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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18화 (219/225)

218화 신기(神器) (3)

218화 신기(神器) (3)

진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자연체(自然體)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래, 대답을 안 하겠다는 거지.”

진권은 주먹에 강기를 불어넣고 자세를 잡았다. 그때 녹색무복을 입은 사람이 입을 열었다.

“난 싸우러 온 게 아니다.”

진권은 그 목소리를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는 내공 때문에 심하게 변조되어 있어 누구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그럼 뭣하러 왔지?”

“칠종신기를 빌리러 왔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군.”

진권은 기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숲의 나무가 흔들리고 땅이 진동했다.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있던 새들이 하늘로 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림 무공의 웅혼한 기운이 주변을 완전히 감쌌다. 진권의 몸은 옅은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소림 제일의 절학, 반야신공을 운용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소림사 장문인이시겠지. 반야심공은 소림사 장문인만 익힐 수 있는 것 아니었던가.”

“그걸 알고 있는데도 평안해 보이는군.”

명예에 기대고자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불은 삼선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지만 칠존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세간의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전 중원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명숙을 앞에 두고서, 녹색무복의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었다.

“불안할 게 없으니까.”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가?”

녹색무복의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검을 꺼내들었다. 그 검은 어디 저잣거리 대장간에서 구한 것처럼 조악했다. 대놓고 신분을 숨기겠다는 의지가 강한 병기였다.

“그래. 무인은 언제나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진권이 두 주먹을 맞부딪쳤다.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닌, 철과 철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주먹에서 퍼져 나오는 공명은 주변 풀잎들을 전부 눕혔다.

“후회할 거다.”

진권의 눈빛이 금색으로 빛났다. 순간 진권의 두 주먹에서 두 줄기의 권풍이 꼬아지며 녹색무복의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녹색무복의 사내는 신형을 위로 솟구쳐 피했다.

하늘에서 거대한 검강이 날아왔다. 진권은 깜짝 놀랐다. 강기의 질, 양 뭐 하나 부족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완성된 고수였다. 심지어 기파도 누구인지 특정이 불가능하게 일부러 꼬아 놨다. 내기까지 조절 가능한 고수라는 뜻이었다.

진권은 바로 주먹을 맞부딪쳐 경력을 해소시켰다. 진권의 바로 앞에는 사라진 강기 대신 녹색무복의 사내가 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는 걸 느끼지도 못한 진권은 경악했다.

진권은 반 보 물러난 뒤, 바로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양손으로 날렸다. 대력금강장은 그야말로 널따란 방패로 상대방을 밀어내는 느낌이었다.

녹색무복의 사내는 피하지 않고 검을 위로 들어 올린 다음 일자로 내리쳤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태산압정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움직임이었지만, 진권은 그 일자로 내려오면서 검의 진동을 봤다. 무기가 강기를 완벽히 담아내지 못해 떨고 있는 것이다.

예리한 검과 넓적한 방패가 서로 부딪쳤다. 부딪치자마자 쩡! 소리가 났다. 녹색무복 사내의 검이 깨진 것이었다. 싸구려 검으로 상승의 묘리를 담게 되면 늘 있는 일이었다. 심지어 그것으로 상승 무공을 상대하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허나 녹색무복의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진권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이 신비 고수의 사문을 알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서는 가장 익숙한 무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때 진권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녹색무복 사내의 손이 자연스럽게 태극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무당파의 태극권이었다. 그러나 다음 움직임은 전혀 태극권이 아니었다.

사실 금목환의 무공은 거의 모든 명가의 무공을 조금씩 닮아있었다. 한 번 보고 바로 따라할 수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닮을 수밖에 없었다. 명가의 무공은 문파의 최고수들이 만들었으니 그만큼 완성도가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진권은 혼란스러웠다. 녹색무복 사내가 금목환이라고는 당연히 생각도 못했다. 금목환이 뭐하러 칠종신기를 훔치러 온단 말인가.

“넌 대체 누구냐?”

진권은 대답해주지 않을 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체 한 무공에 몇 가지 묘리가 섞여있는 것인지. 걷는 건 표홀하니 화산파를 닮았고, 날카로운 건 청성을 닮았으며, 유한 건 무당파를 닮았다.

대관절 이런 고수가 있다고는 전혀 듣지 못했다. 진권은 지금 본인이 환술에 걸린 게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녹색무복의 사내는 예상대로 말없이 공세만 이어갔다. 주먹과 손날, 발등과 발뒤꿈치가 현란하게 움직이며 진권을 노렸다.

진권은 소림의 절예들을 선보이며 하나씩 막아갔다. 그들은 순식간에 팔십 초를 교환했다.

녹색무복의 사내와 진권의 무위는 비슷했다. 허나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무게추는 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진권이 내공의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녹색무복의 사내는 내공이 마를 생각을 전혀 안했다.

깨달음을 얻은 금목환의 무공은 본인이 모은 기를 쓰는 게 아닌, 자연의 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러니 마를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것이다. 물론 진권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큭!”

내공이 부족해 숨이 살짝 부족할 때, 녹색무복의 사내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바로 손날을 세워 어깨를 찔렀다. 그 찰나의 틈을 녹색무복의 사내는 사용한 것이다.

고수들끼리의 싸움에서는 한 번의 타격이 성패를 갈랐다. 한 번의 타격이 바로 치명적인 공백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한 번 타격을 허용한 진권은 순식간에 열두 군데를 점혈당했다. 대체 얼마나 깨어나지 말라는 건지, 마혈과 수혈을 반복해서 짚었다.

진권은 바람 앞에 짚단처럼 스러지면서 생각했다. 이 점혈법은 뭔가 낯익었다. 그건 지금껏 잘 숨겨온 금목환도 점혈법에는 딱히 의식을 두지 않았다. 그 역시 진권과 싸우느라 피로감이 쌓여있기 때문이었다.

땅에 부딪치기 직전, 진권은 깨달았다. 이렇게 독특한 점혈법. 바로 약선의 천혜침법이었다.

‘···미친.’

진권은 의식을 잃으면서 이 녹색무복의 사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게 됐다. 그리고 그가 지금껏 살수를 쓰지 않은 이유도.

모르겠는 건,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뿐이었다.

*

백 초 가량 싸웠지만, 시간은 반 각도 지나지 않았다. 아직 나한진 사람들이 따라오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었다. 건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즈음, 갑자기 진권을 점혈할 때 천혜침법을 썼다는 걸 기억했다. 아마 그가 예리한 사람이라면 내가 용봉지회 때 천혜침법을 쓴 걸 기억할 것이었다.

그런데 뭐, 아무렴 좋다. 어차피 마지막은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조용히 건물로 들어갔다. 건물 바깥에서 지키고 있던 소림사 무인들은 모두 수혈을 눌러 기절시켜놓았다.

“멸마선장, 명경.”

내가 가져가야 할 것들을 다시 한 번 되뇌어본다.

난 이미 멸마선장과 명경을 가져와봤기에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가장 깊은 곳 지하에, 그것도 진법으로 숨겨져 있다. 내가 여기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던지.

그러나 이제는 바로 내려가 찾을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 진법을 해체하니 끝이 주먹만 한 지팡이와 손잡이 없는 거울이 있었다. 거울에 날 비춰보니 내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희끄무레하게 안개 같은 게 비쳤다.

명경은 사람의 외면을 비추는 게 아닌,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보통 마기에 잠식된 사람들은 검게 비춰진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회색이다. 내가 직접 실험을 해봤다.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은 정말 한 명도 없었다.

멸마선장은 당연히 이름 그대로, 마를 멸하는 지팡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소림사가 두 개를 한꺼번에 묶어서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명경으로 비추고, 멸마선장으로 퇴치를 하는 게 순서인 것이다.

난 그것들을 챙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나한진의 무승들이 소리지르는 게 들렸다.

“장문인이 여기 계시다!”

“근처에 흉수가 있을 것이다! 찾아라!”

진권이 쓰러진 걸 찾았다면, 내가 있는 건물과 지척이라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한진이 완성된 상태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냥 사분오열하고 있었다. 나를 감지하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쉽게 소림사를 빠져나왔다. 난 소림사를 빠져나와 바로 안양(安陽)으로 향했다. 하남에서 가장 하북과 붙어있는 곳이었다.

옆에는 갈유월도 없으니 무작정 달릴 수 있었다. 자연에서 기를 받아서 쓰니 고갈될 일은 없었다. 난 최대한 사람들이 놀라지 않도록 관도에서 벗어나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난 한 시진만에 숭산에서 안양에 도달했다.

안양으로 들어가는 마을 어귀에서는 한 여자가 봇짐을 메고 기다리고 있었다. 말해 무엇할까. 당연히 갈유월이었다.

갈유월은 내가 오자마자 나를 안고, 내 뒤에 있는 물건에 관심을 가졌다.

“그게 칠종신기라는 거지?”

“응.”

“어디다 쓰는 거야?”

나는 멸마선장과 명경의 쓰임새에 대해 알려주었다. 갈유월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이것만 있으면 천마를 잡는 건가?”

“아니. 천마한테는 못 쓰더라고.”

“못 쓰더라고? 써본 적이 있어?”

“아. 아니다. 말이 잘못 나왔다.”

“실없기는.”

하마터면 갈유월에게 시간을 되돌아왔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할 뻔했다. 난 이제 안 돌아갈 거였다.

“아무튼, 그럼 누구한테 쓰는 건데?”

“나.”

“너?”

천마는 이미 마(魔)의 경지를 벗어난 상태였다. 등봉조극이 반인반신(半人半仙)이라면, 탈마지경은 반인반마다.

그러나 그 두 개를 뛰어넘는 경지가 바로 화경이었다. 천마는 이미 화경에 도달했고, 그 경지까지 가면 정종 무공과 마공이 의미 없는 상태였다. 실제로 명경으로 천마를 비추면 깨끗하게 나왔고, 멸마선장도 타격을 주지 못했다.

난 칠종신기의 의미를 깨닫는다. 칠종신기는 가진다고 바로 화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경이 될 수 있도록 몸 상태를 갖춰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아까 명경에 비춰봤을 때는 옅은 회색이 있었다. 자연에서 내공을 받아쓰고 있기는 하나 불순물이 껴있다는 의미였다. 멸마선장은 그걸 깔끔히 해결해줄 것이었다.

난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갈유월에게 설명을 덧붙이며 북경으로 향했다. 물론 갈유월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난 칠종신기에 얽힌 말도 전부 해줬지만, 딱히 와닿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설명을 포기한 난 그냥 갈유월을 바라보기만 했다. 갈유월은 내가 가만히 보자 얼굴을 갸웃했다. 이제 계속 날 보는 게 날 민망해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미 진권이 내가 신기를 훔치러 온 걸 안 것에서부터, 내가 진권을 쓰러뜨린 것부터, 갈유월과 내가 긴밀한 관계가 된 것에서부터 미래는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처음 겪는 미래인 것이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겪을 미래이기도 했다. 아직 넘지 못했던 파고. 지금의 나는 넘을 수 있을까.

그렇게 내가 하남에서 하북으로 넘어가던 날, 마교는 절강을 통해 쳐들어왔다.

정마대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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