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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9화 (139/1,567)

139화. 이건 죽어도 내가 먹어야 해! (4)

"으으으음."

위립산이 가만히 자신의 가슴께를 문질렀다.

'쉬이 낫질 않는구나.'

경험상 알 수 있다.

이 내상은 아마 그를 오래도록 괴롭힐 것이다. 완치가 거의 불가능할 게 분명하다.

내상이라는 게 본디 좋은 의원에게 보인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기운이 뒤흔들리는 일이다. 무인의 내상은 결국 내력을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립산이 입은 내상은 생각보다 깊었고, 하루하루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나아진다 싶었더니.'

화산의 제자들이 무당의 제자들에게 승리할 때만 해도 내상이 씻은 듯이 나은 줄 알았다. 워낙 기분이 좋았기에 육체의 고통도 잊은 것이다.

하지만 슬슬 현실을 자각하니 몸이 다시금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아버님. 편히 주무십시오."

"오냐."

위립산이 문밖에서 들리는 위소행의 목소리에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는 화영문의 문주다. 그리고 화영문은 이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할 기회를 얻었다. 이럴 때 문주가 내상을 입어 제대로 운신하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다면 필시 화영문에 누가 될 것이다.

'절대 그럴 수는 없다.'

겨우겨우 다시 잡은 기회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닌 자신 때문에 화영문이 기회를 놓쳐 버린다면 그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을 것이다.

욱신!

옆구리를 움켜잡은 위립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으……."

내상이 주는 고통은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하지만 기분 탓인지 밤이 되면 더욱 고통이 깊어지는 느낌이었다.

낮게 한숨을 내쉰 위립산이 침상에 걸터앉았다.

'이번 일로 화영문의 이름이 퍼져 나갈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산의 속가를 바라보는 세인들의 눈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

수장이 힘을 잃으면 문파도 힘을 잃는다. 기껏 본산에서 무당을 무찔러 줬는데 그가 힘을 잃어 이 모든 것을 무위로 돌릴 수는 없잖은가?

위립산이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불을 움켜잡았다.

'자야지.'

잠이 쉬이 올 리가 없지만, 어떻게든 잠을 청해야 한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목숨은 아깝지 않다.'

다만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면 화영문이 반석에 올라서고, 위소행이 그의 자리를 물려받아 문주의 자리에 오를 때까지는 살아남는 것이다.

딱 하나만 더 바란다면 저 화산의 제자들이 더욱 성장해 화산의 이름이 천하만방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그건 너무 무리한 바람이리라.

위립산이 이불을 들치고 침상에 올랐다.

그때였다.

덜컥!

"어? 뭐 벌써 자요?"

"……."

주인이 있는 방의 문을 제멋대로 열어젖힌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지만, 위립산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바라지 말자.'

겨우 며칠 겪었을 뿐이지만, 저 아이의 성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했다. 아니,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망둥이보다 더 펄쩍펄쩍 뛰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겠는가?

"무슨 일이외까, 소도장. 혹시 뭔가 불편한 게 있으시오?"

으레 그랬듯, 청명이 뭔가 요구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고 생각한 위립산이 넌지시 말을 건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의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불편한 건 제가 아니라 문주님이시죠. 안 그래요?"

"……."

청명이 닫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급한 불은 껐으니까. 이제 슬슬 정리하자구요."

"……뭘 정리한다는 말이오."

"내상이요. 치료해야죠."

"……."

위립산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내 내상을 소도장이 치료하겠다는 말이오?"

"네."

위립산이 의아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본다.

내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둘밖에 없다. 하나는 스스로의 기운으로 뒤틀린 기혈을 바로잡는 것이다. 하지만 위립산은 이만한 내상을 스스로 치료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두 번째는 좀 더 어려운 방법인데 타인이 기운을 밀어 넣어 강제로 뒤틀린 기혈을 복원하는 방법이었다.

이건 첫 번째보다 열 배는 더 어렵다.

생각해 보라.

자기 자신의 기운마저 제대로 다스리기가 힘들어 평생을 정진하는 무인이 수두룩한데, 기운을 남의 몸에 불어넣어 제 마음대로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이게 무당과의 일이 끝났음에도 위립산이 본산에 내상을 치료해 줄 고수 파견을 의뢰하지 않은 이유다.

그가 생각했을 땐 화산에 그의 내상을 치료해 줄 만한 고수가 없을 듯했다. 괜한 마음에 쓸데없는 요청을 했다가 서로 어색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청년이 지금 그의 내상을 치료하겠다 말하고 있지 않은가?

"소도장. 그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외다."

"네, 알아요."

"……잘못하면 소도장마저 내상을 입을 수 있소."

"에이, 설마요."

"……."

싱글싱글 웃는 청명의 얼굴을 보니 맥이 탁 풀린다.

'아니, 이놈은 왜 이리 말귀를 못 알아먹지?'

귀가 막혔나?

"크흐흐흠."

크게 헛기침을 한 위립산이 좋은 말로 청명을 타일렀다.

"이보시오. 소도장. 내 내상을 치료해 주겠다는 소도장의 마음은 충분히 알았소. 그것만으로도 소도장께 무척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소. 하지만 이 일은 쉽사리 시도할 일이 아니외다. 잘못했다가는 서로가 크게 다칠 수 있소. 급한 일을 마무리한 뒤에 시도해 보는 게 좋겠소."

"에이. 아니죠. 내상을 오래 둘수록 깊어지는 거예요. 그거 나중에는 후유증이 남는다니까요. 빨리 치료하죠."

아니, 인마!

까딱 잘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인마!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

위립산의 눈가가 연신 경련을 일으켰다.

'화산신룡이라더니. 어찌 이런 이에게 그런 과한 별호가 붙었는지 모르겠군.'

신룡이라는 별호는 강한 자에게 붙는 별호가 아니다. 후대의 강호를 책임질 후기지수에게나 붙는 별호다. 처음 화산에서 화산신룡이라 불리는 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감격했던가.

그런데 그 화산신룡이 하필이면 이놈이라니.

왠지 눈시울이 붉어지는 위립산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쉰 그는 가만히 청명을 보며 말했다.

"소도장.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이해하외다. 하나 세상에는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소."

고마웠다.

이건 진심이다.

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그의 내상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저 마음에 위로를 받는 위립산이었다.

'겉보기와는 달리 성정은 나쁘지 않구나.'

하기야 화산이 괜히 화산이겠는가?

청명 역시 화산의 제자이니 마음 씀씀…….

"아, 거 말귀를 더럽게 못 알아들으시네."

"……으응?"

"누워요, 누워. 나도 바쁜 사람이니까. 후딱 하고 갈 거예요. 제가 지금 할 일이 많거든요."

"아, 아니. 나는 괜찮다니까!"

"내가 안 괜찮아요."

네가 왜?

내가 내 몸 알아서 한다는데 네가 왜 안 괜찮아!

"그만 됐으니 어서 나가 보……."

그 순간 청명이 손을 뻗어 위립산을 훅 밀었다. 순간적으로 닥쳐오는 힘에 위립산은 저항할 겨를도 없이 침상으로 넘어갔다.

"아, 안 돼!"

덥썩.

청명이 위립산의 손을 움켜잡더니 기운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

위립산이 두 눈을 부릅떴다.

'야, 이 미친놈아!'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내력이 오고 가는 상황에서 말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입을 통해 내력이 빠져나가 주화입마에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내력이 손목으로 파고들어 버린 이상 위립산은 그저 천지신명께 별일 없이 끝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천지신명도 그를 배반한 모양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천지신명도 청명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이거 봐, 이거 봐. 난리 났잖아."

'히이이이이이이이이익!'

말?

방금 말한 것 아닌가?

마음의 소리나 그런 것 아니겠지? 내가 독심술을 익혔을 리는 없고!

돌처럼 굳은 위립산이 눈만 또르르 굴려 청명을 바라보았다. 그는 태연하게 그의 손목을 잡고는 눈을 살짝 찌푸리고 있다.

'내가 잘못 들었…….'

"음, 다행히 완전히 상하지는 않았네요."

위립산이 두 눈을 부릅떴다.

'정말 말을 한다고?'

상대에게 내력을 불어넣으면서 말을 하는 건 내력의 수발(受發)이 입신에 경지에 든 무인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웬만한 문파의 장로급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화산의 삼대제자인 청명이 해낸다고?

'내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하지만 꿈이라기에는 지금 그의 손목을 파고드는 기운이 너무도 선명했다. 묵직하게 밀려오는 기운이…….

'아…….'

맑고 청명하다.

지금까지 그가 겪어 보았던 그 어떤 기운보다도 맑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심산유곡에 흐르는 맑은 청정수 같다. 너무도 맑아 바닥이 잡힐 듯 보이는 청정수 말이다.

아릴 정도로 시원하고도 따뜻한 기운이 그의 몸을 파고들어 상처 입은 기혈을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위립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조금만 참아요. 금방 되니까."

이상한 기분이다.

위립산은 청명의 말보다 그의 몸을 파고든 기운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

도가의 기운.

항상 동경해 왔던 도가의 향취가 청명의 기운에서 흠뻑 묻어난다.

'소도장은 실로 화산의 제자구나.'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겉으로는 익살맞기 그지없고 한없이 가벼워서 눈을 찌푸리게 하지만, 지금 들어오는 청아한 도가의 기운은 청명이 화산의 제자임을 명확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 순간 청명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휘돌며 훼손된 기혈을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몸 안에서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간다.

우우우웅.

아픔이 가신다.

오래도록 위립산을 괴롭혀 오던 통증이 사라지고, 순환하지 못하던 기운이 힘차게 돌기 시작했다.

'아아.'

그 순간 청명이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위립산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더니 절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대주천을 할 거예요. 인도하는 대로 기운을 움직이세요."

대답은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위립산은 청명의 말에 충실히 따랐다. 청명의 기운이 인도하는 대로 기운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 주천. 이 주천.

순식간에 십이 주천을 마친 위립산이 가만히 기운을 갈무리하고 육체를 점검했다.

'없다!'

그를 괴롭히던 내상의 흔적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과 한 번의 운공만으로, 평생을 가져가야 한다고 여겼던 내상이 씻은 듯 나아 버린 것이다.

감격을 느낄 새도 없이 청명의 기운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다. 더없이 맑고 청아한 기운이 사라지니 내상이 나았다는 뿌듯함 이상의 아쉬움이 느껴진다.

기운을 모두 갈무리한 청명이 위립산의 손목에서 손을 뗀다.

위립산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지한 얼굴을 한 청명의 모습이 보인다.

"소도……."

"화산은 기억할 겁니다."

"……."

대 화산파 삼대제자 청명.

천하에 화산신룡으로 불리는 이.

그가 위립산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화산은 은혜를 잊지 않습니다. 문주께서 지난 수십 년간 화산에 다한 정성은 반드시 보답을 받을 겁니다. 문주께서는 지금처럼 화산의 이름을 지켜 주십시오. 그리하면 화영문의 이름은 화산의 이름과 함께 천하에 울려 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보이던 가벼운 모습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 기세에 압도된 위립산이 청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

뭔가 울컥한다.

입술을 잘근거리던 위립산이 시큰해지는 눈시울을 애써 누르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 반드시 그리하겠소."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화영문이 부활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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