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극의일로(極意一路) (3)
212화 극의일로(極意一路) (3)
십몇 년 전, 금목환이 묘하게 바뀐 뒤로는 가족들 앞에서 실수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베일 것만 같은 날카로운 일처리를 보여줬다.
원래 금목환은 일처리가 끝나면 늘 중명각에 일처리 상황을 공유했다. 그런데 이번 금목환은 옥문관을 간다는 서한만 보내고, 돌아오고 나서는 서한을 보내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황금세가 직계들이 움직일 이유는 차고 넘쳤다.
원래라면 금화청은 자리를 비우면 안 되는 입장이었지만, 다행히 행정을 맡아줄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들의 아버지였다.
금씨 형제들과 그들 아버지의 관계는 이제 점심은 같이 먹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그들 사이에 극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상처가 자연스레 아물 듯이 전대 가주는 금씨 형제들에게 녹아들었다.
그렇게 전대 가주가 행정을 맡아주니 황금세가 직계들은 움직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무슨 일이 생겼어도 신변에는 지장 없겠지. 돈황으로 멀쩡히 돌아왔다며.”
금수린과 금월상은 남창에서 돈황으로 가면서도 계속 금목환을 걱정했다.
남창이 있는 강서에서 감숙의 돈황은 중원 남동쪽과 서북쪽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었다. 가뜩이나 머나먼 길, 걱정은 그 길의 길이를 오히려 더 늘려놓고 있었다.
그러나 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도 결국은 스쳐가고,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도 떠나보내기 마련이다. 그들은 돈황에 들어서자마자 황금세가의 안가를 찾았다.
감숙으로 가는 도중, 금목환의 신병이 묘연해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들이 떠올린 곳은 당연히 안가였다.
“여기 아니면 있을 곳이 없지?”
“아무래도.”
금씨 삼남매는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수린은 맨 앞서서 진법을 통과해나갔다. 금월상과 금화청은 그대로 따라갔다.
금수린의 말로는 별의 별 험악한 무기는 다 들어갔다고 했는데, 금수린을 따라가니 그냥 산길하고 다를 게 없었다. 안가의 외벽은 깔끔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안가는 거의 쓸 일이 없는 곳이니 말이다.
금수린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목환아?”
집안은 조용했다. 안가는 원래 작게 만드는 게 기본적이지만 황금세가의 안가는 컸기에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삼남매는 하나씩 방문을 열었다. 열기 전에 기대하고, 열고나서 금목환이 없는 걸 확인하고 씁쓸해하며 닫았다.
“방 진짜 더럽게 많네.”
“누가 안가를 이렇게 넓게 만들었대?”
금수린과 금월상은 방문을 계속 하나씩 열다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나 금화청은 도리어 당당하게 나왔다.
“내가 기획했어. 여기서 가만히만 있어도 삼 년은 가도록 만들었지. 지하에는 삼 년 치 말린 음식이 있고, 심심하지 말라고 골패, 돼지오줌보, 책, 훈련실까지 구비해놨지.”
가슴을 치며 뿌듯하게 말하는 금화청을 보며 금월상과 금수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렇게 그들은 전부 방을 뒤졌다. 지상층 이 층은 물론이고, 지하층 이 층까지. 그러나 금목환은 나오지 않았다. 삼남매는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여기 안 온 거 아니야?”
“그럼 진짜 문제 있는데.”
금월상과 금수린은 바로 심각하게 돌변했다. 안가에 없으면 정말 행방이 묘연해진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지 않은가.
곧장 금월상과 금수린은 금목환이 어디로 갔는지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때 금화청은 턱에 검지손가락을 비비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금월상과 금수린이 중원 밖으로 나갔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추측을 할 때, 금화청이 손뼉을 쳤다.
“맞다. 여기 숨겨진 방이 있었지. 안가도 들킬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방이 있을 거야.”
“뭐?”
“그걸 지금 말한다고?”
일 각 정도를 침이 마르게 대화한 금월상과 금수린은 금화청을 째려보았다. 금화청은 그 시선을 못 본 체하고 지하 일 층으로 올라갔다.
“비밀의 방이 지하 일 층에 있어?”
“있을 거라면 지하 이 층에 있다 생각할 테니, 한 번 꼰 거지.”
“그러냐.”
금화청은 지하 일 층에 있는 식량 창고의 벽에 손을 쓸며 걸었다. 금월상과 금수린은 말없이 금화청을 따랐다.
조용히 걷던 금화청은 갑자기 우뚝 섰다. 그리고 손바닥에 힘을 줘서 벽을 밀어냈다. 그저 벽으로 생각했던 곳이 한 바퀴 돌았다. 세 사람은 벽에 밀리듯 벽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와, 이런 곳도 있구나.”
금수린이 낮은 천장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천장은 낮고 통로는 좁았다. 통로는 일직선으로 쭉 이어져 있었다. 통로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이는 길어보였다.
삼남매는 일렬로 걸었다. 그 중 맨 앞은 금수린의 차지였다. 금수린 다음으로 금월상, 금화청이 쭉 따라왔다.
얼마나 걸었을까. 복도 끝에는 딱 봐도 두꺼워 보이는 철문이 있었다. 금수린은 그 철문을 몸을 부딪쳐 열었다.
문을 열자 복도보다 살짝 밝은 방이 나왔다. 그곳에는 문을 등지고 정좌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중한 사람은 뒷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안다고 했던가. 셋 모두 그가 금목환이라는 걸 알아챘다.
“목환아!”
금수린은 금목환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안겼다. 그녀는 안자마자 깜짝 놀랐다. 금목환의 몸이 너무 차가운 것이다. 그러나 뒤에서 얼굴을 보니 눈은 떠져 있었다.
“오셨군요.”
금목환이 입을 열었다. 붙어있는 금수린은 물론이고, 금월상과 금화청도 흠칫했다. 원래도 무미건조한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더 무미건조했다. 무미건조함을 넘은 차가움. 아예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금목환은 금수린을 떨어뜨려놓고 뒤를 돌아앉았다. 금수린은 얼떨떨해 하며 뒤로 물러났다.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지금 형님들과 누님을 근 사백 번째 보는 중입니다.”
“응?”
“뭐라고?”
금목환의 목소리는 진지했지만, 세 남매의 표정은 오묘해졌다. 그러나 금수린은 진지하게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전 몇 번이나 봐왔어요. 이런 상황을 말이죠. 그리고 알고 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실지.”
금목환은 금월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월상 형님은 제 정신이 이상하다고 걱정하고 계시겠죠. 화청 형님은 제 정신이 이상하다고 확정을 짓고 의사를 생각해보고 있고, 수린 누님은 내가 한 말이 긴가민가하실 거예요.”
그 말에 모두가 숨을 크게 들이 삼켰다. 정말 금목환의 말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도 예상했어?”
금수린이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면서 괴상한 표정을 했다. 금목환을 그걸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2회차 때 봤어요. 3회차에서는 혀까지 내미셨죠.”
“헉.”
금수린이 놀랐다. 정말 혀까지 내밀려던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금목환은 금수린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에도 지루해보였다.
그때 금월상은 금화청과 금수린의 뒷덜미를 잡고 문 바깥으로 끌고 나왔다. 금목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문을 닫고 복도에서 속삭였다.
“정신이 이상해진 것 같지?”
“확실해.”
“그런 것 같기도···”
금월상과 금화청, 금수린은 자기들끼리 결정을 내렸다. 금목환이 미쳤다고 말이다. 그들은 그제야 금목환에게 해줄 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일단 최대한 같이 있어주면서 정신을 안정시켜야겠네.”
“그래야겠지?”
금씨 삼남매는 웬일로 바로 합이 맞았다. 그들은 서로 속닥이며 어떻게 금목환을 대할지 논의했다. 같은 마음이라 논의는 일찍 끝났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바깥에서 진동이 났다. 금수린이 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침입자인데?”
“아마 갈 소저일 거야.”
의외로 답변은 금월상 쪽에서 나왔다. 금화청과 금수린이 금월상을 바라봤다. 어찌 알았냐는 눈빛이었다.
“오늘 중명각주가 말해줬거든. 갈 소저가 안가를 찾아올 거라고.”
“안가는 어떻게 알았대?”
“우리 안가 위치는 무림맹하고도 공유되어 있으니까. 알려줬겠지.”
금월상의 말에 금수린은 살짝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건 가족들끼리 풀어야 할 문제지.”
“그것도 맞지.”
“그럼 일단 잘 타일러서 보내.”
“갈 소저도 한 성격해서 안 돌아갈 거 같은데.”
“···일단 만나서 얘기해보지. 목환이는 계속 저 방에 있을 것 같으니까.”
금씨 삼남매는 일단 금목환의 건을 미루고 나가기로 했다. 목표는 갈유월의 저지였다.
*
“그렇게 된 거군요.”
사실 갈유월은 금화청을 만나기 전까지 엄청나게 긴장했다. 금화청 역시 잘생겼지만 금목환보다 좀 더 냉막한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도 섞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냥 어디 먼발치서 보기만 했을 뿐이다. 당장 스승님한테 들었을 때 만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기도 했고.
그러나 금화청은 생각보다 갈유월을 압박하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대해줬다.
“그러니까 지금 네 다음에 있을 금수린이 이를 갈고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그나저나 금목환이 그럼 진짜 정신이 이상한 거예요?”
“안 그러면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잖아?”
금화청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걸까. 갈유월은 그런 거짓말을 하는 금목환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아무튼, 그런 얼굴이든 뭐든 금목환을 보고 싶은 게 진정한 마음이었다.
“소저는 왠지 믿는 모양이군.”
“그렇다기 보다··· 금목환이 거짓말을 안 한다고 믿고 있는 거죠.”
“은근히 거짓말 많이 해. 대표적인 거짓말로는 괜찮다가 있지.”
“아.”
갈유월이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쳤다. 그게 거짓말이었다면 금목환은 완전히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근데 목환이는 왜 좋은 거야?”
“켁.”
갈유월은 숨을 쉬다가 갑자기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꼭 말해야 되나요?”
“글쎄. 가족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는 알아둬야지?”
갈유월은 고민했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사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냥 어느 날 문득 좋아한다고 느꼈다.
“일단 잘생겼고, 강하고, 일 잘하고···”
“그건 아니지.”
금화청이 단칼에 갈유월의 말을 잘랐다.
“그건 목환이의 장점인 거고. 그건 출입구 같은 거지. 난 진짜 좋아한다면 그 안에 뭔가 더 있어야 된다고 봐.”
“그, 그런가요.”
갈유월이 당황했다. 사실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정말 금화청의 말대로 금목환의 장점을 나열한 거에 불과했다. 갈유월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옛날의 저를 바꿔줬어요.”
“바꿔줬다?”
“네. 그리고 계속 저를 바꾸고 있어요. 저는 처음에는 스승님한테만 집착을 했죠. 근데 금목환을 알고 나서 언제부터인가 스승님한테도 더 자연스럽게 대할 수도 있어졌고, 다른 사람들과도 편해졌어요. 물론 금목환은 가면 갈수록 불편해졌죠.”
금화청이 빙그레 웃었다. 원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불편하기 마련이다. 진짜 나를 보여주기 보다 더 좋은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 말이다.
“제가 말주변이 많이 없어서 더 말은 못하겠지만, 저는 예전부터 금목환을 좋아했고, 지금도 그렇고, 금목환을 좋아하지 않는 제가 상상이 잘 안 돼요.”
갈유월은 다 말을 뱉고 나서야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금화청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가 원했던 건 번지르르한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금화청은 오랫동안 세가를 운영하면서 말과 그 사이의 진심을 구분할 수 있었다. 갈유월의 마음은 분명히 진심이었다.
“가봐.”
금화청이 길을 내줬다.
“생각보다 쉽게 보내주시네요.”
“그 말하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잖아. 어려웠지.”
금화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갈유월은 어색하게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아갔다. 금화청은 웃으면서 갈유월을 배웅해줬다.
그리고 갈유월이 한참 걸었을 때, 저 멀리 황금세가 안가 건물이 얼핏 보였다. 저기 금목환이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마음이 두근거려왔다.
그러나 갈유월도 알고 있었다. 저기 가기 위해서는, 하나의 장애물을 더 넘어야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오라버니들이 아주 마음이 약하네.”
그건 바로, 볼멘소리를 하며 나오는 금수린이었다.
그녀는 앞의 금월상, 금화청과 달리 표정부터 우호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