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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28화 (27/1,567)

28화. 화산이 복덩이를 얻었구나. (3)

"장문인!"

"장문인! 눈을 떠 보십시오."

현종이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꿈?'

바로 몸을 일으켜 보니 궤짝이 여전히 그의 눈앞에 있다. 다행히 꿈은 아니었다.

"우, 운검!"

"예! 장문인!"

"아해들을 불러와라. 당장 저 궤짝을 장문인 처소로 옮겨라! 그리고 운자 배들을 시켜 처소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도록 해라!"

"예! 장문인!"

"아니, 아니다! 내가 직접 옮기겠다! 지금 당장!"

현종이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경각주를 불러 저 물건들이 진품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진품이 아닐 리가 있나!'

저 물건들이 진품이 아니라면 왜 연화봉에 묻혀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저리 막대한 재물들과 함께.

'아니, 아니야! 아니야! 그래도 모든 것은 확실해야 한다.'

그의 안에서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최근 몇십 년 간 이토록 그의 속이 이리 격동한 적이 또 있었던가?

"운검!"

"예! 장문인."

"호위하라. 물건을 가지고 일단 산을 내려간다!"

"알겠습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현종의 눈에 청명의 모습이 들어왔다.

"청명아!"

"예. 장문인."

"고생했구나.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예."

청명이 별말 없이 뒤로 물러나자 현종이 서둘러 궤짝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청명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너는 아이들을 데리고 백매관으로 가 있거라."

"그러겠습니다."

"그럼!"

이윽고 현종은 경공을 펼쳐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운검이 다급하게 그의 뒤를 쫓았다. 연화봉에 남은 아이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되가는 일이래?"

"……그러게?"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의 틈에서 청명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단은 이 정도면 되겠지.'

궤짝 안에 든 재물과 비급들은 비고 안에 들어 있던 것의 일부에 불과하다.

왜 일부만 줬냐고?

그건 화산의 것이 아니라 이 청명의 것……. 아니 그게 아니라!

'급히 먹으면 체하는 법이지.'

허기에 죽어 가던 이에게 영양을 보충시킨답시고 기름진 고깃국을 먹이면 몸이 버티지 못한다. 그 증거로, 저만한 것만으로도 장문인의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 아닌가?

많이 풀어 주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청명이 판단하기에, 지금의 화산은 비고 속의 물건들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당장 달리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우선은 걸음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법이다.

물론 청명의 입장에서는 걸음마지만, 저들의 입장에서는 절대 걸음마가 아니겠지.

그때 윤종이 청명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말했다.

"사제."

"응?"

"관주님이 내려가라고 했으니, 일단은 백매관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청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런데 사제 정말 몰골이 왜 그런 거야?"

"끄응. 그럴 일이 좀 있었어."

청명이 손을 내저었다.

'말한다고 네가 알겠냐.'

선천진기를 끌어 쓴 덕분에 몸 상태가 시시각각 나빠졌다.

'조금 덜 끌어 썼어야 하는 건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과거에는 진기에 대한 감각이 완벽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그 수준까지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몸은 과거 그의 몸과 여러모로 다르다.

새로운 몸으로 선천진기라는 민감한 기운을 처음으로 끌어내면서 딱 적당한 정도로만 사용한다? 그게 가능했다면 그는 검존이 아니라 무신으로 불렸을 것이다.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인데?"

"안 죽어."

"진짜로?"

"……죽었으면 좋겠냐?"

윤종이 대답 없이 시선을 살짝 돌렸다.

어?

입을 다물어? 진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냐? 이 새끼 눈 까는 게 수상한데?

"안 죽으니까 기대하지 말지?"

"기대는 무슨 기대를 했다고 그러느냐. 크흠."

청명이 혀를 찼다.

'정말 한두 달은 꼼짝없이 정양행이로군.'

선천지기라는 건 그렇게 쉽게 회복이 되지 않는다. 세심히 정양 생활을 하더라도 두 달은 고생해야 본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영약이라도 챙겨 먹든가.

"그런데 방금 그건 어떻게 발견했냐? 장문인이 놀라시는 걸 보니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던데."

"착하게 살면 천존께서 굽어살피시는 법이다. 그러니 착하게 살아."

"……."

청명이 복을 받을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이미 등선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을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청명은 슬쩍 시선을 내려 연화봉을 뛰어 내려가는 장문인을 바라보았다.

'이만큼 챙겨 줬으면 알아서 잘하겠지.'

바보는 아니니까.

"자, 내려가자."

"그래야지. 그런데…… 너 어디로 가냐?"

"왜?"

"내려가려면 이쪽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윤종이 아래쪽을 가리켰다.

"뭐 뻔한 걸 묻고 그래?"

"그런데 왜 위쪽으로 가냐고?"

"쯧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찬 청명이 윤종을 바라보며 말했다.

"사형."

"……응?"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사고가 유연해야 하는 법이야. 내려가는 길이 꼭 한쪽이라고 생각하지 마. 정상을 찍고 내려가는 것도 수많은 방법 중 하나지."

'뭔 개소리야, 이 미친놈아!'

"자. 장문인은 장문인이고 우리는 할 거 해야지. 오늘 꼴찌 하는 열 놈은 밥 없다. 뛰어!"

불만을 채 털어놓을 새도 없이 윤종의 발이 정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기겁하며 정상을 향해 뛰었다.

'저 악마 같은 새끼!'

'귀신은 뭐 하나! 저 새끼 안 잡아가고!'

전력으로 연화봉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을 보던 청명이 히죽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일단 첫 번째 선물은 줬고."

다음에는 또 뭘 준비해야 하나?

비동에서 빼낸 물건들은 아직 한참 남았다. 궤짝에 넣어 둔 재물은 비동에 있던 재물에 비한다면 십분지 일도 되지 않는다.

청명이 슬쩍 하늘을 바라보았다. 장문사형이 일그러진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것 같다.

"에이. 설마 제가 그걸 혼자 먹겠습니까?"

적당히. 적당히. 예? 적당히.

"히힛."

청명이 히죽 웃으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 올라갔다.

* * *

"진품입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당연히 나와야 할 대답이고,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말임에도 그 충격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현종이 차마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합니다. 장부는 분명 진품이고, 재물 아래쪽에 깔려 있던 증서도 확보했습니다. 장문인!"

"허어! 허어어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바람 빠지는 듯 쉰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어, 어찌 이런 일이……."

"됐습니다! 됐습니다! 장문인!"

"허……. 허허허허."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웃음이 흘러나온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세상이라지만, 이런 귀한 것들이 공교롭게도 이때 발견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만일 일주일이라도 늦게 발견이 됐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천존께서 굽어살피셨구나.'

아니, 천존이 아니다. 선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화산의 선대들이 그를 도운 것이 틀림없다.

둘 다 그리 다른 말은 아니지만.

현종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격정을 숨길 수가 없다.

"그럼 장부의 내용을 증명할 수 있는 건가?"

"나라에서 내린 증서들입니다. 당연히 증명할 수가 있지요! 지금 당장이라도 태화루를 비롯한 화음의 사업장들을 되찾아 올 수 있습니다."

"잘되었소. 정말 잘되었소."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일주일 뒤면 거리에 나앉게 생겼던 화산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증서들과 장부만 있다면 화산의 전각들을 지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저 화음의 사업장들도 모조리 되찾을 수 있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재경각주 현영(玄永)이 껄껄 웃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설사 이 모든 것들이 가품이라고 해도 당장의 위기는 넘겼습니다. 궤짝 안에 들어 있던 재물이 못해도 십만 냥은 훌쩍 넘습니다. 저들이 갚으라 요구하는 돈을 모조리 갚고도 남습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 돈만 있다면 화산의 재정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사업체를 몰수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들어도 들어도 좋은 소리만 흘러나온다. 현종의 귀에는 그 목소리가 절세가인의 옥음처럼 들렸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무각주(武閣主) 현상(玄商)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칠매검(七梅劍) 역시도 진본인 모양입니다. 조금 더 연구를 해 보아야겠지만,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특별한 오류가 없습니다. 그리고 화산 무학 특유의 쾌(快)와 환(換), 그리고 호연지기가 있습니다."

"오오."

"그리고 낙화검(落花劍)의 비급이 나온 것도 고무적인 일입니다. 낙화검은 칠매검과 같은 고절한 무학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칠매검을 익히기 전 단계를 완벽하게 채워 줄 수 있습니다. 진육합검에서 칠매검으로 넘어가기 위한 중간 과정이 되어 줄 겁니다."

"그, 그렇군."

"그 외에 죽엽수(竹葉手)와 암향표(暗香飄), 칠성보(七星步)도 진품인 것 같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현종은 의식적으로 말을 줄였다. 여기서 말이 많아지면 못난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실전되었던 칠성보가 나온 것부터가 이루 말로 할 수 없는 이득입니다. 칠성보는 모든 화산 무학의 기본이 되는 보법이 아닙니까. 아이들에게 익히게 한다면 지금까지 익혀 온 무학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도 더 나은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겁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물론입니다. 장문사형."

"화산의 홍복이구나. 홍복이야."

그때, 장문인의 눈치를 살피던 현상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슬쩍 닫았다.

그리고 현종은 그 기미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니, 아닙니다. 노파심이겠지요."

"무학에 혹여?"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이 무학은 진품입니다. 그건 제 목을 걸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장문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상도 웃음으로 상황을 얼버무렸다.

"이걸 삼대제자가 발견했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다네. 얼마 전에 입산한 청명이라는 아이지."

"상을 내려야 합니다."

"아암. 상을 줘야지. 그 아이 덕분에 화산이……."

"그런 게 아닙니다. 장문인."

재경각주 현영이 현종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입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입니다. 화산에 마음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렇지."

"그 아이가 이 장부와 무서의 가치까지는 알아보지 못한다고 쳐도 이 재물들의 가치마저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저라면 궤짝을 열어 보는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물건을 들고 날았을 겁니다. 그게 아니면 묻어 두고 감추든가요."

살짝 상스러운 말이 나왔다. 그만큼 현영이 흥분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말만큼은 틀린 게 없었다.

"그렇구나. 내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

"기특합니다. 기특하고 또 기특합니다. 화산에 뼈를 묻기로 작정한 이도 마음이 흔들릴 만한 재물입니다. 제가 이 재물을 보았다고 해도 과연 장문인께 바로 말씀드릴 수 있었을지……."

"그 말 내 기억하겠네."

"……자, 장문인?"

재경각주 현영의 얼굴에 당황이 어렸다. 그 얼굴을 보며 현종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구나. 기특하구나. 그래. 화산이 복덩이를 얻었구나."

현종이 흐뭇하게 웃었다.

우연에 우연이 겹친 결과이기는 하지만, 청명을 들인 덕분에 이 궤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을 바꿔 아이 하나를 들인 것이 화산을 구하는 결과가 될 줄이야.

"현영."

"예. 장문인."

"이 장부가 틀림없다는 말이 사실이겠지?"

"제 목을 걸어도 좋습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불러야 할 사람들이 있지."

현종의 눈에서 무거운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는 화산의 은혜를 원수로 갚은 이들을 단죄할 시간이다.

"관련된 이들 모두 화산으로 들라 하라."

대화산 장문인 현종이 그 어깨를 쭉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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