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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59화 (159/1,567)

159화.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4)

"뭐 얼마나 달렸다고 벌써 헉헉대! 내가 이래서 평소에 경공 수련 좀 하라고 했지!"

'인간 같지도 않은 놈!'

'양심도 없는 새끼.'

'잠시라도 사형제의 정을 느꼈던 내가 병신이지!'

'때리고 싶다.'

화산의 제자들은 젖 먹던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청명은 그들의 앞이 아닌 뒤에서 검을 뽑아 든 채로 뒤쫓고 있었다.

그 흉흉한 검날과 반쯤 돌아 버린 눈빛을 보니 다리에 힘을 빼려야 뺄 수가 없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후들거려도 일단은 달려야 한다.

'흡혈편복보다 저 새끼가 더 무섭다.'

'차라리 무당에 투신을 하고 말지!'

개중 내력이 가장 딸리는 조걸이 결국에는 뒤로 조금씩 처지기 시작했다.

"끄으……. 끄으으응."

이건 절대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니다. 최선을 다해 달리고는 있지만, 내력이 딸리는 걸 뭘 어쩌란 말인가?

하지만 뒤를 쫓아오는 이에게는 그런 당연한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앗, 따거! 악! 아아아아악! 이 새끼야!"

"달려! 달리라고!"

조걸의 등을 검으로 콕콕 찌른 청명이 눈을 새하얗게 뜨며 부라렸다.

"저 새끼들이 지금 내 걸 날름 먹고 나르려고 하잖아! 다 죽는 꼴 보고 싶어?"

"으아아아아아! 태상노군은 뭐 하시나! 저 새끼한테 벼락 안 내리시고!"

안타깝게도 이곳은 지하라 벼락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고 더 안타깝게도 청명이 하는 짓거리는 효과 하나만은 확실했다. 등을 콕콕 찔린 조걸이 두 배는 더 빠른 속도로 후다닥 달려 나갔으니 말이다.

"으아아아! 이 벼락 맞아 죽을 놈아!"

"죽는소리할 힘으로 달려!"

청명의 눈이 불을 뿜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재촉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저놈들이 더 이상 앞으로 가지 않고 있다.'

그건 끝에 도달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반드시 혼원단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느라 이 개고생을 했는데, 저놈들이 혼원단을 쏙 빼먹고 도망가는 꼴 같은 건 절대로 볼 수 없다.

"어디 무당 새끼들이 이 어르신의 물건을 건드려!"

'그거 네 거 아니라고!'

'사기꾼도 저런 사고방식으로 살진 않겠다.'

하지만 뭘 어쩌겠는가?

저놈이 하필이면 화산의 제자이고, 그들의 귀여운 사질이자 사제인데.

그리고 청명 때문에 개고생을 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화사아아안시이이인료오오오오옹!"

동굴 저어 뒤쪽에서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놈아아아아아! 같이 가자아아아아! 지금까지 부려 먹어 놓고서는 이제 와 버리고 가는 거냐아아아아아아아!"

"뭐래. 저 거지 아저씨는."

청명이 코웃음을 쳤다.

"아, 빨리빨리 따라 오라고요!"

"내가 못 가는 게 아니라! 우리 거지들이 못 가는 거잖아! 우리 거지들이!"

"하, 진짜 거지 같네."

청명의 비웃음에 홍대광의 눈에는 습기가 차올랐다.

'내가 이번 일만 끝나면 화산 쪽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 망할 놈 같으니!'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번 일은 끝나지 않았다.

"거지 놈들아! 좀 달려라! 저놈들을 쫓으라고!"

"분타주……. 먼저 가십시오. 저희는…… 저희는 틀렸습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빨리 못 달려?"

"헤엑! 헤엑! 못…… 못 갑니다. 분타주! 차라리 죽이십쇼."

"아이고오. 다 늙어서 저 어린놈들을 어떻게 쫓아갑니까. 저것들은 쇠도 삼키는 나인데!"

"닥치고 달리지 못해?! 이건 개방의 자존심 문제다! 경공으로는 우리가 천하제일이란 말이다!"

"구걸이 천하제일이겠지!"

"에라이!"

홍대광이 이를 질끈 깨물고는 거지들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아아아악! 왜 때리쇼!"

엉덩이를 걷어차인 거지가 눈을 부라리며 홍대광에게 달려들었다.

'어, 이게 아닌데?'

왜 나는 저놈처럼 안 되지?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며 홍대광은 득달같이 달려드는 거지를 밀어 내었다.

"야, 화산신룡! 같이 가자니까아아아아!"

홍대광이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청명은 오로지 앞으로 달릴 뿐이었다. 거지 사정 봐주다가 혼원단을 놓치기라도 하면 저 거지 놈들을 삼박 사일 동안 두드려 패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게 뻔했다.

"출구다!"

"빛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화산 제자들의 입에서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물론 목표로 하던 것을 찾아내었다는 기쁨이라기보다는 이제야 이 지독한 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쁨 쪽이었다.

"광명이다아아아아아!"

어느새 선두로 나선 조걸이 헐떡거리며 출구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두 눈을 부릅뜬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뭐야 이거?"

거대한 절벽과 그 절벽을 죽어라 오르는 무인들이 보였다. 그 광경을 확인한 순간 조걸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어느새 그의 옆에 선 백천과 윤종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저, 저거……."

"내가 보는 게 맞지?"

"확실히 절벽인 것 같습니다만?"

깎아지른 절벽을 보는 화산의 제자들의 눈에 기이한 빛이 어렸다.

선두에 보이는 무당의 제자들이 이미 절벽을 절반쯤 올라 버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허허. 절벽이네. 절벽이야."

"뭐? 절벽?"

뒤이어 뛰쳐나온 청명이 눈을 번뜩거리며 절벽을 바라본다.

"저 위쪽이다!"

그의 손끝이 절벽 가운데에 튀어나온 부분을 가리켰다. 워낙 멀어 살짝 튀어나온 것쯤으로 보이지만, 사람 백 명쯤은 너끈히 올라갈 공간임에 틀림없었다.

"저길 올라야 한다는 거지?"

"저기를?"

"세상에, 저기를……."

절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뭐야?"

점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마지막이 왜 이렇게 싱거워?"

"후후후! 후후후후후! 절벽 타기라니! 막판에 이런 게 나오다니!"

"그동안의 지옥이 헛되지 않았구나!"

윤종의 눈가에 습기가 차올랐다.

절벽?

저만한 절벽?

'장난하나!'

화산의 이대제자와 삼대제자치고 절벽을 오르지 못하는 이들은 없다. 저 인간 같지도 않는 놈의 수련 덕에 이보다 다섯 배는 높은 단장애를 하루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올라야 하지 않았던가!

이제는 절벽을 타다가 잠시 졸기도 하고, 식후 운동으로 절벽을 타는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다!

그 지옥 같은 수련을 겪을 때마다, 욕을 하고 또 욕을 하기를 두 해! 세상에 그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수련이 이런 데서 빛을 발할 줄이야!

당연히 모두의 몸이 들썩였다.

"가자!"

"약선이 화산에 안 와 봤구만!"

"이 정도는 간식도 소화 안 되겠네!"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의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있는 힘껏 달려 절벽으로 달라붙었다.

아직 차마 절벽을 오를 엄두를 못 내던 이들이 난데없이 나타난 화산의 제자들을 향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어어어? 뭐, 뭐야?"

"뭐, 뭐가 저리 빨라!"

다다다다다!

양팔과 양다리를 놀려, 마치 평지를 기는 것처럼……. 아니, 그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절벽을 오르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다들 헉 소리를 내었다.

"아니, 거미도 아니고 뭔 사람이 절벽을 저렇게……?"

가공할 속도였다.

이건 강함의 문제가 아니라 익숙함의 문제였지만, 지켜보는 이들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갑자기 등장한 화산의 제자들은 말 그대로 어이가 없는 속도로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다섯이 모두!

황당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는 상황이란 걸 알면서도,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 막아!"

"아!"

그제야 중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화산의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던져!"

"등에 칼을 꽂아 버려!"

절벽을 오를 능력은 되지 않고, 그렇다고 신병을 포기할 수도 없었던 이들은 절벽 아래에서 병기를 던져 오르는 이들을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방해해야 할 이들은 당연히 화산의 제자들.

푸우욱!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절벽에 꽂히는 장검을 본 조걸의 눈이 불룩 튀어나왔다.

"아, 아니! 인간들이 심보가 고약해도 정도가 있지!"

지들이 못 간다고 남들도 가지 말라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칼을 던지나! 칼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올라가!"

"칼 던지잖아!"

"내가 다 막아 줄 테니까! 그냥 가!"

"네가 어떻게 이걸 다 막아!"

그 순간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화산 건드리지 마라!"

뒤늦게 도착한 홍대광이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아래에서 공격하는 이들을 들이받았다.

"이 새끼들 다 조져 버려, 화산신룡! 아래는 걱정하지 말고 어서 올라가라!"

청명이 혀를 찼다.

"엄청 대단한 것 해 주는 척하네. 여하튼 일단은 됐어!"

방해가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속도가 훨씬 더 붙는다. 조걸이 재빠르게 팔다리는 놀려 절벽을 타올랐다.

"으라차아아아아!"

"단장애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지!"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먼저 절벽을 오른 이들을 순식간에 따라잡았다. 심지어 그로도 모자라 되레 그들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아래에서 날아온 병기들은 청명의 검에 모조리 튕겨져 나갔다.

그는 하나를 막아 낼 때마다 마치 기합처럼 외쳤다.

"영약! 내공! 내 영약!"

'맛이 갔네.'

'빨리 올라가자. 저랬는데 남이 혼원단을 가져가면 저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기괴한 공포에 떨며 화산의 제자들이 팔다리를 부지런히 놀렸다.

"장로님! 저기!"

"으음?"

허산자가 눈을 부릅떴다.

아래에서 가공할 기세로 한 무리의 무인들이 그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절벽을 타는 속도가 원숭이를 방불케 한다.

아니, 무인이 겨우 원숭이만도 못할 리는 없으니 그 이상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저, 저들은?"

"화산! 화산의 제자들입니다, 장로님!"

진현의 목소리에 허산자가 이를 악물었다.

'저놈들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저놈들이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더 걱정해야 할 건 저들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저들의 속도가 허산자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

'어떻게 이런 일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저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한계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어찌 저리 빠른 속도로 절벽을 탈 수 있단 말인가?

허산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나 중요한 건 이해하는 게 아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런 일이 눈앞에서 실제로 펼쳐지고 있으니까.

"허공!"

"예, 사형!"

"아이들을 이끌어라! 나는 먼저 올라가겠다!"

"예!"

허산자가 절벽을 박찼다.

이윽고 허공에서 발을 교차한다.

우우우우웅.

발아래에서 기의 소용돌이가 인다 싶더니 그의 몸이 위로 쭈우욱 치솟기 시작했다.

"제운종!"

아래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탄성을 질렀다.

완숙에 이르면 사람의 몸을 십 장 이상 허공으로 띄워 올릴 수 있다는 무당의 제운종이 펼쳐진 것이다.

물론 단번에 이 높은 절벽을 오른다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중간중간 절벽에 붙을 수만 있다면 가장 먼저 절벽을 오르는 이는 허산자가 될 듯했다.

그리고 이곳에는 당연히 그 꼴을 지켜볼 수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아니, 저 새끼가?"

청명의 눈이 돌아갔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무당 놈이 혼원단을 퍼먹는 걸 지켜만 보란 말인가?

"먼저 간다!"

"처, 청명아!"

"뭐 하려고, 인마?!"

"죽어도 내가 먹는다!"

청명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청명이 갑자기 신발을 벗어 던지더니 절벽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헐?"

"달려?"

청명의 발이 절벽을 평지처럼 박찬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가공할 속도로 위로 쏘아져 올라갔다.

"으라아아아아아아앗!"

시작은 늦었으나, 청명이 절벽을 달리는 속도는 허산자가 절벽을 오르는 속도보다 확연히 빨랐다.

"저 어린놈이?"

"누가 어린놈이래, 누가!"

내가 인마! 어? 나이가 어?

"아오! 속 터져!"

말해 봐야 믿지도 않을 거! 에잉! 어린 게 낫지!

두 사람이 서로 경쟁하듯 절벽을 타고 오른다. 그야말로 가공할 속도.

절벽을 평지처럼 내달린 청명이 이를 악물고 있는 힘껏 절벽을 박찼다.

더불어 허산자도 허공을 디디며 절벽 위로 몸을 쏘아 올린다.

이윽고!

"하아아아아아앗!"

"으라차아아아아아아아!"

허산자와 청명이 거의 동시에 목표로 했던 절벽의 틈으로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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