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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36화 (136/1,567)

136화. 이건 죽어도 내가 먹어야 해! (1)

다른 제자들을 피해 자리를 옮긴 진현이 마른침을 삼키며 청명을 바라본다.

'이건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이지?'

눈앞의 복면인이 청명이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

'화산신룡이라더니. 빌어먹을 누가 이런 개 같은 별호를 붙였다는 말인가? 화산악룡이나 화산마귀. 아니면 화산의 미친개라고 하든가!'

이미 청명이 화산광견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진현으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이제는 청명이 왜 그렇게 강한가는 궁금하지도 않다. 그보다는 대체 무슨 일을 겪으면 사람이 이리 삐뚤어질 수 있는가가 백배는 더 궁금하다.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한 곳에 도착한 청명이 심드렁하게 입을 연다.

"그래서 그 검총이라는 게 뭔데?"

"……일단 '그것' 좀 내려놓으시고."

"이거?"

청명이 손에 든 것을 짤짤 흔들었다.

의식을 잃은 무진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린다.

"내려놔?"

"……편한 대로 하십시오."

이제 모르겠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절대 꿈일 리가 없겠지. 아무리 잔혹한 악몽을 생각해 봐도 이보다 더 끔찍할 수는 없다. 악몽이라는 게 인간의 상상력을 기본으로 만들어지는 거라면 이건 절대 꿈이 아닐 것이다.

그 한도를 넘어 버렸으니까.

"시간 끌지 말고 이야기해. 그 검총이 뭔데?"

"……먼저 약속을 해 주십시오. 이걸 말씀드리면 무진 사숙을 돌려주시고, 저희를 핍박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내가 언제 너희를 핍박했는데?"

"……."

"……."

어…….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여하튼."

"그래, 뭐 그럴게. 설마 내가 다 듣고 또 패기야 하겠어?"

그러고도 남을 놈 같아서 무섭다.

진현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어차피 말하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

"……무덤입니다."

"무덤?"

"예."

청명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희 이제 도굴까지 하냐? 무당에 돈 부족해?"

"……그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말 하나하나가 사람의 속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지 궁금한 진현이었지만, 이 인간에게 의문을 가지는 것도 이제는 부질없게 느껴진다.

"탈검무흔(奪劍無痕)의 무덤입니다."

"엥?"

청명의 눈이 놀라움에 치켜떠졌다.

"어, 탈검무흔이면……. 그……. 어?"

"이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입니다."

"아, 그랬지."

청명보다 전대 고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대의 천하제일인.

청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서 걔 무덤이 검총이라고?"

"예."

"그걸 발굴하려고 하는 거고?"

"예."

청명이 고개를 삐딱하게 꺾었다.

"왜?"

"……예?"

"아니, 굳이?"

청명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있다.

천하제일인. 그 영광스러운 이름.

강호에 몸을 담은 이들은 누구나 천하제일인을 꿈꾼다. 자신이 결코 천하제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이들도, 한 번쯤은 천하제일인이 되어 강호를 종횡하는 자신을 그려 보고는 한다.

천하제일인이라는 말은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꿈이자 낭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의외로 그 천하제일인이라는 자리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거쳐 간다.

'한 대에 한 놈만 나와도 백 년이면 네다섯 놈이 천하제일인이란 말이지.'

실제로는 한 대에 하나도 아니다.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도전해 그 자리를 쟁취하는 이는 반드시 나오니까.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백 년 사이에도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천하제일인의 칭호를 얻을 수도 있다.

아마 마교와의 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청명도 결국은 자연히 그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세다는 놈들이 하나같이 청명이 온다는 소식만 들으면 여행을 갔느니 폐관에 들었느니 하며 도망을 다니는 바람에 제대로 맞붙지는 못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진즉에 얻었을지도 모르지.

누가 뭐라 해도 청명은 그 천마가 인정한 검수니까.

"탈검무흔이면 어……. 이백 년 전의 천하제일인 중의 하나기는 한데."

걔가 그렇게 셌나?

물론 세겠지. 천하제일이었는데 엄청 셌겠지.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무당이라는 것이다.

평범한 강호인에게는 어마어마한 기연이 될 수 있는 일이지만, 무당이 그런 이의 무덤을 발굴한다고 해서 딱히 대단할 일이 있을 리 없다.

자신이 얼마나 가졌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지는 법이니까.

그런 청명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진현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최근 무당의 속가 중 하나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 도둑을 추포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진 장보도(藏寶圖)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장보도를 해석해 보니……."

"남영 근처에 그게 있다?"

"그렇습니다."

"대충 위치는 아는데 정확한 위치까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그래서 조사를 하려는데, 무당 놈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조사하면 사람들이 의심을 하고 개떼처럼 달려들 테니, 일단은 보는 눈을 치우기 위해 화영문을 남영에서 밀어내려 했다?"

"……정확합니다."

"흐으으음."

청명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되네.'

이상하긴 했다.

남영은 큰 도시가 아니다. 아니, 되레 무당의 속가가 자리하기에는 과하게 작은 도시다. 지금까지 화영문이 화산의 속가를 내세우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영이 다른 문파의 속가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갑자기 무당의 속가가 들어온다니 말도 안 되지.

"그래도 화산이 아니꼬워서 시비 걸었던 건 아닌 모양이네."

"……."

"맞아?"

"처, 천만에요."

약간 꿩 먹고 알도 먹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는 진현이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예."

"그 검총에 뭐가 있는데?"

"그건……."

진현이 살짝 망설이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탈검무흔이 누군지 아십니까?"

"천하제일인이잖아. 옛날에."

"아니요. 그의 행적을 아시냐는 말입니다."

"모르지."

청명이 당당하게 배를 내밀었다.

무공 익히고 술 마실 시간도 모자란데, 그의 기준으로도 백 년 전의 사람에게 왜 관심을 가지겠는가?

"탈검(奪劍). 말 그대로 탈검입니다. 그는 딱히 문파에 소속된 이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신비스럽게 나타나 천하의 검수들에게 비무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과의 싸움에서 모조리 승리했죠."

"뻔한 이야기잖아."

"지금부터는 뻔하지 않습니다. 그는 승리한 뒤에 반드시 상대의 애병을 전리품으로 챙겼습니다."

"응?"

"검을 뺏어 갔다고요."

"왜?"

"……저야 모르죠."

진현이 어깨를 으쓱한다.

"이백 년 전 사람의 의도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여하튼 그는 당대 고수들의 애병을 모조리 끌어모으더니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당대 고수들의 애병이라면……."

"네. 당연히 신병이죠."

청명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야 그렇겠지.'

무학이 높은 경지에 이른 이들은 신병의 도움이 없어도 제 무학을 펼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소리다.

'신병이 없어도 되지. 그런데 있으면 당연히 더 좋지.'

게다가 당대의 고수들이라면 각 문파에서도 지고한 위치에 있는 이들. 원래 서열 높은 놈들이 좋은 건 다 챙기는 법 아닌가?

번쩍번쩍한 신병을

'이제 나는 필요 없으니 너네끼리 나눠 써라.'

라고 아래로 내려 주는 군자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사람이란 본디 죽는 그 순간까지 제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럼 각 문파의 신병들은 다 뺏겼겠네?"

"그렇습니다."

"그걸 순순히 내줘?"

"잘은 모르지만, 내기를 했다는 것 같습니다. 지면 애병을 내어 놓고, 이기면 지금까지 빼앗아 간 병기들을 다 돌려주는 걸로."

그건 받아야지.

이건 물지 않을 수 없는 내기다.

"그런데 모조리 뺏겼다는 거구만."

"예."

청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 검총이라는 게?"

"……탈검무흔이 강호에서 종적을 감춘 뒤로 세상에 그런 소문이 퍼졌습니다. 탈검무흔이 자신이 모은 병기들을 한곳에 모아 두었다. 그리고 그곳을 자신의 무덤으로 삼고 자신의 무학까지 남겨 두었다. 검의 무덤, 검총을 찾는 이는 천하를 손에……."

"아, 거기까지. 거기부터는 뻔하니까."

청명은 금세 흥미를 잃은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냥 평범한 전설이고, 뻔한 이야기네. 그런데 그 뻔한 이야기가 사실이 되었다?"

"예. 저희도 장보도를 손에 넣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으나……. 그 장보도가 워낙 정교하고……."

"아, 됐어."

그것도 뻔해.

청명이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니까. 너희가 그 무덤을 발굴해서 신병들과 탈검무흔의 무학을 손에 넣으려 한다?"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진현이 차라리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청명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예."

"아, 그렇구나."

심드렁한 눈으로 진현을 바라보던 청명이 무진의 멱살을 잡아끌어 올린다.

"어?"

그리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진의 귓방망이를 후려쳤다.

쫘아아아악!

"뭐, 뭐 하는!"

"아랫놈이 잘못하면 윗놈이 맞아야지! 교육을 어떻게 시켰으면 애새끼가 저렇게 태연한 얼굴로 구라를 까고 있어! 야! 너 일어나 봐, 이 새끼야!"

쫘악! 쫘악!

무진의 고개가 좌우로 획획 돌아갔다.

"입에 침이나 처바르고 거짓말을 해야지! 아니지. 거짓말은 아니겠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 말한 것도 아니다. 이거지? 됐다. 너는 구경해. 나는 이 새끼 깨울 테니까."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정말 모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순간이었다.

"헉!"

청명이 몸을 획 돌리더니, 진현의 얼굴 바로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민다.

깜짝 놀라 진현이 뒤로 물러나자 청명이 살짝 이를 갈았다.

"너는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예?"

"무당이 그 탈혼무흔인가 하는 놈의 무공이 필요하다고? 무당이?"

"……."

"아이고, 지하에 있는 삼봉진인이 들으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네 대가리에 태극권을 박아 버릴 거다.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진현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뭐? 신병이기? 야, 이 새끼야. 다른 문파 신병들을 싸그리 모아서 무당에서 쓴다고 하면 거기서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잘도 내버려 두겠다! 다 눈이 회까닥 돌아서 무당으로 쳐들어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어린놈이 어디서 입만 열면 거짓부렁이여. 됐다. 내가 너를 패서 뭐 하겠냐. 맞을 놈이 맞아야지. 야! 안 일어나?"

쫘아아아악!

청명이 다시 한번 무진의 싸대기를 후려치자 진현이 기겁을 하고는 청명의 옷자락을 잡았다.

"그, 그러다 진짜 죽습니다!"

"죽으라고 하는 건데 죽어야지!"

"진짜 죽는다니까요!"

"알아, 알아. 내가 알고 이러는 거야. 걱정하지 마."

뭘 걱정 하지 마, 이 미친놈아!

진현이 숫제 잡고 늘어지는데도 청명은 우직한 소처럼 무진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니들이 말 안 해 준다고 내가 못 알아볼 것 같아? 너희끼리 왔다는 건 그 장보도가 너희 수중에 있다는 소리겠지. 나는 그거 가져가서 해독 맡기면 돼. 대신!"

청명의 눈이 차가워졌다.

"사람 가지고 논 대가는 받아야지. 죽이진 않는다. 대신 다시는 검을 못 잡게 만들어 주지!"

청명의 우수를 뒤로 당겼다. 팽팽하게 당겨진 그의 우수에 권기가 어리는 걸 본 진현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킨다.

이놈은 진짜 하고도 남을 놈이다.

무진이 이곳에서 폐인이 되어 버린다면 진현은 평생을 후회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 거다.

"뒈져라!"

청명의 주먹이 무진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기겁을 한 진현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약서어어어어언!"

청명의 주먹이 무진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춘다.

휘이이잉!

권풍에 무진의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청명이 무진의 멱살을 잡은 채 고개를 획 돌린다.

"뭐?"

"야, 약선."

"약선?"

진현이 체념한 듯 말했다.

"……탈검패흔의 정체가 바로 약선(藥仙)입니다."

"……약선?"

"예."

"그 영약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만든다는 약선?"

"예."

"이백 년 전에 연단법으로 고금제일을 논했다는 그 약선?"

"……예."

"약 하나 먹으면 죽은 놈도 깨어나고, 대환단보다 더 약발 쩌는 영약을 밥처럼 먹고 다녔다는 그 약서어어언?"

청명의 눈이 점점 기이한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건 열망이고, 희망이며, 또한 욕망이다.

"……."

진현이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움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청명의 눈은 가공할 만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검총이 약선의 무덤이라고? 그 약선의?"

"그, 그렇……."

"흐……."

"……?"

"흐흐흐흐."

청명이 자꾸 입가를 소매로 문질렀다. 자신이 복면을 쓰고 있다는 것도 잊은 모양이었다.

"약선. 그렇지. 약선. 그 정도는 돼야 무당이 이 짓을 하겠지. 그래. 약선이라 이 말이지?"

"이건 절대 다른……."

"……디냐?"

"……예?"

"거기 어디냐고."

"……."

그 순간 진현은 보았다.

욕망에 이성을 놓아 버린 도사가 두 눈을 희번덕댄다. 보이다 못해 줄줄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물욕이, 보는 사람을 기겁하게 만들었다.

"내 영약이랑 연단법이 있는 거기가 어디냐고, 이 새끼야!"

그게 왜 네 거냐…….

거, 진짜 답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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