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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98화 (199/225)

198화 늦지 않게 왔구나

198화 늦지 않게 왔구나

중원합동회의의 주제는 단 하나였다. 정파의 주적, 마교. 그러나 처음부터 우리가 마교만을 주제로 삼은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파끼리 통합을 시키는 게 문제였다.

모으려고 해도 잘 모이지도 않고, 모아봤자 자기들의 이익만 주장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그들이 얻고 싶어 하는 이익이란, 보통 남의 손해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중원에 있는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그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것을 정리한 게 바로 황금세가였다. 우리가 가진 막대한 재화로 그들의 욕구를 채워준 것이었다. 물론 그냥 재화를 뿌린 건 아니었고, 세가 내에서 많은 이론적인 토론을 거쳐 배분했다.

- 생각해봐라. 모두를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대개 사람들은 상대와 비교해 만족을 얻거든. 모두의 욕구를 충족시키면, 모순적이게도 어떤 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거지.

언젠가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난 확실히 사람의 행동 양식이라든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 감정의 발로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약했다. 내 약점은 인간을 잘 모른다는 것에 있었다.

그 약점을 채워준 건 아버지, 첫째 형님, 둘째 형님, 누나를 비롯한 내 가족들, 그리고 주변의 명재희나 구조흠, 종리운, 갈유월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내게 진실된 모습을 보여줬고, 그러므로 인간이라는 걸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 모두를 결핍시켜야지. 욕구의 반만 채워줘라.

- 다 채워주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 또 다른 욕구들을 채우려 싸우겠지.

- 그럼 결국 싸움은 종식시킬 수 없는 거군요.

- 이 세상에는 평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싫어하는 사람도 있거든.

결국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신망을 얻은 다음, 그들의 싸움이 커지지 않도록 중재해주는 것에 그쳐야 했다.

그래서 황금세가는 모든 중원 사람들에게 중재자라고 불렸다. 오대세가의 일원이기는 했지만 오대세가만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지도 않았고,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 온 힘을 다했다.

다른 문파나 세가 사람들은 모를 거다. 그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황금세가의 인재들이 지금 연구하고, 조사하고, 소통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 결과, 적어도 마교라는 상대가 앞에 있을 때는 뭉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거다.

“일단, 공동파 먼저 발언하겠습니다. 돈황(敦煌), 옥문관(玉門關)에 사람을 배치했지만, 마교의 폭탄마로 의심되는 자들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청해를 통해서 돌아왔단 말이오? 그 험산(險山)을 넘어서?”

공동파 장로가 발언하자 사천당문의 가주, 당해립이 발끈했다. 청성파와 아미파도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신강과 맞닿아있는 곳은 감숙과 청해다. 만약 폭탄마가 들어온다면, 서장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상 감숙과 청해를 통과해야 된다는 의미다.

감숙은 공동파가 있지만, 청해는 딱히 문파가 없어서 사천에 있는 청성파, 아미파, 당문이 번갈아서 담당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공동파의 발언은 청해를 담당하고 있는 사천의 문파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진 거다.

“당장 폭탄으로 자기 몸 하나 불사르는 것들이오. 산이 아니라 초원으로 돌아올 수도 있고.”

“그 초원을 달리는데 우리가 못 볼 리는 없소. 당장 청해에는 삼백 개가 넘는 진법이 설치되어 있소. 지금도 계속 증축 중이지.”

“그건 감숙도 마찬가지라오.”

어째 논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내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 쳤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회의장 전체를 공명시키기에는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공동파의 장로가 고개를 숙였다. 이제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와 어릴 때부터 친분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민감한 사항이니 이해합니다. 어쨌든 경계가 뚫린 곳이 있다는 거겠죠. 서역 상인으로 위장해서 들어올 수도 있고, 청해의 산지를 넘어올 수도 있는 것이니. 중원이란 대륙이 크니 전부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내 말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현재 회의의 주된 의제는 비마진천을 이용한 폭탄마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였다.

비마진천은 다른 벽력탄과 다르게 호신강기를 둘러야 막을 수 있었다. 적어도 초절정은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골치 아픈 일이었다. 원래 마교가 비마진천을 이용해 정파를 뒤흔드는 건 삼 년 후여야 했다. 전생 기준으로 내가 스물여덟 때 정파와 마교가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 말은 정파와 마교의 충돌이 앞당겨졌다는 걸 뜻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간자를 이용해 정파를 뒤흔드는 작업이 실패했고, 정파의 규합이 빨리 되니 위기감을 느낀 것일 테다.

“일단 진법을 증축해야겠군요.”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천주성의 십이당주가 있으면 마인들을 감지할 수 있으니 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파를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속만 지켰을 뿐, 우리를 돕지는 않았다. 황금세가와는 연락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확히 뭘 하는지는 모른다. 아마 자체적으로 전력을 구성하고 있을 거다.

“그 방법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그럼 그렇게 하시죠.”

내가 일단락을 지었다. 마교는 비마진천의 폭탄마들만 보내며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고, 천주성은 요녕에서 잠자코 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으면서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오 년째 반복되고 있다. 중원에 긴장은 쌓여가고 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터질지는 누구도 몰랐다. 난 그저 준비할 뿐이었다.

“그럼 회의는 이만 마치도록 하죠.”

오늘 얘기할 건 더 이상 없는 듯했다. 물론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끝내는 거였다.

“그리고 다들 제가 오늘 해남에서 회의를 연 이유를 알고 계실 겁니다.”

내 말에 살짝 소란스럽던 회의장이 정숙하게 가라앉았다. 원래 회의는 호북 무한에서 이루어졌다. 중원합동회의 건물은 무림맹 본단과 지역을 같이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내가 일부러 사람들을 해남에 모이게끔 했다. 바로 해남의 장문인, 적유엽이 위독하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연이 있으시든, 없으시든 슬픔을 같이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럼 이상입니다.”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회의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러 왔다. 딱히 할 말이 없어도 그냥 친분을 쌓고 싶은 모양이었다. 시간이 있을 때는 받아주지만, 오늘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난 바로 명재희에게 회의의 뒤처리를 맡기고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바닷바람이 입맛에 짜다. 얼굴이 찌푸려지는 건 그 때문이었다.

*

오 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전 중원에 있는 수백 개의 문파, 세가를 조율하는 일은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오 년 전의 일은 과장이 아니라 내게는 어제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딱히 설명할 길도 없다. 그냥 황금세가가 정파를 조율하려 힘썼고, 나름 형태를 갖췄다는 것뿐이다. 물론 그 아래 수많은 합의와 거래, 암투가 있었다.

난 지난 오 년 간은 칼이 아닌 혀와 붓으로 싸웠다.

“오랜만에 이렇게 문파를 나들이하는 게 나쁘지는 않군요. 종이 냄새보다는 쇠 냄새가 낫죠.”

“너도 이제 천생 무인이 다 됐구나.”

곽진도가 허허 웃었다. 스승님은 오 년 전과 비교해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하긴 스승님도 엄청난 고수니 지천명의 나이에서 늙은 티가 날 리가 없다.

“장문인께서는 어떠십니까?”

“이쪽이랑 저쪽을 왔다 갔다 하더구나. 답지 않게 미련이 남았는지도 모르지.”

“고생하셨군요.”

곽진도는 일찌감치 적유엽이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해남으로 가서 병수발을 들었다. 그게 한 육 개월 정도 됐다. 나도 그러니까 스승님을 육 개월 만에 처음 보는 거였다.

“전 상상이 안 되는군요. 그 장문인께서 아프시다는 게 말이죠.”

“나도 그랬는데 이제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오래도 살았지. 백 년하고도 십 년을 더 넘게 살았으니 말이다. 호상(好喪)이야, 호상.”

“그런 걸까요.”

“술만 좀 덜 먹었어도 오 년은 더 살았지.”

곽진도가 웃었다. 그 웃음에는 감출 수 없는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육 개월동안 아픈 적유엽을 살폈다. 근데 아직도 이별이 준비가 안 된 모양이다. 나도 나와 연이 깊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럼 뵙고 오거라.”

“네.”

나는 고개를 꾸벅이고 내원으로 향했다. 주변에 돌아다니는 해남파의 제자들이 내게 인사들을 해왔다. 지금 막 들어온 삼대제자들은 내가 사숙조이니 바짝 얼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하나씩 받아주며 장문인실로 갔다.

장문인실에는 사기가 가득했다. 생기가 사람의 몸에서 빠져나오면 사기로 변한다. 사기를 나처럼 느낄 수 없는 사람도, 축 쳐지는 느낌이나 묘한 기분을 받을 거였다.

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문앞에는 해남의 제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인사를 한 다음 비켜주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가 작게 문을 두드리고 말했다.

“들어오시게.”

들어가니 소림사 방장 진권이 있었다. 내가 문을 들어가자 진권은 다시 불경을 외웠다.

“···그러므로 공(空) 중에는 물(物), 생각(想), 움직임(行), 의식(識)도 없으며, 눈, 귀, 코, 혀, 몸, 뜻, 색깔, 소리, 향기, 맛, 감각, 법도 없으리라. 무명(無明)도 없고 무명이 다하지도 못하리라. 괴로움과 괴로움의 근원,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으리라.”

나는 병상에 누워있는 침상 옆의 의자를 끌어 앉았다. 적유엽의 모습은 마른 나뭇가지와 같았다. 검고 주름이 가득하다. 원래도 살짝 마른 몸이기는 했지만 피부가 검게 죽어있지도, 갈라진 피부에서 냄새도 나지 않았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나는 축 늘어진 적유엽의 손을 잡았다. 조금만 힘을 줘도 으스러질 것 같이 연약했다. 심장소리가 굉장히 느리게 들렸다. 내게는 오 년 전의 건장한 적유엽이 하루 만에 이렇게 변한 것처럼 느껴졌다.

“말은 못해도 듣고는 있네. 작별 인사를 하게나.”

진권은 잠시 반야심경을 끊고 내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난 적유엽의 손을 두 손으로 그러쥐고 입을 열었다.

“장문인, 금목환입니다.”

난 잠시 입을 닫았다. 뭐를 말해야 할까. 중요한 시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난 어지간히 황당할 때가 아니면 말문이 막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건 황당하지도 않았다. 그냥 말문이 막혔다. 순간 멍청해진 느낌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할 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을 때, 비로소 내 입에서 자연스레 말이 나왔다.

“뭔가, 익숙하지 않군요. 장문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제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 어떻게 보면 장문인께서는 저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반야심경의 소리가 들린다. 나와 피로 엮인 존재도 아니며, 나와 평생을 같이 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은 이렇게나 씁쓸한 것이었다. 감정이 없던 내 마음을 채워줬던 건 다른 사람들의 존재들이었다. 비로소 난 그걸 느꼈다.

적유엽도 나를 채워주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는 내 마음 속을 채워줬던 만큼의 구멍을 남기고 떠날 것이었다. 그건 누구로도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일 터였다. 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몸에 사기가 가득하시니 분명 안 아프신 곳이 없으실 겁니다. 경맥 군데군데가 시리고 고통을 겪고 있으실 겁니다.”

내 눈에는 적유엽의 몸이 검은 기에 덮여있는 걸로 보였다. 사기에 덮인 장기는 서서히 멈춰간다. 그러나 영(靈)은 기와 무관하므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거였다.

“빨리 떠나세요. 시간을 끌면 끌수록 힘들 뿐입니다.”

압도적인 사기를 마주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난 그의 손을 잡고 태원지기를 살짝 흘려보내줬다. 너무 많이 보내면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정말 미량의 기만을 보냈다. 자연의 기운은 모든 걸 안정시키는 힘이 있었다. 분명 고통이 좀 덜할 것이었다.

“그럼.”

나는 적유엽의 손을 다시 이불 속에 넣어줬다. 뒤로 조문할 사람이 많았기에 내가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는 것도 실례였다.

그렇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였다. 마른 고목 같은 적유엽의 손이 내 손목을 낚아챈 건 말이다.

“···장문인?”

난 적유엽을 바라봤다. 흐리멍텅하게 떠져 있던 적유엽의 눈이 힘을 되찾았다. 그 밀밀한 사기를 뚫고, 눈에서 미약한 생기 한 줄기가 삐져나왔다.

반야심경을 외우던 진권도 깜짝 놀라서 말을 멈추고 우리를 바라봤다.

“늦지 않게 왔구나, 목환아.”

적유엽의 입에서 약한 목소리가 나왔다. 귀에 내력을 담지 않으면 들을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적유엽의 힘겨운 말이 이어졌다.

“너한테 줄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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