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2)
삼살귀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되어 버렸지?'
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결국 이런 쟁탈전에서는 경쟁자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편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무당이나 초영문 같은 문파들이 이곳에 들어온 이상, 혼자서는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편이 될 사람을 찾아내어 연합을 하고, 최적의 전력을 확보해야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무탈하게 연합하여 전력을 확보했다.
거기까지는 완벽했다.
적어도 저 황당한 놈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으아아아아아! 이 빌어먹을 놈! 제대로 상대하란 말이다!"
"상대하고 있다, 충분히!"
흰 무복을 입은 서생 같은 놈이 거력부를 살살 약 올리며 상대하고 있었다.
여유가 넘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삼살귀는 안다. 지금 저 백천이라는 놈은 단 한 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하나 그러면서도 꾸준히 거력부의 성질을 건드려, 거력부가 그가 아닌 다른 화산의 제자들에게 달려들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문파 놈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횡포를 부리는 걸 수없이 봐 왔다. 그렇기에 삼살귀는 어딘가에 소속된 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뭔가 다르다.
이들의 신뢰 관계는 지금까지 그가 봐 왔던 어떤 문파 놈들과도 다르다. 입으로는 서로에 대한 악담을 지껄여 대지만, 몸으로는 어떻게든 서로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 악을 쓰고 있다.
'못 이긴다.'
저놈들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저 청명이라는 놈은 숫제 괴물이다. 삼살귀 본인도 오십 초식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장강묵도를 단 십 초식 만에 죽여 버렸다.
웬만한 문파의 장로급도 어려워할 만한 일을 저 새파란 애새끼가 아무렇지도 않게 해낸 것이다.
'괴물 같은 놈.'
삼살귀의 행동 원칙은 하나다.
이길 수 있는 적과는 싸우고 이기지 못할 이는 피한다. 그리고 저 청명이라는 놈은 명백히 후자에 속하는 부류였다. 지금 당장 죽었다 깨어나도 청명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아아아아아악!"
그 순간에도 그와 연합한 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한번 무너진 균형은 어떻게 복구해 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전열을 무너뜨렸고, 그 대가는 죽음. 혹은 부상이었다.
'달아난다.'
삼살귀가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슬금슬금 뒤쪽으로 물러났다.
애초에 이곳은 밀실도 아니었다. 달아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뒤쪽의 동굴로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다. 저 화산 놈들이 저 정도 수준인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달아났을 이가 몇은 될 것이다.
그나마 자신은 가장 뒤쪽에 있던 것이 행운이었다.
'어떻게든 달아나서 앞서 갔던 무인들과 합류하면 된다.'
지금 이곳은 세 부류로 나뉘어 있다.
무당. 무당을 뒤쫓는 이들. 그리고 바로 이곳에 있는 이들.
이곳도 연합과 화산, 개방으로 나눠야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가장 주목해야 할 건 여기서 달아난다고 해도 합류할 곳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무당과 추격대 사이에 승부가 나지 않았다면, 반전을 노려 볼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니…….
퍼어어어억!
청명의 검면에 얻어맞은 이가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진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양 삼살귀가 몸을 돌려 전력으로 복도를 향해 경공을 전개했다.
파아아아앗!
그의 몸이 바람을 가르고 나아간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달려 본 적이 또 있었던가?
평소에도 경공에는 자신이 있던 삼살귀다. 그런 그가 이리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달리고 있으니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화산 놈들은 절대 그를 쫓아오지 못할 게 분명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다.'
삼살귀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은 이리 달아나지만, 앞쪽에는 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들의 격은 이곳에 있던 이들에 비해 못하지만, 수만큼은 이곳에 있는 이들을 한참 능가한다.
그들을 잘 구슬릴 수 있다면, 저 화산 놈들을 몰살시키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삼살귀는 반드시 이 치욕을 갚겠다고 다짐하며 다리에 힘을…….
"거 새끼, 더럽게 치사하네."
그 순간 삼살귀의 명치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전해진다.
"컥!"
순간 숨통이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과 함께 삼살귀는 균형을 잃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쿵. 쿵! 쿵!
달려 나가던 힘을 주체하지 못한 그의 머리가 연신 바닥에 박혔다가 다시 굴러 처박히기를 반복한다.
"끄으으으……."
끔찍한 통증에 전율하던 삼살귀가 고개를 획 들었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얼굴이 들어왔다.
청명.
그 괴물 같은 놈이 삼살귀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야! 아무리 여기서 급조한 연합이라지만, 그래도 동료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너 혼자 도망을 쳐? 뭐 이런 치사한 새끼가 다 있지?"
"……."
삼살귀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아니…….
이놈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놈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따라잡…….
삼살귀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이미 출구 쪽으로 한참 들어온 탓에 공동의 모습을 모두 확인하는 건 무리였지만, 청명을 상대하고 있던 몇몇이 바닥에 쓰러진 모습은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 그새?'
그 말인즉, 삼살귀가 달리기 시작한 순간, 상대하던 이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쫓아왔다는 소리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삼살귀가 고통마저도 잊고 청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야차, 아니 청명의 입이 열렸다.
"야."
"……."
청명이 고개를 좌우로 꺾는다.
우드득. 우드득.
그의 목에서 뼈마디 꺾이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삼살귀의 속에서 뭔가 울컥한다.
이를 악문 그가 씹어 먹듯 말했다.
"의, 의리? 그 빌어먹을 의리 때문에 목숨을 걸라는 말이냐?"
"호?"
삼살귀가 발악을 하자 청명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빌어먹을! 오늘 처음 만난 놈들에게 의리는 무슨 놈의 의리!"
"어……. 그것도 맞는 말이지."
청명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삼살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응?
인정해?
"걱정할 것 없어. 내가 너 잡은 건 의리 없는 놈이라서가 아니니까."
……그럼 왜?
"이대로 널 보내 주면 너는 분명 저 앞에 있는 놈들에게 우리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떠들겠지?"
"……."
청명이 빙그레 웃는다.
"내가 그런 건 또 못 보는 성격이라서 말이야."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청명을 보던 삼살귀는 끝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후우우우우."
윤종이 깊게 심호흡을 했다.
싸울 당시에는 몰랐는데, 막상 전투가 끝나고 나니 전신이 부들부들 떨린다.
'이게 실전이구나.'
비무와는 완전히 달랐다. 목숨이 걸려 있다는 중압감이 검 끝을 무디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조걸은 아예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윤종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사형. 사형이 고생하셨죠."
조걸이 그답지 않게 살짝 기죽은 말투로 말했다.
"자기 실력을 알려면 실전을 겪어 봐야 한다더니. 이제야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저는 제가 이렇게 엉망인 줄 몰랐습니다."
엉망이라…….
조금 이상한 말이기는 하다.
아무리 청명의 도움이 있었다고는 하나, 윤종과 조걸은 둘이서 손명을 감당했다. 화산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그만큼이나 손명의 명성은 강호에 드높았으니까. 두 사람은 감히 비견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조걸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눈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거지.'
청명이 보여 주는 것. 그리고 청명이 요구하는 것에 기준치를 맞추다 보니 이기고도 기뻐할 수가 없다.
이제 겨우 청명이 말하던 수준에 접어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실전에서는 가지고 있는 것의 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 버렸으니까.
"실망할 것 없다."
그때 백천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실전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들 연습한 것만큼을 발휘하길 원하지만, 그건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아……."
"실망은 하지 말되 지금의 실력을 똑바로 직시해라. 실전에서 나오는 실력이 너희의 진짜 실력이다."
"예, 사숙."
"명심하겠습니다."
백천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막 한마디를 덧붙이려는 순간 등 뒤에서 낮은 이죽거림이 들려온다.
"크으! 그것이! 너희의! 진짜 실력이다."
"……하지 말라고."
"낄낄낄낄."
백천의 이마에 핏대가 솟는다.
청명이 누군가의 다리를 질질 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백천은 굳이 쓰러진 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지 않았다. 보나마나 아까 도망간 놈이겠지.
청명은 끌고 온 놈을 한쪽 구석으로 던져 놓았다. 그곳에는 이미 화산의 제자들이 끌어다 놓은 이들로 빼곡했다.
죽은 이는 없다.
청명이 직접 손을 쓴 둘은 죽었지만, 그 외의 다른 이들은 의식을 잃었을 뿐 죽지는 않았다. 부상을 입은 이가 있어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화산의 제자들이 확실한 죽음을 안겨 준 이는 없다는 뜻이다.
백천은 알고 있었다.
이건 손속에 사정을 둔 게 아니다. 그저 아직 화산의 제자들이 살인을 할 각오가 없었을 뿐이다.
저 청명과는 다르게 말이다.
'아직 무르구나.'
지금까지는 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더 급박한 상황, 더 끔찍한 전장에서는 살인을 주저하는 마음이 분명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일부러 사람을 죽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러나 필요하다면 살인도 불사할 각오가 있어야 이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아무것도 아니다."
백천은 느물거리는 청명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못 따라가겠구나.'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간결하게 대라검의 목을 치던 청명의 모습이 그의 눈에 단단히 틀어박혀 있다. 아마 이 광경은 한동안 백천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백천이 굳이 나선 것은 청명을 돕기 위해서도 있지만, 청명이 더 많은 살인을 하는 것을 막고 싶어서다.
무르다고 할 수도 있겠지. 어쩌면 그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도의 길을 걷는 자라면 불필요한 살인은 피해야 한다.
아니, 사람이라면 말이다.
청명이 슬쩍 고개를 돌려 거력부와 그 무리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곳을 바라본다.
"흐음."
백천이 끼어들지 않았더라면 청명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저들을 모조리 죽였을 것이다.
아니, 과거의 청명이라면 백천이 끼어들었다 해도 모두를 죽였겠지.
여전히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남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자신 역시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법이니까. 그게 강호의 법칙이다.
다만 뭐랄까…….
'뭐, 나쁘지 않겠지.'
과거와 같아서는 과거를 뛰어넘을 수 없다.
청명이 달라지는 게 아니다. 달라지는 건 화산이어야 한다. 이들이 그의 등을 밀어주겠다면, 조금은 그 어깨에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준비됐어?"
"뭘?"
청명이 씨익 웃었다.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화산의 제자들이 청명의 말에 씨익 하고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