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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5화 (206/225)

205화 이기는 게 목적이죠

205화 이기는 게 목적이죠

권존이 죽었다!

그 소문은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차라리 공동파 문주가 죽었다면 사람들은 납득했을 것이다. 감숙과 신강은 가까우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러나 산동에서 신강은 너무 멀었다. 그렇기에 산동 사람들은 마교가 준동한다고 해도 크게 겁내지는 않았다. 권존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말 권존께서 돌아가셨다고?”

“어디서?”

“감숙에서 돌아가신 건가?”

“아니, 산동이라던데?”

권존에 대한 이야기는 전 중원의 화제였다. 그것도 본인 세가의 권역인 산동에서의 죽음. 아직 사람들은 긴가민가하고 있었지만, 난 당연히 알고 있었다. 권존이 진짜 죽었다는 걸 말이다.

초유열과 나는 이층 전각에서 차를 마시며 무인들의 말을 듣고 있었다. 초유열이 내게 물었다.

“이건 예상 못한 바가 아닌가?”

“깊이 들어올 이유가 하등 없으니까.”

난 섬서에서 감숙으로 왔는데, 오히려 그들은 섬서를 통해 산동으로 갔다는 것이지. 서로 반대로 움직였다. 그들의 입장에서 기만책이 통했다고 볼 수 있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움직임이었다.

결국 내륙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빠져나오기 힘들 수밖에 없다. 당장 장강수로채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파들이 거의 절멸당한 탓에 수로는 정파가 꽉 잡고 있다. 당장 산동에서 바다로 빠져나와 삥 돌아간다 해도, 결국 해남도에서 관측될 게 뻔했다.

근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당장 감숙에 있는 정파 무인들은 칠존이 죽었다는 것에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당장 감숙에 있는 사람들이 이탈할 조짐이 보이고 있어.”

“그럴 것 같았어.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기도 하고.”

난 차를 호록 마셨다.

감숙은 대 마교의 최전선이다. 그만큼 많은 문파나 세가들이 차출하여 무인들을 보냈다.

당장 초유열을 비롯한 화산파 사람들이 통제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밑에는 수많은 출신들의 사람이 있다는 거다. 사실상 초유열이 그들을 모두 통제하는 건 쉽지 않았다. 파견 나온 사람들 중 초유열보다 나이가 많고 고수인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가문, 세가의 안위를 걱정해서 간다는데 딱히 막을 명분도 없었다. 문제는 감숙이 최전선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게 인력들이 자기 멋대로 빠져나가면 감숙의 경계가 약해지는 건 자명한 사실.

“최대한 이탈 숫자를 줄이려고 협상을 하고는 있어. 절반씩 돌려보낸다거나.”

“누구와 협상을 하고 있는데?”

“도존님과 하고 있지.”

도존.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보통 문파보다는 세가의 사람이 결집력이 더 좋은 법이다. 심지어 팽가가 있는 하북은 산동과 바로 옆에 붙어있어 돌아가는 게 이해가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말이다.

“도존님은 내가 맡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

회의실은 들어가기 전부터 웅성거렸다. 이미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 그래.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겠지. 안 그런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것 같았다.

“먼저 들어가.”

초유열은 내 말에 따라 먼저 들어갔다. 난 뒤따라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리가 들어오자 금방 조용해졌다.

“오랜만에 보는군. 가주.”

“오랜만에 뵙습니다.”

조용한 가운데 말을 꺼낸 건 역시 팽의석이었다. 팽의석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몰려있었다. 그의 눈빛은 자못 비장했는데, 기어코 돌아가야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걸 보자마자 이 자리가 쉽지 않음을 직감했다.

난 초유열 옆에 앉으려고 했지만, 초유열이 중앙의 상석을 양보했다. 하긴 여기는 중원합동회의의 회의 결과로 차출된 모임이다. 의장인 내게 자리를 양보하는 건··· 당연한 건가. 여기서 제일 어른인 팽의석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시작할까요?”

내가 중앙에 앉으며 말했다. 바로 누군가 손을 들고 발언을 했다.

“의장님은 여기 왜 오신 겁니까?”

녹색 무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였다. 얼굴은 몰라도 옷으로 봤을 때 어디 소속인지는 알 수 있었다.

“당문의 분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당가의 당해준입니다.”

해자 돌림이라. 지금 당문의 가주, 독존 당해립이었지.

“가주님과는 어떤 관계십니까?”

“제 형님 되십니다.”

“그렇군요.”

당가에서도 꽤 중요한 사람을 보냈다. 가주의 동생을 보내다니. 자세만 봐도 최소 삼화취정에는 도달한 자 같았다.

“그 질문의 의도는 무엇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현재 산동에 권존을 죽일 정도의 마교도가 있습니다. 중원 전체가 위험해졌다는 겁니다. 의장님도 한 세가의 가주시니, 황금세가로 돌아가야 하시는 거 아닙니까?”

“전 안 돌아갑니다.”

“저희가 구축한 방어진이 힘을 못 쓰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이 체제를 유지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당해준의 말이었지만, 모두가 당해준에게 공감하고 있었다. 아마 회의에 참가하기 전 당해준이 말하기로 그들끼리 결정을 했을 거다. 도존이 직접 말하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무게감 없는 사람이 말하기도 그러니, 당해준은 적절한 인선이었다.

“전 방어진이 힘을 못 쓰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방어진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방어가 헐거운 산동까지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거야 의장님의 판단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면 피차 마찬가지죠.”

당해준은 이미 하나의 입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물러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전 중원이 위험해졌다고 해도, 감숙이 최전선임을 부정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지금 감숙의 전력은 마교의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최소 인력입니다.”

당장 정면으로 공격해오자면 청해보다는 무조건 감숙이다. 각자 문파나 세가가 걱정된다고 해서 보낼 수 없었다. 당장 내가 황금세가에 안 간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가면 감숙에서 사람이 빠질 거기 때문이다.

마교는 내가 알던 전생보다 공격적으로 변했다. 당장 중원에서 혼란을 주고 바로 내일 감숙으로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전력을 빼는 건 용납 못합니다. 이건 단순히 전력 공백의 문제가 아닙니다. 중원 전체가 아닌 각자 세가, 문파를 더 우선시하는 행동이 나오면 안 됩니다. 마교는 단일체니, 우리도 단일체로 맞서야 합니다. 안 그러면 각개격파 당합니다.”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당해준도 멈칫했다. 그래도 입을 오물거려 반박을 하려고 할 때, 팽의석이 당해준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본인이 하겠다는 의미 같았다.

“걱정이 심하군. 가주.”

팽의석은 당해준이 나한테 심하게 밀린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걱정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나는 중원 사람이기 이전에 하북팽가 사람일세.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을 막을 명분 같은 건 없어.”

“그 집도 중원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겁니다. 모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면 울타리는 누가 지킵니까?”

대화가 평행선을 달렸다. 초유열도, 회의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도 초조하게 팽의석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팽의석은 다시 한 번 차분하게 말했다.

“가주. 가주와 나는 연이 꽤 깊은 사람이라 더 부딪치기는 싫군. 그러나 자네가 처음 말했지. 중원합동회의 의장에게 강제성은 없다고 말이야.”

팽의석이 말했다. 그건 진실이었다. 당장 중원합동회의 의장에게 권력이 생기면 그게 중원의 왕이랑 다를 게 뭔가. 만약 그랬다면 모든 문파들이 중원합동회의를 긍정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팽의석이 책상을 짚으며 벌떡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거칠게 밀리며 회의장을 긁었다.

“자네 의견도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다만, 당장 산동에 있는 마교도를 잡으면 다시 감숙에 무력을 충원하면 되지 않는가.”

결국 그 말이 나오고 말았다. 사실 저것도 팽의석이 많이 양보해준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중원합동회의의 의장이니, 파문당했다고는 하나 해남의 장로 배분이니, 황금세가의 가주이니 해도 팽의석보다는 배분이 많이 밀렸으니 말이다.

사람들이 날 바라봤다. 만약 이것까지 잡아뗀다면 팽의석은 기분이 상할 거고, 다른 사람들은 날 경우 없게 볼 거다. 어쩌면 팽의석은 너무 집에 가고 싶었던 나머지 내게 이런 문제를 던져준 걸 수도 있었다.

허나 나한테는 이게 기다리던 문제였다. 내가 가진 답이라고는 하나뿐이었으니 말이다.

“한 달.”

나가려던 팽의석의 뒤에 대고 외쳤다. 팽의석이 우뚝 섰다.

“한 달 안에 산동의 마교도를 잡아 보이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게. 권존을 참살한 녀석들이야. 자네가 호언장담할 상대가 아니란 말이네.”

팽의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말에는 동의했다. 내가 아무리 젊은 고수라도 칠존에까지는 못 이르렀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도 오 년 동안 논 게 아니었다.

“그럼 시험해보시겠습니까?”

결국 내 답은 이것이었다. 무인은 검으로 말한다. 팽의석이 그제야 뒤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약간의 분노마저 담겨있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도존님 정도의 고수시라면 이미 들었을 줄로 압니다.”

방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한 행동이 중원에서 얼마만큼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지 말이다.

후배가 선배한테 가르침을 청하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건 가르침을 청하는 게 아니었다. 일대일 비무를 신청한 것이었다.

“내가 벌써 기력이 쇠할 나이는 아니라네. 가주.”

“제가 어찌 도존님을 얕잡아보겠습니까. 그저 전 증명하고 싶을 뿐입니다.”

팽의석이 헛웃음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의 눈알이 빠르게 굴렀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도 바라봤는데, 내가 좀 무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래. 언제 하면 좋겠는가?”

“지금이요.”

“자신감 있는 모습은 좋구먼.”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방금 팽의석의 말은 내 비무 신청을 받아주겠다는 얘기였으니 말이다.

칠존 정도 고수의 무학을 견식하는 건 그것 자체로도 기연이었다.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결국 무인이다. 그들도 이 흥미로운 대결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비무 준비는 빠르게 진행됐다. 사실 준비라고 할 것도 딱히 없었다. 그냥 나가서 넓은 공터에서 규칙만 정하면 그만이었다.

“살수는 쓰지 말기로 하지.”

“그러시죠.”

“대신 한 달은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커다란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네.”

팽의석이 협박조로 말했다. 그의 눈에는 이제 분노는 보이지 않았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인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가주는 인재야. 미래의 중원을 이끌 사람이지. 그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해. 그러나 그럴수록 사람이 자기 할 말에 책임을 져야하는 법이라네. 설사 책임을 지기 싫더라도 말이야.”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가주의 선택은 그런 면에서 좀 아쉽다네.”

저 멀리서 하북팽가의 시종 둘이 팽의석의 도를 들고 오고 있었다. 팽의석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무기를 잘 안 차고 다녔다. 그가 가진 수왕도(獸王刀)가 너무 크고 무거웠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80근이 훌쩍 넘는 무게라고 한다. 워낙 도법이 패도적이라서 웬만한 도는 견디지 못하고 다 깨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했다.

팽의석은 그 도를 받고 한 손으로 휘둘러보았다. 그냥 도를 움직이고 있을 뿐인데 칼바람이 주변 모래를 흩어놓는다.

“나를 납득시키려면 자네가 가진 것 이상을 보여줘야 할 걸세.”

팽의석의 눈동자의 아랫부분부터 슬슬 불길이 넘실거린다. 내공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도 내 송로를 발검하며 대답했다.

“전 납득시키는 데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뭔가?”

팽의석이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납득시키지 않으면 이 비무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존님을 이기는 게 목적이죠.”

내가 이길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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