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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82화 (183/225)

182화 욕심은 끝이 없다

182화 욕심은 끝이 없다

대개 사람들은 관도로만 움직인다. 관도가 제일 깔끔하고, 제일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관도 바깥의 지역은 대개 거친 산이거나 숲이라 굳이 발을 들일 이유가 없었다. 굳이 이용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무인들이다.

무인들은 거친 길이 별로 위협이 안 된다거나, 직선 거리로 달려야 할 때 관도가 아닌 길을 자주 이용하고 한다.

그런 무인들도 관도로만 다니는 지역이 있다면 운남 남부였다. 울창한 삼림과 언제 올지 모르는 비, 특히 뜨거운 더위 독천(毒泉)과 독물이 가득한 남부 지방의 밀림은 누구도 발을 들이기 꺼려했다.

보통 여기 오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숨겨야 하거나, 무림공적이거나, 아무튼 중원 앞에 떳떳하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별의 별 기인과 범죄자들이 숨어든다는 애뇌산. 약초꾼과 웬만한 무인들도 쉽사리 드나들지 않는 곳이었다.

안개만이 자욱하고 사람의 흔적 따위는 없는 골짜기에 두 사람이 있었다. 검은 무복을 입은 공자, 그리고 그를 보필하는 거한. 소천마 천유현과 박용한이었다.

“어때. 여기는 너무 뻔한가?”

“어디 두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산 입구에 둘까?”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산의 안쪽이면 어디라도 괜찮습니다.”

“자신감이 좋아.”

천유현이 웃었다. 박용한은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천유현의 손에는 낡은 책자가 있었다. 그 책자의 앞에 적힌 문구를 보면, 중원 사람들은 기함하거나 기절하거나 둘 중 하나일 터였다.

사자신검.

천하제일고수 매화검존의 독문무공. 화산파의 검술과 본인이 체득한 묘리를 합쳐서 만든 무공. 매화검존이 만든 수많은 무공은 화산파에 그대로 돌아갔지만, 그 정수라고 불리는 사자신검은 실종된 상태였다.

근데 지금 마교 사람인 소천마의 손에 있는 것이었다. 정파 사람들이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얍.”

천유현은 사자신검을 어딘가에 던졌다. 사자신검 비급이 바위 틈에 꽂혀 고정됐다. 사람들이 그렇게나 원하는 비급, 천하제일인의 비급이 있는 곳이라기에는 열악했다.

그러나 정말 박용한의 말대로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가 비급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라면, 있을만하게 만들어주면 그만이었으니까.

박용한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주변이 정리된다. 둘레에는 진법들을 쳐놓고, 기관진식을 설치한다. 숙련된 박용한은 두 시진만에 평범한 골짜기를 사자신검의 비급이 있는 비처로 탈바꿈 시켰다.

“검사 안 해도 되겠지?”

“하셔도 됩니다.”

“안해. 팔마인 건 이유가 있겠지.”

팔마. 마교를 지탱하는 여덟 명의 장로. 삼선과 대비되는 삼악(三惡)에 비하면 낮은 단계에 속하지만, 팔마 정도면 마교 안에서도 최고위급 고수였다.

“그리고 애초에 여기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 맞습니다.”

천유현과 박용한은 애뇌산의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독물들이 펼쳐내는 독무가 짙었다. 그러나 천유현과 박용한의 호신강기를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놈들이 없었으면 준비하는데 일 년은 걸렸겠다.”

“산 전체를 감싸는 진법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천유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몇십 명의 사람들이 정렬해 서있었다. 옷차림과 무기는 가지각색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는 정면을 향하고 있기는 했으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지 않았다.

“환혼술이 중간에 풀리지는 않겠지?”

“심마환상공(心魔幻像功)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습니다.”

박용한이 대답했다. 심마환상공. 팔마 중 환마의 독문무공이었다. 박용한이 바로 정파 무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환마였다.

“근데 생각보다 거물이 많은데? 꽤 쓸모있겠어.”

“유곡은 역사깊은 쓰레기장이니까요.”

“그래도 역시 능력이 좋아. 유곡 전체를 먹을 줄은 몰랐는데.”

온갖 살수들과 범죄자들이 모인 유곡. 이곳은 이제 무법지대가 아닌 환마의 통제 아래 움직이는 별동대와 같았다.

“자, 그럼 너희들이 할 일을 말해주마.”

박용한이 말했다. 사람들의 힘없는 눈빛이 박용한을 향했다. 듣고 있는지, 안 듣고 있는지도 모를 눈빛들이었다.

*

사자신검의 장보도가 발견됐다. 아니, 발견됐다고 하기는 애매했다. 처음 사자신검의 정보를 알려졌던 것처럼, 사자신검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누군가 서한으로 뿌리고 다니는 거다. 그 서한은 운남에 집결한 모든 문파들에게 전달됐다.

이쯤되면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도적으로 사자신검의 정보를 누가 뿌리고 있다는 게 명확해졌으니까. 그러나 이번 서한에는 사자신검의 위치와 함께 초식의 구결까지 적혀져 있었다.

그 초식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구결에서부터 나오는 현기(玄機)는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심지어 사자신검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 화산파도 그것이 사자신검의 구결이 맞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매화검존 무공의 본산이었던 화산파가 증명하니, 정말 사자신검이라는 건 명백해졌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냄새를 풍겨도 되는 건가?”

“자신 있는 거죠. 사자신검이라는 미끼가.”

“정말 정파 사람들을 멍청이로 보는 건가.”

종리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생각보다 잘 알고 있는 걸.”

제갈헌도 그건 긍정했다. 사자신검의 위치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는 아직 확신하지 못했다. 금목환은 마교의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아직 밝혀진 건 없다.

허나 서한을 보낸 주체가 정파든, 사파든, 마교든 꿍꿍이가 있어보이는 건 너무도 명확하다는 거다. 뻔히 보이는 올가미에 먹이를 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먹이가 천하에서 제일 가는 진미(珍味)라면 덫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하게 되는 거다. 그게 바로 사람의 욕심이었다.

정파 사람, 아니, 무인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무공과 기연을 평생 기다리고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들에게 사자신검이라는 비급은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쟁취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장보도에 따르면 사자신검의 비급이 위치한 곳은 애뇌산. 운남의 성도인 곤명(昆明) 서남쪽에 위치한 험산(險山)이었다. 정파제일인의 무공이 있다기에는 꽤 사특한 곳이었다.

애뇌산은 험난하고 복잡한 지형과 맹수, 독물과 독사들이 넘친다는 특징 때문에 흑도 방파들이 많이 있는곳 중 하나였다.

특히 범죄자와 살수들이 모여있다는 유곡은 웬만한 무인들에게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원래는 사람은커녕 쥐도 잘 안다니는 이 애뇌산 앞에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곤명에 있던 무림맹 역시 당연히 애뇌산 앞으로 진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애뇌산의 봉우리는 안개가 자욱했는데 산 입구까지 독기가 느껴졌다.

물론 독기 따위는 별 게 아니었다. 정파 사람들의 사자신검에 대한 열망에 비하면 말이다.

종리운이 한숨을 쉬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종리운은 조금 더 보수적으로 탐색을 해보고, 돌다리도 두들기고 건너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기다리지 못하는 문파들이 있었다.

특히 탁탑천왕(托塔天王)을 필두로 하는 정파의 고수들은 종리운의 말도 듣지 않고 바로 들어가버렸다. 한 사람이라도 먼저 들어간 이상 종리운의 경고는 완전히 무색해져버렸다. 먼저 뺏길까 두려워한 문파들이 모두 들어가버린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군사. 들어가야 되나?”

“···글쎄요.”

제갈헌마저 대답을 주저하자, 종리운은 남궁연화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남궁 선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곳은 남궁연화를 포함한 천주성의 십이당주가 모여 있었다. 금목환의 명령으로 같이 있기는 했지만 딱히 협조적이지는 않았다.

“그거야 본인들 판단이 아닌가. 나는 여기 정파의 사람으로 있는 게 아니라 천주성의 사람으로 있는 걸세.”

“큼. 아직 마인은 못 발견하셨습니까?”

“가까이 있어야 확인할 수 있으니, 아직 마인은 없었네. 차라리 마인들이 부추겨서 들어갔으면 좋았을 것을. 욕심은 끝이 없어.”

남궁연화의 말에 종리운이 움찔했다. 지금 그녀는 정파의 욕심을 꼬집은 것이었다. 올곧다못해 고지식한 정의를 내세우는 천주성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행동들임에 분명했다. 솔직히 종리운 입장에서도 욕망에 먹혀 애뇌산으로 빨려들어가는게 보기 좋을 리가 없었다.

콰쾅!

그때 바깥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당장 탁탑천왕과 사람들이 들어간 게 일 각 전이었다. 얼마 들어가지도 못했을 텐데 벌써 애뇌산은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종리운은 그 폭발음이 들리자마자 결심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금목환은 중원의 사파를 정리했다. 무림맹도 무언가를 보여줘야 했다. 정파의 일원으로서 말이다.

“들어가야겠군요. 그 천주성 사람들도 같이 들어갑니까?”

“···들어가지 않으면 여기 온 이유가 없으니.”

남궁연화가 한숨을 쉬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남궁연화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른 당주들의 표정은 똥을 씹은 듯했다.

*

탁탑천왕 왕현기는 십왕 중에서도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는 본인이 십왕이라고 불려도 칠존과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무인 중 하나였다.

분명 그의 자신감에는 근거가 있었다. 그가 휘둘러대는 팔십 근의 철봉술은 가히 일절이라 할만했으니까.

그는 사자신검의 정보를 듣자마자, 볼 것도 없이 달려갔다. 당연하지만 그도 비정한 강호에서 오래 구른 몸. 순탄치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자신검 정도면 충분히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는 무공이었다.

또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온 것도 아니었다. 자신과 친한, 알고 있는 고수들을 전부 긁어모아 왔다. 당장 다른 십왕인 현현검왕(泫泫劍王), 북해의 고수인 빙제(氷帝)가 동행이었다. 삼화취정 이상의 고수가 셋. 초절정 고수로 넓히면 스무 명은 된다. 이 정도면 웬만한 성 하나는 먹을 수 있는 전력이었다.

“사자신검만 취하면 강호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거야. 언제까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중원을 먹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들은 공통적으로 전통 명가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들에게는 출신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으며, 출신만 좋았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 마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사자신검 비급이란 그들의 마음을 뭉치게 하기 충분한 구실이었다.

그들은 경공으로 애뇌산 중심으로 빠르게 들어갔다. 독무들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일정 경지 이상에 오른 고수들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 정도 들어갔을 때였다. 탁탑천왕이 잠깐 멈추고 품에서 종이를 꺼냈다.

“···뭔가 이상하군.”

“뭐가 말인가?”

“지도와 지형이 맞지 않아.”

탁탑천왕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애뇌산 땅에서 불온한 빛이 반투명하게 비췄다.

콰콰콰쾅!

귀를 먹먹하게 하는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들리고, 산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웃긴 수작질이군!”

당연하지만, 그들도 어느 정도 함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 정도 소란은 이미 상정한 바였다. 그래도 난생 처음 보는 폭발력이기는 했다.

터지는 흙먼지들 사이로 비도와 표창들이 나는 게 들렸다. 누군가 던지는 것 같기도 하고, 기관진식의 반응인 것 같기도 했다.

“으아악!”

뒤에서 비명이 울렸다. 당연히 구할 생각은 없었다. 자격도 안 된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온 셈이니까.

쉬익!

탁탑천왕의 뒤에서도 검이 날아왔다. 탁탑천왕은 코웃음을 쳤다. 이런 허접한 수작질이 감히 십왕에게 먹힐 거라 생각하는 건가.

두꺼운 철봉이 바로 뒤로 휘둘러졌다. 그러나 날아오던 검은 부딪치기도 전에 칼날에 금이 가있었다.

콰쾅!

그것은 철봉에 닿기도 전에 폭발했다. 탁탑천왕 바로 앞에서.

바로 용봉지회에서 처음 선보였던, 비마진천이라는 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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