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5)
타악!
탁!
서로 마주 보고 절벽의 양 끝으로 오른 두 사람은 재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이윽고 청명의 눈이 살짝 커졌다.
"있다!"
빽빽하게 검들이 꽂힌 곳이 보였다. 창이나 도끼 등도 몇몇 끼어 있었지만 대다수는 분명히 검이었다.
그 말인즉슨.
"여기가 검총이 맞구나!"
이곳까지 오면서도 못내 그를 찝찝하게 만들었던 의심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는 건?
청명은 재빨리 눈을 굴렸다.
'있을 거야! 저런 거 말고!'
신병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가 노리는 건 오직 하나!
'그렇지!'
빽빽이 꽂힌 검들 한가운데에 불룩 솟은 바위가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목함(木函) 하나가 놓여 있다.
신병의 한가운데에 굳이 목함을 둘 필요가 없을 터! 그렇다는 건?
'저게 혼원단이군!'
혼원단만 들어 있는지, 연단법도 같이 들어 있는지, 혹은 연단법만 들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건 노려야 할 건 바로 저 목함이다.
청명이 곧장 움직이려는 순간, 묵직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네놈이 화산신룡이냐?"
청명의 고개가 살짝 들린다. 목함의 건너편에서, 검을 뽑아 든 허산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이쿠?'
살기?
청명이 이죽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요?"
"잘도 여기까지 왔구나. 사태를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허산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청명이 무진에게서 장보도를 강탈하여 남영에 뿌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개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화산 역시 이곳에 진입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놈들은 우물에 독을 타 버리는 전법으로 결국 이곳까지 도달했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간악하다고 해야 할지.
"네 능력은 인정하마. 하지만 여기까지다. 잠자코 물러나라. 나는 오늘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다. 네가 아무리 겨우 삼대제자에 불과하다고는 하나 맞서려 든다면 목을 벨 것이다."
"어휴, 무서워라."
청명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음?"
청명의 입가에 비웃음이 어린다.
"이미 살기를 풀풀 내뿜고 있잖아요? 제발 덤벼 달라는 게 본심 아니에요? 여기서 슥삭 해 버리게?"
"……."
허산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자신의 본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저 아이를 그렇게나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영특(獰慝)함으로만 따지자면 그리 위협이 될 것 없다. 저 아이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한들, 제갈가의 후예나 전문적으로 병법을 익히는 이들에 비하자면 덜 껄끄러울 테니까.
하지만 막상 청명을 본 이후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인정하자.'
저놈은 위험하다.
물론 진자 배고 무자 배고, 무당의 제자들 역시 어디 나가서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저놈에게 가져다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종자가 다르다.
저놈을 이대로 성장하게 내버려 뒀다가는 훗날 화산이 무당을 집어삼키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과거 종남의 사마승이 느꼈던 감정을 지금 이 순간 허산자가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때의 사마승이 느낀 것보다 더욱 격한 위기감과 살의다.
"물러나라."
허산자가 준엄하게 말했다.
"네 말대로다. 나는 지금 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나에게 죄를 짓게 만들지 말아라. 너는 그만큼이나 나를 뒤흔들고 있다. 내가 쌓아 온 오랜 수양이 무너질 만큼!"
'호오?'
청명이 신기하다는 듯 허산자를 바라보았다.
입장을 바꿔 청명이라면 어떨까?
'뭐, 나야 어차피 나보다 더 세질 놈이 없으니 저러지도 않겠지만.'
여기서 가장 좋은 선택은 청명을 죽이는 것이다. 혼전의 와중이니만큼 누가 죽어 나가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일이 꼬인다면 세인들의 지탄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고작 비난이 두려워 실리와 바꿀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허산자는 청명에게 재차 물러날 것을 권유하고 있다. 훗날 청명이 무당에 위협이 되더라도 지금 어린 도가의 제자를 죽여 없애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무당은 무당인가?'
이곳까지 오면서 볼꼴, 못 볼 꼴을 다 봤을 텐데도, 아직 정도를 지키고 있다. 무당의 이름이 아직 천하에 드높은 이유를 저 늙은 장로가 보여 주고 있다.
하나.
"그런다고 물러날 내가 아니거든."
청명이 되레 앞으로 한 발 나섰다. 그러자 허산자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권주를 마다하고……."
"아, 그놈의 벌주는 너무 처먹어서 항상 반쯤 취한 것 같으니까 뻘소리 하지 말고 그냥 싸우기나 하죠."
"이놈이!"
허산자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언제 저런 어린놈에게 이런 막말을 들어 보았겠는가?
'나는 충분히 권했다.'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목을 쳐 버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고 고이 보내 주려 했건만, 저놈이 저런 식으로 나오면 그도 더는 물러날 필요가 없다.
"타아아앗!"
허산자가 더는 말이 필요 없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청명 역시 그를 향해 돌진했다.
빽빽하게 꽂힌 검들 위로 두 사람이 동시에 몸을 날린다.
촤아아아아악!
마치 허공에 푸른 비단 폭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너무나도 선명한 검기가 청명을 향해 뿜어진다. 무진의 그것과 비슷하지만 격이 다르다.
청명 역시 이번만은 지금까지와 같은 자세로 싸울 수 없었다.
상대는 무당의 장로. 이 몸으로 눈을 뜨고 만났던 이들 중 가장 강한 자다.
검을 잡은 청명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앞으로 돌진하던 그는 발에 닿는 검의 손잡이를 걷어차며 몸을 틀었다.
촤아아악!
푸른 검기가 아슬아슬하게 청명의 앞섶을 베고 지나갔다. 옷자락이 잘리며 섬뜩한 감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장난 아닌데!'
과거의 그라면 손짓 하나로 날려 버렸을 검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의 청명에게는 이 검기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무엇보다 검기에 실린 어마어마한 내력이 절로 몸을 긴장시킨다.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네.'
무당이 부드러운 검기를 쓰니 어쩌니 하는 것들은 다 입을 꿰매 버려야 한다.
뭐? 부드러워?
부드럽게 후려쳐서 사람 곤죽을 만드는데, 그게 부드러운 거냐? 그게?
추구하는 검의 방식이 어떻든 간에, 이 검에는 청명의 제압할 마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제대로 박살을 내겠다는 의지가 가득가득 담겨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스치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오체분시될 만큼의 내력을 담아 휘두르겠는가?
"해보자 이거지?!"
청명의 눈에 불꽃이 피어났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비단 폭 같은 검기가 끊기지 않고 줄줄 뽑혀 청명에게로 날아든다.
"핫!"
청명이 짧게 기합을 내지르며 날아드는 검기를 향해 되레 몸을 날렸다. 그리고 곧장 뛰어올라 검기를 발로 박차며 앞으로 돌진한다.
"뭐?"
허산자는 심장이 목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검기를 발로 찬다고?'
기를 실어 되받아치는 것도 아니고, 검기를 밟아서 앞으로 달려든다? 검기가 허공에 날린 나무판자도 아니고, 저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대체 저놈은?'
어마어마한 운용이다.
기운을 제 팔다리처럼 다루지 못하고서야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경지다. 허산자조차 감히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이 의미하는 건 하나.
가진 내력이나 검술의 깊이는 모르나, 기의 운용 측면에서는 저 어린 화산신룡이 허산자보다 더 뛰어난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눈으로 본 것을 부정할 도리가 없다.
허산자가 경악에서 미처 헤어나지 못한 그 순간에도 청명은 그에게로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이노오오오오옴!"
허산자가 일갈하며 앞으로 달려든다. 그리고 검기를 있는 대로 실어 돌진하는 청명에게로 내리쳤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터져 나온 기파가 주위를 휩쓴다. 바닥에 박혀 있던 검들이 파르르 떨리며 조금씩 뽑혀 나온다.
"쿨럭!"
청명이 입으로 피를 뿜었다.
확실하게 막았다. 심지어 반쯤은 옆으로 흘려 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허산자의 검은 그의 내부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마치 거대한 산악이 몸 위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이다.
'이 말코 놈이!'
능숙하다.
무당의 검은 결국 유(柔)의 검. 부드러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검이다.
하지만 허산자는 청명의 특성을 파악하는 순간, 바로 유를 버리고 중(重)으로 청명을 상대했다. 아무리 청명이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내력에 있어서는 자신을 당해 내지 못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허산자의 생각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아무리 청명이라고 한들, 수십 년의 세월을 고련해 온 장로들의 내력을 벌써부터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그나마 그가 익힌 내력의 특성이 있기에 단 한 방에 곤죽이 되는 것은 막아 낸 것이다.
검을 맞댄 허산자의 눈이 흔들린다.
"막아?"
삼대제자다.
일대제자도 아니고, 이대제자도 아니다. 이제 갓 스물이나 되었을 법한 삼대제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삼대제자가 허산자의 전력이 담긴 검을 막아 내었다.
"무진을 이겼다는 게 농이 아니었구나. 너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냐!"
"뭐, 서로 대화할 사이는 아니지 않나요?"
그럴 거면 칼에 힘 좀 빼시든가.
양심이 없네! 양심이!
그때 허산자가 중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거라."
때문에 더 이죽거리려던 청명은 입을 다물었다.
"타문의 제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지만, 네가 원한다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너를 무당의 제자로 받아 주겠다. 그리고 원한다면 이대제자로 받아 주마."
"어?"
"너의 재능이라면 무학을 다시 익히는 것쯤은 작은 장애물에 불과할 터. 무당으로 오너라. 내가 너를 후대의 무당 장문으로 만들어 주겠다."
뭐래?
청명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니, 뭐 다른 사람이라면 살짝 혹할 수도 있는 말이긴 하다. 천하의 무당이 제자로 받아 준다는데. 심지어 배분도 한 단계 올려서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청명이다.
"아니. 이 영감님이 정신이 나가셨나! 어디 남의 문파에 영업질이야!"
"그게 아니라면!"
허산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말한다.
"내 제자로 받아 주마! 그럼 너는 무당의 일대제자가 된다."
"됐어요."
청명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럼에도 허산자는 쉬이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이 속한 문파에 대한 애정이 깊은 것이야 칭찬할 일이지만, 장부라면 기회를 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화산의 제자보다는 무당의 장문이 나을 터!"
"아, 됐다고요!"
청명이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어째서냐? 네 머리라면 어떤 것이 이득인지 모르지 않을 터!"
"거참, 이 영감님 끈질기시네."
"무당은 네게 화산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거 이해를 못 하시네."
청명의 입가가 씩 말려 올라갔다.
"저는 저보다 약한 사람 제자 되는 취미는 없거든요?"
"……뭐라?"
"그리고!"
청명이 짧게 힘을 주어 허산자의 검을 튕겨 낸다. 이어 뒤로 빙글 솟구쳐 올랐다가 바닥으로 쾌속하게 강하한다.
"으라차!"
쿠우우우우우우웅!
강력한 발 구름에, 바닥에 꽂혀 있던 검들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아오른다. 청명은 허공으로 떠오른 신병들을 연속으로 걷어차 허산자에게로 날렸다.
"무당 따위가 뭐라고!"
"……!"
청명이 기운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내가!"
검을 차 날린다.
"화산을!"
연속으로 날려진 신병들이 마치 화살처럼 허산자에게 쏘아졌다.
"천하제일로 만든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