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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8화 (138/1,567)

138화. 이건 죽어도 내가 먹어야 해! (3)

"……안 돌아오는데요?"

"……."

"지금이라도 가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백천의 눈썹이 꿈틀한다.

"윤종아."

"예, 사숙."

"그놈이 어디 간 줄 알고 간단 말이더냐?"

"무당 놈들을 쫓아간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럼 무당 쪽으로 길을 타고 가면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따라가면 말릴 수는 있고?"

"……."

이 질문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말린다. 말린다라…….

그 청명을?

백천이 고개를 내저었다.

"차라리 기다리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고를 치고 돌아오는 꼴을 보면 속이 뒤집어지겠지만, 눈앞에서 사고를 치는 걸 보면 속이 아예 터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함이 더 가중되어 간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더 큰 사고가 터진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백천이 길게 탄식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런 놈을 사질로 들여서……."

물론 객관적으로 본다면 청명의 존재는 화산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지고 왔다.

그 종남을 뒤집어엎어서 막대한 명성을 얻은 것은 물론이고, 청명 덕분에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의 실력이 말도 안 되게 괄목상대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백천 역시 청명이 있는 화산과 없는 화산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눈물을 머금고 있는 쪽을 선택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얘기고. 막상 청명에게 호되게 당하는 입장에서는 좋은 말이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설마 사고를 크게야 치겠습니까?"

조걸의 말에 백천과 윤종이 멍하게 조걸을 돌아본다. 그 시선에 움찔한 조걸이 손을 내저으며 변명한다.

"아, 아니. 사고를 안 친다는 게 아니라……. 그래도 감당할 만큼만 치겠죠. 지금까지 그놈이 사고를 쳐 놓고 수습을 못 한 적은 없었잖습니까."

"……그걸 수습하는 동안 우리가 겪는 고통은?"

"어……. 음."

조걸이 슬쩍 눈을 내리깔았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여기에서 꺼낼 만한 말은 아니다.

'그놈이 아무 생각 없이 사고를 치는 건 아닌데.'

상인 집안 출신인 조걸은 이득에 민감하다. 그가 지금까지 지켜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청명이 사고를 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청명이 사고를 치면 청명 본인이나 화산에는 반드시 막대한 이득이 돌아온다. 그러니 그가 사고를 치는 걸 꼭 반드시 막을 필요는 없다는 건데…….

조걸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반쯤 썩어 있는 백천과 윤종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그런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하기야. 이득이고 나발이고 당장 뒈지겠는데 그런 게 머리에 들어오겠는가?

설사 이득이 된다는 걸 알아도 그 사고가 이득이 되어 돌아오기까지 겪는 고통을 생각한다면 이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당장 조걸도 사양하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나저나.

조걸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탁자 한쪽에 앉아 차를 마시는 유이설이 시야에 들어온다.

'참 특이한 사람이라니까.'

유이설은 지난 이 년간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이고, 동시에 하나도 변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주변 사형제들이나 사질들에게 어떠한 관심도 없던 유이설이 청명에게는 무한한 관심을 보인다는 건 분명 굉장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이설과 다른 사형제들의 관계가 개선된 건 또 아니다.

오직 청명을 대할 때만 다른 모습을 보여 줄 뿐이다.

'희한하다니까.'

조걸은 이걸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변화라 여겼다.

지난 이 년 동안 유이설은 예전보다 배는 아름다워졌고,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자주 밝게 웃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화산이 뒤집힐 테니까.

청명이 있으니 수련은 안 하고 유이설의 주변을 맴돌았다가는 머리가 깨질 게 분명하지만, 마음이 콩밭으로 가는 건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청명이 나간 이후로 유이설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다. 사형제와 사질들에 대한 예의로 혼자 다른 곳으로 가 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시선을 문 쪽으로 고정한 채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아마 청명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거겠지.

"아……."

그 순간 유이설의 입이 살짝 열렸다.

조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콰아앙!

문이 박살 나듯 좌우로 열렸다.

동시에 윤종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킨다.

'문은 차는 게 아니라 여는 거라고 삼백 번은 말했을 텐데!'

하기야 저놈이 말을 들어 먹으면 청명이 아니지.

"청명아!"

"이, 이 녀석! 무슨 사고를 치고 돌아온 거냐! 바른대로 말해!"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방 안에 있던 화산의 제자들은 곧 청명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원래라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뭔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을 청명이 단 한 마디의 말도 없이 그들이 모인 자리로 달려온 것이다.

"음?"

모두의 얼굴이 굳으려는 찰나 청명이 다급하게 소리친다.

"모여! 모여 봐! 빨리!"

이미 모여 있어, 인마.

모두가 멀뚱멀뚱 쳐다보는 가운데, 청명은 거의 탁자에 달려드는 기세로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음?"

청명이 탁자에 올린 그림을 본 백천이 눈을 가늘게 뜬다.

"이게 뭐냐?"

"장보도."

"장보도? 뭔가 암호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응."

백천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게 뭐 어쨌다는 거냐?"

"이거 해독해야 돼."

"이걸?"

"응."

"누가?"

"누구긴 누구야? 당연히 사숙이랑 사형들이지!"

백천의 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무당 놈들을 때려잡겠다고 나가더니 웬 이상한 암호가 그려진 그림 한 장을 들고 왔다. 그러더니 이걸 지금부터 해독하라고?

백천이 떨떠름한 얼굴로 청명을 보며 말했다.

"일단은 이게 대체 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설명부터 좀 해 봐라."

"쯧. 바쁜데. 딱 한 번만 말할 테니까. 제대로 들어!"

청명은 이곳을 나선 뒤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빠른 속도로 설명해 나갔다.

"……약선의 무덤?"

"그렇지."

"이백 년 전 그 약선?"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이 장보도가 약선의 무덤을 가리키는 곳인데, 그걸……. 어, 그걸……."

청류검을 두드려 패고 뺏어 왔다고?

그 무당삼검 중 하나인 청류검을?

백천의 볼이 경련을 일으킨다.

'이 새끼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가?'

청명이 청류검을 꺾었다는 건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물론 화산의 삼대제자가 무당의 일대제자, 그것도 일대제자 중에서 두각을 드러내어 무당삼검으로까지 불리는 이를 상처 하나 없이 꺾었다는 건 놀라고도 남을 일이다.

하지만 백천은 이제 더 이상 청명이 벌이는 일에 놀라지 않기로 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그러니까…… 이걸 청류검에게 뺏어 왔다고?"

"응."

"무당의 청류검한테서?"

"아, 왜 자꾸 했던 말 또 하게 해! 그렇다니까!"

청명이 빽 소리를 지르자 백천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다.

"야, 이 미친놈아!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당파에 강도질을 한 거냐!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놈들이 눈에 핏대를 세우고 달려올 게 뻔하잖으냐!"

"괜찮아, 괜찮아. 나인 줄 몰라. 복면 썼어."

"복면 썼다고 그놈들이 몰라볼 리가 있냐고! 그놈들 눈은 무슨 옹이구멍이냐! 다 장님들만 있어?"

다들 참담한 얼굴로 청명을 바라보았다.

무당.

소림과 함께 천하를 이끌어 가는 양대 문파. 그들의 영향력은 호북을 넘어 천하에 퍼져 있고, 그 강함은 하늘에 닿아 있다.

문도의 수와 고수의 수만 생각해 봐도 화산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무당이 작정하고 칼을 물고 설친다면 화산은 순식간에 개박살이 날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절대 무당과 척을 져서는 안 된다.

화영문을 비호하는 것만 해도 굉장한 부담을 짊어지는 일이었는데. 뭐? 뺏어 와? 무당의 물건을?

'차라리 천자의 코털을 뽑을 것이지!'

이건 정말 대형 사고다.

대체 이 일을 어찌 수습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 백천의 귓가에 심드렁한 청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

"그게 안 중요하면……."

"사숙!"

"응?"

청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백천의 말을 끊었다.

"그럼 돌려줄까?"

"……."

백천이 입을 닫았다.

"이거 안 먹을 수 있어? 어?"

"……."

백천의 눈이 탁자 위에 놓인 장보도로 향한다.

'약선의 무덤.'

만약 그 무덤 안에 혼원단의 연단법이 존재한다면? 그걸 포기하고 남에게 넘길 수 있는가?

'와. 이거 독인데.'

먹으면 반드시 중독된다. 하지만 먹지 않을 도리가 없는 독이다.

"잘 생각해 봐. 사람이 살면서 안전한 일만 하다가는 평생 그 꼴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야! 때로는 앞뒤 생각 안 하고 덮어 놓고 지를 필요가 있는 법이지. 도박이 필요하다 이 말이야! 이런저런 것에 휘둘리지 말고 제대로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하면!"

"패가망신하지."

"……어. 보통은 그렇지?"

"……."

청명이 움찔했다가 다시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일확천금의 기회도 도박을 해야 생기는 법이지. 이건 죽어도 먹어야 하는 거야! 안 그래?"

"끄으으으응."

백천이 자신의 머리를 마구 긁었다.

'빌어먹을.'

틀린 말은 아니다.

이건 정말 문파의 명운을 걸고 한번 해 볼 가치가 있는 도박이다. 만약 화산이 혼원단의 제조법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고질적인 내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화산의 문제가 무엇인가?

위 배분의 무학이 약하고, 아래 배분이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지금 화산의 이대제자와 삼대제자들이 동배분에 비해서는 과할 정도로 강하다고는 하나, 그건 끼리끼리 비교했을 때의 일이다.

백천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무당의 장로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그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삼십여 년 이상이 필요하다. 다른 무엇보다 내력이 받쳐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내력이 크게 부족한 건 아니라고 해도, 좋은 영약을 다 퍼먹으면서 성장한 명문 거파의 제자들에 비하면 그 차이가 극명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차이가 더 벌어질지도 모르지.'

그런데 혼원단이라면 잠재적인 문제점을 단번에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끄으으으으응!"

백천이 얼굴을 마구 문질러 댔다.

차라리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일을 가져왔다면 욕이라도 마음껏 할 텐데.

이건 물지 않을 수 없는 떡밥이었다. 후폭풍이 어마어마하고 잘못했다가는 화산이 뒤집어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백천의 눈에 핏발이 섰다.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물지 않을 수가 있냐고! 제기랄!"

조걸이 냉큼 재빠르게 떡밥을 물었다.

"합시다, 사숙!"

"너는 좀 가만히……."

"지금 고민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당 놈들은 본파로 달려가고 있을 겁니다. 그들이 지원대를 끌고 오면 다 끝입니다. 죽어도 그 전에 먹고 빠져야 합니다!"

윤종도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혼란에 빠진 윤종이 백천을 바라본다. 지금 이곳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백천뿐이다.

백천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청명아."

"어. 사숙."

"……해독만 하면 되는 거냐? 기껏 해독했는데 기관이나 함정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

"그렇지! 해독만 하면 돼! 그럼 어떻게든 내가 거기 뚫어 낸다."

"확실하냐?"

"사숙! 나 청명이야! 이거 왜 이래!"

"……그렇단 말이지?"

백천의 눈에서 어마어마한 광망이 뿜어졌다.

"빌어먹을, 나도 남자다! 이걸 곱게 무당에 돌려줄 수는 없지! 장문인이 내 머리통을 날려 버린다고 해도 나는 이걸 해야겠다!"

백천이 획 고개를 돌린다.

"윤종! 조걸! 유 사매!"

"예, 사숙!"

"달려들어! 오늘 밤 내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독한다! 이제 이판사판이다!"

"예!"

화산의 제자들의 눈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이 년 동안 청명은 확실히 화산의 제자들을 변질시켰다.

"무당 놈들이 오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 빠진다! 혼원단! 혼원단이다!"

"혼원단!"

"혼원단!"

내력이 고픈 윤종과 조걸이 핏발 선 눈으로 장보도를 뚫어져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청명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크으, 잘 컸다. 그죠, 장문사형?'

- 에라이, 이 망할…….

아. 오늘따라 뒷말이 잘 안 들리네.

어느새 화산의 제자들을 자신의 색으로 완전히 물들여 버린 청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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