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당신, 나랑 일 하나 같이 합시다. (5)
"저, 저 사람은 오독수(五毒手) 아닌가?"
"강서(江西)의 귀신이라 불리는 자가 여기까지 오다니. 마침 이 주변에 있었던 모양이로군."
"저긴 초검문(礎劍門)이로군. 과연 이런 일에는 빠질 수 없다는 건가?"
"낙양 송백문(松柏門)과 잔월각(殘月閣)도 보이는군. 근방의 이름 난 문파들은 모조리 몰려온 모양이야!"
"……자, 잠깐. 저기 저 홍의를 입은 자는 삼살귀 같은데?"
"저 인간 백정까지 오다니. 아무래도 이번 일은 길보다 흉이 많을 것 같구만!"
남영에 모여든 중인들은 연이어 몰려오는 이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과연 검총이라는 건가?"
"생각이 있는 자라면 달려오지 않을 수 없겠지. 하지만…… 이번에도 결국 뜬소문일 확률이 높지 않나. 그동안 검총이 나타났다는 소리만 벌써 다섯 번은 넘게 들은 것 같은데, 다 헛소문에 불과했지 않은가?"
"이번에는 다르다니까. 그 검총의 소식을 전한 게 다름 아닌 개방 아닌가? 개방이 언제 헛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었던가?"
"으음. 그건 그렇지."
"그러니 저런 이름 높은 자들마저 만사를 제쳐 두고 달려온 것 아닌가? 검총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천하를 오시할 수 있을 테니."
"쯧쯧쯧. 헛된 망상은 버리게나. 저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신병을 구할 수 있겠는가?"
"모르는 소리. 이런 상황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걸세. 혹시 아는가? 천운이 닿을지!"
부정적인 말은 하는 이 역시 두 눈에서 욕망의 빛을 지우지 못했다.
애초에 신병이란 그런 것이다.
강호를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은 대부분 그저 역사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그중 자신의 실력으로 명성을 떨치고, 역사를 만들어 가는 이는 고작 한 줌에 불과하다.
강호의 모든 이가 천하제일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이는 겨우 한 명인 것과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하자면 이곳에 모인 대부분을 비롯해, 강호를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은 한 줌에 불과한 영웅들의 삶을 돋보이게 할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소리다.
하지만.
신병(神兵)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어쩌면 그 한 줌의 영웅들의 대열에 끼어들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강호인이라면 누구라도 거부할 수 없을 만한 유혹이다.
이곳에 온 이들 중 자신이 다른 이들을 제치고 신병을 차지할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얼마 없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로군."
"다 그런 것 아니겠나. 그 전쟁에서 살아남는 이가 검총의 신병을 쟁취하는 거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두 사람이 슬그머니 인파에서 빠져나왔다.
"이거 진짜 큰일 나는 것 아닙니까? 사형?"
조걸의 말에 윤종이 넋이 나간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미친놈……."
뭐? 판을 벌여?
그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이게 대체 무슨 짓거리란 말인가?
남영 주변은 물론이고 낙양과 무한에서까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대로 며칠만 더 지나면 남영은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발 디딜 틈도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지 않은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단순히 무당이 쉽게 검총을 손에 넣을 수 없게 만들겠다는 마음만으로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와 버리다니. 범인(凡人)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윤종은 어쩌면 자신들이 그동안 청명을 과소평가해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면…….'
문파원들을 대할 때와, 타인을 대할 때의 청명이 아예 다른 사람이든가.
"일단 돌아가자."
"예, 사형."
윤종과 조걸은 화영문까지 걸음을 재촉했다.
인파를 헤치고 가까스로 화영문에 도달한 윤종이 얼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백천이 그들을 보자마자 바로 달려온다.
"어떠냐?"
"난리도 아닙니다. 저는 무림인들이 저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 봤습니다."
"이제는 남영 사람보다 무림인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그렇더냐."
백천도 살짝 질린 얼굴을 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조걸의 질문에 백천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렸다.
"낸들 알겠느냐!"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 청명이었다. 아무리 이해를 해 보려고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저분은 누구십니까?"
"……."
윤종이 눈을 가늘게 뜨고 본관 앞쪽 대청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대청마루에 드러누워 술병을 잡고 있는 놈이야 흔히 보던 청명이니 그렇다 치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거지?"
"쉿."
백천이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댔다.
"무례를 저지르지 마라. 개방 분이시다."
"아."
물론 개방이 거지들이 모인 문파라고는 하지만, 거지 소리를 듣기 좋아하는 거지는 없는 법이다. 보통은 화자라든가 걸개라는 식으로 말을 돌려 하는 것이 예의였다.
"저 화자 분은 누구십니까?"
"개방의 낙양 분타주시라는구나."
"아니. 그런 분이 왜 여기를……."
"글쎄다. 청명이 놈이 또 뭔가를 저질렀겠지."
모두의 얼굴이 떨떠름해졌다.
'제발 사람답게 살자. 사람답게.'
'뭔 일을 저질러도 상식선에서 좀 저지르자고.'
'이러다 단명하겠네, 진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든 간에 청명은 여유롭게 술병을 꼴꼴대고 있었다.
"……됐냐?"
"뭘요?"
"네놈이 원하는 대로 됐으니 이걸로 됐냐는 말이다."
"거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제가 뭘 어쨌다구요."
"끄으응."
홍대광의 얼굴이 마구 뒤틀렸다.
'이 귀신 같은 어린놈이.'
작금의 사태를 만들어 낸 것은 물론 홍대광이었다. 무당이 곧 도착한다는 것을 들은 홍대광은 가진 모든 줄을 이용하여 장보도를 사방으로 뿌리고, 있는 힘을 다 동원하여 남영에 검총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당이 남영에 도착해서 검총을 쏙 빼먹고 돌아가 버린다면 홍대광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테니까. 그렇다고 청명처럼 장보도를 돈 받고 팔아넘길 수도 없다.
이미 무당이 발굴을 시작한 장보도를 거금을 받고 팔아넘긴다면 개방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개방 장로들이 그를 꼬챙이에 꿰어 구워 먹으려 들겠지.
"이제 어쩔 셈이냐?"
"뭘 어째요? 그냥 구경이나 하는 거지."
"이대로?"
"저는 괜찮아요. 돈도 두둑하게 벌었고."
"끄으으응!"
청명이 가슴팍을 톡톡 두드린다. 그 부분만 유독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다. 그 '볼록함'의 정체가 자신이 넘긴 전표라는 것을 아는 홍대광의 가슴이 타들어 갔다.
'이걸 팰 수도 없고.'
되레 맞겠지.
다른 건 몰라도 화신신룡의 실력만은 진짜라는 걸 확인했으니까.
홍대광은 터지는 속을 꾹꾹 억눌렀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아니, 외려 똑똑하기 짝이 없는 자다. 청명에게 불의의 일격을 얻어맞기는 했지만, 그건 홍대광이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청명이 워낙 간악해서 벌어진 일이다.
'본파에서 지원이 오려면 아직 며칠은 더 걸린다.'
하지만 무당은 곧 도착할 것이다.
무당을 상대하는 건 그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개방의 힘은 결코 무당에 뒤지지 않지만, 무당산에 전력이 모두 모여 있는 무당과 다르게 개방의 힘은 전 중원에 퍼져 있다.
그들을 집결시키는 데만 한 달은 족히 걸린다. 더구나 지금은 당장 주변 분타의 도움을 받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곳의 일은 개방의 낙양 분타와 기껏해야 무한 분타 정도가 연합하여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겨우 두 개 분타의 힘으로 무당과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비빌 언덕은…….
'이놈이라는 건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아니, 왜 하필이면 이놈이냐고.'
생각 같아서는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하지만 홍대광은 눈물을 머금고 청명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나마 믿을 만한 이들은 무당의 이대제자를 무찔러 버린 화산의 제자들이라는 점이 첫째.
그리고 둘째는…….
'제정신은 아니지만 이놈은 반드시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다 미쳤다 욕을 해도……. 아니, 아니지. 홍대광도 같이 미쳤다고 욕은 하지만, 적어도 그는 청명의 광기 속에 뭔가 한 수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제는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냐?"
"한잔할래요?"
"……밖에 무인들이 개떼처럼 몰려왔다."
"참나, 다들 욕심은 많아 가지고."
홍대광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인마! 혼원단을 손에 넣어야 할 것 아니냐! 혼원단을! 이러고 있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셈이냐!"
"거 남의 일에 관심이 참 많으시네."
청명이 드러누워 휘파람을 불었다.
그 여유 철철 흘러넘치는 태도에 홍대광이 명치를 움켜잡았다.
'위, 위가 아프다.'
대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튀어나왔단 말인가?
화산의 제자들이 보내는 동정의 시선을 받으며, 조금 더 발악을 해 봐야 할지 홍대광이 고민하던 그때였다.
스슷.
"악! 깜짝이야!"
홍대광은 갑자기 자신의 옆에 나타난 웬 여인의 모습에 기겁하여 반쯤 뒤로 넘어갔다.
'얜 또 뭐야?!'
그가 나타난 이의 정체를 채 파악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이 살짝 열린다.
"무당 도착했어."
벌떡.
청명이 자리에서 부리나케 일어났다.
"왔구나!"
청명의 옆에 놓여 있던 술병이 엎어지며 바닥에 술이 흥건하게 쏟아졌다. 하지만 청명은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대청마루를 뛰어 내려갔다.
"가자!"
"오냐!"
"간다!"
지금까지 투덜대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화산의 제자들이지만, 청명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 모두 일제히 그를 쫓아 달리기 시작한다.
"어, 어엇?"
그 놀라울 정도로 빠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홍대광만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당황해할 뿐이었다.
화산의 제자들은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은 담을 뛰어넘어 쏜살같이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홍대광이 버럭 소리쳤다.
"쪼, 쫓아라! 이 거지 놈들아! 빨리! 빨리 따라붙어! 어서!"
"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나를 따라와라!"
홍대광은 결국 직접 선두에 서서 수하들을 이끌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들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대체 이놈들이 명문 화산의 제자가 맞나 싶었던 놈들이, 청명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자마자 기세가 일변해 뛰쳐나갔다.
물론 가장 크게 변한 건 청명이었지만.
"무조건 화산에 달라붙어야 한다! 무조건!"
그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 남영에서 무당을 젖히고 사고를 칠 놈들이 있다면 반드시 화산이다.
이를 악문 홍대광이 저 멀리 보이는 화산의 제자들을 보며 다리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빠져 나간 연무장에서는, 딱 두 사람이 서서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왜?"
"이게 다 뭔 일일까요?"
"글쎄다."
화영문주 위립산이 순식간에 텅텅 비어 버린 주변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있으시겠지."
"정말요?"
"그렇게 믿고 싶구나."
솔직히 믿음은 안 가는 위립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