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내 물건 건드리는 놈들은 다 뒈지는 거야! (3)
"흐흐흐. 이 애송이 놈들."
귀곡삼살(鬼哭三殺)의 첫째인 귀곡무영(鬼哭無影)이 두 눈에 시퍼런 살기를 띠고 화산의 제자들을 노려보았다.
"실력도 없이 귀물(貴物)을 노리는 게 목숨을 재촉하는 일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이 어르신께서 고통 없이 죽여 주마."
이곳이 검총 안이 아니었다면, 천하의 귀곡삼살이라 할지라도 화산의 제자들을 해하는 것에는 망설임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화산이 몰락했다 한들, 그 세는 웬만한 중소 문파보다는 클 것이다. 그런 이들과 원한을 쌓는다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검총.
외부의 눈이 닿지 않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누가 죽는다 해도 흉수를 짐작할 수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손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화산의 제자들 옆에 있는 개방도 놈들이 조금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들까지 모두 쳐 죽인다면 말이 새어 나갈 여지가 없다.
'경쟁자는 하나라도 더 줄여 두는 것이 좋지.'
귀곡무영은 혀로 입술을 천천히 핥았다. 그의 대도(大刀)가 야명주의 빛을 받아 새파랗게 빛났다.
"끌끌끌. 저 어린놈들이 괜한 욕심을 부렸습니다, 대형."
"살이 발려져 나가면 그제야 후회하겠죠."
그의 동생들도 병기를 들이밀며 화산의 제자들을 위협했다.
그런데…….
'저 새끼들 반응이 왜 저렇지?'
귀곡삼살이라고 하면 호남 일대에서는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악명이 자자하다. 아무리 저들이 과거 명문으로 이름 높았던 화산의 제자이고, 그 옆에 있는 이들이 개방 낙양 분타 놈들이라고 해도 감히 귀곡삼살의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눈앞의 놈들은 태연하다 못해 심드렁한 반응마저 보이고 있었다.
"어린놈들이라 겁대가리가……."
"저기요."
윤종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지금 생각 잘 하셔야 해요."
"뭐?"
귀곡무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이 방자한 놈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하. 이제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하세요."
"네놈의 입을 찢어 놔도 그런 말을……."
그때였다.
쿠우우우우우웅!
갑자기 그의 옆에서 커다란 굉음이 터졌다. 귀곡무영이 눈이 동그래져서 옆을 돌아본다.
'뭐, 뭐야?'
그의 옆에 어느새 못 보던 놈 하나가 나타나 있다.
'어? 그럼 내 동생은?'
원래 저 자리에 있었던 그의 동생은 어찌 되었는가?
귀곡무영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끄륵……. 끄르르륵……."
나타난 이의 발에 밟혀 꿈틀대는 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기이하게 팔다리가 뒤틀린 동생의 모습을 보니 화가 나기 이전에 황당함이 먼저 몰려온다.
"어……."
귀곡무영이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동생을 밟고 서 있는 이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에 때맞춰 떨어져 내린 이, 그러니까 청명도 귀곡무영을 바라보았다.
"……."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심술 맞을 수가 있나…….
뭔가 입을 열려는 찰나 청명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것들은 뭐야?"
"……."
아니, 그거 제가 할 말인 것 같은데요?
누구세요?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백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귀곡삼살이라고……. 호남에서 꽤 유명하신 분들이다."
청명의 고개가 삐딱해진다.
"삼살? 세 번 뒈지겠다는 뜻인가?"
아니, 그 뜻 아닌데…….
"뭐 여하튼 상관없지."
우드득. 우드득.
청명이 고개를 좌우로 꺾어 댔다.
"일단 처맞고 시작하자."
네?
백천은 곤죽이 되어 석실 구석에 처박힌 귀곡삼살을 보며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가엽기도 하지.'
귀곡삼살이라면 그래도 호남일대에서는 범보다 무섭다는 평을 받는 이들이다. 백천까지 알 정도면 그들의 무명이 전 중원에 퍼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임자 만난 동네 건달처럼 얻어맞고 질질 끌려가선 구석에 처박히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어디 이런 어중이떠중이까지 다 몰려와?"
어중이떠중이 아닌데……. 걔들 나름 이름 있는 애들인데.
하지만 백천은 설명 대신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 청명의 기준과 평범한 이들의 기준에는 장강의 넓이만큼이나 극심한 차이가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인다.
"무식하게 그걸 뛰어서 내려오냐?"
윤종의 말이 청명이 피식 웃었다.
"시간 끌 것 없지."
"독한 놈."
윤종이 고개를 내젓는다. 윤종과 다른 화산의 제자들은 벽에 검을 박아 넣으면서 속도를 줄여 이곳까지 내려왔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저만한 속도로 바닥에 처박히는 충격을 버틸 수 있다는 것보다, 바닥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그 속도를 유지하는 저 담력이 더 놀랍다.
'밟힌 게 저놈들이니까 망정이지.'
"다른 놈들은?"
"봐라."
백천이 한쪽을 가리킨다. 석실의 한쪽 끝에 자리한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길이 하나뿐인 모양이다. 적어도 여기서 나가는 길은 말이지."
"흐음. 그래?"
청명은 문 쪽으로 눈길을 한번 주고는 바닥을 바라보았다.
"흠?"
그러더니 뭔가를 발견한 듯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뭐 해?"
"이거 문이었던 것 같은데."
"음? 그게 왜?"
"일단 모아 봐."
문의 조각을 모두 모아 본래의 형태를 만들어 낸 청명이 미간을 좁힌다.
"검이라."
서로를 노리는 것처럼 겨누어진 두 자루의 검. 그리고 그곳에 새겨진 검총이라는 커다란 글귀.
"노골적이네."
청명이 피식 웃었다.
"왜? 문제라도 있어?"
윤종의 말에 청명이 어깨를 으쓱한다.
"검총이라는 이름은 누가 붙인 거지?"
"그야……. 약선 아닐까?"
"자기 무덤에 자기가 이름을 붙인다고? 그거 악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아?"
"어……."
듣고 보니 그런 면이 있다.
"보통 무덤은 만들어진 후에 이름이 붙지. 탈검무흔의 무덤에는 검총이라는 이름이 붙었어. 그런데 여기는 입구부터 검총이라고 적혀 있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무덤에 말이야."
윤종이 미간을 좁혔다.
"탈검무흔이 자신의 무덤에 검총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세상에 퍼뜨렸다?"
"그럴 수도 있고."
"왜?"
"글쎄."
청명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백 년 전에 죽은 사람 생각을 어떻게 알겠어?"
청명이 고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돌렸다. 석실에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확실한 건 그거야. 여기가 진짜 약선의 무덤이건 아니건, 이 무덤을 만든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한 깊이의 굴을 파고, 그 안에 이만한 석실을 만들어 낸다. 웬만한 능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긴장 풀지 마. 절대 보통 무덤은 아닐 테니까."
화산의 제자들이 생각에 잠긴 와중에 홍대광이 슬금슬금 청명에게 다가왔다.
"화산신룡."
"네?"
"이제 어쩔 셈이지? 앞서 들어온 이들의 면면을 보면 여기는 이제 호굴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있는 이들만으로는 헤쳐 나가기 쉽지 않을 거다."
"흐응."
"내 생각에는 적당한 이들을 찾아서 연합을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일단은 세를 만들어서 검총을 완전히 파악하고, 혼원단이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 아니겠느냐?"
청명의 얼굴이 조금 뚱해졌다.
"그렇게 평화적으로 나눠 먹을 인간들이면 여기 들어오지도 않았죠."
"……."
틀린 말은 아니다.
청명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굳이 나서서 그럴 필요도 없어요. 이미 시작됐을 테니까. 들어온 놈들이 생각이 있으면 벌써 연합했겠죠."
"으음. 그렇지."
홍대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검총 안에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이 들어와 있다. 밖에서는 서로 반목할지 몰라도, 일단 이곳에 들어온 이상은 서로 힘을 합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당이 먼저 진입했으니까.'
무당의 이름값은 결코 낮지 않다. 이곳에 온 이들의 명성이 아무리 높다 해도 무당의 이름 앞에서는 태양 앞의 반딧불일 뿐이다.
외로운 늑대 같던 무인들이 목적에 따라서 이합집산 하는 일이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던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이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리는 없다.
그렇다면…….
슬쩍 청명을 바라본 홍대광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청명이 문 쪽을 바라보며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다.
'뒤에서 이무기가 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죽어라고 무당의 힘을 빼 놓겠지.'
청명의 표정을 보아하니, 지금까지는 그의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봐, 화산신룡."
"네?"
"네가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저들이 먼저 혼원단을 손에 넣으면 닭 쫓던 개 꼴 된다는 건 알고 있겠지? 움직이려면 지금 바로 움직여야 한다."
"그야 물론이죠."
청명이 화산의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가자."
"알았다."
화산의 제자들이 두말없이 청명의 뒤로 따라붙는다.
"아무래도 여기 좋은 마음으로 만든 곳은 아닌 모양이니, 내 뒤에서 떨어지지 마."
"……알겠다."
홍대광도 슬쩍 청명의 눈치를 보더니 화산의 제자들 뒤로 붙는다. 그러자 개방의 제자들도 우르르 그 뒤로 붙었다.
그 광경에 청명이 슬쩍 눈살을 찌푸리며 홍대광을 타박한다.
"어디 묻어 가려고!"
"도,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거지가 도움 된다는 이야기는 살면서 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훠이! 훠이!"
"뭔 닭 쫓는 것도 아니고, 훠이야. 그러지 말고 돕고 살자. 내가 밖에 나가면 큰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니까? 나 홍대광이야. 홍대광!"
청명의 입가에 노골적인 비웃음이 내걸렸다.
"도움은 얼어 죽을."
"끄으으응."
홍대광이 머리를 벅벅 긁는다. 그도 어디 가서 무시받고 사는 처지는 아니지만, 이 괴물 같은 놈 앞에서는 도무지 기를 펼 수가 없다.
"내,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거다."
"할 수 있……."
청명이 입을 다물었다.
'어?'
원래 청명의 계획은 개방과 어느 정도 연을 만들어 두는 것이었다.
개방은 정보를 지배하는 단체. 화산이 앞으로 커 나가기 위해서는 정보의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처럼 화산 안에서만 살아간다면 정보가 별 의미가 없겠지만, 전 중원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면 정보는 무위 이상의 가치를 가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그러니 이번 일로 적당히 안면을 터놓고, 개방의 정보를 조금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좋지 않은 감정을 접어 두고서 말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나 떠오르는 게 있다.
'왜 감정이 안 좋았는지를 잠시 잊었네.'
청명이 앞에 시선을 고정해 둔 채로 입을 열었다.
"분타주 아저씨."
"으응?"
"개방에서 분타주면 어느 정도의 위치죠?"
"……내 위에 있는 거지가 천하를 뒤져도 백을 넘지 않겠지."
"그럼 삼결개 정도는 언제든 잡아 올 수 있죠?"
"삼결개? 그 정도야 발가락으로도 잡아 올 수 있지."
"그래요오?"
청명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의 얼굴을 본 홍대광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여 뒤로 물러섰다.
청명의 눈이 뭔가로 이글이글 불타오르고 있었다.
"아저씨가 할 게 하나 생겼네요. 거지새끼 하나만 잡아다 주세요."
"……무슨 거진데?"
"무한에 종팔이라는 거지 놈이 하나 있어요. 여기서 나가면 그 놈을 제 앞에다 데려온다는 조건으로 도와드리죠."
"종팔? 그리 어려울 건 없다만……. 무슨 일인데? 인연이 있나?"
"은혜를 입었죠."
아주 깊은 은혜를 말이다.
이 몸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 가장 강렬한 충격을 청명의 대가리에 선사한 거지다.
청명이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반드시 갚아야 할 은혜를!"
"……."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범의 콧털을 뽑은 거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홍대광은 미리 무한성의 거지에게 깊은 애도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