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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4화 (205/225)

204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204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난 쪽지들을 바로 살펴봤다. 대략적인 개요는 일단 눈에 담아뒀다. 시체들이 정기가 빨린 듯하고, 죽기 전 환술에 걸린 것 같다는 게 요지였다.

“옛날과 다르긴 하네.”

적유엽이 바뀐 마교의 방침을 지적했던 게 생각났다. 원래 간자들을 쓰며 이간질만 하려 했던 그들이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다고.

난 쪽지들을 삼매진화로 불태웠다. 보안상의 이유였다.

“마교가 바뀐 만큼, 우리도 바뀌었는데 말이야.”

손바닥에서 탄 재들이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이제 바로 움직여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종남파 장문인은 바로 나를 불렀다. 당금 벌어진 상황은 내게만 전달된 건 아니었다. 중원 모두에게 전달된 상황이었다.

“의장은 어떻게 할 건가?”

“일단 감숙으로 움직여야죠.”

“강서로 안 움직이고?”

장문인이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걱정된다는 말투였다. 하기야 지금 중원에서 가장 영향력을 많이 끼치고 있는 세가는 황금세가다. 그 말은 마교가 침투한 목적이 황금세가일 확률도 높다는 얘기였다.

“네.”

“그러면 세가가 위험하지 않겠는가?”

“세가는 저 없이도 잘 돌아갑니다.”

“그거야 잘 알고는 있지만 말이야.”

걱정은 안 되냐는 눈빛이다.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일단 우리 세가가 정말 나 없이도 잘 돌아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마교의 간자들이 황금세가가 있는 남창까지 오기 힘들 거였다. 당장 감숙에서 들어왔다 치면, 섬서, 호북 두 개의 성을 꼬박 건너야 한다. 꼬리가 밟힌다면 온 길로 그대로 도망가야 하니, 깊이 들어가기는 싫을 거였다.

또 황금세가는 이런 위협을 한 두 번 당한 것도 아니었다. 당장 5년간 황금세가 근처에서 얼마나 많은 벽력탄과 비마진천이 터졌는가. 그러나 수많은 진법들과 참호로 둘러싼 황금세가는 철옹성이었다.

“일단 화산파가 감숙으로 움직이고, 종남파가 섬서에 남아있는 걸로 하시죠.”

“그래야지. 당장 감숙에 검룡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좀 비각에 있는 매들 좀 빌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게나.”

종남파 장문인 역시 강호에서 오랫동안 굴러온 능구렁이다. 전통의 강호들이 좀 짜증나는 면이 아직 있는 건 사실이나, 이런 면에서는 말이 잘 통했다. 내가 뭘 할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듣지 않은가.

난 종남파 장문인과 인사하고, 비각에 가서 중원의 전 성에 보내는 서한을 만들었다. 각 문파가 담당하고 있는 지역의 경계를 더 확실히 하고, 급한 정보가 있으면 황금세가의 비취귀응(翡翠鬼鷹) 편으로 전달하라고 했다. 비취귀응은 황금세가 중명각에서 기르고 있는 영물이었다. 속도가 거의 무림맹 비각의 철취신응과 비견할 정도였다.

“우리도 그간 오 년간 놀고 있었던 건 아닌데 말이지.”

마교가 침투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떤 체계를 통해서 움직여야 하는지 다 정립이 되어있다. 또 중원 단위의 훈련도 많았다. 마교도 옛날 자중지란만 하던 정파를 생각하면 큰 코를 다칠 거다.

난 종남파의 비각에서 서한들을 보내고 종남파를 빠져나왔다. 종남파 바깥에는 한유림과 두 개의 말이 있었다. 목덜미에 피 같은 땀을 흘리는 한혈보마(汗血寶馬)였다. 안장 끄트머리는 황금색 수실이 붙어있었는데, 황금세가 소유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움직이자.”

“네.”

그들이 공격적으로 변한 만큼, 우리도 수비에 신경을 썼다. 비집고 들어오려면 그만큼의 손해를 각오해야 할 것이었다.

*

천유현은 언덕 위에서 마을을 바라봤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무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마을의 출입자들을 검사하고 있었다. 저렇게 작은 마을도 철저하게 검사하는 걸 보니 큰 곳은 얼마나 삼엄할지 뻔했다.

“정파가 저번에 봤던 것보다 난장판은 아닌 걸. 비마진천이 정파에 엄청난 불안을 가져다주고 있다며?”

천유현이 박용한을 바라봤다. 박용한은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본인이 보고를 한 것도 아닌데 왜 본인 보고 뭐라 한다는 말인가. 박용한이 우물쭈물 거리자 천유현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철마가 아버지의 이쁨을 받고 싶었나보군.”

“아예 거짓은 아닐 겁니다. 저렇게 삼엄해진 것도 불안하다는 증거니까요.”

“우리가 바라는 불안은, 이성을 잃고 흔들릴 정도의 불안이야. 저렇게 경계만 강화시켜주는 불안은 필요 없지.”

천유현의 말은 정론이었다. 박용한은 할 말을 못 찾았고, 정희수는 원래부터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내가 왜 너희들을 다시 데려온 줄 알아?”

“···모르겠습니다.”

“저번에 같이 했던 실수를 만회하자는 거야.”

“오 년 전의 작전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박용한이 반박했지만 천유현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한 실패지. 그나마 성과는 정파를 이간질 시킨 거였는데, 지금은 중원합동회의니 뭐니로 합쳐져 있잖아. 결과적으로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져버린 셈이 됐지.”

천유현은 걸음을 움직였다. 마을 쪽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박용한과 정희수는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빈틈을 만들려면 우리가 직접 찢고 벌려야 한다는 거지.”

그들은 산중턱으로 내려왔다. 느닷없이 멈춘 천유현은 마을 쪽으로 검지를 폈다. 순간 박용한과 정희수는 천유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다. 그때 천유현의 입이 열렸다.

“오늘 여기가 황보세가가 순찰하는 곳이 확실하지?”

“···네. 그렇습니다.”

박용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유현의 손가락 끝에서 붉은색 강기가 콩알처럼 뭉치더니 마을로 쏘아져나갔다. 마교에서 가장 강한 파괴력을 지닌 지공. 혈패지(血敗指)였다.

콰콰쾅!

멀리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이 멀리서 붉은 피가 보일 정도로 마을은 순식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천유현은 재미를 위해 죽이는 게 아니었다. 결과로 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기에 하는 것이었다. 박용한을 시켜 옥문관에 환진을 펼치고 사람들을 죽인 것도, 이목을 돌려 산동으로 쉽게 넘어오기 위함이었다.

정상적인 사고 판단이라면, 이렇게 중원의 깊숙하게 들어오는 것도 생각하지 않을 거다. 어디 감숙, 청해에서 깔짝거리다가 신강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일 거야.”

천유현의 눈이 오랜만에 호선을 그렸다.

그들은 가만히 기다렸다. 저 멀리 평야에서 말을 탄 사람의 무리가 보였다. 맨 앞 선두에는 황보(皇甫)라는 글자가 적힌 깃발이 휘날렸다.

곧 그들은 평야를 가로질러 마을에 도달했다. 멀리서 보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당황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소천마님.”

“뭘?”

천유현은 박용한을 쳐다보지도 않고 답했다.

“일단 우리의 목적은 칠존을 잡는 게 아니라, 마탄을 직접 실험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고 칠존은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결국 그게 핵심이네.”

천유현이 웃었다. 박용한이 움찔했다. 그 말은 곧 권존에게 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소를 짓던 천유현은 벌떡 일어나 구석에 있는 목침을 발로 차버렸다. 목침이 흩어지며 진법이 깨졌다. 저 멀리 선두가 벌떡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근골이 장대한 황보세가 사람들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큰 몸을 가진 자였다. 말할 것도 없이 그 사람이 바로 권존 황보지운이었다.

“잘 봐.”

천유현이 마기를 펼쳐냈다. 독한 살기가 서린 마기가 나왔다. 황보세가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차고 넘칠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황보지운은 뒤에 거대한 모래바람을 뿌려대며 천유현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걸어서 반 시진은 걸릴 곳이었지만, 칠존이 마음먹고 달리면 반 각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유현은 황보지운과 맞닥뜨렸다. 천유현도 작은 키가 아니건만 머리가 두 개는 차이 날 정도였다.

천유현과 마주친 황보지운은 퍽 당황한 눈빛이었다.

“생각보다 어린 사람이라 좀 놀랐나?”

먼저 선수를 친 건 천유현이었다. 황보지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마기를 뿜어낸 사람이 맞는지, 마을을 해친 사람이 맞는지 파악하는 것이었다.

“글쎄. 이제 정파에서 나이로 편견을 가지는 사람은 많이 없어졌지.”

황보지운이 주먹에 천을 조이며 말했다. 황보지운은 천유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백면서생에 힘이라고는 일절 없어 보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경계가 됐다. 저 어린 나이에 자연체를 획득했다는 건 대단한 성취였다.

당금 정파에 비교될만한 사람이라면 역시 금목환뿐일 거였다.

“저 마을은 왜 저렇게 만든 거지?”

천유현은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었다. 황보지운의 몸에서 나오는 기세가 한 층 더 강해졌다. 살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나무와 풀들이 흔들렸다.

“어른이 물어보는데 말대답도 안 하고, 아주 예의라고는 밥 말아먹은 새끼구나.”

“이 분이 누구신지 알고.”

지금껏 가만히 있던 정희수가 조용히 검병을 엄지손가락으로 밀었다. 순간 나뭇잎이 흔들리는 방향이 바뀌었다. 황보지운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뒤의 두 사람이 심상치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강자였다. 근데 그런 강자가 받드는 저 청년은 뭐란 말인가.

“그만.”

입을 연 건 천유현이었다. 그 말에 기가 싹 사라졌다.

“지금은 내가 부른 거니까, 내가 결자해지 해야지.”

“네가 나를 상대하겠다고?”

“그럼 저 칼잡이 뒤꽁무니에 붙어있을 줄 알았어?”

황보지운의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아무리 강호에서 남녀노소가 관련이 거의 없다고는 해도, 한참 어린 녀석한테 반말을 듣는 건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예절 교육을 다시 한 번 시켜줘야겠구나.”

“해봐.”

천유현과 황보지운의 눈빛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얼마나 쳐다보고 있을까. 두 사람의 신형이 동시에 표홀하게 사라져버렸다.

쾅!

황보지운의 푸른 권강과 천유현의 보라색 마기가 부딪쳤다. 뿌연 연기가 확 퍼졌다. 연기에서 거한이 한 명이 팍 튀어나왔다.

“죽어라!”

황보지운의 주먹에는 안광과 같은 푸른 색이 모였다. 황보세가의 절기 벽력신장(霹靂神掌)이 펼쳐진 것이다.

우뢰와 같은 소리와 패력이 아래로 찍혔다. 정희수와 박용한이 본인도 모르게 출수할 정도로 위협적인 파괴력이었다.

황보지운의 주먹이 땅을 치고 부서진 땅의 파편이 앞으로 튀어 올랐다. 그와 함께 뿌연 모래바람도 걷어졌는데, 황보지운의 앞에는 천유현이 없었다.

천유현은 뒤에서 황보지운의 목을 향해 손을 세워 찔러나갔다. 황보지운은 몸을 돌려 팔꿈치로 천유현의 손날을 강하게 쳐냈다. 커다란 몸에 맞지 않는 신속한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도망만 쳐봐라!”

황보지운은 천유현의 퇴로를 보법으로 잡으며 계속 압박해나갔다. 주먹의 속도가 암기들이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천유현은 보라색으로 물든 손으로 어떻게든 쳐내고 있었지만 속절없이 뒷걸음질만 쳤다.

황보지운의 눈빛이 빛났다. 이제 열 걸음만 몰아세우면 지형이 경사진 곳으로 바뀌었다. 천유현이 저기로 몰리면 곧 몸이 땅으로 훅 빨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당황할 것이었다.

황보지운은 이를 악물고 계속 주먹을 뻗어나갔다. 정타는 없었지만 스치기만 해도 천유현의 피부는 부르터서 찢어지고 있었다. 그만큼 황보지운의 주먹은 권존이라는 이름 앞에 부끄럽지 않았다.

그렇게 밀리고 밀렸을 때, 천유현이 한 걸음만 더 뒤로 밀리면 황보지운이 원하는 대로 될 때였다. 천유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건 말이다.

“지형에 기대어 이기려고 하다니.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황보지운의 눈이 번쩍 떠졌다. 천유현의 그 말이 나간 건 황보지운이 이미 주먹을 출수한 이후였다. 황보지운의 거대한 주먹이 천유현의 명치 부분을 향해 날아갔다. 몸의 정중앙. 뒤로 밀기에는 가장 효율적인 수였다. 그러나 천유현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뒷걸음질 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나왔다.

천유현이 두 손바닥 끝을 붙여 파리지옥 같은 모양을 만들었다. 그 안에 황보지운의 주먹이 쑥 들어갔다.

쾅!

천유현의 입에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두 손으로 막았다고 해도 정면으로 부딪친 거다. 천유현은 오장육부가 흔들리는 느낌을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곧바로 천유현은 천추마령신공을 발동했다. 황보지운은 섬뜩한 기운에 주먹을 빼려고 했지만 손가락으로 갈퀴를 만든 천유현의 손아귀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조금의 시간만 있어도 황보지운이 주먹을 빼냈으리라. 황보지운과 천유현의 근력 차이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은 고수들의 싸움에서 결판이 나기 충분했다.

“어어억!”

황보지운의 입에서 절대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비명이 나왔다. 그 커다란 팔뚝과 어깨가 순식간에 고목나무처럼 비쩍 말라버린 것이다.

“으아, 아악!”

주먹에 힘이 빠지니 도저히 황보지운은 뺄 수 없었다. 천유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런 힘은 처음 받아보는데!”

황보지운의 거대한 진기가 천유현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황보지운은 소리를 치려고 했다. 저기 뒤에서 따라오는 황보세가의 무인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이놈들은 어중띤 준비로 맞을 놈들이 아니라고. 그러나 이미 성대에 쓸 힘마저 천유현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도착했을 때 즈음엔 말라비틀어진 사람이 천유현 앞에 무릎을 푹 꿇고 있었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라.”

천유현이 그제야 황보지운의 손을 풀었다. 말라비틀어진 황보지운이 땅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이, 이게 무슨···”

당장 앞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황보세가의 사람들이 말을 더듬거렸다.

그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이미 박용한과 정희수는 출수할 준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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