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금세가 절대무신-223화 (224/225)

223화 절대무신 (5)

223화 절대무신 (5)

단 한 사람. 오직 단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가 아니었다. 수천의 마교도를 잡아먹은 괴물이었다.

천희수도 원래 이럴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광마를 빨아들이고 났을 때의 만족감이 너무나 황홀했다. 또한 천유현이 본인 앞에서 환마를 빨아들였을 때, 얼마나 강해졌는지 생각하면 차라리 혼자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퍽 냉정했던 그가 이렇게 생각이 변한 건 속성으로 익힌 마공 때문이었지만, 천희수가 그것을 알 수는 없었다.

“흐흐흐.”

다름 아닌 삼선 중 둘을 묶어놓고, 심지어 압도하고 있었다. 그 강함에 취하기도 바빴다.

“죽어라!”

천희수의 두 손이 스치면서 보라색 화염이 뿌려졌다. 멀리서 보면 불꽃이 감싸진 채찍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오유해와 소취악은 계속 피하면서 빈틈을 노리려고 했다. 수천을 먹은 천희수보다 내공은 약하지만, 깨달음이나 초식은 앞서있었다.

보라색 불꽃은 바다 안에서도 얼마간은 꺼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뜨거운 불이 물을 증발시키면서 뿌연 연무를 만들어냈다. 강기가 섞인 연무가 진해 앞바다에 감돌았다.

그때 즈음에는 정파의 무인들이 많이 후퇴한 후였다. 이미 그들은 일사불란하여 한 몸이라고 해도 충분했다. 당가주 당해립이 인도하여 가니 철수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어떤가. 저 자의 무공은.”

“글쎄.”

종리운과 팽의석은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해안가에 서있었다.

저런 고밀도의 강기가 난무하는 싸움은 칠존인 그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허나 깨달음이 동반된 강함은 아닌 것 같아. 불필요하게 쓰이는 내공이 많지 않나. 저건 몸으로 돌아가지 않고 증발시키고 있어. 영약빨을 내세운 명문의 무인하고 비슷한 상황이야.”

“나도 그건 동의해.”

종리운과 팽의석은 오랜만에 의견이 일치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천희수는 곧 내공이 고갈될 것이었다.

오유해와 소취악도 그렇게 생각하는 듯, 공격을 맞받아치는 것보다 흘리는 방향으로 수비했다.

그야말로 온갖 신공절학들의 싸움이었다. 취팔선보(醉八仙步),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 백화은하검(百花銀河劍), 천마신공(天魔神功)···.

그러나 싸움은 예측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왜인지 천희수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강해졌기 때문이다.

확실히 천희수가 빨아들인 내공을 전부 사용하지 못하는 건 맞았다. 그러나 천추마령신공은 계속해서 단순히 내공만 빨아들이는 흡성대법이 아니었다.

깨달음, 생명마저 흡수할 수 있는 신공 중 신공이었다. 그러니 정파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는 정반대였다. 천희수는 한 번에 얻은 깨달음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와중, 싸우면서 깨달음을 소화해나갔고 그건 눈에 보일 정도의 무공 상승을 불러왔다.

천희수가 두 팔에 감은 보라색 불꽃은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게 그 증거였다.

그러니 같은 간격으로 피해도, 아까는 닿지 않던 게 지금은 닿게 되었다. 균열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소취악의 어깨가 마기에 살짝 긁힌 것이다.

“큭!”

아주 살짝 긁힌 것임에도, 소취악의 어깨는 빠른 속도로 괴사하고 있었다. 극성에 이른 마기의 파괴력이었다. 소취악은 당황하지 않고 뒤로 몸을 빼며 재빨리 어깨 부근을 점혈했다.

검은색으로 변하던 피부가 점혈한 곳을 기준으로 멈췄다.

“조심하게!”

오유해가 외쳤다. 소취악의 심장을 향해 지풍이 날아갔다. 말이 지풍이지 권강이라고 해도 될 정도의 크기와 파괴력이었다.

소취악은 괴사하지 않은 우수를 펼쳤다. 항룡십팔장이었다.

장법과 지풍이 만나 폭발했다. 근처에 있는 바다가 뒤집혀 물보라가 일었다. 소취악은 뒤집혀진 물살에 휩싸여 신형이 보이지 않았다.

쉬익.

곧 바람 한 줄기가 불고 물보라가 사라졌다.

오유해와 종리운, 팽의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솟아올랐던 물이 다시 떨어질 때, 검게 그을린 소취악의 신형도 물속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오유해가 경악했다. 아무리 소취악이 오래 도망 다니고, 어깨가 부상당하여 제 상태가 아니었다고 해도 지풍 하나에 제압당하는 건 충격적이었다.

소취악이 물에 빠지고 거품 몇 방울이 올라왔다. 기절했을 뿐 살아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종리운과 팽의석은 더 경악할 새도 없이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 소취악을 건지려고 했다. 허나 천희수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다.

천희수는 소취악이 떨어지고 있는 쪽으로 쌍장의 장풍을 날렸다. 붉은 수인 형태의 강기가 바다로 빠르게 향했다. 마교의 무공인 혈수인(血手印)이었다.

그건 완전히 외통수였다. 그걸 보고 안 가자니 소취악을 죽이는 셈이 되고, 가자니 도우러 가는 본인들의 목숨까지 위험했다. 오유해가 이기어검을 날렸지만, 혈수인의 속도에 미치기는 어려웠다.

종리운과 팽의석은 어쩔 수 없이 몸을 틀어 혈수인을 피하는 방향으로 갔다. 바다 표면으로 혈수인이 찍어졌다.

쿵!

묵직하게 절구를 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바다 표면은 그저 도도히 흐르고만 있었다. 분명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물기둥이 솟았어야 정상이었다.

“···뭐지?”

오유해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못했다. 단지 혈수인의 기가 소멸되었을 뿐이었다.

삼선의 칭호를 받고 무언가를 놓친 경우가 있었던가. 당연히 없었다. 오유해의 경지는 멀리서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보인다. 그런데도 어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혈수인이 사라졌는가. 이건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한 셈이었다.

맞은편에 있는 천희수는 멀뚱히 바다 표면을 바라보다가, 위를 올려다봤다. 바로 천희수의 표정이 구겨졌다.

다른 정파 사람들도 그제야 몸을 비틀어 뒤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서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금목환!”

천희수가 으르렁거렸다. 그 사람이 금목환인 것을 정파 사람들은 천희수가 말해서 알았다.

금목환은 어둠 깊은 곳에서부터 하늘을 계단처럼 한 칸씩 걸어서 내려오는 중이었다.

“느, 능공허도(凌空虛道)···.”

오유해가 멍하니 읊조렸다. 하늘을 걷는 경지. 능공허도는 전설의 경지였다. 전설의 무인들, 그러니까 화경에 이른 무인들만이 쓸 수 있다는 신법이었다.

금목환이 능공허도를 쓰고 있다는 건, 그가 곧 화경이라는 말과 같았다. 멍하니 금목환을 바라보던 오유해는 곧 금목환과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금목환의 입이 열렸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태상방주님만 부탁합니다.”

그제야 종리운은 소취악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종리운은 곧장 물로 들어가 소취악을 건져냈다. 얕고 가쁜 숨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숨통은 붙어있었다.

금목환은 천희수를 본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종리운과 팽의석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

“두 분은 괜찮으시죠?”

“···그, 그래.”

종리운과 팽의석은 금목환을 바라봤다. 차가운 느낌이 들면서도 잘 조각된 이목구비. 분명 금목환이 맞았다. 그러나 그 둘은 낯설어 했다. 단순히 능공허도를 펼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팽의석보다 오래 본 종리운이 그 이상함의 원인을 알아냈다. 금목환의 표정이 편안히 풀려있는 것이었다.

금목환은 긴장한 모습까지는 아니어도 딱딱한 표정만을 했다. 요즘들어 가끔 감정을 드러내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풀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금목환은 푹신한 솜이불에라도 몸을 파묻은 것처럼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가주.”

“무슨 일이요?”

“표정이 좋아보여서 말일세.”

“그런가요.”

금목환은 고개를 살짝 떨어뜨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뭔가 민망하다는 웃음이었다. 결단코 종리운은 금목환에게서 그런 사람 냄새 나는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바뀐 이유를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런 일상적인 대화를 할 때가 아니었다. 천희수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이빨을 갈았다.

“지금 날 앞에 두고 뭘 하는 거지?”

금목환은 그제야 천희수를 봤다. 원래 물을 밟고 있던 천희수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고작 이 정도가지고 너무 자신 있어 하는 거 아닌가.”

천희수가 비웃었다. 어느덧 금목환이 천희수를 올려다보게 됐지만 표정 변화는 없었다.

“그건 능공허도가 아니야. 그저 떠오른 거지.”

“오만하구나. 네가 감히 날 평가한다는 말이냐?”

천희수는 두 팔의 불꽃을 꺼뜨렸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받치듯 두 손을 모았다. 곧 그 위에서 검의 형상이 떠올랐다. 검을 본인의 뜻대로 다루는 이기어검의 윗단계. 심검이었다. 이 역시 화경의 단계에서만 쓸 수 있어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수법이었다.

“마음으로 검을 만든다라. 난 해본 적이 없군.”

“해본 적이 없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엄청난 무공에 대기가 떨리는 게 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천희수가 만들어낸 검의 형상은 곧장 금목환을 노렸다. 검극이 부들부들 떨리는 듯하더니, 빠른 속도로 곧장 쏘아져나갔다.

쏘아져나가는 검은 엄청난 굉음과 압박을 동반했다.

쿠콰콰쾅!

그건 정말 눈 깜빡할 새에 금목환의 앞까지 다가왔다.

“피하게!”

오유해가 보기에는, 소취악이 맞은 지풍보다 곱절은 강해보였다. 그러나 금목환은 손을 느리게 들었다. 그건 너무 느려서 보는 오유해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느린 손은 신기하게도 금목환의 얼굴이 갈리기 전에 검과 같은 수평에 섰다.

지금도 숨도 쉬는 걸 까먹고 보고 있는 오유해의 눈이 한계치까지 커졌다. 금목환의 손가락이 구부러지면서 무언가를 집으려는 듯했기 때문이다. 오유해가 말릴 새도 없이 금목환의 손가락은 보라색 검의 끝을 잡았다.

잡힌 보라색 검의 형상은 엄청난 파동과 굉음을 냈다. 물에서 한참 떨어진 위인데도 파도를 거칠게 부를 정도였다.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

맨 손으로 칼날을 잡는 기술. 공수입백인의 수법이 나왔을 때는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공수입백인이 성공하려면 엄청난 무공의 격차가 동반되어야 했다. 날아오는 칼날을 느리게 볼 수 있는 눈, 내려치는 칼날의 힘을 저지할 수 있는 지력(指力)이 동반되어야 했다.

그런데 천희수는 당장 삼선 중 둘이 고전했을 정도로 엄청난 고수인데다가, 본인이 화경임을 증명하기까지 했다.

그런 천희수가 쓴 심검을 금목환은 맨손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툭.

금목환은 손가락에 힘을 줘서 보라색 칼의 예봉을 꺾어냈다. 칼이 부서지면서 검의 형상이 대기로 흩어졌다. 천희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거냐?”

천희수 입장에서는 이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천의 마교도가 뭉친 힘이 저 손가락 몇 개에 집혀져 부러진 것이다.

“이게 말이 되냐고 물었다!”

급기야 천희수는 분노를 쏟아냈다. 화경에 이르렀음을 직감했을 때, 천희수는 천마를 제외한 본인의 적수는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이렇게 허무하게 막히니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너는 그저 화경의 껍데기만 가지고 있을 뿐이야. 화경의 진신에는 조금도 다가가지 못했지.”

금목환은 말을 하면서 천희수 쪽으로 옮겨갔다. 천희수는 움직이려고 했지만 끈에 속박이라도 된 듯 움직이지 못했다.

“왜냐하면 천마에게 필요한 건 초월한 화경의 몸뚱이 뿐일 테니까. 그러나 결국 마기는 역천(逆天). 그렇게 가봤자 한계는 정해져있지.”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냐!”

천희수가 악 받친 비명으로 핏대를 세웠다. 어느덧 금목환은 천희수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는 말이야.”

금목환은 천희수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모든 걸 알고 있어. 이 세상의 비밀까지도.”

그 허무맹랑한 말에, 천희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금목환이 손날로 천희수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천희수의 목이 진해 앞바다에 풍덩하고 빠졌다. 곧 몸도 끈이 풀린 인형처럼 무너지며 바다 속으로 삼켜져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