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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124화 (124/1,567)

124화. 화산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 주지! (4)

말코.

도사들이 머리에 쓰고 다니는 도관이 말의 코처럼 길다는 점에서 비롯된, 속된 말이다.

쉽게 말해서…….

'욕?'

도사들을 비하하는 욕이다.

물론 진현은 그런 욕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살아생전 그 말은 자신의 귀로 들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야 당연한 일.

무당 내에서는 도사를 비하하는 욕을 쓸 일이 없었고, 강호행을 하면서도 들어볼 수가 없다. 세상의 누가 감히 무당의 도사에게 욕을 하겠는가?

제 목숨이 열 개쯤 되는 사람이 아니라면 감히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다.

무당이 어떤 곳인가?

저 소림과 함께 구파일방의 양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천하에 수많은 문파들이 있지만 감히 무당과 견줄 수 있는 곳은 소림 하나밖에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무당의 제자에게 말코?

'미친놈인가?'

일단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이는 딱히 광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행동이 이상하지도 않고, 눈빛도 꽤 총명하다.

아니, 겉모습만 본다면 오히려 준수하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살짝 건들거리는 자세와 세상 귀찮다는 표정이 무척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 정도야 성향으로 볼 수 있는 문제 아닌가?

"귀하는 누구시오?"

"네가 알아 뭐 하게?"

"……."

진짜 미친놈인가?

진현은 눈앞에 나타난 사내의 정체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예로부터 미친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하지만, 그건 그냥 하는 말이고. 실제로 매는 멀쩡한 놈에게 쓰는 약이지, 미친놈에게 쓰는 약이 아니다.

"그……."

진현이 뭔가 더 말을 붙여 보려는 순간 뒤쪽이 살짝 소란해졌다.

"지나갑니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아니, 왜 이리 다들 문을 막고 있어."

"조걸아. 조용히 해라."

문을 통해 화영문의 안으로 몇몇이 들어온다.

'어?'

보통 저렇게 지나오나?

문을 막고 있는 이들이 무당의 제자라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검을 차고 있는 건장한 이들을 굳이 밀어 내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들은 지금 무당의 제자들을 동네 아저씨 대하듯이 슬금슬금 밀어 내며 화영문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그때였다.

"아버님!"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가 위립산을 향해 달려온다. 그에 위립산이 반색하며 외쳤다.

"소행아!"

"아버님! 화산 분들을 모셔 왔습니다!"

"아!"

귀가 있는 이들은 모두 그 말을 들었다.

'화산?'

진현의 얼굴이 굳어진다. 그러니까 지금 그의 앞에 있는 이들이 화산에서 온 이들이라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이제야 저들의 가슴에 수놓인 매화 문양이 보였다.

워낙 강렬한 등장이다 보니 복색을 살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아아, 화산에서!"

위립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격 어린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조금 전 진현이 화산은 결코 당신들을 도와주러 오지 않을 거라 확언했었기에 더더욱.

'아니, 잠깐 화산이라고?'

진현이 등장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한눈에 보아도 경계하게 되는 백의의 검수가 한 명, 그리고 그를 보좌하듯 좌우로 선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와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

그리고…….

'무량수불.'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도호를 외게 만드는 눈이 떠지는 미녀가 한 명.

거기까진 좋다. 거기까진.

그럼…….

진현의 눈에 여전히 건들거리고 있는 한 사내가 들어왔다.

'이놈은 대체 뭐지?'

아무리 몰락했다지만 화산은 한때 구파일방의 한 축이었고, 명문으로 불리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떻게 이런 파락호 같은 놈이 나온다는 말인가?

심지어 저 뒤에 있는 이들과도 차이가 너무 극심했다.

"화산에서 오시었소?"

"그럼 소림에서 왔겠냐?"

"……."

진현이 뭔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러자 상황을 주시하던 백의의 사내가 앞으로 나서더니 진현이 아닌 그 뒤에 있는 위립산에게 포권을 한다.

"화영문주님을 뵙습니다. 화영문에 변고가 생겼다는 말을 들으신 장문인께서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아……. 장문인께서."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위립산이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화산에 위소행을 보내기는 했지만, 정말 화산이 도와주러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염평에게 한 말은 그저 풀 길 없는 답답한 현실에 대한 도피였을 뿐이다.

그런데 화산이 정말 제자들을 보내 주었다.

포권을 하는 백천을 본 위립산이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떤다.

헌앙한 기세.

바로 옆에 부절검 진현이 있음에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그, 그렇다면 귀하께서 바로 그 화산신……."

"아닙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천이 위립산의 말을 끊어 버린다. 위립산은 백천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재빨리 펴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화산의 이대제자인 백천이라 합니다."

"아! 화정검! 내 화정검의 명성은 익히 들었소이다!"

화정검을 보내 주다니!

장문인에 대한 감사가 몸 밖으로 뚫고 나오다 못해 승천할 것 같다.

'아, 아니. 그럼…….'

혹시 그 화산신룡은 오지 않은 건가?

그때였다.

"크으!"

조금 전부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하던 파락호 놈이 감탄했다는 얼굴로 위립산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크으. 문주님이시군요."

"……."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무려 삼십 년을! 꾸준하게 쉬지 않고 상납금을 보내셨다고! 맞습니까?"

"그, 그렇긴 한데……."

"크으으으으!"

사내가 더없이 감격했다는 얼굴로 위립산을 바라보았다. 눈가가 촉촉한 것을 보니 정말 감동한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어디에서?

"이런 훌륭하신 분이 계셨다니. 그 거지도 등 돌릴 문파에 꾸준히 돈을 보내시다니. 세상에 착한 사람은 다 죽었다더니 여기 한 분 살아 계셨군요."

"……."

위립산은 나름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몇십 년 동안 화영문을 지켜 왔으니, 그새 만난 이들만 해도 수백을 가뿐히 넘어 수천에 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수천 중에서도 이런 인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화, 화산의 본산 제자 같은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위립산이 사내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슬쩍 빼내고는 물었다.

"그런데 귀하는 누구시오?"

"아. 저는 청명이라고 합니다. 장문인께서 저를 보내셨죠."

"아. 청명이면 청자 배……. 잠깐만 청명?"

"네. 그렇게 불러 주십시오! 하하하하. 뭐라 부르면 어떻습니까. 우리 우수 고객님이신데."

청명?

청명이라고?

위립산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아는 한 화산에서 청명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은 한 명뿐이다.

'아, 아니지. 내가 모를 수도 있지.'

위립산의 고개가 위소행을 향해 획 돌아간다. 그의 눈빛을 받은 위소행이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고?'

그럼 지금 눈앞의 이 동네 파락호 같은 놈이 설마……?

"청명?"

의문을 가진 사람은 위립산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가만히 화산의 문하들을 지켜보고 있던 진현의 입에서 살짝 당혹스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청명이 고개를 살짝 돌아간다.

"……그럼 설마 귀하가 화산신룡이라 불리는 청명이란 말이오?"

"화산 뭐시기는 모르겠고. 내가 청명은 맞는데?"

"그대가?"

진현이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청명을 바라본다.

그러자 청명의 시선이 삽시간에 삐딱해졌다.

"뭐? 증명서라도 떼다 줘야 하나?"

"……."

그러더니 이내 관심이 식은 듯 진현에게서 눈을 떼고는 다시 위립산을 보며 방긋방긋 웃는다. 태도의 차이가 너무 극명해서 황당할 지경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까요. 장문인께서 화영문을 속가 중의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은 맞지.

왜냐면 속가라고 할 만한 곳이 이제 여기밖에 없으니까.

청명이 빙그레 웃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백천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뭐 합니까, 사숙?"

"……끝났냐?"

"네."

백천이 한숨을 내쉬고는 진현을 바라본다.

"화산의 백천입니다."

"무당의 진현이오."

"속가끼리의 문제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보아하니 화영문주와 직접 대화를 하셨던 모양인데, 이제 저를 통해 말씀하시면 될 겁니다."

"화산이 이 일에 끼겠다는 것이오?"

"그럼 안 될 이유라도 있습니까?"

백천의 말에 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감히.'

완전히 몰락했다가 이제 겨우 이름이나 다시 알리고 있는 문파 주제에 무당의 행사에 관여한다?

이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진현의 시선이 슬쩍 청명에게로 향했다.

'저런 놈이 화산신룡이라고?'

어이가 없다.

화산신룡 청명.

이 년 전 갑작스레 천하에 그 이름을 떨친 화산의 신성.

진현도 귀가 따갑게 들은 이름이다. 그리고 그가 특별히 그 이름을 더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무당의 검룡 진현.

그리고 화산의 신룡 청명.

세인들은 그 외의 네 사람을 더 묶어 육룡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당금 강호에서 육룡은 천하를 이끌어 갈 후기지수를 상징하는 이름이다.

육룡이니 삼룡이니 하는 호사가들의 말에는 관심이 없다. 그가 관심을 보인 부분은 단 하나. 그 육룡 중 화산신룡 청명에 대한 평가가 진현에 대한 것보다 더 높다는 점이다.

'이따위 놈이 나보다 강하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물론 그 평가는 나이를 감안한 것이기는 하다. 청명이 진현의 나이쯤 되면 진현보다 더 강해질 거라는 기대감이 듬뿍 담긴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진현은 그 평가조차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장문인의 말씀이 맞았군.'

- 어쩌면 남영에 화산의 제자들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산의 제자들이 온다면 그중에는 당연히 화산신룡이라 불리는 청명도 있을 것이다. 혹여 그리된다면 화산의 제자가 감히 무당의 제자에 앞서 언급될 수 없음을 세상에 똑똑히 알려 주도록 하거라.

진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그대들이 어떤 식으로 끼어들 생각이시오?"

진현이 살짝 오만한 눈으로 백천을 바라보았다.

화산신룡이라는 청명보다 오히려 이 사내가 조금 더 신경 쓰인다. 조금 전부터 은연중에 흘리는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화정검의 명성은 허울이 아니었군.'

화산신룡과는 다르게 말이다.

"서로 즐겁게 대화로 풀 수 있다면 최상이겠으나……."

백천이 미소를 지었다.

"그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만?"

"하하. 오해입니다. 대화로 풀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서로 입장 차가 좁혀지질 않으니, 대화가 덧없을 뿐이지요."

"결국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백천이 조금 날카로운 어조로 다그치자 진현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럼 어떻게? 비무라도 하시겠습니까? 저희는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무당의 방식이 생각보다 꽤 거친 모양이군요."

"거칠다기보다는 효율적이지요. 괜히 서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

그때였다.

"아. 거 시간 더럽게 끄네."

"……."

"……."

백천과 진현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둘은 모두 말을 한 청명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둘의 표정은 전혀 달랐다.

백천은

'제발 가만히 좀 있어라. 이 빌어먹을 놈아!'

라는 말을 표정만으로 전달하는 신기를 보이는 중이었고, 진현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노기가 피어났다.

알려진 대로라면 청명은 그보다 한 배분이 낮다. 그런데 자신보다 배분이 높은 진현을 향해 감히 저런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화산은 예의를 모르는가?"

"예의?"

청명이 피식 웃는다.

"지랄한다."

"이!"

"남의 문파에 쳐들어와서 뒈지기 싫으면 꺼지라고 하는 놈이 예의 타령 하고 있네. 네놈 예의는 네가 필요할 때만 나오는 모양이지?"

"……."

진현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바로 반박하기는 어렵다. 저 말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걸 진현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화할 거 뭐 있어. 너희는 니들 하고 싶은 대로 해."

"그게 무슨 뜻인가?"

"세 시진 뒤에 쳐들어올 거라며?"

"……."

"세 시진 뒤에 와. 니들이 원하는 대로 실력 행사 해 봐. 대신에……."

청명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올 때는 대가리 깨질 각오를 하고 오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미리 경고했다."

진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이윽고 창백해진 그의 얼굴에 무시무시한 노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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