 이번에는 찾아내지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찾아내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청명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파! 파! 이 새끼들아! 덮여 있는 거 다 파내! 당장!"

어느새 모두가 청명의 지시에 따라 반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모두가 장님이 되었다면 눈이 보이는 것 같은 이의 말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게 설령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화산의 어린놈일지라도 말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

모두가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땅을 파기 시작했다. 병기가 있는 자들은 병기를 휘둘렀고, 병기가 없는 자들은 양손으로 단단한 바닥을 퍼낸다.

병기가 상하고 손톱이 뒤집히는 것 따위가 대수랴. 지금 다 뒈지게 생겼는데.

"파! 더 빨리 파, 이 새끼들아! 허리를 펴지 말고 작업하란 말이야!"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대던 청명도 검을 세차게 휘둘렀다.

"으라차아아아아아!"

그가 검을 후려칠 때마다 사람만 한 토사가 옆으로 튕겨 나간다. 하지만 바닥은 넓었고 팔 곳은 너무도…….

"흐아아아아앗!"

그때, 푸른 비단 폭 같은 무당의 검기가 땅을 파고든다.

콰앙! 콰아아아앙!

"그렇지!"

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놈들이 여기에선 제법 쓸 만하다! 저 넓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검기는 바닥을 파내는 데는 최상이었다.

진즉에 적성 살려서 굴이나 팔 것이지 뭔 놈의 영약을 처먹고 만수무강을 누리겠다고! 망할 말코 놈들!

"이거 금속 같은데!"

"금속판이 넓게 깔려 있어! 이거 검기도 안 먹혀!"

누군가의 외침에 허산자가 검기를 뽑아내며 다가섰다.

"비켜 보아라! 내가 잘라 보겠……."

"으아아아아아!"

그때 청명이 부리나케 달려들어 그의 옆구리를 걷어차 버렸다.

상상도 못한 일격에 얻어맞은 허산자가 바닥을 나뒹굴고는 대경하여 청명을 바라본다.

"아, 아니! 뭐 하는……."

"이걸 자르면 어떡해, 이 미친 말코 새끼야! 이게 우리 목숨 줄인데!"

"허……."

사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허산자를 내버려 두고 청명이 고개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았다.

"와 씨……."

어느새 바위들이 신병들이 있던 절벽의 틈새를 무너뜨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아, 안 돼!'

이대로는 시간 내에 못 피한다.

청명의 고개가 아래로 다시 획 돌아갔다. 어떻게든 방법…….

"거기!"

청명이 고함을 지르며 한쪽으로 몸을 날렸다.

있다!

흙과 돌로 파묻혀 있긴 하지만, 분명 다른 곳과는 재질이 미묘하게 달라 보인다.

청명이 벼락같이 검을 휘두른다.

콰아아아아아앙!

토사가 사방으로 비산하며 바닥이 똑똑히 드러난다!

"이, 이거!"

"문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청명의 눈에 핏발이 섰다.

문.

처음 그들이 이곳으로 들어왔을 때와 같은 형식이다.

다만 처음 그들이 본 문에는 검이 서로 겨누어진 형상이 있었지만, 이곳에는 검 두 개가 바닥에 꽂힌 형상이 새겨져 있다.

"여기다! 여기 잘라, 말코!"

허산자가 부리나케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파아아아앗! 파아아앗!

문이 수십 조각으로 잘려 나간다. 그와 동시에 다시 시커먼 구멍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청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옆으로 뻗었다.

덥썩!

"응?"

백천이 놀란 눈으로 청명을 돌아본다.

"가라, 사숙!"

"어? 어? 야, 이 미친노……. 으아아아악!"

청명이 백천을 구멍 안으로 집어 던졌다. 그리고 옆에 있던 화산의 제자들은 연속으로 구멍 안으로 쑤셔 박듯 던져 넣는다.

"알아서 뛰어! 뒈지기 싫으면!"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모두가 젖 먹던 힘까지 발휘하여 구멍 안으로 몸을 날린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길은 오직 이것뿐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뛰어! 뛰어! 당장!"

그때 청명의 눈에 괴이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저 멀리에서 개방도들이 부상을 입은 이들을 들쳐 업고 있었다. 당장 뛰어와도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판에 제 발로 걸을 수 없는 부상자들을 돕고 있는 것이다.

"아! 저 미친!"

청명이 그쪽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들어 홍대광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어, 어어?"

"뭐 해, 이 거지 놈아!!"

"부상자가 있잖아! 이대로 두면 죽어!"

"내가 뒈지겠다, 내가 뒈지겠어! 아오! 진짜 여기까지 어떻게 왔냐, 이 새끼들아!"

청명은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어버버 하는 개방도들과 부상자들을 입구 쪽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상황을 봐 가며 오지랖을 부려야지!"

마침내 손에 잡히는 모두를 날려 버린 청명의 시선이 위로 획 올라갔다.

"으아, 씨발!"

바위가 금방이라도 그를 깔아뭉갤 듯이 쏟아지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청명이 괴성을 지르며 얼른 몸을 날려 피했다. 머리 쪽으로 섬뜩한 바람이 느껴진다. 그는 그대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구멍을 향해 네 발로 빨빨 기기 시작했다.

사람이 두 발도 아니도 두 팔과 두 다리를 놀리는데 그 속도가 가히 기겁할 정도다. 마치 커다란 장랑(?

螂-바퀴벌레)이 전력으로 기어가는 것 같다.

"뭐 해! 말코!"

"어서!"

제자들을 모두 구덩이로 쑤셔 넣고 마지막까지 입구를 지키던 허산자가 청명을 보며 소리쳤다.

"뛰어들게! 당장!"

"오지랖은 빌어먹을!"

허산자의 머리를 향해 바위덩어리가 쏟아진다. 청명이 바닥을 박차고 날아 허산자의 허리를 움켜잡고는 몸을 빙글 돌렸다.

"으라차아아아아아아아!"

곧장 낙하하는 바위를 걷어차 그 반동으로 구멍으로 뛰어든다. 가공할 속도…….

쿠우우웅!

"끄윽!"

청명의 눈이 돌아간다.

엄청나게 깊어 보였던 구멍이 사실은 사람이 겨우 일어설 수 있을 정도의 깊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게 문제였다.

전력을 다해 바닥에 머리를 처박은 꼴이 된 청명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른다.

"아아아아아아악! 약선 이 개 같은 놈아!"

이건 절대 약선의 탓이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은 눈에 뵈는 게 없는 청명이었다.

그는 머리를 움켜잡고 잠시간 더 신음하다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공간.

그 공간 안에 살아남은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 이제 된 거냐?"

"청명아! 괜찮냐?"

괜찮냐고?

내가 아니면? 우리가?

"나는 괜찮고! 우리는……."

이제 봐야지.

청명이 핏발 선 눈으로 위를 바라본다. 아마 약선은 이 공간을 발견하고 들어온 이들은 살려 줄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여기는 알 수 없어.'

검총을 만든 약선조차도 이곳은 시험해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저만한 바윗덩어리가 비처럼 쏟아져도 이곳이 버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닌가?

청명은 제발 약선이 천하에 다시없을 천재라 이곳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기를 빌었다.

그리고 그 순간.

쿠우우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우웅!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윗덩어리가 떨어지며 만들어 낸 충격이 공간 안을 휩쓴다. 마치 거대한 화포가 바로 앞에서 폭발한 것 같은 충격이었다.

내장이 뒤틀리고 고막이 터져 나간다. 오공으로 피를 뿜어낸 이들이 얼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했지만, 적어도 화산과 무당의 제자들은 충격을 꿋꿋하게 버티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영 좋지 못하다.

백천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처, 청명아! 빌어먹을, 무너진다!"

천정에 대어진 금속이 휘어지기 시작했다. 충격에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연이은 충격에도 그 형태를 보존하기란 무리였던 모양이다.

이걸로 명백하다. 이곳은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으아아아아! 약서어어어어어언!"

이 새끼야 왜 사람이 덜 똑똑해 가지고! 똑똑하려면 제대로 똑똑할 것이지!

이대로라면 모두가 납작하게 눌려 한 덩어리가 되고 말 것이다.

"앓느니 죽지! 빌어먹을!"

청명이 벌떡 일어나 천장에 양손을 뻗었다.

쿠웅! 쿠우우우우우웅!

"꺽!"

한 번 충격이 올 때마다 허리가 뒤틀리는 것 같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공간의 힘만으로 버틸 수 없다면 사람의 힘을 추가하는 수밖에.

청명은 단전에 있는 진기를 모조리 끌어내어 죽어라 천장을 밀어 올렸다.

"뭐 해, 이 새끼들아! 다 죽고 싶어?"

가장 먼저 청명의 행동을 이해한 것은 허산자였다.

"무량수불!"

허산자가 급히 달려왔다. 그리고 중앙에 선 채 천장을 받치고 있는 청명의 곁에서 함께 양손을 뻗었다.

"흐아아아아압!"

젖 먹던 힘까지 모두 끌어모아 천장을 밀어 올린다.

이윽고 두 발로 설 수 있는 자들은 모두 달려들어 천장을 받쳐 들었다.

이대로라면 모두 죽는다. 반드시 무너지는 걸 막아 내야 한다.

"선천지기고 나발이고 다 끌어다 써! 여기서 밀리면 우리 다 죽는다, 알았어?"

청명이 눈에서 광기를 뿜어내며 이를 악물었다.

죽어? 여기서?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나는!"

쿠우우우우우우웅!

"절대 여기선 안 죽는다! 이 새끼들아아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바위들이 일제히 처박히며, 동시에 세상이 무너져 버린 것 같은 충격이 암실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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