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이제 무당 놈들 잡으러 가자! (1)
"우, 우리도 합류하자! 뭐 하냐, 거지새끼들아!"
홍대광이 거칠게 고함을 토해 냈다.
그들이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화산의 제자들은 눈앞의 적을 맞아 싸우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선수를 빼앗겼다.
이건 홍대광에게는 무척이나 치욕적인 일이었다.
'저 새끼들은 겁대가리란 게 없나?'
개방이 왜 구파일방에서 한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가?
냉정하게 말하자면 개방은 구파일방 중에서는 무학이 꽤 처지는 편이다. 고수의 수나 무학의 질로 따지자면 개방은 구파일방에 들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개방이 구파일방에 당당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정보력?
천만에!
그건 부가적인 요소일 뿐이다.
세인들이 개방을 구파일방 중 하나로 인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협의가 그 어떤 문파에도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 힘은 부족할지언정 개방은 그 누구보다 앞서서 싸운다.
강호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악적들이 발호할 때마다 개방은 언제나 가장 앞서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 왔다.
그 사실이 개방 거지들의 어깨에 힘을 불어넣는 것이다.
누군가는 가진 것이 없는 거지들이라 목숨 아까운 줄 모른다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불의에 겁 없이 달려들 수 있다는 것은 개방의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지금 홍대광은 그런 개방보다 더 겁 없는 놈들을 보고 있었다.
화산신룡은 그렇다 치자.
저놈이 이상한 것이야 진즉에 알았으니까.
하지만 화산의 문하들도 확실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눈이 있다면 상대의 전력을 파악하는 데 무리가 없을 텐데, 저놈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보다 강한 자들에게 달려든다.
게다가…….
"으아아아! 이 어린놈이 겁대가리도 없이!"
거력부의 도끼가 순간 모골이 송연할 정도의 속도로 휘둘러진다.
스슷.
하지만 그런 그를 상대하는 백천은 살짝 뒤로 물러나는 것만으로 흉흉한 기세의 도끼를 깔끔하게 피해 냈다.
"나이가 많은 이를 존중하는 건 당연하지만."
백천이 냉소적으로 일갈한다.
"그쪽은 나이를 헛먹은 것 같으니 딱히 존중이 필요 없겠군."
"이 개자식이!"
막회가 눈을 까뒤집고 백천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백천은 그런 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며 거력부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그 광경을 보던 홍대광이 감탄을 터뜨렸다.
'생긴 거랑은 다르게 사람 긁을 줄 아네.'
청명이 커다란 몽둥이로 후려갈기는 것처럼 말을 한다면, 백천은 웃으면서 비수를 푹푹 찔러 대는 것만 같다. 덕분에 거력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채로 백천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그리고 백천은 그런 거력부를 훌륭히 상대하고 있었다.
물론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백천은 거력부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백천은 자신의 속도와 정밀함을 살려, 적어도 지지는 않는 싸움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저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백천뿐만이 아니다.
"흐아아아압!"
조걸의 검이 날카롭게 산동쾌검 손명을 향해 찔러 들어간다. 산동쾌검이라는 별호답게 손명의 검은 놀라운 속도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조걸의 검은 손명의 빠르기에 그리 뒤지지 않았다.
게다가…….
"걸아! 흥분하지 마라!"
그런 조걸을 윤종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
손명이 조걸의 틈을 노릴 때마다, 윤종이 조걸을 도와 그의 검을 받아 넘긴다.
윤종의 검은 느릿했다. 하지만 그 느릿함이 실력의 부족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윤종은 조걸과는 다르게 느릿하고 진중한 검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검 역시 화산의 검임을 확연히 알아볼 수 있었다.
빠르고 경쾌한 조걸의 검과 묵직하고 진중한 윤종의 검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손명을 상대해 간다.
그러니 둘을 상대하는 손명은 죽을 맛이었다.
'이 당나귀 같은 놈들이!'
이들의 나이를 감안한다면 합을 맞춘 지 불과 십여 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놈들은 수십 년간 손을 맞춰 온 노회한 노강호처럼 검을 쓰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채우고, 서로가 서로의 힘을 배가시킨다.
'대체 어디서 이런 놈들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뒤로 물러난 손명이 슬쩍 옆으로 곁눈질을 했다.
이런 어린놈 둘에게 밀리는 건 망신스러운 일이지만, 손명의 치욕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짜 치욕을 겪고 있는 건 바로 그의 옆에서 싸우고 있는 청검서생(靑劍書生) 노광(盧洸)이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청검서생 노광은 지금 화산의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낭패를 보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청검서생이 이곳에 있는 이들 중에서는 한 수 뒤처진다고는 하나, 이제 이립이나 되었을 법한 여자에게 밀릴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 청검서생을 맞상대하고 있는 화산의 여제자는 더없이 유려한 검으로 청검서생을 쉴 새 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검을 보자니 손명 그조차도 승부를 장담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화산이 언제 이리 강해졌다는 말인가?'
물론 화산이 한때 천하제일을 다투던 문파였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건 화산의 장로들과 윗선들이 더없이 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화산의 어린 제자들이 이리 특출하게 강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다.
거기까지만 해도 환장할 노릇인데…….
카앙!
윤종의 검을 쳐 낸 손명이 이를 악물고 허리를 가를 듯 깊게 검을 휘둘렀다.
'방심했구나! 이 어린놈!'
그 순간이었다.
카아아앙!
윤종의 허리를 거의 가를 뻔했던 그의 검이 돌연 날아든 검기에 막혀 튕겨 나온다.
곧장 뒤이어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그의 귀를 파고들었다.
"아니!"
동시에 윤종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내가 그만큼! 어? 그만큼 방심하지 말라고! 그만큼 이야기를 했는데! 귀에 검막(劍幕)이라도 치셨나! 어떻게 그리 말을 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지!"
"……."
"그래서 내가 혼자 한다고 했는데! 굳이! 굳이! 끼어들어서 사람 귀찮게만 만들고! 아이고, 내 팔자야!"
'저 망할 놈의 잔소리!'
속이 뒤집어졌지만 할 말이 없는 윤종이다.
목소리의 주인은 당연히 청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나머지 여섯을 동시에 상대하는 중간중간 검기를 날려 다른 화산 제자들을 지원하는 미친 짓거리를 하는 중이다.
그러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청명이 여기저기로 검기를 날려 유이설과 백천을 동시에 도와준다.
"집중을 하라고! 집중을! 그러다 뒈지면 누가 박수라도 쳐 주나, 그러다 뒈지면?! 어휴! 진짜 앓느니 죽지!"
윤종이 슬쩍 청명의 등을 바라보았다.
이상하지.
온통 짜증 섞인 말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 살짝 들떠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좋은 건가?'
미친 소리겠지.
목숨을 걸고 싸우는 와중에 기분이 좋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또 딴생각하지!"
저 귀신 같은 놈.
하지만 청명의 지적에는 틀린 게 없다. 윤종은 재빨리 머릿속의 잡념을 날려 버리고는 손명을 향해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생각은 나중이다. 지금은 이자를 쓰러뜨리는 데만 전념해야 한다.
되레 적들을 몰아붙이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홍대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분타주님! 어딜 칩니까?"
아니, 나한테 그리 말해 봐야…….
홍대광이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소리쳤다.
"저기! 저놈들이 몰려 있는 곳을 쳐라! 가서 발목이라도 물고 늘어져!"
"예!"
말을 마친 홍대광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청명이 상대하고 있는 적들에게 날아들었다. 청명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은 홍대광이 타구봉을 꺼내 적들을 후려친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 감격한 듯한 청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거지까지 끼어드네. 하……. 참."
못 들은 걸로 하자.
개방도들이 합류하여 몰아붙이기 시작하자, 청명을 막던 이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하나.
단 한 명만은 그런 개방도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오로지 청명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장강묵도 조명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청명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청명을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다른 전투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저 괴물 같은 놈을 쓰러뜨려야 한다.
"흐음?"
청명 역시 흥미가 간다는 듯 조명산을 바라보았다.
'이것 봐라?'
살기가 예사롭지 않다.
온 세상에 오로지 청명 하나만 존재한다는 듯, 조명산의 모든 감각이 청명을 파헤치고 있다.
그 날카로운 기세를 보며 청명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이놈은 진짜군.'
무당의 무진마저도 어중이떠중이 취급했던 청명이다. 그런 청명이 지금 조명산의 기세에 반응하고 있었다.
조명산이 천천히 도를 들어 청명을 겨눈다.
"조명산이오."
"청명."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싸움뿐.
조명산의 옷이 순간적으로 부풀어 오른다 싶더니, 그의 몸이 가공할 속도로 앞으로 쏘아진다.
그와 동시에 이어지는 참격.
새파란 도기가 선명하게 어린 조명산의 대도(大刀)가 청명을 후려친다.
콰아아앙!
청명의 몸이 휘청했다.
정확하게 막아 냈음에도 도에 실린 힘을 모두 분산시키지 못한 것이다. 더없이 강맹하고 무거운 일격이었다.
물론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탓!"
조명산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도를 연이어 휘둘러 온다.
쾅! 쾅! 쾅!
한 방 한 방에 어마어마한 위력이 실려 있다. 내력을 얼마나 밀어 넣었는지, 그의 도를 둘러싼 검기가 부풀어 올라 도가 두 배는 더 커 보일 지경이다.
하나 이 도에 실린 무거움은 내력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이 승부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조명산의 집념과 의지가 검에 더 큰 무게를 실어 주고 있었다.
청명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그래야지.'
손목이 뻐근하고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다. 그 무거움을 전신으로 느끼며 청명이 이를 드러낸다.
"흐아아아아아아!"
그 와중에 조명산은 고함을 내지르며 후려치는 도에 속도를 더했다. 내딛고 후려치고, 다시 내딛고 후려친다. 연이은 도격은 마치 푸른빛의 폭풍과도 같았다.
한 줌. 또 한 줌.
단전에 남아 있는 내력을 모두 퍼붓고, 몸에 남아 있는 피 한 방울까지 모조리 짜내어 상대를 후려치고 또 후려친다.
도의 폭풍.
그로 인해 정작 조명산마저도 청명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가공할 도의 폭풍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조명산의 눈에 이상한 것이 들어온다.
'꽃잎?'
몰아치는 도의 폭풍 사이로 붉은 꽃잎 하나가 슬그머니 떠오른 것이다.
둥실 떠오른 꽃잎이 다시 가라앉았다가, 도격이 만들어 낸 풍에 살짝 밀려났다. 그러다 또다시 바람을 거스르며 날아든다.
마치 여름의 태풍에 날리는 마지막 꽃잎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꽃잎은 환상처럼 떠올라 이내 조명산의 이마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
어느새 조명산의 도가 멈췄다.
잠깐의 침묵.
지금까지의 격렬한 전투가 거짓이었던 것처럼, 청명과 조명산의 주위를 감싼 공기는 고요하기만 했다.
조명산이 가만히 청명을 바라본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말이다.
청명이 그런 조명산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은 승부였어."
조명산의 시야가 흐려진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육체의 모든 감각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지는 것을 느끼며 조명산은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인정받았다.'
채 바닥에 쓰러지기도 전에 숨이 끊겼지만, 죽은 그의 입가에는 꽤 멋진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