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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귀환-6화 (5/1,567)

6화. 세상에, 화산이 망하네. (1)

"드디어!"

청명은 손에 잡은 지팡이에 힘을 주었다. 그의 눈에 드디어 화산의 웅대한 모습이 들어왔다.

"드으디어어어어!"

눈물이 핑 돈다.

이곳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아니, 일반인보다 못한 아이의 몸을 이끌고 이곳까지 오느라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길에서 겪는 위기와는 조금 달랐다. 대체로 아사나 탈진의 위협이었으니까. 하지만 위험한 거야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여하튼 그 끔찍한 고난을 헤치고 헤쳐, 마침내 청명은 화산에 도달했다.

"……길었다."

이곳까지 오느라 한 고생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한 편의 영웅서사시가 나올 판이다. 아니, 거지서사시가 나올 판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청명의 몰골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무학을 익히면서 기력을 얻기는 했지만, 몸을 회복하는 데 쓰여야 할 기력이 모조리 걷고 뛰는데 소비되다 보니 몸뚱이가 튼튼해지기는커녕 되레 더 약해졌다.

얼마나 피골이 상접하였는지, 보는 이들마다 절로 눈을 찌푸릴 정도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나마 누더기의 형상을 하고 있던 옷도, 이제는 거적때기라든가 천의 형태를 갖추었던 그 무언가로 불려야 할 지경이 되었다. 달라붙은 먼지는 또 어떻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청명이 마침내 화산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청명은 자신도 모르게 눈가를 훔쳤다.

'다시 태어나기만 하면 끝내주게 잘살 수 있다고 했던 놈들 내가 대가리를 깨 버릴 거야.'

다시 태어나는 것도 누구로 태어나는 가가 중요하다.

부모도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거지로 다시 태어나면 차라리 환생하지 않은 것만 못했다.

하지만 모든 고난은 이걸로 끝이다! 마침내 화산에 도착했으니까! 그러니 이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대체 화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올라간다!"

청명이 힘차게 지팡이를 짚으며 화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허어어억! 허억! 허어어어억!"

절벽의 경사면에 달라붙은 청명은 폐가 튀어나올 듯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무슨 도관이!"

이딴 산 위에 있나! 이딴 산 위에!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산 위에다가 도관을 짓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어쩐지 소림이나 무당에는 향화객(香火客)이 넘쳐난다는데, 화산에는 찾아오는 이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싶었다.

청명이 슬쩍 고개를 내려 아래를 바라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절벽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과장하지 말라고?

명백한 사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지금 그의 아래에 구름이 떠 있으니까! 이 미친 산은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로 높은데, 올라가는 길이라고는 수직으로 뻗은 절벽에 난 작은 소로뿐이었다.

아니지. 이건 소로도 아니지.

이걸 길이라고 부르면 참새도 봉황이다.

두 발을 동시에 디딜 수도 없어서 등짝을 절벽에 붙이고 게걸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을 길이라고 부를 수 있나?

"빌어먹을! 무슨 생각으로 이런 산 위에다 도관을 지은 거야!"

화산에 도착하는 그 즉시 조사전으로 뛰어가서 삿대질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사실 따져 보면 청명도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 사형. 화산이야말로 검문으로서의 자격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저 우뚝 솟은 봉우리는 그야말로 검의 형상이 아닙니까? 조사께서 참 좋은 곳에 터를 잡으신 것 같습니다.

"……지랄을 했네, 지랄을."

뭐? 봉우리가 검 같아?

검 같네. 아주 검 같아. 얼마나 검 같은지 봉우리를 오르는 길이 칼날을 타고 올라가는 것 같네.

오악(五岳) 중에 화산의 산세가 험하고 가파르기로는 으뜸이라더니. 무공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절실하게 느끼는 청명이었다.

"진짜 죽겠네."

농담이 아니라 정말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다. 팔다리는 벌써 후들거리기 시작했는데, 아직 올라야 할 산이 한참이나 남았다.

이러고도 입문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숨을 쉬었으니, 화산이라는 도관이 얼마나 잘못 돌아가고 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끄으응."

청명이 신음을 내며 벽에 바짝 붙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는 무슨 포기란 말인가? 산이 거기에 있다면 오르는 게 사람의 일이다! 근성과 용기로 오르고 또 오른다!

……사실 이제 내려가는 게 더 위험해.

……진짜로.

* * *

턱!

절벽의 끝에서 손이 솟아올랐다.

파르르 떨리던 손이 절벽 위를 움켜잡는다.

"끄으으으으!"

하얗게 질린 손끝이 애처롭다. 바짝 힘이 들어간 손이 몸을 아등바등 끌어 올린다.

"아이고 죽겠다!"

겨우겨우 몸을 끌어 올린 청명이 바닥에 그대로 자빠져 드러누웠다.

"허억! 허어억! 허억! 뒈질 뻔했네!"

고개를 돌리자 까마득한 아래로 구름이 보인다.

이 어린아이의 몸으로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생각을 하니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어졌다.

잘도 안 떨어졌네. 잘도 안 떨어졌어.

한참이나 하늘을 보며 할딱이던 청명이 다시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무지막지한 산을 다시 이 몸으로 내려가지는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이제는 화산에 뼈를 묻을 일만 남았다.

'어디 보자.'

몸을 일으킨 청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마 이쯤이었던 것 같은데.

앞쪽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언덕길이 보였다. 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화산이 나온다. 청명의 다리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백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서야 그는 마침내 화산에 도착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근 한 달 만에 오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백 년 만에 도착했다고 하자. 그게 더 멋지니까.

언덕길을 오르는 건 거짓말 조금 보태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몸은 완전히 지쳐 버렸지만, 화산에 도달했다는 생각에 절로 힘이 나는 듯했다.

"아아……."

멀리 화산 정문의 기와가 보이기 시작하자 청명의 눈이 아련함으로 물들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뀔 시간이 흘렀건만, 그의 눈에 보이는 기와는 변함이 없었다. 저 완만한 곡선에는 여전히 부드러움 속에 결코 꺾이지 않는 화산의 정기가 담겨 있다.

그래, 저 낡고 군데군데 기와가 빠져 있는 처마에…….

응?

낡아?

기와가 빠져?

청명이 소매로 눈을 비볐다.

내가 잘못 봤나?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눈앞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더 다가갈수록 반쯤 허물어진 정문의 모습이 더 확연하게 들어왔다.

"……."

할 말을 잃은 청명이 걸음을 멈췄다.

무릇 정문이란 그 문파를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먼저 보는 곳이다. 그렇기에 각 문파들은 내부야 적당히 꾸미더라도, 정문만은 최대한 웅장하고 깔끔하게 만든다.

과거의 화산도 그랬다.

검소하고 소탈해야 하는 도문의 특성상 화려하게 만들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화산의 기상이 느껴질 수 있도록 튼튼하고 웅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유지하려 했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군데군데 기와가 떨어져 있고, 이가 나가 있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기와라는 건 결국 상하기 마련이고 때가 되면 적당히 갈아 줘야 하는 물건이니까.

하지만 금이 쩍쩍 가고 칠이 벗겨진 기둥과 검게 썩어 문드러진 문이라니! 게다가!

'거, 거미줄이…….'

다른 것들이야 자주 보수를 해야 하는 일이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처마마다 거미줄이 허옇게 쳐져 있는데, 그것조차 걷어 내지 않고 있다는 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화룡점정은…….

"현판 어디 갔어! 현판!"

현판이라는 것은 그 문파를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던가. 그게 도대체 어디 갔냐고!

용사비등(龍蛇飛騰)의 필체로 '대화산파(大華山派)'라고 써져 있던 현판이 온데간데없었다.

그거 우리 장문사형이 아침마다 올라가서 닦던 건데! 그거 어디 갔냐고! 그거!

청명의 다리가 힘을 잃기 시작했다. 비척대는 걸음걸이로 간신히 정문 바로 앞까지 걸어간 청명은 말을 잃고 망연히 화산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 내가 알기로 거기 망했는데?

- 화산파?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예전에 유명했던 검문이지 않았나? 듣자 하니 천마에게 당해서 쫄딱 망했다고 하던데? 아직 남아 있나?

"……망했다고?"

화산이?

청명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니, 이게 뭔 개 같은 소리야!"

다른 이들이라면 절망에 빠질 상황이지만, 청명은 치밀어오는 울화를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뒤집어졌다.

화산이 망하다니!

망할 게 따로 있지, 화산이 왜 망해! 화산이!

"세상에 화산이 망하네. 화산이. 허……."

아무리 현실을 부정하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몸을 들썩거린 청명이 참지 못하고 결국 노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장문사형! 그러게 왜 그랬소! 왜! 내가 그만큼 그러지 말자고 했잖아! 이 답답한 양반아! 내가 그만크으으으으음!"

사실은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화산이 정말 망했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아무리 귀를 활짝 열어도 화산에 대한 소문은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무당이나 소림, 심지어 같은 섬서에 있는 종남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간간이 들을 수 있었건만, 화산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짜기라도 한 듯 일언반구도 없었다.

화산이 예전과 같은 성세를 구가하고 있다면……. 아니, 그저 문파 같은 꼴을 유지하기만 했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내가 적당히 하자고 했잖습니까. 사형."

- 야, 이놈아. 화산은 도문이다. 고고해 빠진 도사 놈들이 산속에 처박혀서 혼자 도나 닦고 신선이 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타인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놈들은 도를 논할 자격도 없다.

"……그래도 적당히 했어야지."

장로들과 일대제자들, 그리고 이대제자까지 싸그리 대산에서 전멸했다. 수많은 문파들이 자신들의 최정예를 아낌없이 투입한 결사대라고는 하지만, 화산만큼 있는 살림 없는 살림 모조리 끌어다 바친 문파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창 문파를 이끌어야 할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조리 죽은 데다가, 그 뒤를 이어야 할 일대제자들과 이대제자들도 거의 전멸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겨우 약관에 불과한 삼대제자들과 제대로 무학도 익히지 못한 어린 이대제자들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수로 대화산의 이름을 이어 가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실낱같던 희망마저 모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낡다 못해 쓰러져 가는 정문만 봐도 알 수 있다.

화산이 망했다는 걸.

"사형. 사형!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수. 남한테 퍼 주고 도문의 이치를 따라 봐야 남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잖소이까! 이 꼴을 보려고 그러셨소? 이 꼴을? 화산이 사형의 대에서 망했소! 사형 대에서! 저승에서 조사들의 얼굴을 어찌 보고 계시냐는 말이외다! 이 답답한 사람아!"

청명은 그 자리에서 드러누운 채 악을 썼다. 그의 원망은 메아리로 울리며 다시 돌아왔다.

"미치겠네. 진짜."

백 년 만에 살아났더니. 사문이 망했다.

이 사문을 지키고 강호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건만……. 그 결과가 이거라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위해 목숨까지 버려 가며 싸웠단 말인가?

허탈함이 몸을 녹이는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요?"

낯선 목소리가 청명의 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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