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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세가 절대무신-171화 (172/225)

171화 풍문으로 들었소

171화 풍문으로 들었소

솨아아아···

내가 이런 수련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요녕의 겨울은 중원 어느 곳보다 춥다. 당연히 산에서 떨어지는 물 역시 얼음장이다. 얼음이 되기 전 폭포. 난 그 밑에 있었다.

만약 내공으로 몸을 둘렀다면 이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살얼음이든, 불꽃이든 상관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지금 나는 완전 무방비한 상태였다. 몸에 자연스레 흐르는 내공마저 단전으로 끌어 모아 잡아두고 있으니. 그야말로 내 스스로 단전을 폐쇄시킨 것이다.

“···흐으으.”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입술과 이빨이 자동으로 부딪쳤다.

혹독한 추위 속에 검후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 태원지기는 자연의 기야. 그러나 사람은 자연 그대로를 못 보고 왜곡해서 보지. 그럴 수밖에 없어. 자연은 너무 거대하고, 사람은 자연에 비하면 티끌보다 작은 존재이기 때문에.

- 우리가 자연을 판단하는 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지.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 하였다. 우리는 거대한 자연 앞에 맹인과도 같은 존재. 전체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작게 태어났다.

- 심지어 무인들은 심법을 수련하기 때문에 더욱 왜곡해 본다. 고수면 고수일수록 그렇다. 왜냐하면 내공을 쌓는다는 건 자연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한다는 뜻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 예를 들면 매화는 그저 매화일 뿐인데, 화산파의 고수들은 매화를 보며 매화 이상의 것을 느낀다. 자네는 남해십이검을 익힐 때 파도를 보면서 파도 이상의 것을 느꼈겠지.

- 평범한 사람이라고 다를까. 누군가에게는 난(蘭)이 사랑의 표식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와의 추억일 수 있으며, 누군가에게는 거추장스러운 풀일 수도 있다. 난은 그저 난으로 있고 우리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 물론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가야하는 존재니까. 그러나 자연의 기를 운용하려면 자연과 더 친해져야 하고, 자연을 그대로 느껴봐야 하는 것이지.

···이게 태원지기를 수련하는 방법의 핵심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먼 타지인 요녕까지 와서 얼음장 같은 폭포수를 맞고 있는 것이다. 아마 피부는 창백하고 입술은 퍼래졌을 거다.

물론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실제로 태원지기의 기세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태원지기만 활발해졌다는 건, 아직 융화가 안 됐다는 뜻이겠지.’

태을헌원신공이 태원지기를 잡아놓고, 같이 쓸 수만 있을 뿐. 어우러지기만 하지 혼합된 건 아니라는 것이다.

태을헌원신공은 곧 나고, 태원지기는 자연이었다. 그 두 개가 합쳐질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남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지만, 자연에 대해서 모두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

난 문득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난 나에 대해서도 정확히 몰랐다. 내가 어째서, 어떻게 회귀했는지조차 모르지 않는가. 나에 대해서도 정확히 안다 말할 수 없는데, 자연에 대해서 알려고 하다니. 시기상조도 정도껏이어야 했다.

난 과거로 한 걸음씩 옮겼다. 기억들이 떠오를 때는 수면(水面)에 비치는 듯하고, 사라질 때는 불살라지는 듯했다. 그렇게 난 무아지경으로 들어갔다.

이 무아지경 속에서 다칠까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무 준비 없이 단전을 닫지는 않았으니까.

*

“헛짓거리 아닌가···”

갈유월은 눈을 찡그렸다. 바람에 위를 가려주던 나뭇잎이 흔들려 햇빛이 비친 것이다. 그녀는 지금 굵은 나뭇가지에 앉아서 폭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폭포가 아닌 폭포 밑에 있는 금목환이었다.

갈유월도 무인이다. 숱한 훈련을 하고, 훈련을 하는 사람들을 숱하게 봤지만 저런 고전적인 훈련을 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나 되게 변태 같네···”

폭포 밑의 금목환은 상의를 탈의하고 눈을 감고 있다. 그걸 지금 갈유월은 멀리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멀었지만 안력을 돋우면 금목환의 갈라진 근육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얼굴이 홧홧해졌다.

얼굴은 예쁘장하게 생겼는데 몸은 저렇게 쩍쩍 갈라져있다니, 완전 반칙이다.

물론 몰래 보는 건 아니었다. 금목환은 단전을 닫고 수련을 해보겠다며 호법을 서줄 사람을 구했고, 거기에 갈유월이 지원한 거다.

원래 종리운이 같이 가주려고 했지만, 갈유월이 가고 싶다고 하자 종리운이 양보를 해줬다. 종리운은 양보해주면서 뭔가 은근한 눈치를 줬는데,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몰라도 상당히 민망했다.

아무 것도 없이 지켜보기만 하기를 두 시진째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그냥 금목환을 보는 게 재밌었다. 또 대단하기도 했다.

단전을 닫고 저렇게 폭포를 맞으면 목이 아프거나, 추위에 떨만도 한데 금목환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부동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여튼 이상한 놈.”

금목환이 열셋, 본인이 열둘 때 만났지만 금목환은 거의 변한 게 없었다. 그냥 시종일관 이상한 녀석이었다.

무표정인 것도 그렇고, 목소리에 고저가 없는 것도 그렇고, 마공을 익힌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상한 강함.

그리고 거기서 뭘 더 강해지겠다는 건지 폭포를 흠씬 맞는 수련을 하고 있다. 대체 어떤 곳에 효과가 있는 수련일지, 의심하던 와중이었다.

“어?”

번쩍, 하는 빛이 비친 건 말이다.

갈유월은 순간 또 나뭇잎이 흔들려 태양이 비친 줄 알았다. 그러나 빛은 위가 아닌 금목환에게서 나타나고 있었다.

이제 폭포는 금목환의 머리를 내려치지 못했다. 금목환의 테두리로 무언가 장막이 쳐져있는 듯 비껴가고 있었다.

갈유월은 자기도 모르게 나뭇가지에서 일어나서 금목환을 봤다. 정좌한 채로 앉아있던 금목환의 몸이 빛과 함께 얕게 떠오르고 있었다.

금목환의 머리 위에는 세 개의 꽃이 하나씩 피어올랐다. 갈유월은 저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었다.

“···삼화취정(三花聚顶).”

초절정이라고 해도 다 같은 초절정이 아니었다. 중원 대부분의 무인은 초절정 초입에서 더 오르지 못하고 좌절한다.

삼화취정은 초절정의 중정(中正)을 이르는 경지였다. 보통 중원 전체에 이름 알려진 고수면 삼화취정 정도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다. 금목환은 십왕(十王) 중 암왕, 조현극을 이겼다고 했으니까. 십왕이면 초절정 상위, 오기조원(五气朝元)의 고수를 이르는 말이니까.

갈유월의 예상대로 세 개의 꽃은 부서지더니 다섯 개의 광환(光環)으로 변했다. 오기조원이었다. 광환의 광채는 너무도 빛나 이백 리는 떨어져있을 철령(鐵嶺)에서도 보일 것만 같았다. 빛의 광채로 오기조원에서도 얼마나 경지가 깊은지 파악할 수 있는데, 금목환은 이미 오기조원에서도 높은 축에 속하는 것이다.

“···미쳤나봐.”

지금 갈유월은 초절정의 초입이었다. 물론 갈유월도 알고 있다. 금목환을 본인 나이 대와 비교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본인과 비교해서 놀라는 게 아니었다. 당장 저 정도면 본인의 스승님인 종리운과도 승부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약관의 나이에 칠존과 승부가 가능할 정도라니, 정말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믿지 못할 거다.

갈유월은 넋을 놓고 금목환의 모습을 바라봤다. 어떤 내공을 축적하고 있는지에 따라 사람의 체취도 달라진다. 금목환에게서는 언제나 싱그러운 새싹의 향기가 났다. 그런데 지금은 뭔가가 달랐다. 뭔가, 뭔가가 있는데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토납을 해봐도, 몸을 다 통과하는 기분이다. 이 느낌은 뭘까. 뭔지는 몰라도 짙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건 명백했다.

갈유월은 금목환이 풍기는 태원지기 속에서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있던 그녀가 손을 하늘로 내밀었다.

“···닿았다.”

갈유월 역시 태원지기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

심법에는 구결 이상의 것이 있었다. 검법에 초식 이상의 초식이 있듯, 심법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난 태을헌원신공과 동화되어 있다고 착각한 셈이다.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다. 지금 태을헌원신공과 나는 겹쳐져있는 거지 합쳐져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수련 시간은 가치 있었다. 벽 너머를 보았다는 게 그 성과였다. 그걸 봄으로써 내가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수련해야 할지 정해졌다. 이제 목적지를 알았으니 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성과도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갈유월 역시 내 수련을 보면서 태원지기를 깨달았다고 한다.

갈유월은 사람 폭포 맞는 걸 보는 게 뭐가 재밌다고 자원했냐고, 지겹지 않겠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깨달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남궁연화에게 듣기로는, 태원지기를 깨달으려면 성주 곁에 최소 일 년은 있었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갈유월이 재능이 있는 건지, 내 태원지기가 짙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원래 훈련을 더하고 싶었지만, 명재희의 급한 부름 때문에 부득불 심양의 산을 내려왔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천주성의 회의실이었다. 그곳에는 면사를 쓴 천주성주와 좌우로 당주들이 쭉 앉아있었다.

소매 한 쪽이 허한 송천우는 날 바라보고 흠칫했지만, 목례를 했다. 신기하게도 날 그리 원망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천주성주가 말했다. 그녀는 아직 면사를 벗지 않은 채였다. 그녀가 검후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무슨 후폭풍이 벌어질지 모르니, 당분간은 밝히지 않겠다고 판단한 거다. 천주성주는 나한테 비밀 엄수를 부탁했고, 그걸 들어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예언은 확실하긴 하군요.”

내가 말했다. 지금은 조금 기묘한 상황이었다.

내가 훈련을 하던 도중, 요녕 전체에 이러한 풍문이 나돌았다고 했다. 풍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 매화검존의 비급은 운남에 있다.

당연히 누가 퍼뜨렸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골치 아프겠네요.”

천주성주는 이 매화검존 비급을 두고 피가 많이 흐를 것이라고 했다. 아니, 이렇게 사람들을 몰아두면 피가 많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너무 함정 같아 보이지 않나?”

“그래도 갈 수밖에 없죠. 가서 통제하지 않으면 정말 많은 피가 흐를 수도 있습니다.”

천주성주가 그건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갑자기 매화검존의 비급이 장보도로 나온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기는 했어.”

“그와 관련해서 더 보신 건 없으십니까?”

“그래. 미안하지만 말이야.”

천주성주가 본 건 피가 가득한 미래였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나와 관련된 미래는 거의 맞지 않았다고 했다. 천주성주가 보는 건 사실 미래가 아닌 운명이 아닐까. 일단 그 가설은 내 가슴 속에만 묻어두기로 했다.

보통 중원에서 장보도가 발견되고 사람이 모이는 것과는 좀 다른 양상이었다. 장보도는 어떤 사람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고, 서서히, 알음알음 알 만한 사람들에게만 알려지는 게 정상이다.

근데 이건 마치 대놓고 운남으로 부르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건 요녕만도 아니었다. 명재희의 말로는, 강서에도 똑같은 풍문이 돌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누군가 흐름을 조종하는 듯 작위적이었다.

그러니까, 이 방을 붙인 사람은 모든 중원의 사람들이 운남에 몰리기를 원하는 거다. 매화검존의 비급이라면 몰려들 수밖에 없으니까.

“이 정도면 대놓고 혼란을 원하는 사람일 것 같은데.”

천주성과 정파, 사파 전체를 몰아넣으려는 생각. 방을 붙인 사람들은 천주성이 정파와 갈등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이 방을 붙인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천주성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는 걸 모를 터였다.

“이럴 사람들이야 뻔하죠.”

내가 말했다.

“마교.”

다른 사람들도 이제는 알고 있다. 전생이었다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겠지만, 이제는 많이 알려진 그들의 수법.

난 십이당주들을 바라봤다. 십이당주들의 표정이 보였다. 그들 본인들이 어떻게 사용될지 이제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들은 살아있는 마교 탐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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