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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203화 (204/225)

203화 거물이 왔군

203화 거물이 왔군

감숙 서북쪽 끝에 있는 옥문관은 중원에서도 가장 경계가 삼엄한 지역이었다. 옥문관을 넘어가기만 하면 마교의 지역인 신강이 있기 때문이었다. 가끔 맑은 날이면 옥문관에서 저 멀리 천산 산맥의 꼭대기가 보일 때도 있었다.

여기 있는 무인들은 다른 지역을 경계하는 무인들과 달리, 최소 일류, 절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위험한 지역이었다.

“내가 도박으로 빚만 안 졌어도 이딴 곳에서 경계는 안 서고 있을 텐데 말이야.”

“난 한 명만 낳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쌍둥이가 나와서 말이야.”

“사명감은 다 개소리지. 여기 다 돈 때문에 있는 놈들밖에 없잖아.”

검집을 비껴들고 있는 남자는 침을 퉤, 뱉었다. 침을 뱉은 곳은 어느 목판이었다. 그 목판에는 경계 무인들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멋들어진 필체로 음각되어 있었다.

- 옥문관의 무인들은 중원에 대한 헌신과 사명감으로 가득 차있어라.

“근데 은근히 꿀 아니야? 솔직히 마교 애들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옥문관으로 들어오겠냐고. 차라리 올 거면 편하게 합밀(哈密)의 관도를 따라서 돈황(敦煌)으로 가지 않겠어?”

“그렇지. 괜히 발에 모래 끼는 사막으로 굳이 올 리가 없지.”

옥문관의 경계를 지키는 무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안심시켰다. 옥문관은 마을이라고 보기도 힘든 가옥 몇 채가 전부였다. 심지어 그 가옥들도 서역 상인들을 위한 휴식터일 뿐, 사람들이 살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옥문관의 사람들은 항상 사람에 목말라 있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늘 보던 얼굴이 또 보게 되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 그들에게 가끔 들락날락 하는 상인들은 마른하늘에 비 한 줌이었다.

“어, 저기 또 누가 온다.”

“몇 명이지? 얼마 안 되는데.”

신강의 사막을 바라보던 무인들은 일단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사막을 건너는 흔한 상인들처럼 녹색 피풍의를 입고 있었다.

“세 명이다. 근데 짐이 왜 없지?”

“팔고 오는 거 아니야?”

“이 사람아. 그 판 돈으로 서역에 있는 물건들을 떼 와서 또 중원에 팔아야 장사지.”

“아니면 약탈을 당했거나?”

“그건 그럴 수도 있겠군.”

무인들은 사람 셋을 보면서 어떤 경계도 하지 않았다. 여기 오가는 건 상인들 밖에 없었으니까. 또한 그들의 걸음걸이는 상인답게 여유 있고 느긋했다.

곧 그 셋은 옥문관의 문 앞으로 왔다. 아무리 경계를 안 한다고 해도, 옥문관을 통과할 때는 절차가 필요했다.

“소속과 이름을 밝히시오!”

무인이 외쳤다. 허나 피풍의의 사람들은 외침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소리가 울리는 성벽 위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안 들렸나?”

“내 목소리가 그렇게 작았다고?”

“이봐, 뱃심 좀 더 넣으라고!”

무인들은 낄낄거렸다. 어째 경계심이라고는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낄낄거리다가 다시 성 아래를 바라봤다. 성 아래에는 어째서인지 아무도 없었다.

“어?”

“어디 갔지?”

무인들은 분명 이런 상황에서 봉화를 올려야 했으나, 그곳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그렇게 멍청하게 움직이는 그들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덮였다.

“뒤!”

먼저 그림자를 발견한 무인이 소리를 질렀지만, 무인은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반응을 못한 대가는 참혹했다.

검이 목을 가르고 목이 하늘 위로 붕 떴다. 피가 목에서 일 척 높이로 솟아올랐다. 소리를 친 자의 얼굴에 피가 확 튀었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옥문관의 초소들에 불이 켜졌다. 곧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하나씩 바깥으로 나왔다.

“뭐야?”

그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그들 중 한 명도 땅에서 보라색 기운이 넘실거린다는 걸 보지 못했다. 그 기운이 사람들의 코로 흡입되고 입으로 나오는 게 명백한데도 그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

멍청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그들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슥 지나쳤다. 그림자가 지나간 사이로 사람들의 목이 날았다.

옥문관의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도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그게 보라색 연기를 마신 영향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

머리를 뒤로 빗은 남자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검이 휘둘러진 곳에서는 매화향이 피어올랐다. 검을 휘두르는 자는 바로 차기 화산제일인으로 불리는 검룡 초유열이었다.

초유열은 계속 검을 휘두르다가 바깥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멈췄다. 땀을 닦고 있자니 문이 벌컥 열렸다.

“대주님. 옥문관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옥문관?”

걸음걸이로 알았지만 역시 위중한 일이었다. 옥문관은 그야말로 정예 중 정예가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정예란 무공의 수위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었다.

옥문관 같은 최전방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협객으로 소문난 무인들로만 구성해서 보낸 것이다. 그들은 돈이나 물질적인 게 아닌 사명감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일처리는 언제나 깔끔하고, 실수가 없었으며, 시간을 엄수했다. 그런 그들과 연락이 안 된다면 예삿일이 아니었다.

지금 초유열은 화산파 제자들 스무명과 함께 돈황에 있었다. 돈황은 옥문관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니, 비상이 안 걸릴 수 없었다.

“일단 난주(蘭州)에 있는 공동파에 연락을 보내고, 성문을 걸어 잠가. 그리고 제자들을 전개시켜 수상한 자들을 탐색해보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직접 가봐야겠군.”

“혼자 가십니까?”

“그럼 누가 같이 가지?”

초유열의 되물음에 화산의 제자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 초유열은 벌써 삼화취정의 경지에 오른 초고수였다. 오히려 어중 띤 절정이나 초절정 초입 고수들이 가봐야 초유열한테 방해만 될 뿐이었다.

“그럼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초유열은 바로 검 한 자루와 육포 한 근을 안쪽 품에 넣고 바로 돈황을 빠져나왔다.

천산에서 불어오는 삭풍이 매서웠다. 돈황에서 옥문관은 길다운 길도 없다. 낮에는 사람이 익을 정도로 뜨겁고, 밤에는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운 사막. 장장 세 시진을 달려 초유열은 옥문관에 도착했다.

초유열은 옥문관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았다. 안쪽으로 기감을 넓혀봤지만 움직이는 사람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다음에 초유열은 문을 열었다.

“···음.”

초유열은 문을 열자마자 침음을 내뱉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참혹했다. 식어서 굳어진 피와 막 부패하고 있는 뼈들이 마구잡이로 널려있었다.

이상했다. 땅바닥에 흩뿌려진 피의 열기들을 보면 그렇게 죽은 지 오래된 것 같지도 않은데, 시체들은 마치 십 년 이상 있던 것처럼 백골만 남아있거나, 피부가 완전히 말라서 축 쳐져있었다.

“마공이군.”

무공에 대한 견식이 없는 일반인이 봐도 마공의 흔적이었다. 정파 무공 중에 이렇게 시체를 모욕하는 무공이 있을 리 없었다.

시체들의 모습들을 보면 죽은 뒤에도 구천을 떠돌고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지만 지금 추모를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초유열은 그나마 형태가 온전한 시체들로 가까이 가 상처들을 확인했다. 상처를 쓸어보기도 하고 벌려보기도 하면서 시체들의 특이점을 파악했다.

일단 무기는 검. 그리고 상대는 엄청난 고수였다. 최소 오기조원 이상에 들은 초절정 고수였다. 여기까지는 납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한 명도 반항의 흔적이 없었다는 거다. 마치 민간인들이 살육을 당한 듯 시체들이 깔끔했다. 백 명에 가까운 절정의 무인들이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죽었다는 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다. 마치 경계 자체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뛰어나고 성실한 무인들이었다. 경계를 하지 못하고 풀어져 있다 죽었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당장 보름 전에 왔을 때만 해도 엄청난 기합을 보여준 그들이 아닌가.

“···아.”

골똘히 생각하던 초유열은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정면대결을 해서 일방적으로 이렇게 당할 리가 없었다. 초절정 이상, 전설로만 내려져오는 화경의 경지에 달한 무인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뭔가 사술을 썼다는 거다. 초유열도 마교의 사술에 대해서 좀 알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애뇌산에서 사용된 환술이었다. 정확히 어떤 기제로 이뤄지는 건 아직 파악이 안 되어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은 여전히 교육 자료로 남아있다.

그들이 말한 것들 중 공통점을 꼽아보면, 환술에 걸렸을 때 정신이 없었던 게 아니라는 거다. 정신도 있고, 생각도 멀쩡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 생각이 평소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을 생각들이었다는 거다.

그야말로 환술에서 빠져나오면, 왜 본인이 그랬는지 이해가 안 되고 홀린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다.

“···환마가 들어온 건가.”

환마만이 환술을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절정과 일류를 합쳐 백 명이 동시에 당했다면 팔마급이 왔다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 볼 것도 없었다. 당장 돈황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려야했다.

*

난 산화겸과 인사하고 비동을 나왔다. 내 품에는 청라보패가 있었다. 산화겸도 내가 전수한 태을헌원신공 구결의 가치를 알고 있으므로 별 말 없이 내준 것이다.

아마 종남파 장문인으로서는 기대하지 않은 결말일 거다. 그는 청라보패가 종남파에서 유출되지 않기를 원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도 태을헌원신공의 구결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것이었다.

“흐음.”

난 청라보패를 들어서 봤다. 고풍스럽게 조각되어있기는 하지만 중원칠종신기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신옥주는 내공이 잘 쌓였고, 혈기린반지는 극독이 있었다. 그런데 청라보패는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천주성주가 말하기를 정신을 맑게 해준다는데, 평소에 정신이 흐리고 맑은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것보다 중요한 건 벽리항이 남긴 글일 터였다. 아직까지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일단 머릿속에 넣어는 놨다.

난 종남파의 빈객실로 들어갔다. 빈객실에는 한유림이 있었다. 내가 구도전에 갈 때는 혼자 갔기 때문이다.

“오셨습니까.”

“별 일 있었어?”

“네.”

나는 그 말에 짐을 정리하다가 멈칫했다. 당연히 뭔 일이 없을 줄 알고 물어본 거였기 때문이다.

“사람을 보냈는데, 구도전에 없다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구도전에서 빠져나와 비동에 있었으니까. 한유림은 나를 지키려고 온 게 아니었다. 세가와의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온 거였다. 그녀는 품에서 쪽지들을 꺼냈다.

난 짐을 정리하다 말고 쪽지들을 건네받았다. 종이들의 귀퉁이는 모두 붉었는데, 그건 모두 시급한 안건을 뜻하는 것이었다.

- 옥문관 연락 두절.

- 청해 서녕(西寧) 비마진천으로 추정되는 폭발 사고 발생.

- 옥문관 절멸 확인. 보고자 초유열.

“마교인으로 추정되는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한유림이 덧붙였다. 이미 서한에는 뜯긴 흔적이 있었다. 월권은 아니었다. 내가 없으면 그녀가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게 맞으니까 말이다.

그건 중요한 정보였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일반 교도의 자폭이 아니라는 셈이니까.

그들은 일반 교도와 다른, 좀 더 다른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왔다는 거였다. 그렇다는 건 곧···

“거물이 왔군.”

나는 창문 바깥을 바라봤다. 저기 하늘 너머로 매들이 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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