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3)
허산자가 소매로 얼굴을 훔쳤다.
진득한 땀이 피와 섞여 새하얀 소매를 검붉게 물들인다.
'빌어먹을.'
욕지거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그의 앞에는 반쯤 썩은 시체들이 쓰러져 있다. 이미 죽었음에도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던 망자들이 마침내 평온을 되찾은 것이다.
도를 따르는 자로서 구천을 헤매는 망자들에게 평온을 되찾아 준 것은 응당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허산자는 마냥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도인의 본분을 지켰다는 이유만으로 뿌듯해하기에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직접 겪어 본 강시는 정말 끔찍한 마물이었다.
육체는 강철과도 같아 칼을 튕겨 낼 정도이고, 겨우겨우 베어 내면 독혈이 줄줄 뿜어져 나왔다.
좁은 공간이 아니었다면 좀 더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었을지 모르나, 장소마저 좋지 않았다. 때문에 이 강시들을 처리하는 데 엄청난 체력과 심력을 소모해야 했다.
게다가.
"괜찮으냐?"
"……예, 장로님."
진현이 한쪽 팔을 움켜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허산자는 그의 팔을 보고는 나지막이 탄식하고 말았다.
"보자꾸나."
"괜찮습니다."
"손 떼 보거라."
진현이 마지못해 팔을 내리자 허산자가 그의 소매를 잡아 뜯고는 환부를 살폈다.
'시독(屍毒)인가?'
강시의 손톱에 찢긴 피부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다. 시독에 중독된 현상이다.
평범한 시독이라면 진현의 몸이 자체적으로 치유를 할 테지만, 이는 절대 평범한 시독이 아닐 것이다. 저 끔찍한 강시의 몸에서 나온 독이다. 흉흉할 것이 분명하다.
이대로 둔다면 팔을 쓰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이 심장까지 흘러들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
허산자는 일단 진현의 팔을 움켜잡고 그 안으로 진기를 밀어 넣었다.
"장로……."
"쉿!"
진현이 입을 꾹 다문다. 이미 진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상 함부로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진력을 낭비하셔서는 안 될 텐데.'
이 앞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지금까지 겪은 것보다 몇 배는 더 흉흉한 것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운기로 진기를 보충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이상, 한 푼의 기운이라도 더 아껴야 함이 자명하다.
그런데도 허산자는 그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 진기를 사용하고 있다. 말리고 싶었지만 이미 치료는 시작된 뒤였다.
한참이나 진기를 쏟아부은 끝에 진현의 환부에서 시커먼 독액이 역류해 나온다. 그에 따라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그의 팔이 천천히 제 색을 되찾기 시작한다.
"되었다."
"……장로님, 어찌……."
진현의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그 내용을 짐작한 허산자는 단호하게 얼굴을 굳혔다.
"검총의 신병과 영약들을 손에 넣는 게 중요하다고는 하나, 그게 어찌 제자의 팔과 비교될 수 있겠느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허산자가 단호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나는 겨우 이 정도로 약해지지 않는다."
진현이 입술을 꽉 깨문다.
진기를 이용하여 타인의 몸에서 독기를 뽑아내는 일련의 과정이 얼마나 많은 기운과 심력을 소모하게 하는지 모를 진현이 아니다.
하나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장로님."
허산자가 진중한 눈으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쪽을 바라본다.
"지독한……."
쓰러져 있는 강시들을 보고 있으니 진절머리가 난다.
무당이 선두에 서서 길을 뚫지 않았다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물론 저 뒤에 쫓아오고 있는 이들은 그런 노고를 생각지도 않고 어떻게든 무당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려 악을 쓰고 있지만 말이다.
'금수 같은 자들.'
허산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무리 이곳이 욕망으로 가득 찬 자들만 들어오는 악의 구렁텅이 같은 곳이라고는 하나, 상황을 봐 가며 헛짓거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진현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낮게 입을 열었다.
"장로님,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어찌 저리도 간악합니까?"
"흔들릴 것 없다."
"하나……."
"당연한 이치다. 너는 왜 도를 구하느냐?"
"……."
허산자가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도를 구하는 이유는 인세에 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노력하고 궁리하여 도에 이르려 하는 것이 아니더냐. 평범한 이들이 도를 체화하여 살아가고, 지킬 것을 당연히 지킨다면, 도관이나 도리 따위야 아무짝에나 의미 없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 않기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도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다."
진현이 깊이 새기겠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낮게 도호를 외웠다.
"네가 흔들리는 이유는 네 안의 도가 아직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네 중심을 잡거라."
"예, 장로님."
허산자가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
잘난 듯이 떠들었지만, 오히려 저들을 더 경멸하고 있는 건 허산자 그 자신일지도 모른다.
"뒤쪽은?"
"아직은 막고는 있습니다만…… 힘겹습니다."
"……내버려 두고 전진한다."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가서 돕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 저들 모두를 쓰러뜨려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놓지 않는 이상은 시간만 지체될 뿐이다.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찾던 것을 손에 넣고 돕는 것이 났다."
곁에 서 있던 무평(無平)이 허산자의 말에 찬동하고 나섰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지금 가서 돕는다고 해도 시간만 허비될 뿐입니다."
"그래."
허산자가 살짝 눈을 가늘게 떴다.
제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가 이토록 더욱 서두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더없이 차가운 기파였다.'
전투가 벌어진 와중에, 저 먼 후방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을 느꼈다.
그 기파를 뿜어낸 이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한 힘을 가진 이가 뒤쪽의 혼전에 합류하게 된다면 어마어마한 변수가 될 터.
허산자는 그 변수를 허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설프게 일행을 돕겠답시고 발걸음을 돌렸다가 그 기파의 주인이 뛰어들게 된다면 뒷일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쪽으로 흘러 버릴 것이다.
'다소의 희생은 감수한다.'
저 금수 같은 자들에게 혼원단이 넘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너무도 빤하지 않은가. 허산자는 절대 그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다.
무당이 강해지는 것은 둘째 문제다. 우선은 저들에게 혼원단이 들어가지 않게 해야 한다.
허산자의 얼굴에 단호한 빛이 서렸다.
그는 정말 이 지독한 무덤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믿었다. 강시라는 것은 쉽게 제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뒤에 또 뭔가가 있을 거라 상상하기는 힘들다.
"서둘러라!"
"예!"
그 순간이었다.
"사형! 사형! 더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뒤쪽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허산자는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막는 건 포기한다! 합류해라! 뒤를 쫓아와!"
"예!"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허산자가 경공을 펼쳐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허공이라면 제자들을 수습해 쫓아오는 것까지는 무리 없이 해낼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한 발이라도 먼저 가서 혼원단을 손에 넣어야 한다.
진현과 무자 배들이 그의 뒤로 따라붙었다.
어두운 동굴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동굴을 지나자니 천하의 허산자조차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했다.
'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것을 만들었다는 말인가?'
약선은 호인 중의 호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천하에서 그가 구한 병자는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고, 그의 영약으로 목숨을 구한 무인들 역시 어마어마한 수다.
그렇기에 약선의 명성이 천하에 울려 퍼졌고, 이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두가 그를 칭송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무덤에는 오로지 악의만이 가득하다. 전해 내려오는 약선의 성정을 떠올려 보자면, 이곳이 정말 검총인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가 보면 알겠지.'
이 모든 의문은 검총의 끝에 도달하는 순간 풀릴 것이다.
"사형! 뒤쪽에서 중인들이 쫓아오고 있습니다!"
허공이 진열을 정비하고 따라붙은 모양이다.
"무시해라! 속도를 높인다."
"하나……."
"무시하라지 않느냐! 이 앞이 어떨지 모르는데, 더 이상 힘을 뺄 수는 없다!"
"예!"
허산자의 머릿속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만일 그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다른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이 어둠 속에서 연이어 격전을 펼쳐 가며 제자들까지 이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상황은 허산자의 심력을 쉬지 않고 갉아먹고 있었다.
'이 이상 이곳을 헤맨다면 심마(心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멈춰라!"
"으하하하하! 무당의 쥐새끼들이 꽁무니를 빼는구나! 그런다고 네놈들이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
"쫓아! 쫓아라! 저놈들에게 신병을 내주지 마라!"
적들의 광소가 동굴을 타고 울려 온다.
허산자는 입술을 꽉 깨물며 경공에 박차를 가했다.
"사형! 저기!"
"오냐!"
보인다.
동굴의 끝. 마침내 환한 빛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던 빛과는 전혀 다른 수준의 밝은 빛. 허산자가 반색하며 소리쳤다.
"제자들은 힘을 내라! 끝에 거의 도달했다!"
"예!"
검을 잡은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간다.
지금까지 겪었던 일이 얼마나 고되었든, 그런 건 이제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혼원단의 제조법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신병 따위야 저들에게 넘겨도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혼원단의 제조법뿐이다.
신병 따위야 누가 가져가든 상관이 없다. 그건 분란의 씨앗만 될 뿐이다. 그러니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물건들이다.
화아아아악.
이윽고 동굴 끝에 도달하자 눈부신 빛이 허산자의 시야를 뒤덮었다. 하지만 눈이 빛에 익숙해진 순간 펼쳐진 광경에 허산자는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절벽.
거대한 절벽이 그들의 앞에 놓여 있다. 더없이 밝은 빛은 그 절벽의 위쪽에서 쏟아지는 것이었다.
'틈이 있다?'
야명주 따위로 만든 빛이 아니다. 어찌한 것인지는 몰라도 저 높은 천장의 틈에서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이 돌입한 입구 외에도 다른 통로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혼원단은?'
여기가 끝이라면 대체 혼원단은 어디에…….
"저기다!"
허산자의 예리한 눈은 절벽 한가운데에 불룩 튀어나온 공간을 놓치지 않았다.
'들어맞는군!'
이곳이 검총의 마지막이라면 저 빛이 들어오는 곳은 출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곳에 후대에 전하는 것을 두었다면, 그것은 반드시 저 절벽의 중간에 있다!
"올라라! 절벽을 올라야 한다!"
"너무 가파릅니다!"
직각에 가까운 절벽은 인간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듯 보였다. 경공으로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도 아니었다.
"기어서라도 올라라! 지금 당장!"
"예!"
허산자의 말에 무당의 제자들은 일제히 절벽으로 달라붙었다. 그리고 지체 없이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곧 뒤따라 도착한 이들이 우르르 동굴에서 나와 쏟아져 들어왔다.
"뭐, 뭐야?"
"저기! 저기 무당 놈들이 절벽을 오르고 있다! 뒤따라라!"
"절대 신병을 저놈들에게 내줘서는 안 된다!"
욕망에 들어찬 이들이 두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절벽을 기어 오른다. 흡사 지옥도가 펼쳐진 듯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오오오오오오!
그들이 지나온 동굴에서 가공할 기파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 어두운 동굴을 뚫고, 한 무리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접근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