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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59화 (60/1,567)

59화. 소도장은 정말 도사인가? (4)

"아버님."

황문약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황종의를 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음. 믿기 어렵겠지만, 정말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볍구나. 마치 십 년은 젊어진 것 같다."

"그것참…… 기이한 일입니다."

"의원들도 영문을 모르겠지만, 맥이 활발하고 젊은이들처럼 정정해졌다 하는구나."

황종의의 눈에 당혹이 어렸다.

황문약이 병상을 털고 일어난 것은 더없이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몸져누워 있었던 황문약이 이리 짧은 시간 만에 몸을 회복하는 것도 기이하고, 되레 그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것은 더욱 괴이한 일이었다.

"여하튼 감축드리옵니다."

"낯간지러운 말은 그만두어라."

황문약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소도장의 능력이 대단한 것뿐이다. 그저 그 은혜를 받은 것이지."

황문약이 청명이 그에게 처음 한 말을 떠올렸다.

- 신선?

'그리 틀린 말도 아니지.'

'신선'이 도를 닦아 인간을 벗어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라면 저 화산의 아이에게 신선이라는 말을 붙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 스스로가 증거 아닌가.

"그래서 무슨 일이냐? 이미 완치된 것을 확인한 마당에 내 안위만을 살피러 온 것은 아닐 터이고?"

"소자가 스스로 효심 깊다 자부하지는 못하지만, 그리 불효자는 아닙니다. 자식이 어버이의 안위를 살피는 것이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싱거운 소리 말고 본론만 말하거라. 시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황종의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쩍 마른 몸임에도, 황문약은 완연한 상인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역시 아버님이시구나.'

그럼 말을 꺼내기가 수월하다.

"아버님. 아니, 단주님."

"말씀하시게. 소단주."

호칭을 바꿈으로써 대화가 가족의 영역에서 상단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종남과의 거래를 줄이라 지시하셨다 들었습니다."

"내 그리하였네."

"그리고 화산에도 꽤 많은 보상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하네."

"아버님. 종남은 서안의 패자이자 섬서의 유력 문파입니다. 그런 곳을 멀리하고 다 쓰러져 가는 화산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입니다."

황문약은 딱히 이렇다 할 대답 없이 천천히 고개만 끄덕였다.

"단주님께서 소도장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시는 것이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에게 약속한 보상은 너무도 과하고, 화산과의 관계를 깊이 가져가는 것 역시 위험합니다. 정 그리 마음먹으셨다면 종남과의 거래라도 전처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황문약이 한층 더 깊어진 눈으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차의 향을 음미한 그는 차를 한 모금 머금고 눈을 감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히 잔을 다시 내려놓은 황문약은 조금 더 진중해진 목소리로 입을 연다.

"소단주."

"예, 상단주님."

"상인의 본분이 무엇이오?"

"그야……."

살짝 고민하던 황종의가 입을 열었다.

"상인의 본분은 정도를 따르는 사업을 하여 상계를 건전하게 만들고, 나아가 나라와 세상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허허허허허."

황문약이 흡족하다는 듯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소단주."

"예!"

"입에 기름이 끼었구려. 참 그럴싸하오."

"……단주님?"

황문약이 단호하게 말했다.

"상인의 본분은 돈을 버는 것이오. 법과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아니 때로는 그 법과 도리마저 걸리지 않는 선에서 어겨 가며 돈을 좇는 게 상인이오. 그렇지 않소?"

황종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습니다."

"정도를 행하고 싶으면 번 돈으로 행하시오. 남을 돕고 싶다면 그 돈으로 도우면 됩니다. 상인이 돈을 버는 행위에는 정도, 사도 없소. 오로지 효율만 있을 뿐이오."

"그럼 어찌……?"

그 말대로라면 지금의 선택은 더더욱 이상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욱일승천하고 있는 종남과의 거래를 줄이고 화산과의 거래를 늘리다니.

이 사실을 종남이 알게 되면 은하상단과의 거래를 끊겠다고 나서도 이상하지 않다.

"잊으셨소? 내가 어찌 돈을 벌었는지?"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나……."

황문약이 돈을 버는 방식은 간단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물건의 가치를 알아내어 유통하거나, 아직은 저평가 되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어 후원한다.

그것이 문파이든, 다른 상단이든, 심지어는 무뢰배들이든.

황문약은 그런 식으로 은하상단을 키워 왔고, 결국에는 섬서에서 제일가는 상단으로 만들어 내었다.

"이번에는 화산에 투자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이다."

"하지만 상단주님. 지금까지의 투자에는 명확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화산에 투자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직접 보지 않았소?"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허나……."

황종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청명은 대단하다. 그건 부정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건 청명의 대단함일 뿐이다. 한 사람의 역량이 문파 전체의 대단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저리 어린아이라면 더더욱.

"저 아이가 있어 화산이 발전하리라는 것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예상하는 이상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단 것도 이해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상단주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 아이 하나로 인해 화산이 종남보다 세가 강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아닙니까?"

황문약이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생각하시오? 나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만."

"……상단주님."

"소단주. 상인은 현상이 아니라 이면을 보아야 하오. 한때는 은하상단이 종남에게 중요한 곳이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저 흔한 상단들 중 하나일 뿐이오. 우리가 종남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내는 시절이 얼마나 더 이어질 것 같소?"

황종의가 멍한 눈으로 황문약을 바라보았다.

여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기목승의 태도도 고압적이기 짝이 없지 않았는가?

아무리 황문약이 병석에 누워 있었다고는 하나, 은하상단을 조금이라도 존중했다면 감히 그리 방약무인하게 굴진 못했을 것이다.

"종남은 이제 더 나아갈 곳이 없소. 물론 나아가기야 하겠지만 더디고 또 더디겠지. 하지만 화산은 아니오. 만약 화산이 내 생각대로 성장하고, 또 우리가 그 화산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거기서 나오는 이득은 상상할 수 없이 클 것이오."

"하나, 상단주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화산이 그리 클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황문약의 눈이 가늘어졌다.

"종의야."

"예! 아버님."

다시 호칭이 바뀌었다.

"어리석은 소리를 하는구나. 상인은 근거를 가지고 기다리는 자가 아니다. 근거를 만들어 내어야지."

"……."

"화산이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화산을 성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일을 성공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섬서 제일 상단이 아니라 중원 오대 상단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입니다. 실패한다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허허. 몸이 건강해지니 마음도 젊어지는구나. 실패하면 뭐 어떠냐? 그럼 다시 시작하면 그만이지. 너는 이 재산이 아깝더냐?"

"……."

"나는 아깝다. 너무 아깝다. 하지만 그보다 이보다 더 큰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황종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의 아버지는 마음을 굳혔다. 더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저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아버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믿고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손으로 이 마음의 의혹을 걷어 낼 수 있도록 화산을 키워 내겠습니다."

"좋군. 간만에 듣는 좋은 소리야."

황문약이 기껍다는 듯이 껄껄 웃었다. 그러나 황종의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음?"

황종의가 이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 한들, 그 소도장에게 주신 재물과 보답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닙니까?"

"그게 핵심이다."

"예?"

황종의가 의문이 담긴 눈으로 황문약을 올려다보았다.

그 의문에 답하듯 황문약이 빙그레 웃는다.

"너는 그 소도장이 어찌 되리라 생각하느냐?"

"성장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황종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심계와 결단력을 감안한다면 훗날 당연하게도 화산의 요직에 앉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면 화산의 장문인까지도……."

황종의가 말끝을 흐렸다.

이건 함부로 할 이야기가 아니다.

"여튼, 크게 될 아이지요."

"아니. 그는 이미 큰 사람이다."

황문약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상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수많은 거상들과 수많은 고수들을 만나 보았지만, 나를 이토록 당황시키고 감탄시킨 이는 그 아이가 유일하다. 어떻게든 이무기를 찾아보겠다고 천하에 돈을 풀었건만, 내 눈앞에 이무기도 아닌 승천을 준비하는 용이 들어온 셈이지 무어냐. 잡지 않을 도리가 없지."

"그 정도란 말입니까?"

"너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무릇 천하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평범한 이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저 지켜보거라. 그럼 자연히 받아들이는 때가 올 것이다."

황종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황문약이 그렇다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그럼 과한 재물을 주신 이유는?"

"그는 기본적으로 도가의 제자다. 그리고 아픈 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이곳으로 달려올 만큼, 나름의 협심도 지니고 있다. 물론 그가 오로지 협의지심만으로 이곳에 오지는 않았겠지만, 본성이 선하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으음."

황문약이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미묘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렇다면 지금 받은 재물과 선물은 그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짐이 될 것이다. 특히나 어린 나이이니 더욱 강렬하겠지. 그 정도 재물로 그에게 끊어 낼 수 없는 족쇄를 채울 수 있다면 싸게 먹힌 게지."

"정말 싸게 먹힌 겁니까?"

"……사실은 생각보다 다섯 배는 더 나갔다. 독사 같은 놈이었어."

"……."

황문약의 얼굴에 왈칵 짜증이 어린다.

"아니, 어린놈이 바라는 게 뭐가 그렇게 많아! 빌어먹을, 그만큼이나 뜯길 줄 알았으면 그냥 아픈 척하고 어떻게든 돌려보낼 것을! 아귀도 아니고 그렇게나 뜯어낼 줄이야! 나이가 어린놈이라 적당히 던져 주면 고마워서 눈물이라도 흘릴 줄……."

"진정하십시오, 아버님. 누가 들을까 걱정됩니다."

"크흠. 크흐흐흠!"

불쑥 튀어나온 본심을 꾹꾹 다시 밀어 넣은 황문약이 몇 번이나 입맛을 다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우리를 고맙게 생각해 주고, 평생 함께 갈 친우로 받아들여 준다면 상단은 손해 볼 것이 없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몇 배의 이득을 얻어 낼 수 있을 게야."

"이해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어야겠군요."

"그렇지. 그럼. 좋은 친구지."

황문약과 황종의가 의미심장하게 서로 마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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