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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96화 (197/225)

196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196화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

황금세가 본원은 늘 그렇듯 조용했다.

황금세가 가주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많이 없었지만, 그나마 알려져 있는 건 조용한 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원에 들락거릴 수 있는 인원은 수많은 황금세가 인원 중에서도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자주 들락거리는 사람은 바로 기철이었다.

“가주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래.”

기철은 두 손으로 문을 젖혔다. 집무실 책상에는 머리를 위로 올려 묶은 헌헌장부(軒軒丈夫)가 앉아있었다.

오 년 전에 비해 성숙한 느낌을 풍기는 금목환이 그곳에 앉아있었다. 기철은 거의 매일 보는 얼굴이었지만, 볼 때마다 감탄했다.

예전에는 잘생긴 얼굴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잘생긴 얼굴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오늘 일정은?”

금목환이 물었다. 기철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오늘 사시에는 내외원 성과보고가 있으며, 오시에는 해남파 장로님들이 찾아오시기로 했습니다. 그 이후는 무한에서 열리는 중원합동회의에 참여하셔야 합니다.”

“밥먹을 시간도 없겠군.”

금목환은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표정 역시 말투와 다르지 않게 무표정이었지만, 기철은 이제 저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지금 금목환은 상당히 마뜩찮은 기분일 것이었다.

이건 중원에서도 아는 사람이 몇 없는 사실이지만, 금목환은 음식을 즐기는 미식가였다. 딱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것 없는 그가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식사시간이니 말이다.

“아닙니다. 장로님들이 해구(海口)의 특산물을 같이 들고 오실 거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점심은 화락해(和樂蟹), 가적압(可積鴨), 동산양(東山羊) 볶음입니다.”

“오.”

금목환이 살짝 탄성을 냈다. 물론 여전히 무감동해 보이는 목소리였지만, 저 정도의 의사표현도 기철 입장에서는 굉장한 변화였다.

“내외원 성과보고라. 그건 일단 화청 형님한테 넘기고.”

“네.”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옛날에는 첫째 형님, 둘째 형님이라고 호칭을 불렀다면, 어느샌가부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는 거다.

“해남파 장로님들···은 뵙긴 뵈어야겠군. 대충 어떤 일로 오는지 알 것 같아.”

“네.”

“합동회의는 빠지면 안 되냐고 물어봐.”

“이미 비연각에 물어봤습니다. 의장이 빠지면 되겠냐고 되묻더군요.”

“그래?”

고저없는 목소리에 짙은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또 하나의 바뀐 점은 가주가 남에게 일을 맡기는 걸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옛날엔 심지어 청소까지도 본인이 알아서 했는데, 요즘은 시종들에게 맡기고 있다. 심지어 바닥청소는 깔끔하게 해놓으라는 주문과 함께 말이다.

당연하지만 그런 변화들이 기철 입장에서는 반가웠다. 그들의 존재 의의는 가주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있으니 말이다.

금목환은 그렇게 벌어놓은 시간에 본원에서 지내는데, 그때만큼은 기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접근 엄금이라 뭘 하는지는 몰랐다.

“그래. 알았어. 나가봐.”

일정을 다 들은 금목환은 기철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기철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금목환은 기철의 흔적이 전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려면 최소 본원 건물 바깥을 나서야했다.

곧 기철의 흔적이 사라졌다. 금목환은 땅바닥에 앉았다.

정수리에서 회색 안개가 뭉게뭉게 품어져나왔다. 안개가 나오자마자 방이 한 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바뀌었다.

그 내공은 태을헌원신공도, 태원지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금목환이 혼원지기(混元之氣)라는 이름을 붙인 내공이었다. 당연하지만 세상에서 오롯이 금목환만 쓰는 내공이었다.

*

황금세가의 대전. 회의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커다란 원형 책상에 의자들이 빼곡하게 둘러져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금목환과 해남파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잘 지냈나. 가주.”

“오랜만입니다. 장로님.”

해남파의 권동운 장로는 금목환 앞에서 포권을 했다. 권동운을 따라온 제자들 역시 바로 포권을 했다. 그들의 매듭을 보아하니 삼대제자부터 이대제자, 일대제자까지 섞여있었다.

“다른 해남파 사람들도 반갑습니다.”

“요즘 많이 일정을 빠진다고 들었는데.”

“저도 좀 쉬어야죠.”

금목환이 말했다. 제자들이 말하면 혼쭐을 낼 말이었지만, 금목환의 입에서 저 소리가 나오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긴, 사 년동안 중원의 모든 문파와 연결되어있는 중원합동회의를 만들려고 움직인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나.”

중원 전체를 아우르는 조직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중원에 단체와 사람이 몇인데 그들을 전부 아우른다는 말인가. 괜히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자기 지역만 지킨 건 또 아니었다.

그러나 금목환은 압도적인 부력(富力)으로 그걸 가능케 했다. 황금세가는 사람들을 고용해 중원 문파들의 인구자원수, 위치, 특징 등을 조사하고 다녔다.

황금세가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중소문파 사람들은 협조를 떠나서 자발적으로 본인들의 정보를 신고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것만 일 년이 걸릴 정도로 대규모 조사였다.

“우리는 기구를 만드는데 적어도 몇 십년은 걸릴 거라 봤는데 말이야.”

“다들 협조를 잘해줘서 그렇죠.”

권동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세가는 좀 특이한 세가였다. 상계에서 무가로 거듭났고,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무리인 신단회에 속해있으면서도, 중소문파들에게는 절대적인 지지까지 받고 있었다.

권동운이 생각하기에 그건 다른 문파들이 협조를 잘해서가 아니라, 그걸 협조하게끔 한 황금세가가 대단한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황금세가는 이 금목환이라는 거인이 만든 것이었다.

“그나저나 오늘 좀 맛있는 것들을 가지고 오셨다면서요.”

“지금 아마 요리중일거라네.”

“그렇군요.”

잠깐 입맛을 다신 금목환은 말을 이었다.

“일단 자리에 앉죠.”

금목환의 말에 따라 자리에 해남파 사람들이 앉았다. 자리에 착석하자마자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줄지어서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한 사람마다 차 한 잔씩을 놓고 다시 줄을 지어 나갔다.

“저 정도면 우리 삼대제자들보다 제식(制式)이 좋은데.”

권동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가는 시종들을 보며 감탄했다.

“어느 정도 무공을 배우고 있으니까요.”

“시종들도?”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기는 하지만, 모두가 배우기를 희망해서 가르치는 중입니다.”

권동운은 혀를 내둘렀다. 역시 황금세가는 다른 세가와 달랐다. 어떤 가문이 시종에게 무공을 가르쳐준다는 말인가. 또 저 정도 자세가 나올 정도면 어디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무공을 가르치는 것도 아닐 거였다.

“혹시 우리 해남파 무공도 살짝 봐줄 수 있겠나?”

“나중에요. 지금은 좀 바쁩니다.”

“그 답을 한 백 번은 들은 것 같은데.”

“그 질문을 백 번을 하시니까 그렇죠.”

권동운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황금세가가 우선인 사람이다. 금목환이 무공 이론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많은 문파들은 금목환에게 무공을 보여주고 싶어했고, 금목환은 딱히 대가도 없이 그 무공을 손봐주기도 했다. 물론 그건 시간이 허락할 때만이었다. 해남파는 만날 때마다 부탁을 하는데, 그때마다 금목환이 바빠서 퇴짜를 맞았다. 오늘로서 백한 번째 퇴짜였다.

그때 문이 두들겨지지도 않고 벌컥 열렸다. 그곳에는 옆에 수많은 책자들을 낀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권동운과 해남의 사람들은 바로 기립했다.

“오셨습니까.”

“앉아. 옆구리에 책 끼고 있으니까 포권이 안 돼.”

“해남의 제자들이 사숙을 얼마나 뵙기를 고대했는데요.”

“봐서 뭐하려고?”

“뭐긴 뭡니까. 해남파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인물 아니십니까.”

“또 헛소리인가.”

곽진도는 질렸다는 듯 책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자리에 앉았다.

권동운의 말은 단순한 놀림이 아니었다. 이미 중원의 사람들이 많이들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좋았던 황금세가의 복지는 이제 다른 문파와 세가들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고, 그 위세조차 하늘을 찌르고 있다.

황금세가에서 직계를 제외하고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중원에서 성공한 사람이라 말하기 충분했다.

“옛날에 내가 세가 장로직 맡을 때는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그렇게 뭐라 하더니.”

“그게 큰 그림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중에 저 황금세가 보직 해제됐을 때 얼마나 화가 났는데요.”

“대체 언제까지 인생 쉽게 살려고 하는 거냐?”

“죽을 때까지요.”

곽진도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 이후에도 금목환, 곽진도, 권동운은 서로 안부를 나눴다.

뒤의 해남의 제자들은 그저 꿀먹은 벙어리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서 금목환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금목환과 맞먹으려고 했다가는 당장 권동운에게 뺨따귀를 맞을 게 분명했다.

금목환은 해남의 배분만 따져도 웬만한 제자들의 사숙조였으니까. 그런 어른들이 얘기하는데 제자들이 끼어들 틈은 하나도 없었다.

“요즘 그렇게 중원에 폭탄마들이 많다던데.”

“네. 그 폭탄이 비마진천이라고 하더군요. 벽력탄의 열 배는 되어 보이는 힘입니다. 폭사하려는 목적으로 터뜨리니 잡기도 쉽지 않구요. 골치입니다.”

삼 년 전서부터 마교는 중원에 사람을 보내 폭탄을 터뜨리는 행위를 감행했다. 목적은 어쩌면 무림 명숙일 때도 있었고, 무림과 하등 상관없는 아이들일 때도 있었다.

금목환이 알기에는 그런 미래 따위는 없었다. 비마진천은 원래 자신이 스물다섯, 그러니까 지금쯤 나왔어야 했다. 근데 평소보다 이 년이 빨리 나온 거다. 그 이유는 대충 알고 있었다.

정파 사람들이 빠르게 규합하는 것 같으니 최대한 겁박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중원합동회의는 설치가 거의 끝났으니, 마교의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해남도 조심하세요. 저번에는 절강까지 가서 터뜨리더군요.”

“그래? 괜찮아. 우리는 애초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어서 다 검사를 하거든.”

“그럼 다행이고요. 이번에 가서 봐야겠군요.”

“무슨 일로 온 줄 알고?”

권동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금목환은 권동운에게서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무표정이었지만 침통한 느낌을 내고 있었다.

금목환은 새삼 본인이 아는 세계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어떤 사람은 전생보다 일찍 죽고, 어떤 사람은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더 오래 살기도 했다.

그건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너무 많은 시선을 사람들에게 줘야 하니까. 그저 금목환은 전생과 똑같은 시기에 죽는 사람들을 챙겼다.

“슬슬 장문인께서 돌아가실 것 같네.”

권동운이 말했다. 곽진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세월은 초절정고수보다 강했다. 아무리 정정하게 날아다녔어도, 적유엽의 나이가 이제 백십세였다. 더 이상 무공의 깨달음이 없으면 그간 겪어야할 세월의 모진 풍파를 한 번에 맞아야 했다.

그건 무인들이라면 한 번은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는 체험이었다.

“재작년에 찾아뵈었을 때만 해도 건강하셨었는데요.”

“무공이 진전이 없으시니. 진전하려고 하시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런가요. 그거야 장문인의 선택이죠.”

금목환은 찻잔의 손잡이를 어루만졌다.

“조문객들 명단은 나왔습니까?”

“그래. 서한으로 보내왔더군.”

금목환은 권동운이 건네준 종이를 받았다. 화산파는 초유열, 무당에는 청진, 무림맹에서는 갈유월, 하북팽가에는 팽상문 등, 금목환과 다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이었다.

“이걸 보니까 약간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는 얘기가 뭔 뜻인지 감이 오더군.”

이제 이들이 벌써 문파와 세가를 대표할 나이가 된 것이다. 명백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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