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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85화 (186/225)

185화 의협지사(義俠志士) (3)

185화 의협지사(義俠志士) (3)

“저 사람이 소제군.”

“한 번 보면 못 잊을 정도로 잘생겼다더니, 정말 그렇군.”

“괜히 약선께서 옥룡이라는 별호를 내리셨겠는가.”

“아, 그런 별호도 있었나?”

왜일까. 뭔가 구경당하는 코끼리가 된 것 같았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가 날 두고 얘기하고 있으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다.

특히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무인들은 날 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못해 안광이 비칠 지경이었다.

뭘 해야할지 몰랐을 때, 내 뒤에서 미약한 뒤척거림이 느껴졌다.

“···음.”

난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옆을 돌아봤다. 한결 호흡이 편안해진 갈유월이 부드러운 머리칼을 흐트린채 내 어깨에 이마를 묻고 있었다.

그래도 부러진 팔이나 감은 붕대를 보면 마음이 아려왔다. 그건 갈유월이 역시 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현재 그녀의 상태에 대해 책임을 물을 곳은 분명하다.

“미안하네. 내가 좀 더 잘 돌봐줬어야 하는 건데.”

종리운이 내 옆에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하나밖에 없는 귀한 제자를 죽일 뻔했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전혀 없었다.

“마교의 잘못일 뿐입니다.”

“···그 자네가 보낸 천주성 사람들이 마인이 있다고는 했으나, 난 아직 발견하지 못했네.”

“당장 탁탑천왕의 상단전에도 마기가 있었습니다.”

“뭐?”

종리운이 깜짝 놀랐다. 상단전에 마기가 있다는 건 마인이나 다름 없다는 얘기처럼 들릴 것이었다. 허나 그건 명백히 달랐다.

“탁탑천왕이 마교의 간자라는 뜻은 아닙니다.”

탁탑천왕의 상단전에 있던 마기는 고작 한줌. 그건 본인이 단련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걸 뜻했다.

그렇다면 마교의 어떤 술법에 의하여 그 마기가 심어졌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마교의 술법에 당한 거라면 그 역시 희생자군.”

난 종리운의 말에 대해서는 대답을 아꼈다.

난 그 마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건 이성을 잃게 하는 역할 이외에 어떤 것도 하지 않았다.

만약 조종을 했다면 상단전에서 마기가 퍼져나와 다른 경맥으로 흘러가는 걸 내가 봤어야 했다.

그러니까 움직임 자체는 탁탑천왕이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게 맞았다는 거다. 나와 맞설 때 갈유월을 노렸던 그 비겁한 공격. 만약 이성을 갖추고 있던 탁탑천왕이라도 궁지에 몰렸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 거라는 방증이었다.

난 찰나의 순간 탁탑천왕을 기절시키고 진기도인을 하여 마기를 빼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어려웠다. 웬만한 정도의 마기라면 내가 어떻게 해봤겠지만, 마기는 내가 본 어떤 마기보다 고강했다. 창천검제, 남궁선우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정도였다.

순도, 세기, 밀밀함, 어느 부분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다. 정파인으로 치자면, 정순한 기만을 받아들인 내가 기공의 고수와 같았다. 정파 무공과 마공을 번갈아 배운 남궁선우와 달리, 아예 처음부터 마공을 익힌 사람이다.

“일단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그건 종리운뿐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말하는 것이었다.

수군거리던 많은 사람들이 내게 귀를 쫑긋거렸다.

“이 애뇌산에 환술을 쓸 수 있는 마교의 고수가 있습니다. 탁탑천왕도 마기에 침범된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알죠?”

누군가가 손을 들어 물었다.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노려봤다. 큰 잘못을 한 아이 혹은 부모의 원수를 보는 듯했다.

종리운은 그때야 내게 귀띔을 해줬다.

“자네가 산왕을 이겼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 자네 추종자들이 좀 늘었다네. 탁탑천왕을 벤 걸 봤으니까 더 그러겠지.”

“···빨리 말해주시네요.”

그나저나 좀의 수준이 아닌 것 같다. 젊은 무인들의 눈은 광기에 가까운 맹목이었다. 심지가 굳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사람들이 없는데, 내가 중소문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좋을 줄은 몰랐다.

“···죄송합니다.”

내게 질문을 했던 누군가는 불쌍하게도 바로 사과를 했다. 어떤 답변도 듣지 못했지만 알아서 납득한 것 같았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말에 사람들의 긴장 수위가 올라갔다. 사실 그들도 알고 있을 거였다. 난 그걸 상기시켜준 것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마기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진법과 이상한 환각 때문에 가까이 가지 않으면 소리도 들리지 않을 겁니다. 진법은 범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하죠?”

그걸 물어본 사람은 아까 물어본 사람을 죽일 듯 노려봤던 청년 중 하나였다.

“그거야 나···”

“소제님을 따라가면 되는군요! 알겠습니다!”

“···아, 맞습니다.”

어째서 나를 따라오라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냥 나와 같이 다니고 싶은 것 같았다. 아무튼 소 뒷걸음질로 쥐를 잡았아도 잡은 건 잡은 것.

저런 신자(信者)가 없어도 뭉쳐다녀야 하는 건 맞았다. 그들 역시 내가 누구를 말하는 줄 알 것이었다. 그들도 여기까지 오면서 습격자들과 마주쳤기 때문일 거다. 최소 습격에 당해 죽어버린 정파인의 시체라도 봤을 거다.

“그럼 같이 움직여야하니 각자 방위를 정해야겠군요.”

내가 말했다. 사람들은 나와 주변 사람들을 번갈아 봤다. 굳이 내 신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럭저럭 믿는 눈치였지만 당장 본인 주변의 무인들은 그렇게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소제님께 감히 한 말씀 드립니다. 당장 운남에 정파 무공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체들이 발견됐었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하고 등을 대고 싸우는 건, 조금 걱정이 된다고 해야 하나···”

“네놈이 제일 의심된다! 아까 잠깐 사라지고 나서, 그 사라진 방향에서 시체가 나왔다고!”

“소피를 보러 간 거라고 말하지 않았소!”

순식간에 소란의 조짐이 보였다. 나는 바로 진각을 밟았다. 쿵, 흙먼지가 위로 떠오르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렸다.

“여기서 마교의 간자는 없습니다. 그건 제가 보증합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가까이 있는 그들이 내게서 마기를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정말 정파 사람들인 거다.

“이왕 믿어주는 거, 한 번 더 믿으시면 합니다.”

내가 말했다. 좌중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조용해졌다. 나도 기대하지 않았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였다. 종리운이 목소리를 낮춰서 투덜댔다.

“내가 말할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던 것들이.”

검존의 위상이 떨어진 건 아닐 테니까, 내 위상이 올라갔다고 말할 수 있겠지. 만약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같은 명가 사람들이었따면 검존의 말을 더 들었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개 중소문파였다.

황금세가가 오대세가로 편입되긴 했지만, 기존 오대세가와 달리 취급되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천대받던 상가에서 무가를 천명하고 바로 성과를 내고, 일 년도 되지 않아 오대세가 자리를 차지한 우리들은 그들에게 하나의 상징인 거다.

결국 종리운 대신 내가 사람들의 방위를 정해줬다. 그들끼리 짜면 또 싸움이 날 게 분명했다.

난 빠르게 사람들을 정리하고 움직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기 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규합해야 했다.

*

나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갈유월을 업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적이 있는 곳으로 태을헌원진기를 담은 침을 던져줬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공격하는 방식이었다.

“어떻게 적이 있는지 아시는 겁니까?”

“기감입니다.”

“···허어. 이들은 유곡 사람들입니다.”

유곡.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범죄자들과 살수들이 있는 흑도 무리라지. 그들은 대개 살수로 활동했기에 정파보다 은밀한 신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더 일찍 찾으니 사람들은 신기해해 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고수들도 유곡 사람들의 경신법은 눈치채지 못한다고 하던데.”

“저한텐 아닌가봅니다.”

“역시 허명이 아니군요.”

은밀한 신법이라면 나도 익히고 있다. 목현학의 방축귀매신법이라고. 물론 기감을 파악하는 건 신법과는 별개로, 상단전의 기감이다.

유곡의 적들은 마치 나무의 열매마냥 떨어졌다. 비명소리도 내지 않고 죽는 게 낯설었다. 그건 그들의 본능일 거다. 물론 탁탑천왕도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그건 비명을 지를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 지금과는 좀 달랐다.

우리는 그렇게 애뇌산을 돌아다니고, 난 계속 애뇌산의 진법을 해제하려고 노력했다. 정말 시간이 남아도는 놈들인지, 애뇌산 전체에 깔려있는 진법이 몇 개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작은 진법들이 모여 큰 진법을 만들고, 또 그 진법들이 모여서 또 다른 진법들을 만드는데, 그 힘들이 애뇌산 전체에 걸쳐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단체로 움직이고, 내가 먼저 위험을 경고해주니 사상자가 나올 일은 없었다.

결국 우리는 그동안 흩어져 있던 다른 정파 무인들도 규합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무인들에는 당연히 천주성의 당주들도 있었다. 제일 먼저 찾은 건 삼 당주인 목단화였다.

그의 칼에도 피가 많이 엉겨 있었는데, 꽤 많은 사람을 베고 다닌 듯했다.

“가주.”

목단화는 내 뒤에 업혀있는 갈유월을 보고 혀를 찼다.

“미안하군. 아가씨가 좀 다친 것 같네.”

“당주 잘못은 아니죠.”

나도 애뇌산에 들어와서 마교의 환각을 봤으니까. 그건 처음 당하면 필수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옛날에 한 번 당해봐서 빨리 탈출할 수 있었던 거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처럼 애뇌산을 돌아다니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을 거다.

우린 그 이후에도 애뇌산의 골짜기들을 돌아다녔고, 이 당주인 송천우와 십일 당주 당공현까지 찾을 수 있었다.

난 중간에 종리운에게 물었다. 암묵적으로 종리운이 일차적으로 이곳을 통제하고 있는 책임자였으니까.

“맹주님. 여기 모였던 인원이 총 몇 명이었죠?”

“이천 명 남짓했지.”

“이천 명이라.”

지금 날 따르는 사람들은 삼 명 정도. 천칠백명 정도가 산에서 방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애뇌산에서 마주치는 사람의 종류는 세 개였다.

첫째, 마인들에게 세뇌당한 유곡 사람.

둘째, 탁탑천왕처럼 마인들에게 세뇌당한 정파 사람. 다행히 그 환술을 행할 수 있는자가 많지 않은지 수는 소수였다.

셋째, 그냥 정파 무인들.

허나 그냥 정파 무인들도 제대로 된 상태는 아니었다. 계속된 습격 때문에 정신이 허약해져 있어 사람의 기척만 보면 칼부터 나가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그것 때문에 송천우는 몇 번이고 정파 사람들을 죽이려 했고, 내가 그걸 막았다. 애초에 송천우는 저렇게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않고 검을 날리는 놈이 어찌 협객이겠느냐며 죽여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취했지만 난 불필요한 피는 흘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도 그런 생각은 들었다. 지금 나를 따르는 정파 사람들을 전부 마기로 감염을 시킨다면, 탁탑천왕처럼 비열한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아무튼 중요한 건 사람이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고, 각자 떨어진 정파 사람들의 정신은 갈수록 쇠약해질 것이라는 거.

“안 되겠네요.”

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무리로 다녀서 몇 사람씩 찾는 건 의미가 없어보였다.

“다른 방법을 써보죠.”

난 애뇌산의 봉우리를 올려다봤다. 봉우리는 짙은 안개로 잘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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