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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79화 (180/225)

179화 아무 상관도 없어

179화 아무 상관도 없어

장덕수는 바로 균형을 잃고 엎어져버렸다. 그는 무릎을 꿇으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내가 한쪽 발뒤꿈치의 힘줄을 끊었다.

“크악!”

장덕수는 무릎을 배까지 끌어올리고 뒹굴뒹굴 굴었다. 거구와 맞지 않게 얼굴이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는 것일 터다.

“살, 살려주시오. 대협.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살겠소. 목숨만 살려주시면 평생의 은인으로 알겠소.”

결국 사파의 최고수 중 하나라는 녹림채의 투왕도 다른 고수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난 고개를 저었다. 명재희가 가져다 준 정보에서 이 자가 얼마나 악독한 사람인지 봐왔다.

“이렇게 빌겠소. 정말 회개하면서 살겠소. 정말이오.”

나도 이제 많은 사파 사람을 봤기에, 저런 연기에는 신물이 났다. 그리고 언제 무엇을 할지도 대충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럼 말해줘. 누가 찾아왔고, 어떤 제안을 했는지.”

“···낭왕, 낭왕이 왔네. 낭왕이 와서 사파 연대를 하자고 하더군. 연대라는 건 별 것도 없어. 한날한시에 일어나 사파의 힘을 보여주고 뭉치자는 계획 정도···”

“그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 사파 전력과 정파의 전력이 다른데. 사파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는, 정파에 비해 전력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오.”

나름 통찰력이 있다. 그래도 십왕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생각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 그냥 눈치 보다가 움직일 생각이었겠네. 정파가 생각보다 혼란스러워서 사파를 신경 못 쓸 정도면 일어나고, 아니면 그냥 조용히 있고?”

“그렇네.”

늘 느끼는 건데, 사파 사람들은 비겁한 얘기를 당당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난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엎어져 있던 장덕수는 허리를 반대로 꺾어 힘줄이 남아있는 발로 나를 찌르려고 했다. 마치 전갈을 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발에는 날이 서있는 강기가 담겨있었다.

이미 나는 장덕수가 내공을 운용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내게 살려달라고 구할 때부터 선천지기로 준비하고 있었다. 마지막 한 방은 강력하긴 했지만, 알고 있으면 피하면 그만이었다.

“···어엇.”

장덕수는 그 공격의 실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멍청한 소리를 냈다. 난 나머지 한쪽 발의 힘줄도 잘라버렸다.

“아악, 개새끼야!”

이제야 본성이 나온다. 장덕수가 한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장덕수는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확신했을 거다. 죽이지 못하면 본인이 죽는 걸 알고 있으니, 심리적으로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을 거다.

“죽여 버릴 거다! 네놈의 사지를 갈갈이 찢어서 까마귀 먹이로 만들어버릴 거야!”

사파 최고수치고는 퍽 지루한 반응이었다. 난 그를 내려다보다가 등을 돌려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장덕수는 당황한 듯 소리쳤다.

“어, 어딜 가는 거냐!”

“살려주는 조건으로 들은 거니까 살려주는 거야.”

난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바위에 올라섰다. 어둠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이 있었다. 독사, 멧돼지, 개미핥기 등 많기도 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피 냄새를 맡은 까마귀와 매가 맴돌고 있다.

그들에게 난 찬사를 보냈다. 집이 잠깐 흔들려도 버리지 않은 자들이니까. 장덕수는 그런 이들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난 다시 종이를 펼쳤다.

“옛날에 상단주 한 명을 머리만 나오게 파묻고 매가 쪼아 먹는 걸 구경했다고 나와 있네.”

장덕수의 악행 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악행이었다. 정말 이건 협과 반대되는 일이었다. 협은 이익을 바라지 않고 하는 선행이다. 장덕수가 한 일은 똑같이 이익을 바라지 않되 악행을 한 것이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없는 악행, 악의.

내가 아직 의협이란 단어에 대해서, 나만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장덕수의 행동이 의협과 반대됨은 알았다. 내 안에서 의협이라는 단어가 점점 윤곽이 갖춰지고 있는 느낌이다.

“망할놈아! 그게 너랑 뭔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장덕수는 악다구니를 질렀다. 목 끝부터 빨개져 힘줄이 돋아난다. 이미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예상하고 이성을 잃어버린 듯했다.

난 생각해봤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들의 죽음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 난 해원(解寃) 같은 미신을 믿지도 않고, 피해자들의 가족들을 대신하는 복수 같은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 상관도 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는 행동은 협행인 것이 아닐까. 난 그렇게 생각하고 아까 마기가 느껴진 곳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장덕수의 온갖 욕설이 들려왔다. 언젠가서부터, 장덕수의 욕설보다 까마귀들의 울음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

정희수는 의아해 했다. 녹림칠십이채가 움직이지 않은 것이다. 멍청하게 수로채주의 수결을 믿어서 그냥 뇌가 근육으로 된 멍청이인 줄 알았는데,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걸까.

하지만 사파는 녹림칠십이채가 전부가 아니었다. 정파의 규율을 못 버티고 튕겨져 나오고, 범죄를 저지르고 가문에서 제명이 된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이 사파였다.

정희수는 광동의 사파들을 규합하고 이끌고 있었다. 이끄는 건 아주 쉬웠다. 원래 이끌던 사람을 죽이고 그의 가죽을 벗겨 인피면구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애정이라는 감정이 없었다. 명령을 하는 사람이 피부가 좀 안 움직여도, 코가 좀 눌러앉은 것 같아도 신경도 쓰지 않는 것들이다. 매일 사람들을 죽이고, 죽어나가는 터에서는 어떤 애정도 뿌리박고 꽃을 필 수 없었다. 사파 무리는 사파의 목숨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남창으로 가서 황금세가를 치자! 그곳에서 한탕하고 중원을 떠나자!”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정희수는 손쉽게 광동 사파의 기수를 강서 남창으로 돌릴 수 있었다. 강서에서 규합하지 않고 광동에서 규합한 이유는, 강서에 사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한 성을 담당하고 있다고 해봐야 성도 주변의 마을만 집중적으로 관리되기 마련인데, 황금세가는 정말 강서 전부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만큼 인력을 뽑을 수 있는 돈이 된다는 거였다.

‘그걸 뽑고 유지하는데 가문의 세를 다 쓰고 있는 거군.’

황금세가의 부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정희수는 착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정희수의 목적은 황금세가가 아니라 황금세가 가주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정희수는 사람들을 모아 직선거리로 강서로 달리려고 했다. 초절정 열두 명, 삼화취정 이상이 한 명도 없는 게 아쉽지만 한 가문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멸문시키기에는 충분한 힘이었다.

아마 온전히 갔으면, 황금세가가 조금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온전히 갈 수 없었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던 정희수의 무리 앞에 사람들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관도 양옆 풀숲에 숨어있다 나왔기에, 잠복을 하다가 나온 것이다.

광동 신풍(神豊). 아직 강서는 커녕 광동의 내륙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는데 뜻밖의 방해였다.

“개방도 헛짓거리만 하고 다니는 건 아니었군. 양산(陽山), 영덕(英德), 신풍만 지키면 된다더니.”

나온 사람들의 복색을 본 사파 무리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파란색 영웅건, 파란색 무복. 물결무늬가 그려져 있는 매듭.

왜 바다 건너 해남도의 해남파가 내륙인 광동에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앞길을 막는 거냐.”

“당연한 말을 하는구나. 사파야. 정파가 사파의 앞을 막지 않으면 어디를 막는다는 말이냐?”

정희수의 말에 적유엽이 느릿느릿 나오며 대답했다. 정희수는 바로 허리춤의 매듭을 봤다. 오결. 다섯 개의 매듭. 장문인을 뜻했다.

“당신이 광랑검이라는 노친네군.”

“그래. 넌 누구지?”

정희수는 멈칫했다. 자신이 죽였던 사람의 별호가 뭐였는지 잠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정희수는 별호를 떠올렸다. 혈자귀(血滋鬼). 분명 그런 별호였다.

“이 혈자귀를 모르는가?”

“혈자귀는 알지.”

적유엽이 뜻밖의 답을 했다. 알면 왜 물어본다는 말인가.

“그 혈자귀란 놈의 인두겁을 뒤집어쓰고 그 흉내를 내는 너는 누구냐는 말이다.”

그 말에 관도가 싸늘해졌다. 사파 무리는 사파 무리대로 정희수를 바라봤고, 해남파 사람들은 해남파 사람대로 정희수를 바라봤다.

“어른 앞에서 죽립을 쓰는 것도 예의 없는 짓인데, 가면을 쓰고 있으니 죽여도 될 만한 무례로다.”

적유엽이 기세를 피어 올렸다. 그의 몸에서 거친 파도가 치고 나오는 것 같았다. 정희수는 잠깐 침묵을 하다가 말했다.

“사파가 움직인다는 걸 알고 있었나?”

“그럼. 아무리 움직여봐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그랬군.”

어디서 말이 샜는지는 모르지만, 작전은 그야말로 대실패였다. 왜냐하면 정말 뭘 하기도 전에 사전에 억제당한 셈이니까. 그야말로 대패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 해남파가 알고 있었다면, 다른 사파 무리들도 이렇게 차단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확실히 차단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외지에 있는 해남파가 들어올 정도면, 이미 누군가가 작전을 꿰뚫어봤다는 거다.

허나 정희수에게는 아직도 지킬 게 남아있었다. 바로 이 작전이 마교에게서 나왔다는 걸 지켜야 했다. 그건 소천마, 천마, 마신에 대한 먹칠이었다.

정희수는 소매에 손을 넣었다. 이상행동을 감지한 적유엽의 번개같은 해운무봉은 동시에 가까웠다. 정희수의 소매에서 검은 구슬이 하나 흘러나왔고, 그것이 터졌다. 시야와 기감을 동시에 차단하는 연막탄이었다.

“놓칠 줄 아느냐!”

바로 정희수의 목적이 무엇인지 깨달은 적유엽과 해남 장로들이 검격을 날렸지만, 이미 정희수는 사파 무리 안으로 몸을 숨긴 상태였다.

정희수를 쫓아간 해남파 사람들이 사파 무인들과 부딪쳤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무인들도 정파의 무인들이 적인 건 알고 있었다. 결국 혼란스러운 싸움판이 시작됐다.

적유엽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인피면구를 쓴 자는 엄청난 고수였다. 연막탄은 썼다지만, 바로 앞에 있는 본인의 시야에서 벗어난 것이다.

신풍 관도에서 펼쳐진 사파와 정파의 싸움은 정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이미 준비하고 있는 해남파와 그저 쪽수만 맞춘 사파 무리들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시체가 관도에 쌓였지만, 그 중에서 정희수의 얼굴은 없었다.

*

햇빛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썩은 흙이 신발에 불쾌하게 들러붙었다. 최대한 기감을 넓혀 걸어본다. 뛰면서 느낀 마기는 미약하디 미약했다.

심지어 마기는 장덕수를 처리하고 오는 동안 더 옅어져 있었다. 저 멀리서 폭포 소리가 들렸다. 나뭇가지와 거미줄들이 촘촘한 걸 보면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절대로 아니었다.

송로를 꺼내서 하나씩 쳐냈다. 굵은 나뭇가지든, 얇은 거미줄이든 썰려서 땅바닥으로 툭툭 떨어졌다.

솨아아···

폭포 소리는 더욱 짙어졌다. 나는 폭포가 만든 호숫가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 마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서서히 줄어가고 있는 거라면, 내가 느끼지 못할 뿐 아직 남아는 있을 거였다.

그렇다면 어렵지 않았다. 난 한쪽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땅에 댔다.

극성에 이른 태을헌원신공의 기를 땅에 불어넣었다. 땅이 마치 반투명한 빛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는 육안을 사용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럼 무언가가 보일 거였다.

북서쪽 나무 밑동에 보라색 안개 같은 게 보였다.

난 그쪽으로 가서 진각을 밟았다. 이미 한 번 헤집어놓아진 흙이라서 쉽사리 패였다. 그곳에는 마기와 함께 잔인하게 얼굴의 피부가 벗겨진 시체가 있었다.

난 그 시체의 팔을 잡고 땅 속에서 꺼냈다. 꺼내자마자, 묻혀있어 보이지 않던 그의 상처가 보였다. 난 눈살을 찌푸렸다. 난자가 되어있다 할 만큼 잔인하게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뭔가 낯설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체, 뭔가 이상했다. 난 시체의 팔을 하늘로 향하게 들고 돌려보았다.

“음.”

내가 낯설게 느낀 이유를 알아냈다. 보통 시체의 검흔은 통일성이 있기 마련이다. 한 사람과 싸울 때는 많아봐야 두, 세 개의 무공, 그것도 검결이 비슷한 걸로 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시체는 달랐다. 마치 몇 사람에게 당한 듯, 몸에 여러 가지 무공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명문 정파의 무공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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