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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2화 (63/1,567)

62화. 장문인! 저놈은 재신(財神)입니다! (2)

화산은 난리가 났다.

갑자기 화산에서 사라져 버린 삼대제자가 복귀하지 않은 지 벌써 칠 일이 지났다. 이건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물론 화산이 몰락하던 때, 야반도주를 하던 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최근에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덕분에 화산의 분위기는 흉흉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사고라도 난 것 아닙니까?"

"사고?"

"아무리 막나간다 해도, 복귀하지 않을 놈은 아닌 것 같은데. 게다가 그 녀석이 화산을 떠날 이유도 딱히 없잖습니까?"

"그렇지."

윤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조걸의 말이 맞다. 청명은 화산을 떠날 이유가 없다. 그럴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에게 영약을 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아까운 것을 퍼주고 바로 화산을 떠난다?

사실 그것이 영약이 아니라 독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떠날 이유가 없는 놈이 갑자기 복귀하지 않는다는 건, 사고가 터졌다는 뜻 아닙니까?"

"걸아."

"예, 사형."

"내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그놈이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상상할 수가 없다."

"……."

"너는 상상이 가더냐?"

"저도 좀……."

조걸의 머리에 청명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물론 훈훈하게 웃는 얼굴이 아니라 사악하게 웃는 얼굴이.

'에이. 역시 아니야.'

절벽에 던져도, 지옥에 떨어뜨려도 악착같이 살아남을 놈이다. 그런 놈이 무슨 일을 당해 복귀하지 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슨 사정이 생겼겠지."

"사숙조들께서 납득하실 수 있을 만한 사정이면 좋겠습니다. 화가 단단히 나신 것 같던데."

"그렇지……."

"운검 사숙조께서 다시 장문인에게 불려 가셨습니다. 이러다 큰일이라도 터지는 게 아닐까 걱정됩니다."

"후."

윤종이 눈을 찌푸리며 산문 쪽을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대체 무슨 일이지?'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청명이 걱정되는 윤종이었다.

"방자하지 않습니까!"

날카로운 목소리에 현종이 미간을 찌푸렸다.

"칠 주야입니다. 삼대제자가 허락도 없이 칠 주야나 자리를 비우다니, 이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으음."

"묵과할 일이 아닙니다. 이제 겨우 문파의 기틀이 잡혀 가고 있는데, 다들 뭐라 생각하겠습니까?"

재경각주 현영이 목소리를 높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그때 무각주 현상이 나서서 입을 열었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사형."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되었는가?"

"왜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십니까! 아이가 사고라도 당했으면 어쩌시려고요. 지금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사고를 당해? 대체 화산에서 사고를 당할 일이 뭐가 있는가? 설사 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제 발로 산문을 벗어난 것이 사실일진대, 그것까지 우리가 헤아려 줘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실족이라도……."

"……음……."

이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언성을 높이던 현영이 입을 닫고 침음을 흘렸다.

화산의 산세는 워낙에 험하다. 출타하던 이들이 실족을 해 부상을 당하는 일도 종종 있다. 숙련된 무인들도 부상을 당하는 마당에, 삼대제자가 실족했다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산을 뒤져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혹시 부상을 입은 거라면……."

"그래 봐야지."

내내 침묵을 지키던 현종이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확실히 그럴 가능성을 배재할 수는 없지."

하지만 현영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해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삼대제자가 제멋대로 본산을 비우고 산문을 나선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현종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청명에게 그 권한을 준 건 다름 아닌 현종이었다. 지금 현영은 현종이 아이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었다고 은근히 면박을 주고 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네."

"사정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본디 법도라는 건 일일이 사정을 헤아리기 전에 지켜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재경각주."

"장문인. 이 일은 화산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화산이 아이에게 특권을 주는 곳이었습니까. 이대제자도 아니고 겨우 삼대제자입니다. 사가(私家)에 있었어도 아직은 철이 들었다 할 나이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만하게."

"……."

무겁고 싸늘한 목소리에 현영은 할 말을 누른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이상 말을 얹었다간 선을 넘는 게 된다. 그 역시 장문인과 대립하는 건 원하지 않았다.

"……장문인. 제가 과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장문인을 탓하고자 하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있네."

현종이 한숨을 푹 내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본 청명이라는 아이는 이런 사고를 칠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런 권한을 과감히 준 것이 아닌가?

'내가 그 아이를 잘못 보았다는 말인가?'

그때 가만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운검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장문인."

"말하거라."

"제자들을 뽑아 수색대를 만들겠습니다. 화산과 화음을 샅샅이 뒤져 청명을 찾아내겠습니다."

"으음."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거라."

"청명을 찾은 뒤에는 제 죄를 물어 주십시오. 삼대제자가 잘못을 저지른 건 제대로 훈육을 하지 못한 저의 탓입니다."

"그게 어찌 너의 잘못이라는 말이더냐? 네가 그 아이의 스승도 아닐진대."

"저는 모든 아이들의 스승입니다."

"하나……."

현종이 뭔가 말을 하려다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여기서 더 말을 했다가는 백매관이 아이들의 생활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문제점만 더 드러날 뿐이다.

"이 일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그 아이에 대한 본도의 신뢰가 과했음이다."

"장문인,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다. 잘잘못을 논하는 것은 아이를 찾고 나서도 늦지 않다. 혹여나 우리가 이리 시간을 지체해서 그 아이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친다면 천추의 한이 되지 않겠느냐?"

다들 깊이 고개를 숙였다.

실수야 있었다 하더라도 제자를 생각하는 현종의 마음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운암아."

"예, 장문인."

"운검을 필두로 수색대를 조직하거라.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일단은 그 아이를 찾아내고, 잘잘못은 그다음에……."

그 순간 문밖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문인!"

현종의 미간이 꿈틀댄다.

"지금은 회의 중이니 조금……."

"그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청명이 산문으로 복귀하는 중입니다!"

현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무사하더냐?"

"네. 사지는 멀쩡해 보입니다. 다만……."

"됐다. 내 직접 나가겠다!"

괘씸한 마음이 적지는 않았지만, 일단 무사하다는 말에 반가움이 앞서는 현종이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장문사형."

하지만 현영이 그런 현종을 만류했다.

"왜 그러는가?"

"장문사형."

장문인이 아니다.

현영이 슬쩍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장문사형이 그 아이를 아끼시는 건 이해합니다. 그 아이가 세운 공을 감안한다면 그만한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것도 압니다."

현종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리 뜸을 들이는 건가."

"사형. 아이를 망치지 마십시오."

"……."

"신상필벌은 문파를 다스리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바르게 키워 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그에 합당한 벌을 받지 않는다면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는 법입니다. 아끼는 아이일수록 엄하셔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현종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걸 모르겠는가? 걱정하지 말게나. 그 아이를 누구보다 바르게 키워 내고 싶은 건 나일세. 아이가 무사하다면 보름간 폐관을 명하겠……."

"그거로는 안 됩니다."

현종의 말을 자른 건 운검이었다.

"사사로이 명을 어기고 복귀하지 않은 죄는 중합니다. 적어도 반년간 참회동에 가두어야 합니다."

"운검아. 이제 겨우 삼대제자인 아이가 한 일이다."

"이대제자가 저지른 일이라면 일 년으로도 부족합니다. 청명에게 합당한 벌을 주지 않으신다면 제가 그 벌을 대신 받겠습니다."

현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화산의 장문인이라는 자리는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모두의 의견을 규합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리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같은가?"

"그러합니다."

"장문인. 저희를 탓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의 재능을 아끼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엄해야 하는 법입니다."

현종이 얼굴을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현종이 굳은 얼굴을 풀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좌정하고 있던 이들도 모두 일어서 그의 뒤를 따랐다.

운암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자고 이런 짓을 저질렀느냐. 이 녀석아.'

현종이 청명을 얼마나 아끼는지 아는 사람은 운암 외에는 없다. 그러니 지금 현종의 심정이 어떤지를 이해하는 사람도 운암 외에는 없을 것이다.

산문에 거의 도착하자 문 안으로 들어오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저……."

운검과 현영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어디 하나 다친 곳이 없다. 그렇다면 지은 죄를 알고 자숙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어디 하나 반성하는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되레 어깨를 쭉 펴고 당당히 걸어 들어오지 않는가?

"네 이놈!"

참지 못한 현영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이들을 발견한 청명이 고개를 갸웃한다.

"다들 어디 가세요?"

"네 이놈! 네 어디 방자하게 입을……."

"장문인을 뵙습니다."

청명이 현종을 향해 냉큼 고개를 숙이자 버럭 소리를 지르던 현영이 어정쩡하게 말을 끊었다.

'저, 저놈이?'

"청명아."

"예, 장문인."

"본산을 비운 이유가 있더냐?"

"예, 장문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현종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해 보거라. 만약 네 설명이 우리를 납득시키지 못할 시에는 그에 합당한 벌이 주어질 것이다. 화산의 법도는 지엄하다."

현영이 참지 못하고 첨언했다.

"어디 삼대제자가 이리 방자하게 구는 것이냐! 제대로 된 이유를 대지 못한다면, 혼쭐이 날 줄 알아라, 이놈! 장문인께서 네게 호의를 베풀었거늘! 호의를 이런 식으로 보답하다니!"

청명이 슬쩍 현영을 바라보고는 머리를 긁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이놈이! 자세를 바로 하지 못할까?"

그 대답은 청명의 뒤에서 들려왔다.

"그러지 마십시오."

"응?"

그제야 청명이 혼자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아챈 이들이 일제히 산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황 대인?"

"화, 황 대인이 아니십니까?"

"몸이 성치 않다고 하시더니?"

산문으로 들어온 황문약이 모두를 쭉 한번 돌아보았다. 현영에게 살짝 머물렀던 시선이 이내 장문인에게로 향한다.

황문약이 포권을 하며 허리를 굽혔다.

"장문인을 뵙습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황 대인.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몸이 좋지 않다고 들었는데 쾌차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짐짓 태연한 척 말을 받았으나, 사실 현종은 내심 당황했다.

'아, 아니 여기 황 대인이 어떻게?'

기식이 엄엄하여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다는 서찰을 받은 것이 불과 칠 주야 전이 아닌가?

그런 황 대인이 조금 마르기는 했지만,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그제야 현종의 눈에 산문으로 들어서는 은하상단의 인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문인. 그리 노여워 마십시오. 제가 이 소도장 덕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소도장께서 저를 살리고 은하상단을 살렸습니다."

"예?"

"화산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직접 감사를 드리고자 방문한 것입니다."

"……대체."

모두의 시선이 청명에게로 향했다.

청명이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뭐, 그렇대요."

'아.'

'얄밉다.'

'어쩐지 화가 난다.'

사람 속을 터뜨리는 데는 지금도 천하제일인 청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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