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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9화 (210/225)

209화 초월(超越)

209화 초월(超越)

하늘을 뒤덮은 보라색 마기. 천추마령신공으로 얻은 마기는 한 지역을 그렇게 뒤덮을 정도였다.

정희수는 엄청난 압박감에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천유현에게 아군에 대한 배려 따위는 없었다.

천유현은 금목환의 뒤를 바라봤다. 고르지 않고 울퉁불퉁한 봉분(封墳)이 있었다. 아마 여기서 죽은 자들의 시체들을 한 데 모아 수습해준 것으로 보였다. 원래 강호인들이 시체 수습을 받을 일은 많지 않다. 대개 쥐나 까마귀에게 다 뜯긴 다음, 파리의 배양을 위한 곳이 되기 마련이다.

본인을 만날 걸 알고 있으면서도 봉분을 만드는 여유라, 역시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칼을 뽑지 않는 건가?”

천유현이 의아한 눈빛을 해보였다. 이제 거의 머리맡이라고 해도 될 만큼 마기가 많이 내려왔다.

금목환은 그저 눈을 반개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고요한 눈빛은 감히 무외(無畏)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건 분명 금목환인데 왠지 천유현은 마음이 급해졌다.

“장난이라도 치자는 거냐?”

천유현은 본인의 검을 뽑았다. 순간 그 검극이 보라색 하늘을 빨아들였다.

구름과 구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보라색 천둥이 번쩍거렸다. 공격의 대상도 아닌 정희수의 살갗이 따끔거릴 정도로 서늘한 살기였지만, 금목환은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천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내가 가주마.”

그 말과 함께 천유현의 신형이 표홀하게 흩어졌다. 순식간에 앉아있는 금목환 위로 천유현이 나타났다.

천유현의 검이 금목환의 목을 향해 가장 최단거리로 날아갔다. 그 찰나의 순간, 천유현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어갔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있는 듯이 앉아있으면 뭔가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검이 목에 닿을 때, 천유현의 궁금증은 극에 달했다. 이제는 삼선이 와도 목을 베이는 걸 면하지 못할 것이었다.

금목환은 그저 눈을 감았다. 천유현 입장에서는 포기한 것처럼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유현의 검은 금목환의 목을 가르지 못했다.

시간이 멈춘 다음, 서서히 돌아간다. 천유현이 뒤로 뛰고 칼을 납검했다. 검극에서 보라색 마기가 뿜어져 하늘을 수놓았다. 금목환은 그제야 목을 움직여 하늘을 바라봤다.

다시 시간이 멈추고 순행했다. 천유현과 정희수는 잠깐 멍하니 있었다. 천유현이 입을 열었다.

“칼을 뽑지 않는 건가?”

금목환은 그저 천유현을 바라봤다. 아직 먼 거리였지만 고수 둘의 눈동자가 부딪치기는 충분했다. 눈동자끼리 마주치는 순간 천유현은 엄청난 기시감을 느꼈다.

천유현의 머릿속에 방금 금목환의 목을 벨 뻔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건 엄청난 두통을 동반했다. 천유현은 입술을 깨물어 두통을 참아냈다. 피가 줄줄 흘렀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천유현이 생각하기에는 금목환이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금목환의 목소리가 실망스럽다는 듯 깔렸다.

“둔하네.”

금목환이 옥문관 현판에서 떨어졌다. 땅에 착지할 때 흙먼지가 살포시 일었다.

“삼백하고도 스무 번째. 이제야 눈치를 챘구나.”

“뭔 소리냐?”

“설명해줘도 넌 몰라.”

금목환이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은 명백한 무시를 담고 있었다. 천유현은 헛웃음을 지었다. 저런 격장지계에 말릴 수는 없었다.

보라색 하늘이 다시 천유현의 검에 담겼다. 천유현은 더 가타부타 말하지 않고 바로 땅에서 도약했다. 초승달을 닮은 강기가 금목환의 허리를 노리고 날아간다.

금목환은 강기를 앞두고 검을 꺼내지 않았다. 그는 손으로 태극을 그렸다. 태극의 곡선에 보라색 강기가 방향을 뒤집었다. 금목환은 방향을 바꾼 강기를 천유현에게 날려 보냈다.

“허튼 수작이군!”

천유현이 발로 땅바닥을 밟았다. 곧장 굉음과 함께 앞의 지반이 일어나 강기를 막았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지반이 억지로 뒤집히며 같이 비산한 조각들이 강기를 담고 금목환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아까보다 훨씬 날렵하고 강한 마기를 담고 있었다. 천마와 그 뒤를 이을 후대만 익힐 수 있는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였다.

천마군림보는 패도적인 보법이자 각법이었다. 그야말로 공방일체. 천추마령신공으로 마기를 잔뜩 충전한 천유현의 공격은 대기를 찢어발길 정도였다.

물론 천유현은 이 한 수로 이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딱 봐도 금목환은 오 년 전보다도 훨씬 강해져 있었으니 말이다. 천마군림보는 그저 눈속임용이었고, 실제 살초는 본인의 독문무공, 천살오식(天煞五式)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나 천살오식을 펼치기도 전에, 금목환이 놀라운 말을 했다.

“천마군림보가 나왔으니 그 다음은 천살오식이 나올 차례겠군.”

천유현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고 이미 나가고 있는 초식을 거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금목환은 마치 천살오식을 상대해본 적이 있다는 듯 유려하게 검을 막아갔다.

천유현의 검이 갈 자리에 금목환의 검이 먼저 가있으니 초식이 제대로 펼쳐질 리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천살오식은 누구에게도, 심지어 아버지인 천마에게까지도 보여준 적이 없는 무공이다. 그런데 어찌 이 앞의 놈은 천살오식이라는 이름과 초식을 알고 있는 것인가.

“네놈, 대체 무엇이냐?”

그쯤 되어서는 천유현의 가면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금목환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천유현의 공격을 막고만 있었다. 천유현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답해라! 네놈은 대체 무엇이냐!”

“말했잖아. 설명해도 이해 못한다고.”

천유현의 눈에 분노가 가득해졌다. 이건 격장지계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더욱 천유현을 분노케하는 점이었다.

“너는 강해. 인간으로서는 거의 극에 올랐다고 할 수 있지. 근데 말이야.”

금목환이 갑자기 낯선 검식을 펼쳤다. 그것은 그냥 직선으로 들어오는, 아무 초식도 없는 순수한 검이었다. 마치 목검을 든 아이가 내지르는 것 같은 검이었다.

그러나 왠지 천유현은 그걸 피할 수 없었다. 천유현의 단전이 꿰뚫렸다. 천유현의 등 뒤로 검이 삐져나왔다.

“거의 극에 오른 것과 극에 오른 건 천지차이야.”

금목환이 그 말을 하면서 검을 쭉 잡아당겼다. 검이 뽑히면서 피가 분출했다. 천유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천추마령신공으로 극의에 올랐다고 생각했다. 칠존 따위는 당연히 상대도 안 되고, 삼선과도 능히 싸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여기 자신보다 어린 황금세가 가주에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금목환은 무릎꿇은 천유현을 바라봤다. 그 눈에는 동정, 승리감 같은 감정이 없었다.

“순수 마도로는 극의에 오를 수 없어.”

“···네가, 어떻게 장담하느냐?”

“너희 의식의 끝에는 마신이 있기 때문이야. 너희들에게는 마신은 절대 넘을 수도 없고, 넘어서도 안 되는 존재지.”

금목환의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말투에 천유현은 어이가 없었다. 본인이 마공을 익힌 것도 아닌데 어찌 그걸 안다는 말인가. 그러나 허세치고는 너무 담담했다.

“그러니 나처럼 초월할 수 없는 거야. 왜 초월할 수 없냐면, 마신은 신이 아니기 때문이야. 너희는 인간을 믿는 사이비(似而非)야.”

“네가, 초월했다고?”

천유현은 고개를 치켜들며 말을 씹어뱉었다. 금목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금목환은 손을 들어 천유현의 정수리에 대었다.

천유현의 머릿속으로 지금까지 금목환과 맞섰던 삼백이십 번이 한 번에 들어왔다.

“크아아악!”

생각이 억지로 머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건 엄청난 고통이었다. 금목환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원래라면 없어야 될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고통스러운 게 당연해. 자연을 거스른다는 건 그런 의미야.”

“···으, 아.”

천유현의 눈은 백치라도 된 것처럼 희끄무레해졌다. 엄청난 고통으로 혼이 빠져나가버린 것이었다.

“그게 차이야. 난 그런 고통을 알고 있고, 넌 그런 고통을 모른다는 거.”

금목환은 손을 돌렸다. 그와 함께 붙어있는 천유현의 머리도 돌아갔다. 뚜두둑, 뼈가 줄줄이 탈출하는 소리와 함께 천유현이 절명했다.

정희수는 금목환과 천유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금목환의 몸에서는 어떤 기운도 나오고 있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움직일 수 없었다. 금목환을 보자니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체를 보는 것처럼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팔마 중 하나, 검마 정희수는 살면서 이렇게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남에게 공포를 줬으면 줬지.

금목환은 어느새 정희수 앞에 와있었다. 정희수는 깜짝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도 금목환은 웃지 않았다.

“너, 너는 뭐냐?”

정희수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말도 안 됐다. 다름 아닌 천유현을 저렇게 장난감 가지고 놀 듯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금목환은 귀찮다는 듯 얕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나는 나, 너, 내가 아는 사람들, 네가 아는 사람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 네가 모르는 사람들의 총합이야.”

“···그게 뭔 소리지?”

“못 알아들을 줄 알았어.”

금목환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등을 돌렸다. 돈황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정희수는 입을 뻥긋거리다가, 두려움을 이겨내고 외쳤다.

“왜, 날 안 죽이는 거지?”

금목환은 뒤를 돌아봤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를 돌아서 걸었다.

“천마께서는 너를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정희수가 외쳤다. 금목환은 우뚝 섰다. 그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정희수는 악받친 목소리로 계속 외쳤다.

“천마님은 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강함을 지니고 계신다! 너는 고통스럽게 죽을 거야!”

“지금 날 봤는데도 그런 소리가 나오는 건가?”

금목환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정희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천마님의 무공은 그야말로 인외의 것이었으니까.

“천마님은 화경(化境)의 경지에 계시다. 네깟 놈이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화경이라.”

금목환은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자기 갈 길을 갔다. 남겨진 정희수는 멍하니 금목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말, 저 자는 자신의 목숨을 개미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

나는 혼원신공을 운용해봤다. 자연의 기운이라던 태원지기는 밑에 꽉 억눌려있었다. 당연하다. 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극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자연을 완벽하게 거스를 수 있는 존재가 된 거였다.

난 무력감에 시달렸다. 앞으로 내딛을 미래는 내가 수정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도통 열의가 생기지 않았다. 정희수를 안 죽인 것도, 충분히 내가 돌아가서 죽일 수 있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다.

이제 막말로 천마한테 죽기 전에 시간을 돌리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세계는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평생 열의 없이 살아가게 되리라. 그건 싫었다.

난 한숨을 쉬면서 돈황으로 돌아왔다. 문을 지키고 있던 돈황의 무인들은 바로 날 알아봤다.

“의장님, 오셨군요!”

“정말 마교도들과 싸우신 겁니까?”

그들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하긴 내 옷은 피 하나 묻어있지 않아 깔끔해서 싸우고 왔다고는 보기 힘들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척살하고 왔다.”

“역시, 의장님!”

무인들은 바로 내게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며 문을 열었다.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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