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절대무신 (1)
219화 절대무신 (1)
정마대전의 시작은 급작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던 때보다 훨씬 빨랐다. 그러나 예상은 하고 있었다. 분명히 내가 칠종신기를 훔친다는 걸 아는 사람이 있었고, 그건 천마일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미 하북 사람들은 바쁘게 피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지들은 남들의 집을 밟으며 날아다니고, 무인들은 질서정연하게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뭔가 바쁘네.”
“우리도 움직이자.”
“또 훔쳐?”
“아마도.”
갈유월은 우뚝 섰다. 난 관성 때문에 몇 걸음을 더 가서야 뒤를 돌아봤다. 그녀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나는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그녀 역시 뿌리부터 정파 사람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극도로 실리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맞아. 떳떳한 일은 아니지.”
“아니, 그 말이 아니야.”
뜻밖에도 갈유월은 그걸 말하는 게 아닌 듯했다. 갈유월은 말을 이었다.
“네가 이렇게 쥐새끼처럼 몰래 들어가서 가져올 필요가 뭐가 있어? 네가 중원 무림에 한 걸 봐. 넌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 그게 당연한 거야.”
“쥐, 쥐새끼라···”
잠깐 잊고 있었지만 갈유월의 입은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같은 입에서 달콤한 숨과 거친 말이 번갈아서 나온다니, 참 신기했다.
“정파간의 갈등 해소, 방위 체계 확정, 각 성마다 빠른 공조할 수 있는 비선 연결 등등. 다 네가 한 거잖아. 정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서 보답할 필요가 있어.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내가 큰 걸 했던 걸까. 난 지금까지 내 가족만을 위해서 행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그 영향력이 중원 전체에 퍼진 것이다.
갈유월은 오히려 나를 지나쳐 앞장서 걸었다. 나도 잠깐 생각을 하다가 갈유월을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북경 천진. 개방 본타가 있는 곳이었다. 개방 본타의 건물은 우습게도 으리으리했다. 옛날에 정보를 사고팔며 얻었던 부의 축적으로 이렇게까지 건물을 올린 것이다.
그만큼 호위도 살벌했다. 나와 갈유월은 나란히 본타 정문 앞으로 갔다.
정문 옆에 앉아있던 거지 둘이 일어나곤, 정문을 가로막고 섰다.
“누구시오.”
갈유월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개방 사람들이 날 못 알아볼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의 허리춤을 보고 이해했다. 묶음이 하나였다.
일결 제자라면 사실상 중원의 사람이라고 보기에 애매했다. 그러니 내 얼굴을 모르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난 살짝 이상함을 느꼈다. 나도 개방 본타를 많이 와봤지만, 일결 제자가 정문을 지키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어찌 일결 제자가 정문을 지키고 있지?”
“내부 사정이외다. 그나저나 거지들이랑 어울리지 않게 생겼는데, 약속을 잡고 오신 거요?”
거지 한 명이 물었다. 원래는 훔치러 왔는데 약속 같은 걸 잡고 왔을 리가 없다.
“아니. 잡지는 않았소만.”
“그럼 썩 돌아가시오. 지금 본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까.”
“우리도 바쁜 건 마찬가지라오.”
거지들의 인상이 안 좋아졌다. 거지들이 타구봉을 꺼내려고 할 때, 나는 품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내 신원을 알리는 패였다.
내가 그것을 꺼내어 보여주자 거지들은 멍하니 나와 패를 번갈아봤다. 그때 갑자기 정문이 벌컥 열리더니 거지 둘의 뒤통수에 조약돌이 날아와 따닥 박혔다.
“악!”
“정문 서있는 놈들이 사람 하나 못 알아보냐!”
키가 땅딸만한 거지가 나왔다. 난 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거지들은 오히려 날 볼 때보다 뒤의 사람을 볼 때 경악했다.
“바, 방주님!”
그가 바로 현 개방주였기 때문이다. 현 개방주는 오 년 전 일련의 부패 청산이후 바뀐 사람으로, 날 극진하게 모시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난 굳이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파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니 방주는 내가 왔다는 걸 이미 알고 헐레벌떡 나왔을 거다. 아마 내가 정문에 도달하자마자 방주실을 뛰쳐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어서 오시지요. 의장님. 저놈들은 크게 혼을 내겠습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니죠.”
“이 중원에 발붙이고 살면서 의장님 모르면 죄죠. 그것도 정보로 먹고 사는 놈들이 말입니다. 자, 들어가시죠.”
개방주는 나와 갈유월을 방주실로 이끌었다. 갈유월이 옆에 있는 걸 의아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나와 같이 있으니 트집을 잡지는 않았다. 또한 그녀도 신원이 불확실한 사람이 아니니까. 개방주도 그녀가 무림맹주의 제자이자 오룡삼봉의 일원인 걸 익히 알고 있었다.
“그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풍화륜을 가지러 왔습니다.”
“풍화륜을 가지러요?”
개방주는 뭔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 입장에서는 좀 뜬금없는 소리기는 할 것이었다. 난 더 말을 하려 했지만, 개방주는 눈을 끔뻑거렸다.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난 살짝 놀랐다. 기척을 거의 못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기척을 못 느낄만한 사람은 이제 강호에 많지 않았다.
그곳에는 삼선 중 하나, 만리유유선 소취악이 있었다.
“어차피 황금세가 것인데. 가져가시게나.”
“태상방주님?”
놀란 건 개방주였다. 그는 아마도 칠종신기에 얽힌 이야기를 전부 모르는 듯했다. 물론 나도 원래 풍화륜이 황금세가가 가져야 할 물건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나서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그걸 지금 소취악이 정리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원래 내가 개방에 왔을 때 소취악은 없었다.
“절강에 마교도가 들어왔다기에 일찍 복귀했어. 마교도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지?”
아. 그래. 여기는 내가 처음 보는 미래였다. 내가 전생에서 겪은 건 비워내야 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세계선의 이야기니까. 거기서 얻은 모든 것은 나 혼자 짊어져야 했다.
“아직 절강으로 상륙은 못 했습니다.”
“상륙을 못했다고?”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지금쯤이면 안휘를 지나 호북을 향하고 있어야 했다. 그들도 칠종신기를 노렸으니 말이다.
“황금세가와 해남파, 남궁세가가 착륙을 막고 있다고 합니다.”
“···황금세가요?”
나는 어이없어서 되물었다. 황금세가가 절강에서 막는다니. 정말 그런 미래는 듣도보도 못했다.
“절강을 먼저 가야겠군요.”
내가 말했다. 개방주와 소취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
“희수야.”
“네. 아버님.”
이제 정희수, 아니 천희수는 천하진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붙이는 게 낯설지 않았다.
천희수는 천추마령신공과 천마군림보 등, 천마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사사받았다. 이제 그는 명실 공히 마교의 이인자였다.
“아마 금목환이 호북으로 올 것이다. 거기서 한 번 막아봐라.”
“네. 알겠습니다.”
천하진은 천희수를 돌려보냈다. 이런 유희도 나쁘지 않았다. 얼마나 지루하고 고달픈 삶인가. 신으로 추앙받는 것도 하루 이틀일이지, 일상이 되면 무감각해진다. 반대로 말하자면 모든 일상은 무감각하다.
천하진에게 모든 상황은 일상적이었다. 산사태가 나는 것도, 태풍이 이는 것도, 화산이 폭발하는 것도 일상이었다. 그는 너무 오랜 삶을 살았다. 그렇게 오랜 삶을 산 사람이 잠깐 자연이 진노하는 것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재밌는 녀석이었지.”
그 놈이 마교도였다면 천유현이든, 정희수든 아들이 될 일이 없었을 거다. 무조건 후계자는 금목환의 차지였을 것이다.
오랜 삶을 살면서 그 정도의 경지까지 이른 사람은 못 봤다. 그것도 그런 어린 나이에. 그건 눈이 높은 천하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성과였다.
그리고 이렇게나 자신에게 많이 덤벼본 사람이 있는가. 아마 사백 번 정도는 능히 덤볐을 것이다. 물론 그때마다 박살이 났지만, 눈빛이 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연 이번에는 금목환이 어디까지 올 수 있을까. 그걸 보는 게 또 재미있는 점이었다.
천하진이 손을 펼쳤다. 그곳에서 불이 타올랐다가, 물로 덮이고, 바람이 불었다가 흙이 솟아올랐다. 이런 묘기도 그에게는 일상이었다.
*
원래 금목환이 알던 대로라면 항주에서 첫 전투가 벌어진 뒤, 퇴각하고 호북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원래 돈황의 안가에 있어야 할 황금세가 사람들이 다시 강서로 돌아오면서 많은 게 바뀌었다. 금월상은 금원대의 무인들을 전개시키고, 금화청은 절강 근처 모든 문파들에게 공조를 요청했으며, 금수린은 금월상과 함께 가서 진법을 만들었다.
금수린은 단순히 땅에만 진법을 만드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떠다니는 부표(浮漂)를 이용해서도 진법을 만들었다.
가뜩이나 안개가 많이 끼고 해류의 급변이 심한 주산군도의 지형이 진법 때문에 더욱 험악해졌다.
그들은 그렇게 이미 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금화청만 남창에서 중명각 사람들과 함께 정보를 중개하는 역할을 맡았고, 금월상과 금수린은 절강의 주산군도 최전선에 있었다.
“공자님, 아가씨. 그래도 항주에는 계시는 게···”
“됐어.”
금월상과 금수린은 동시에 대답했다. 사람들이 금월상과 금수린을 뒤로 미루려는 노력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수포로 돌아갔다.
“진법은 계속 상대방 오는 거에 맞춰서 수정해야돼. 내가 여기 없으면 어떡하라고.”
“어떻게 무인이 뒤에 있으라는 말이냐. 그럴 거면 굳이 무공을 배울 필요도 없었겠지.”
당장 이곳에서 황금세가 직계의 사람의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난처해할 때, 토를 달 수 있는 귀중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냥 좀 들어가라니까? 말 같지가 않나?”
“총관님, 아니, 수석 장로님. 안 돼요, 안 돼.”
곽진도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그도 어느 정도는 나잇살을 먹은 게 태가 났다. 귀밑머리나 정수리에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었다. 그러나 괜히 오기조원의 무인이 아니다. 그는 아직 현역으로 뛸 수 있을 정도로 팔팔하고 강했다.
“그래, 됐다. 뒤지던지 말던지.”
“죽으면 같이 죽는 거죠.”
“염병을 하는구나.”
곽진도는 헛웃음을 지었다.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금목환도 금목환이지만, 황금세가 직계들은 모두가 변했다. 처음에는 유약했으나, 지금은 누구보다 강건했다. 물론 든든히 버텨준 금목환의 영향도 있겠지만, 애초에 그들이 강한 것도 있었다.
원래는 본인은 물론이고 다른 장로들한테 말도 잘 못 붙였던 아이들인데,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마도, 여기서 죽는 사람이 단 한 명이 되려면 곽진도, 본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는 청년들의 몫이었다. 그는 일단 그런 마음을 먹었다.
“저기 옵니다!”
보타산 정상 쪽에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적이 오고 있다는 걸 알리는 신호였다.
“어떻게, 잘 될지 모르겠네요.”
금수린이 말했다. 커다란 배들이 주산군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거의 다가왔을 때, 배 위에서 불빛으로 이루어진 점들이 보였다. 곧 그것들은 주산군도의 하늘을 덮으며 날아왔다.
화살에 작은 폭탄들이 매달려있었다. 아마 지금까지 실험했던 그 폭탄들일 것이었다. 아니면 더 강할 수도 있고.
하지만 그들이 폭탄을 실험하고 준비한만큼, 수비도 준비되어 있었다.
“터뜨려!”
금수린이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와 함께 주산 근처의 바다가 펑, 하고 터져 위로 솟구쳤다. 그렇게 하늘 끝까지 치솟아오른 물들이 진법으로 인해 곧장 얼었다. 그야말로 대자연의 방벽이었다.
콰콰쾅!
그 폭발음은 사람들의 소름을 돋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말로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했던 대로만 해라! 그러면 죽을 일은 없다!”
금월상이 내공을 실어서 외쳤다. 그에 맞춰 무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곽진도는 그것을 뒤에서 바라봤다. 명목상도, 실질적으로도 지휘관은 이 둘이었다.
정마대전 첫 전투가 주산군도에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