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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86화 (187/225)

186화 의협지사(義俠志士) (4)

186화 의협지사(義俠志士) (4)

모든 진법에는 핵심이 있다. 사람으로 치면 심장과도 같은 것. 그건 진법을 만들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그래서 진법은 핵심을 중심으로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핵심에 힘을 몰아 지키는 형식, 아니면 핵심을 숨기는 형식.

보통 진법이 작고, 만드는 힘이 적을 때는 핵심에 실리는 힘도 적으니 자연스레 숨겨지게 된다. 반대로 진법이 두 개 이상인 복진(複陳)이거나 규모가 클 때는 힘이 실리고 부각되기 때문에 핵심을 지키는 방식이 사용된다.

“핵심은 나도 느껴져. 저기 봉우리가 아닌가. 거대한 힘이 감돌고 있어.”

“네. 맞습니다.”

종리운이 말했다. 역시 고수의 기감은 무시할 수 없다. 상단전이 없어도 종리운은 칠존의 고수였다.

“허나 저 거대한 힘이 감돌고 있는 건 단순히 핵심이라서가 아닙니다. 다른 진법의 사문(死門)들이 저 봉우리에 몰려있기 때문이죠.”

“사문?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이 아닌가.”

“맞습니다. 진법의 사문은 자연을 어그러뜨려 놓으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을 몰아넣은 곳이죠. 그곳으로 들어가면 진법가 본인도 생명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자연의 모든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니까요. 통제할 수 없습니다.”

종리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빠를 거였다. 진법 개론에서 생문, 사문, 휴문 등을 포함한 팔문에 대한 해석은 기본으로 깔고 가는 거니까.

“그러니까 지키고자 하는 진법의 핵심에 사문을 내면 됩니다. 사문을 통과하면 핵심이 나오도록 말이죠. 그림을 한 번 그려볼까요.”

나는 나뭇가지로 중앙에 원을 그린 다음, 둘레에 직선들을 꽂아넣었다. 마치 태양 같은 모습이 됐다. 단, 원과 직선은 맞닿지 않아있었다.

“여기서 맞닿으면 사문과 핵심이 마주하니 진법의 핵심이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럼 진법은 무효입니다. 이것은 팔문 중 유일하게 사문이 역리를 기본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어떻게 해도 순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순과 역이 같이 하면 궁(窮)하게 됩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사람들의 눈빛이 흐려진 건 말이다. 나는 나뭇가지를 내 손바닥에 쳤다. 착, 손에 감기는 소리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해하셨습니까?”

“응?”

종리운이 번쩍 머리를 들었다. 살짝 졸은 것 같다. 내가 바라보자 종리운의 말이 빨라졌다.

“그럼 어떤 진법이던 사문은 굉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군?”

“그렇죠. 그런데 유명무실합니다. 사문은 통제할 수 없는 곳이기에, 혼돈스러운 힘이 뿜어져 나오는 곳이거든요. 무인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라면 절대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이라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뭔가 급하게 질문을 급조한 것 같지만, 대충 흐름은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긴가민가해보이는 종리운에게 설명을 계속했다.

“물론 사문은 혼돈, 즉 역리가 순리이기 때문에, 사문을 역리로 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됩니다. 사문의 파괴력을 그대로 놓고 싶으면 순리, 파괴력을 줄이고 싶으면 역리로 내면 됩니다. 역에 역은 순이니까요.”

나는 잠깐 말을 멈추고 주변을 바라봤다.

“물론 여기까지는 모르셔도 됩니다.”

그럼 왜 말했냐, 라고 많은 이들이 눈빛으로 물었다. 난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게 나으니까, 라고 눈빛으로 답했다.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어차피 핵심에는 저 혼자 갔다올 거니까요.”

“뭐?”

종리운을 포함한 사람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허나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이 더 반발을 하기 전에 입을 열었다.

“당연하지만, 진법의 핵심에는 어떤 진법들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진법에 들어가면 위험하고, 또 그럴 이유조차 없습니다.”

당장 한 걸음만 뒤틀려도 주변이 천변만화하는 진법이 얼마나 많은데, 이 수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간다는 말인가.

“아니, 자네가 말하지 않았나. 핵심에는 진법들의 사문으로 보호되고 있을 것이라는 걸. 그럼 주변 진법들을 파하고 가야할 것이 아닌가?”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들어가는 겁니다.”

당장 갈유월이 혼자 떨어져 있다가 큰 부상을 당했다. 지금도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올 것이다. 이 진법을 짠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핵심에는 감히 다가올 엄두도 못 내게끔 진법과 기관진식을 깔아놨을 거다. 뻔한 함정이라는 거다. 그걸 갈 수 있는 사람은, 기의 흐름을 눈에 꿴 듯 훤히 보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그럼 우리는 뭘 하라는 건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아까와 같이 사람들을 구해주시면 됩니다.”

주변이 침묵했다. 내가 볼 때는 이 방법밖에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피해는 커질 것이고, 적이 우리의 의도를 모를 때 빨리 움직여야 했다.

“···이건 모두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네. 아니, 사자신검이라는 욕망에 휘둘려 들어온 사람들이 져야 하는 부담이야. 그들은 함정이 있는 걸 알고 뻔히 들어온 사람들이니까.”

종리운의 말에 많은 사람들이 움찔거렸다. 그들의 눈에는 그제야 후회감이 감돌았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었다.

“근데 자네는 사자신검을 위해 온 것도 아닌데 그 부담을 전부 감수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그러지 않았습니까. 협은 불합리한 것이라고. 나는 희생 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날 기리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는 겁니다. 나밖에 할 수 없는 거니까요.”

모두가 그 말을 듣더니 한숨을 내뱉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목단화가 중얼거렸다.

“그게 협객이라는 것 아니겠나.”

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목단화의 말에 모두 공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날 보면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부담스럽네. 이건 좀 과하다 싶었다.

종리운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눈빛을 하며 말했다.

“···그럼 유월이는 나한테 주게.”

나는 뒤를 슬쩍 보고 답했다.

“유월이는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전 살아돌아올 자신이 있으니까요.”

난 갈유월을 업는 자세를 고쳤다. 적어도 이 정도 자신감은 보여줘야 보내줄 것 같았다. 종리운은 그 말에 졌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게. 꼭 돌아오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이 애뇌산에 깔려있는 진법을 깨부수기 위한 별동대가 결성됐다. 별동대는 총 두 명이었다.

*

환마 박용한은 진법이라는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런 그가 천마의 지시를 받고 나오자마자 준비를 한 게 바로 애뇌산의 진법들이었다.

물론 혼자 다 준비하지는 않았다. 움직여야하는 제반 작업들은 홀린 유곡 사람들이 진행했다. 어차피 애뇌산은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라 어떤 사람을 써도 상관없었다.

“이 정도 진법은 본교에서도 보기 힘든데.”

“본교의 진법도 제가 만든 것이니까요.”

웬만하면 칭찬을 잘하지 않는 천유현이 칭찬을 할 정도였으니, 그 진법의 신묘함과 섬세함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었다.

박용한은 자신이 있었다. 온갖 진법들이 겹쳐서 들어가 있다. 만약 지금 본인이 저 진법 안으로 들어가도 한 번에 나올 자신이 없었다. 지금 애뇌산의 생문은 출구가 계속 바뀌는 미로와도 같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흐려진 감각에서 서로를 경계하게 될 거고, 곧 본인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눈앞의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택할 거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저 황금세가 가주라는 놈이 오면서 바뀌었다. 애뇌산에 오자마자 진법에 영향을 안 받는다는 듯 소리가 울리는 쪽으로 달려가고, 지금은 사람들을 규합해 나가고 있었다.

“사기꾼아. 내가 모르긴 몰라도 조진 것 같은데?”

천유현은 환마를 사기꾼이라고 불렀다. 환각을 보여주는 걸 사기라고 단정 지은 거다.

“절대 안 뚫린다며. 이제 남한테 사기를 치다 못해 나한테도 치는 거야?”

“아닙니다.”

박용한은 억울했다. 애초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진법이라는 공부가 왜 발달했겠는가. 저 황금세가 가주가 이상한 거지, 진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진법이 아예 역할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장 금목환이 없는 상대편 골짜기에서는 무차별한 살육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곡 사람들과 같이 심마환상공에 걸려있는 현현검왕, 빙제 이 둘은 애뇌산에서 무차별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있었다. 그뿐인가. 그리고 천유현에게 돌아가는 길에 마구잡이로 환상공을 걸었다. 정파 사람들을 최대한 혼란스럽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그에 따라 정파 인원들도 서로 싸우며 피를 흘리는 혼돈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박용한은 여전히 자신감을 거두지 않았다.

“금목환이 구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입니다. 다 구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겁니다. 큰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확실히 금목환이라는 녀석이 두 사람만 더 있었어도 목적 달성은 힘들었을 것만 같다. 왜 천마께서 그를 주시하고 특별 지시를 내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 자는 정말 천마신교에 해가 되는 자였다.

그러나 한 명이 많은 사람들을 통제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그리고 그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힘들다. 실제로 무리는 덩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속도는 줄어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진법을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목환 무리가 갑자기 멈추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금목환이 갑자기 진법의 핵심이 있는 봉우리로 달려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도 혼자. 아니, 왜인지 모르지만 업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둘이다.

“···쟤는 뭐해? 쟤가 금목환이지?”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박용한은 천유현의 말에도 답하지 못했다.

“저거 자살행위 아니야?”

천유현이 말했다. 맞다. 자살행위였다. 이런 커다란 진법의 핵심을 어떤 보호도 안 해놨으리라 생각한 건가. 저기에는 기관진식도 기관진식이지만, 다른 진법들의 사문으로 둘러싸여있어 절대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애초에 뚫릴 거라 상정도 안 한 곳인데, 금목환이 그곳으로 질주를 하니 괜히 식겁한 거다. 생각해보면 전혀 식겁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자살행위죠. 진법의 사문에 들어가면, 외부에서 진법을 깨주기 전에는 계속 갇혀있게 될 겁니다. 아니면 죽어버리거나요.”

“그렇지?”

“만약, 정말 혹시나 깬다고 해도 의미는 없을 겁니다.”

박용한은 장담했다. 그는 장담할 수 있었다. 진법의 확신성을 장담하는 게 아니었다.

“정파인들의 탐욕이 얼마나 큰지, 금목환은 모르고 있는 것 같군요.”

“하긴 그렇지. 우리가 준비한 건 이게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맞습니다.”

박용한은 산을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금목환을 바라봤다. 여기서는 금목환이 보이지만, 금목환은 볼 수 없을 거다. 안개를 뿜어내는 진법이 이 봉우리에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용한과 천유현은 여기서 그저 지켜보면 됐다. 금목환이 사문에 갇혀서 어떻게 말라가고 죽어가는지를 말이다.

아니, 아니다.

박용한의 뇌리에 문득 번개가 스쳤다. 뜻밖의 행동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건 엄청난 기회였다.

“소천마님. 지금 금목환이 진법의 핵심으로 다가가고 있는 게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 뭔데?”

“혼자 있다는 게 중요합니다.”

박용한의 말에 천유현은 눈을 깜빡거리다가, 곧 짙은 미소를 지었다.

“맞네.”

“사문을 구경도 할 수 없게 하죠.”

박용한이 말했다. 그와 함께 소매에서 청동색 방울이 나왔다. 박용한은 그 방울을 흔들었다.

작은 방울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다는 거대한 소리가 애뇌산을 덮었다.

심마환상공에 홀려있는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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