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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5화 (66/1,567)

65화. 장문인! 저놈은 재신(財神)입니다! (5)

황문약은 청명과 마주 앉아 차를 홀짝였다.

청명은 그런 황문약을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먼저 입을 연 건 황문약이었다.

"어떻습니까?"

"중간중간 이상한 말을 하시더라구요."

"도장께는 나쁠 것이 없지요."

황문약의 눈이 날카롭게 청명의 반응을 살핀다. 미간을 좁힌 채 가타부타 말이 없는 청명을 보고 있으니 미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이 황문약이 저런 아이와 대등하게 말을 나누고 있다는 말이지?'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꽉 찬 부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황문약이 이뤄 놓은 것을 감안한다면 화산의 삼대제자와 독대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황문약은 지금 청명과 독대하고 있다. 그에게 구명지은을 베푼 은인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화산의 삼대제자 청명을 상대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이제 한배를 탄 몸 아니겠습니까?"

"한배라……."

청명이 빙그레 웃었다.

"운이 좋아 상단주님을 구하기는 했지만, 제가 뭐라고 단주님과 한배를 타겠어요. 이제 장문인과 이야기를 하셔야죠."

"저는 화산과는 한배를 타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청명이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황문약을 바라보았다.

'이것 봐라?'

너무 많이 보여 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도장이 계시지 않는 화산은 저의 관심 밖입니다."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은데."

청명의 겸손에 황문약이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소도장. 저는 상인입니다. 평생을 상인으로 살아왔고, 죽는 그 날까지 상인으로 살 것입니다. 상인으로서 제가 가진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건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

"제 눈이 그릇되었다면 이미 저는 망했을 것이고, 설사 여태 운이 좋아 망하지 않았다 한들 언젠간 분명 주저앉겠지요. 억울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혹여 제 눈이 정확하다면……."

황문약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청명을 바라본다.

"은하상단과 화산 모두 좋은 일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청명이 가볍게 볼을 긁었다.

"뭐 여하튼 한배를 탔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말죠. 제가 그런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어째서입니까?"

"입바른 말을 하는 이들은 꼭 뒤통수를 치더라고요."

예전의 그들이 그랬지.

천하를 구하기 위해 나선 청명과 화산 사람들을 찬양하고 눈물 흘린 이들은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끝내 화산에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그런 말을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저도 그런 말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상인에게 있어서 배란 언제든 타고 내릴 수 있는 것이지요."

"네, 그렇겠죠."

"하나."

황문약이 사람 좋은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목적지가 같다면 굳이 배에서 내릴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이 노를 저으면 더 빨리 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정도는 괜찮지 않겠습니까?"

"흐음."

청명이 진중한 눈으로 황문약을 바라본다.

"네. 뭐 나쁠 것은 없으니까요."

황문약이 두 눈에 이채를 띄었다.

'확실하군.'

이걸로 확인했다.

지금 이 대화에서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청명의 협조를 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장문인과 협상을 마무리한 이상 은하상단은 화산을 지원하고 그 이득을 취할 테니까.

그럼에도 황문약이 청명과 독대를 원했던 이유는 이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서 화산은 이미 발전하고 있다. 자신이 있는 이상 화산은 반드시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이거지?'

어마어마한 자신감.

하지만 그 자신감이 그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자만심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청명에게서 순간순간 풍겨 오는 노회한 느낌 때문일 것이다.

"소도장."

"네."

"은하상단은 최선을 다해 화산을 지원하겠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아시지요?"

"뭐, 종남과 척을 지겠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요구한 적도 없고, 원한 적도 없는 일에 대가를 바라는 건 좀 몰염치한 것 같은데."

"대가는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도장께서 알아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네, 그 정도야……."

알아주지.

알아는 주지. 얼마든지.

그거 뭐 돈 드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종종 찾아뵐 일이 있을 겁니다."

"네. 장문인께서 말씀하시길, 앞으로 은하상단에 사람을 보낼 일이 있으면 제가 가게 될 거라 하시더라고요."

"그것 참 기꺼운 일이군요. 자주 보고 정이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네, 그럼요. 하하하하!"

청명과 황문약이 서로를 보며 껄껄 웃었다.

내심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 능구렁이 같은 어린놈이!'

'어디 사람을 등쳐 먹으려고! 내가 전생에 너 같은 놈만 한 수레씩 봤다!'

웃는 낯으로 마주하고 있지만 미묘하게 불꽃이 튀는 것 같다.

"소도장."

"네?"

"이건 제 인생을 건 도박입니다."

"그건 젊은 사람이 해야 할 말 같은데."

"글쎄요. 소도장께서 저를 살려 주신 이후로 저는 새 삶을 얻은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로이 얻은 삶, 소도장께 걸어 본다고 한들 나쁠 것은 없겠지요."

"제가 딱히 그걸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저 말씀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럼."

황문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청명을 가만히 바라본다.

"구명을 조금이라도 갚는 뜻으로 소도장께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네."

"소도장. 도장은 뛰어납니다. 아마 도장의 나이에 도장 같은 사람은 천하를 뒤져 봐도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하네요."

인마. 나 같은 나이에 나 같은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천하를 뒤져 봐도 나 같은 사람은 없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나 말고 또 있겠냐?

"하지만 소도장은 자신을 좀 더 감출 필요가 있습니다. 천하는 무서운 곳입니다. 천하는 온갖 귀신과 악귀들이 춤을 추고, 이득 하나를 놓고 이전투구를 벌이는 아귀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소도장이 튀어나온 못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정을 들고 달려드는 이들이 넘쳐날 것입니다."

청명이 피식 웃었다.

"절 너무 대단하게 보시네요. 저는 그냥 꼬맹이예요."

"드릴 말씀은 모두 드렸습니다. 그럼."

황문약이 깊게 포권을 하고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아, 잠시만요."

"네?"

황문약이 다시 돌아보자 청명이 미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몇 가지 알아다 주실 게 있는데. 가능하시겠어요?"

황문약도 미묘한 미소를 입에 담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그럽지요."

탁.

황문약이 문을 닫고 나오자 기다리고 있던 황종의가 다가왔다.

"대화는 잘 나누셨습니까?"

"재경각주와의 협의는 어찌 되었느냐?"

"당장 오늘부터 수하들을 화음에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상단의 물품을 지원하고 유통시킨다면 열흘이 되기 전에 사업장들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길다."

황문약이 딱 잘라 말했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사흘 내에 안정시켜라. 지금은 이득을 좇을 때가 아니다. 저들에게 우리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황종의가 궁금함을 감추지 못하고 넌지시 물었다.

"소도장은……?"

"……글쎄."

황문약이 미묘한 표정으로 슬쩍 뒤를 돌아본다.

'숫제 괴물이로군.'

보이지가 않는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겉으로 드러나는 어린 치기마저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다.

"화산이라……."

황문약이 기분 좋게 웃었다.

"차라리 용소(龍沼)라고 하는 편이 났겠군."

"예?"

"아무것도 아니다. 가자꾸나."

황문약이 휘적휘적 걸어 나갔다.

용소.

용이 사는 못.

그 용이 누구를 의미하는가는 굳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종의야."

"예, 아버님."

"생각이 또 조금 바뀌었구나. 어쩌면 우리는 화산에 모든 것을 걸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

황문약이 살짝 들뜬 눈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상인은 돈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 정보를 먹고 산다. 돈은 정보를 이용해서 취하는 결과일 뿐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화산에 용이 살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먼저 알아챘다. 이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될지는 노회한 황문약으로서도 쉬이 짐작할 수 없었다.

'이 정보를 잘만 이용한다면 은하상단이 천하제일 상단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겠지.'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기에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할 일이 많겠구나. 가자. 판을 깔아 봐야지."

황종의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잠자코 황문약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백매관의 높은 처마 위에서 한 쌍의 눈동자가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끙."

두 사람이 식솔들을 이끌고 화산 어른들의 배웅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청명은 처마에 벌렁 드러누웠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황문약을 상대하는 건 현종이나 다른 화산의 장로들을 상대하는 것과는 전혀 느낌이 달랐다. 물론 화산의 장로들은 도가 깊고 현기 또한 갖추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봤을 때 그들은 산속에서 평생을 살아 온 도인이다.

아귀다툼이 벌어지는 상계에서 평생을 살아온 황문약이 그들과 같을 리 없었다.

"아무려면 어때."

어쨌거나 해결했으면 그만이지.

황문약은 앞으로의 화산에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화산에 있어서 가장 모자란 부분을 채워 줄 테니까.

재물?

아니다.

황문약은 화산이 오랫동안 세상과 떨어져 있으면서 잃어버린 속세에 대한 감각을 채워 줄 것이다. 화산이 그저 도문(道門)이라면 모를까, 무문(武門)을 자처하는 이상 이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뒷머리에 깍지를 낀 청명이 푸른 하늘을 보며 씨익 웃었다.

"어쨌거나 하나는 해결했습니다, 사형. 어때요? 저 잘한 것 같습니까?"

하늘 너머로 보이는 청문의 모습이 청명을 향해 웃음 짓는다.

마치

'이놈아. 거봐라. 하면 되잖느냐?'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제 겨우 한 걸음인데요. 뭐."

갈 길이 멀다.

화산이 날아오르는 데 있어 가장 큰 방해물은 치워 냈다. 앞으로 재물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으니, 이제는 무학에 전념해야 할 때다.

종남을 욕할 때가 아니다.

종남이 자신들의 근본을 잊고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면, 화산은 지금 근본을 아예 상실한 상황이 아닌가? 하루빨리 수를 내어 이들에게 화산의 근본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

청명이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끄응. 이것들을 언제 키우나."

입으로는 한탄하지만, 화산의 전경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한들, 그래도 화산은 화산. 바라보고 있으면 그저…….

청명이 다시 벌렁 드러누웠다.

"사형, 사형. 예전에 사형이 그렇게 잔소리할 때, 좀 들을 걸 그랬나 봐요. 내가 사형 입장이 되어 보니 알겠네요."

청명이 눈을 감았다.

처마 위에 숨어서 사형의 눈을 피하던 예전의 자신과,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을 찾아다니던 장문사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습은 달라지고, 세월은 변했지만.

화산은 화산.

그래. 그저 화산일 뿐이다.

긴 겨울이 가고, 화산에 첫 봄 매화의 싹이 올라온 어느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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