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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4화 (65/1,567)

64화. 장문인! 저놈은 재신(財神)입니다! (4)

화산은 난리가 났다.

아니, 난리는 이미 나 있었지만, 그 난리의 의미가 완전히 반대로 바뀌었다.

"황 대인을 구했다고?"

"황 대인이 누군데?"

"화음 최고의 유지. 전에 본산으로 올라왔던 사람들 다 합쳐도 황 대인 하나만 못할 거야."

"헐? 그럼 굉장한 사람이잖아."

"그렇다니까."

말을 하던 삼대제자가 얼굴을 확 일그러뜨린다.

"그런 사람을 청명이 구하다니!"

"와! 이거 진짜……."

"망했네."

"하필이면."

"왜 그놈이……."

화산에는 무척 기꺼운 소식이었지만, 삼대제자들에게는 서글픈 소식이었다.

이걸로 청명의 입지는 수직 상승할 것이고, 화산의 어른들은 청명을 더 싸고돌 게 뻔하다. 이미 운검 사숙조와 장문인의 비호를 받고 있는 청명이 아닌가?

그런데 여기서 더 올라간다고?

조걸이 헛웃음을 흘렸다.

"어디서 뭘 하고 있나 했더니."

정말 귀신같은 놈이다.

아니면 하늘이 돕는 놈이든가.

"해도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사형?"

"글쎄."

"그놈만 운이 너무 좋지 않습니까."

"운?"

윤종이 조걸을 빤히 보며 말했다.

"운이라고 생각하느냐?"

"……생각이 다르십니까?"

"그건 운이 아니라 실력이다."

조걸이 고개를 갸웃한다. 윤종이 그런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화음으로 내려갈 수 있었던 것도 청명이 능력으로 얻어 낸 권한이고, 화음에서 황가장의 일을 접한 것도 능력이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었겠느냐? 그저 화산에 돌아와 알리는 것밖에는 없었겠지."

"……그렇지요."

"그래서는 해결이 안 된다. 그사이 황 대인이 죽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고, 현장에서 잡지 않는 이상은 증거랄 것도 없다. 일이 잘못 풀렸으면, 돈맛을 본 화산이 괜한 이들을 핍박하여 재산을 강탈하려 한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장문인도 함부로 움직이시지는 못하겠지."

조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고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무슨 일이든 남이 해낸 뒤에 보면 쉬워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막상 자신이 해 보면 보는 것처럼 쉽지 않기 마련이지. 운을 논하기 전에 실력을 키워라. 네 실력이 충분하다면 운은 따라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사형."

조걸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사형도 요즘 잔소리가 많아졌다니까.'

예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든 한발 떨어져 있던 사람이 윤종이다.

삼대제자 중 맏이라는 상징적인 자리에 앉아 있지만, 딱히 그 사실을 내세우지도 않았고, 그걸로 뭔가를 하려 한 적도 없다.

그저 물 흐르듯이 흐름에 몸을 맡기던 사람인데 최근 들어서는 정말 대제자다운 느낌이 난다.

화산에서 뭔가를 이뤄 보기로 한 이후로 사람이 바뀐 것이다.

하기야 그건 조걸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이들도 윤종의 말에 느낀 게 있는지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윤종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 걱정이구나."

"예?"

"과정과 결과야 능력으로 얻어 낸 것이지만, 입지가 높아진 것 역시 사실이니……."

이미 화산에 여러 공을 세운 청명이다. 그런 청명이 또 공을 세웠으니 그 위상이야 말할 게 있겠는가?

"분명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들 텐데."

"……."

청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악독하다는 게 아니다.

악독한 놈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다는 점이다.

"에휴."

"진짜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백매관이 순식간에 탄식과 한숨으로 가득 찼다.

* * *

"화음의 사업장은 황 대인께서 맡아 주시기로 했다."

"다행입니다."

"황 대인이라면 믿을 수 있지요."

현종은 들뜬 마음을 내리눌렀다.

'너무 좋은 티를 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당장 들썩이는 엉덩이를 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황문약은 사업장에 대한 관리를 대가를 받지 않고 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심지어 이번 일로 입은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겠다며 막대한 금액의 보상까지 약속했다.

조건은 두 가지.

번 돈을 축적하지 말고 화산의 발전을 위해 바로 사용해 줄 것.

그리고 다른 한 가지는, 삼대제자인 청명을 우대해 줄 것.

첫 번째 조건은 별문제가 없다.

현종 역시 번 돈을 쌓아 둘 생각은 없으니까. 아직 화산은 재산을 축재할 단계가 아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돈을 퍼부어야 겨우 독 내부를 적실 판이다.

문제는 두 번째 조건이다.

'우대라는 게 참 불명확한 단어로군.'

황문약으로서는 당연한 요구다. 그에게 청명은 생명의 은인이니까. 청명이 화산의 제자이니 화산에 투자하여 그 은혜를 갚는다고 하였지만, 청명 개인에게 느끼는 감정은 조금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우대'에서 나온다.

'삼대제자를 특별히 우대할 방법이 뭐가 있는가.'

이게 현종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청명이 세운 공을 냉정하게 평가하면, 어이없게도 제대로 된 상을 받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온다.

이미 삼대제자가 받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다 챙기다 못해, 감히 일대제자도 바랄 수 없는 특권마저 누리고 있는 청명이 아니던가?

'이럴 때는…….'

현종이 슬쩍 운암을 바라보았다.

운암이 현종의 눈치를 보더니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크흠, 좋은 일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운암이 좌중을 둘러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황 대인이 이렇게 나서 준 것은 청명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했기 때문입니다."

"음."

"그렇지."

"참 대단한 녀석이야. 어찌 그리 귀신같이 좋은 일만 골라 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도기(道器)로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으음?"

운암이 모이는 시선에 헛기침을 한차례 했다.

"그 아이에게 이번에도 상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렇지. 그래야지."

"상을 받아 마땅하지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어떤 상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은가? 다들 의견을 내 보도록 하게."

일이 원하는 대로 풀려나가자 현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화산에는 좋은 일만 벌어지고, 제 뜻을 짐작하여 움직여 주는 제자까지 있을진대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물론 복을 물어 오는 복덩이는 말할 것도 없고.

"삼대제자인 것을 감안하여, 아직 삼대제자로서는 익힐 수 없는 무학을 먼저 익히게 해 주는 건 어떻습니까?"

"오?"

현종이 현상을 돌아본다.

이건 확실히 황문약이 말했던 '우대'라고 할 수 있는 일이다.

"낙화검과 칠매검에 대한 연구가 끝나는 대로 그 아이에게 그 권한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분명 더없이 기꺼워할 것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장문인!"

"저도 찬성합니다."

참으로 훈훈한 분위기였다. 현종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 그럼 그리……."

"안 됩니다."

그 순간, 더없이 단호한 목소리가 현종의 말을 끊었다.

현종이 슬쩍 시선을 돌려 목소리가 나온 곳을 확인하고는 질끈 눈을 감았다.

재경각주 현영.

그의 얼굴이 노기로 가득했다.

"장문인! 그 아이에게 그런 상을 내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아니, 또 왜.'

이러면 골치 아파진다.

아무리 현종이 화산의 장문이라고는 하나, 현영은 그의 사제이자 화산의 장로이며, 재경각주였다. 그런 현상의 말을 무시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은 현종으로서도 부담이 컸다.

"이보게 재경각주. 대체 뭐가 문제인가?"

"상이란 그런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상입니까!"

"응?"

"애들한테 무공을 내려 주면 애들이 좋다고 하겠습니까? 안 그래도 지금 백매관에서 무학을 익히느라 바쁜 녀석에게 더 많은 걸 익히라는 게 상입니까? 그게 벌이지! 이래서 칼잡이들이란!"

어?

뭐지?

대화가 좀 이상하게 흐르는데?

모두가 의아한 가운데 현영은 숫제 두 눈으로 불을 뿜었다.

"상이란 그런 게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줘도 손해가 없는 걸 던져 주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상입니까! 주는 사람도 내어 주기 아까운 걸 줘야 제대로 된 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무슨 소린지 아시겠습니까?"

저놈이 대체 왜 저러지?

현종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눈으로 현영을 바라보았다. 이전 회의까지만 해도 청명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던 현영이 아닌가?

그런데 왜 갑자기 입장을 획 바꾸고?

급기야 현영의 입에서 흥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게 보통 공입니까! 그 아이가 황 대인을 구한 덕분에 화산에 돈이……. 아니, 막대한 후원이 들어왔고, 또한 황 대인이 사업장 관리를 무…료로 해 주겠다지 않습니까! 무료로!"

현종은 그제야 현영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있었다.

현영은 재경각주다.

그리고 재경각은 화산의 살림을 도맡아 하는 곳이다. 좋게 말하면 살림을 하는 곳이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화산의 돈을 관리하는 곳이 바로 재경각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재경각은 단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옥.

망해 나자빠지는 문파의 돈 관리를 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겠는가? 그나마 지금까지 화산이 현판이라도 붙이고 살 수 있었던 건 구 할이 재경각주의 공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돈 나올 구석이라고는 없고, 빚쟁이들은 심심하면 사람을 볶아 대다 보니 나중에는 자다가 돈 소리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던 사람이 현영 아닌가?

그런 와중에 청명이 공을 세웠다.

청명이 발견한 상자에서 막대한 돈이 나왔다고는 하나, 그건 쓰면 금세 사라질 돈이었다.

재경각이 원하는 것은 모아 둔 돈을 야금야금 털어먹는 게 아니라, 사업장이 잘 돌아가서 매달 쓸 만큼 쓰고도 남을 만한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그 상황을 이루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람인 황문약을 청명이 구해 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재경각주의 입장에서는 한 달 동안 청명을 업고 다녀도 그 귀여움이 가시질 않을 것이다.

현영이 얼굴을 뻘겋게 물들이고는 소리쳤다.

"제대로 된 상을 줘야 합니다! 그래야 저놈이 또 어디 가서 공을 벌어 올 것 아닙니까!"

"공은 벌어 오는 게 아니라 세우는 걸세……."

"여하튼!"

현영이 현종을 잡아먹을 기세로 들썩였다.

"장문인! 저놈은 재신(財神)입니다! 저놈에게 제대로 된 상을 주고 자꾸 밖으로 돌려야 또 공을 벌어 온단 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예?"

"……."

"이번에 저놈이 벌어 온 돈이 얼만지나 아십니까! 돈이라고는 동전 한 푼 못 벌어 오는 이 쌀벌레 같은 놈들 사이에서! 저런 녀석이! 저런 기특한 놈이! 예? 무슨 말인지 아시냐고요! 예?"

무각주 현상이 빙그레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현영을 뒤에서 안아 방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장문인! 큰 상을 내려야 합니다! 장문이이이이인!"

현영이 방에서 아주 끌려 나가자 현종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이해해 주길 바라네. 워낙에 맺힌 게 많은 사람이라."

"……이해합니다."

"사실 뭐 더 하셔도 되지요.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얼마나 한이 맺히셨으면……."

다들 눈가를 훔쳤다.

"장문인."

운암이 분위기를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재경각주의 말이 맞습니다. 청명에게는 제대로 된 상을 내려야 합니다. 특히나 저는 남는 걸 내어 준다는 말이 마음에 걸립니다."

"으음, 그렇지."

"냉정히 보면 이번에 청명이 세운 공은 일전의 공만 못합니다."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번의 공은 우연히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이번에 청명이 어떤 상을 받느냐로 화산의 신상필벌을 짐작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저는 청명에게 제대로 된 상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공을 세운 이는 상을 받는다는 당연한 이치를 모든 제자들이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종이 중인들의 반응을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하면, 어떤 상이 좋겠는가?"

그러나 다들 서로 눈치를 볼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우선……."

먼저 입을 연 이는 역시나 운암이었다.

"그 아이가 화산을 내려가는 것을 좋아하니, 은하상단과의 연락책을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심부름꾼으로 부리는 것이 아닌가? 그걸 상이라 할 수 있겠느냐?"

"황 대인께서 청명을 어여뻐하시니 갈 때마다 좋은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아, 확실히 그렇겠구나."

현종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다.

의견이 하나 나오자 다른 이들도 저마다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매화검을 미리 하사하는 건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목검으로 수련하는 아이에게 매화검이 무슨 소용이라고 그러십니까! 차라리 새 무복을 주는 게 어떻습니까! 가슴에 금실로 수를 놓아서!"

"먹지도 못하는 무복이 뭔 의미가 있다고! 차라리 먹을 걸 줍시다! 그게 아니면 서고에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해 준다든가!"

"청명이 너 같은 줄 아느냐! 먹을 걸로 상을 주게?"

"그럼 영약이라든가!"

"영약이 어디 있어!"

"사면 되지! 이제 돈도 있는데!"

그 순간이었다.

벌컥!

문을 박차고 들어온 현영이 가슴을 치더니 소리친다.

"그냥 돈을 주라고 돈을!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걸 뭘 고민을 하고 있어! 이 답답한 것들아! 일단 상은 닥치고 돈을……. 읍! 읍읍!"

현상이 말없이 현영의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어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문을 닫는다.

탁.

"……."

"……."

"……."

현종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좋은 일이 자꾸 생기는 건 사실이지만…….'

그가 알던 화산이 가면 갈수록 뭔가 조금 이상해지는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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