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화 신기(神器) (2)
217화 신기(神器) (2)
사람들은 우뚝 선 나를 지나쳐갔다. 갑자기 서니 수군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 사람 왜 저렇게 멈춰있대?”
“가끔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소림사 처음 오는 촌놈들.”
“어디 흑룡강에서 온 사람 아닌가, 싶네.”
난 그런 소리들을 무시하며 머리를 굴렸다.
지금 나는 옷과 인피면구로 내 신원을 감춘 상태다. 소림사 사람들은 내가 황금세가 금목환이라는 건 모르는 모양이었다. 알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내게 압박을 주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이 정도면 어디 제자들로 구성된 진이 아니라, 진짜 나한당(羅漢堂)의 무인들이 나온 것 같았다. 당장 근처 사람들 모르게 살기를 쏜다는 건 웬만한 내기 조절로도 힘든 영역이었다.
난 하늘을 바라봤다. 생각이 굴러갔다. 당연하지만, 내가 칠종신기를 훔칠 거라고 말한 사람은 갈유월밖에 없다. 그러나 갈유월은 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나와 계속 같이 있었기에 뭘 할 틈도 없었다.
그렇다면 제삼자가 고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어떻게 알았다는 말인가. 그가 독심술이라도 있던 것일까. 아니,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주변에서 날 그런 식으로 지켜봤다면 내가 의식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가능성은 하나로 축소된다. 내가 칠종신기를 훔친 거라 말하지 않았지만, 칠종신기를 훔칠 걸 알고 있는 사람. 그건 내가 칠종신기를 전부 가지고 있는 걸 본 사람이었다.
“···천마.”
천마가 이걸 방해한 적은 없었는데, 왜 방해하게 된 것일까. 바뀐 건 내가 갈유월과 깊은 관계가 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지금 그걸 생각할 때는 아니었다. 우뚝 선 나를 보며, 칠십이나한이 점점 진법을 조이고 있으니 말이다.
난 바로 땅을 박차고 소림사 현판 위로 날아올랐다.
“덮쳐라!”
갑자기 소림사 정문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난 바로 가장 가까운 건물의 전각으로 뛰었다. 그곳에서 소림의 나한승 다섯 명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철로 된 봉을 들고 있었는데, 각자 봉끼리 강기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냥 앞에만 있어도 입은 옷이 뒤로 펄럭일 정도였다.
몸을 비스듬히 눕혀 철봉을 피해간다. 내게 봉을 수평으로 휘두른 나한승은 아쉬운 표정을 했다. 봉과 내 몸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비껴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의도한 것임을 모르니 아쉬워하는 것일 테다. 제일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 효율적인 움직임이다. 크게 헛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다음 공격에 대비할 시간이 줄어들게 되니 말이다.
‘틈이 안 보이는군.’
당연하지만 살수를 쓸 생각은 없다. 물건을 훔치러 왔는데 어떻게 살계까지 열겠는가.
그러나 어중간하게 들어갔다가는 더 깊게 휘말릴 수 있었다. 잘 짜인 나한진을 상대한다는 건, 칠십이 명의 초절정고수와 맞서는 것과 같다. 아무리 나라도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난 순간 내가 금목환인 걸 밝힐까, 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공격은 멈추겠지만 그게 전부다. 내가 칠종신기가 필요하고, 소림이 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공격들을 피하면서 칠종신기가 있는 건물로 뛰어갔다. 뒤에서 대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살벌했다. 그것들은 귓전에 스치지만 내게 닿을 수는 없었다.
*
진권은 하나의 투서를 받았다. 그것은 소림사에 있는 칠종신기, 명경과 멸마선장을 누군가가 노린다는 것이었다.
그건 대웅전에 있는 불상 손바닥 위에 고이 접혀있었다. 진권은 일단 그것부터 대경실색했다.
당장 소림사 정문에서 대웅전까지 들어가려면 몇십 사람을 거쳐야 한다. 들어가면 갈수록 호위의 경지도 강해져 처음에는 일류였던 호위가 대웅전 앞에서는 초절정에 이르기도 한다.
그런 초절정고수들의 기감을 헤치면서도 대웅전 불상 손바닥에 서한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강호에 몇 사람 되지 않았다.
“근데 그 놈이 소림사의 비동에 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진권이 제자들과 사질들에게 물었지만 마땅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진권이 말한 대로, 문제는 칠종신기를 훔쳐갈 거라는 얘기 외에도 소림사 장로급들만 알고 있는 안가의 위치라든지, 쓰고 있는 암호명이라든지 모두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한에는 흉수의 인상착의가 정확하게 적혀 있었다.
“녹색무복, 큰 키, 한쪽 눈썹에 흉터가 난 얼굴이라.”
그것은 금목환이 산 인피면구의 특성이었지만, 진권이 알 리 없었다.
진권은 바보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 서한에 대해서 진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서한에 나온 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멸마선장과 명경은 소림사의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이 서한을 보낸 놈이 제일 의심스럽지만, 우리의 보물은 지켜야지.”
적어도 소림사가 방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소림사는 정문을 기준으로 칠십이나한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나한전의 수장. 진무는 나머지 칠십일명을 조감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많은 사람을 한 눈에 담으려니 좀 멀리 있어야 했지만, 진무 정도의 고수에게 그 정도 거리감은 사실상 무의미했다.
정문에 있는 이대제자들은 녹색무복과 한쪽 눈썹이 긁힌 남자를 보고 바로 신호를 보냈다. 집중해서 신호수를 보고 있던 소림사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신호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진법이 갖춰지자마자 녹색무복의 사내는 우뚝 멈췄다. 나한진 중심에 있는 사람은 엄청난 압력을 느끼게 된다. 그건 진무가 직접 경험해봤으니 알 수 있다. 삼화취정의 초입 정도 되면 바로 기절시킬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압력이었다.
그래도 기절을 하지 않는 걸 보니, 도둑치고는 꽤 강한 인간을 보낸 모양이었다.
“일단 물어는 봐야지.”
진무가 말했다. 진권이 이르기를, 그래도 서한의 내용을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으니 한 번 확인의 절차를 거치라고 했다.
일단 녹색무복의 사내를 제압하고, 어떤 의도로 왔는지 파악하려고 한 것이다. 맥만 잡으면 이 자가 사특한 무공을 익혔는지, 순수한 정종무공을 익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녹색무복 사내의 신형은 갑자기 커다란 소리를 내며 뛰어올랐다. 땅의 진각을 찍으며 올라가니 모래가 용솟음쳤다.
“···뭐?”
칠십이나한들은 대기하고 있었기에 바로 움직이긴 했지만, 남자의 속도는 너무나 빨랐다.
“당최 무슨···”
진무는 정파 무학의 총본산, 소림사 나한전의 수장이다. 웬만한 무공은 모두 견식했던 진무. 그러나 지금 저 남자가 쓰는 무공은 어떤 문파의 무공도 아니었지만, 무공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본디 방축귀매신법을 쓰던 금목환이 신법을 가다듬어 본인만의 신법을 깎아냈다는 건 진무가 알 리가 없었다.
“쫓아!”
거두절미하고, 도망치는 걸 보니 깨끗한 사람은 아니었다. 결국 서한대로 저 자는 보물을 훔치러 들어온 자일 확률이 높아졌다.
진무는 나한진으로 연결된 기운에 전음을 불어넣었다. 칠십이명의 나한은 한 진법에 들어있는 이상 한 사람이었다. 진법으로 전음을 통하면 진법에 있는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 도망자의 신원, 적어도 사문까지는 밝혀라. 최대한 제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진무도 빠르게 움직였다. 멀리 있어서 녹색무복의 남자가 훤히 보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속도는 압도적이었다. 분명 엄청난 압박을 느끼고 있음에 분명한데 저렇게 움직이다니, 보면서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진무는 멀리서 진을 살피면서 계속 감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바로 소림사 본단에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나한진을 총감독하고 있는 입장에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칠십이나한진이 뚫릴 수도 있다고 말이다.
소림사가 개파한 이후, 무패신화를 보여줬던 칠십이나한진이 한 무리도 아닌, 한 명에게 깨질 위기였다. 진무는 이를 악물었다. 본인 대에서 이런 치욕스러운 기록이 생기면 안 됐다.
*
나는 이들에게 피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림의 나한들이 들어와도, 공격을 흘리기만 했지 반격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야아아앗!”
처음에는 팔, 다리 같은 생명에 지장가지 않는 부분을 공격하던 소림 나한들도 뭔가 오기가 생겼는지, 내 머리를 치고 들어왔다.
난 바로 머리를 숙이고 점혈을 할까 고민했다. 아무리 소림사가 금강불괴에 가까운 외공을 익힌다고 해도, 나 역시 천혜침법으로 단련된 점혈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일개인적인 격차로 보면 나한승과 나는 엄청난 격차가 있는 몸이다. 그 하나를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는 건, 진법의 파훼까지도 포함이었다.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칠십이나한진을 솔직히 깨기도 좀 미안했다. 그러나 나도 피하기만 하기에는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걸로 봤을 때 중원제일진법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거야 수비일변도의 이야기고, 내가 공세로 전환한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그때 봉이 내 머리와 발목을 노리고 양가운데서 날아왔다. 난 공중으로 몸을 회전시켜 양 봉을 엇갈리게 해 서로를 타격하게 했다.
“억!”
이빨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중의 턱이 어긋났다. 강기를 바로 회수하려고 했지만, 내 이화접목은 그들이 강기를 회수하는 것보다 빨랐다.
“최소 다섯 명끼리 합공하라!”
나한승들은 일사불란하게도 움직였다. 대충 예상하기에, 멀리서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 자가 진을 조감하는 것 같았다.
“팔 하나 정도는 날려도 된다!”
처음에는 제압에서, 부상, 이제는 팔을 날려도 된다는 명령까지 닿았따. 조금만 더 하면 살상 명령까지 떨어질 기세였다. 난 그렇게 그들과 부딪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러니까, 그렇게 되기 전에 정리를 해야 했다.
나는 다음 발을 내딛고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돌렸다. 나를 쫓아오던 나한승들이 갑작스런 방향 선회에 깜짝 놀랐다.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지풍을 날린다. 그들은 지풍을 감히 보지도 못하고 혈이 눌려 픽 쓰러졌다. 아마 멀리서 볼 때는 사술을 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사술이다!”
“살상을 허용한다!”
물론 그게 내가 의도한 거다. 이 와중에 내가 금목환이라고 밝혀지면 아주 곤란해지니까 말이다.
중원합동회의의 의장이 구파일방으로 가서 보물을 도적질하려고 했다. 그건 나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원 전체의 신뢰도를 깎아먹는 짓이었다.
나는 반대로 공세를 가한지 일 각 만에, 칠십이나한진에 있는 승려들의 반을 잠재울 수 있었다. 반이 거동불가면 사실상 진법은 깨졌다.
내게 오는 압박마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그들이 날 쫓을 방법은 없었다. 난 구속구에서 풀린 느낌으로 칠종신기가 있는 건물로 향해 날았다. 남아있는 중들이 쫓아오려고 했지만, 그들과의 격차는 벌어지면 벌어졌지 좁혀지지는 않았다.
저 멀리, 붉은색으로 칠이 된 전각이 보였다. 저곳이 소림사가 가진 보물을 보관하는 비고였다.
눈으로 보기에는 멀었지만, 스무 걸음이면 충분한 거리였다.
이제 훔치고 나오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는데, 어디선가 강한 암경이 내 허리쪽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난 도약하는 도중 몸을 비틀어 암경을 흘려냈다.
콰쾅!
흘려낸 쪽의 땅이 깊게 파였다. 암경의 심후한 내공을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암경이 날아온 쪽을 바라보니, 손가락 마디만도 못한 크기의 사람이 보였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렇게나 멀었다.
그는 순간 사라졌다.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많이 셀 필요도 없었다. 딱 삼까지만 세면 되었다.
쿵!
바로 내 눈 앞에 거대한 주먹이 날아왔다. 난 손바닥으로 손목을 위로 쳐올려서 경로를 틀었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그렇게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오십 개의 주먹이 내 전신 혈도를 향해 날아왔다.
난 그것들을 전부 쳐내면서 뒤로 크게 물러났다. 그도 바로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저, 물을 뿐이었다.
“넌, 누구지?”
내 앞에는 긴장된 표정의 진권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나도 무력행사를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