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161화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지독하다. 난 소매로 코와 입을 가렸다. 현법단의 내부가 물결이 치듯 꿀렁거렸다. 그것들은 내 혈들을 자극하며 몸으로 들어오려는 독을 지속적으로 배출해내고 있었다.
현법단의가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옷이라는 건 중원 특유의 거창한 수사가 붙여진 것이다. 만독불침인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고, 만독불침으로 만드는 단약조차 없다. 만약 그런 게 있었다면 사천당문은 진작 오대세가에서 내려왔을 거다.
피독주도 그렇고, 독에 노출된 걸 좀 더 일직 알려주거나, 몸을 독소 배출에 용이하게 바꿔주는 것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신기였다. 아무튼, 내가 현법단의를 입어도 식은땀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는 의미였다.
“야, 금목환! 왜 이래!”
내 이상을 알아챈 갈유월이 조용히 소리를 쳤다. 내가 뒤를 돌아보니 그녀는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뚝, 뚝.
콧잔등과 턱에 고인 땀이 비 오듯 내렸다. 갈유월은 반사적으로 나를 잡아당겼다. 그 바람에 나는 갈유월의 몸을 덮치며 넘어졌다. 갈유월도 내가 이렇게까지 쉽게 끌려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탓이었다.
“···괜찮아?”
흐릿한 눈으로 갈유월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아래에 깔려있는 그녀의 눈빛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나는 땅을 짚고 다시 일어났다.
“괜찮아.”
정신 차리자. 갈유월이 내 손을 잡았지만, 난 그녀의 손을 맞잡아줬다.
“잠깐만.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야.”
정확히 말하면, 중요한 일이 될 것만 같다. 갈유월은 그 말에 홀리듯 내 손에서 자신의 손을 떼어줬다. 난 태을헌원신공으로 내 몸을 최대한 보호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갈유월도 쭐레쭐레 따라왔다.
외인인 내가 들어왔어도 사람들은 바빠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막 바깥에서 보기에는 그림자가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 안에서 엄청난 사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모를 수는 없었다.
“젠장! 팔 잡아!”
“혀 말려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천주성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 익숙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크르륵, 크륵!”
거품 끓는 소리가 막 안에서 들렸다. 내가 가까이 왔다는 걸 알고 조현극이 날 밀치려고 했지만, 난 그의 손을 잡았다. 어차피 그도 안에 있는 사람 때문에 내공을 못 일으켰기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뭐하는 짓이냐? 여기가 어디라고!”
조현극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나는 그를 옆으로 밀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남궁연화와 목단화, 다른 사람들이 한 사람의 사지를 붙잡고 무언가를 먹이고 있었다.
난 그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눈을 마주칠 수는 없었다. 눈이 어디 있는지 모를 지경으로 얼굴이 엉망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얼굴을 잡아두고 있는 뼈 자체가 일그러져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비명 소리와 목젖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남자보단 여자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할 수 있는 정도였다.
“가주, 왜 온 것인지 나한테 간략하게 설명이 가능한가?”
남궁연화가 물었다. 그녀의 패인 주름을 따라 땀이 흘렀다. 그만큼 그 사람의 발작은 심했다.
난 여기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진심대로 말하자면,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아니, 단순하지는 않다. 복잡한 궁금증이었다.
이 사람은 왜 아픈 건가?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괴로워하는 건가?
이 사람이 뿜어내는 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리고 이 사람이 얼마만큼 호소하고 있는 건지 안 들리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지금 저 사람을 사지를 속박하고 약을 투여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난 조용히 가서 그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댔다. 모두가 경악했다. 줄곧 침착하던 남궁연화도 버럭 성을 낼 정도였다.
“이게, 무슨···!”
허나 그녀의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렇게나 난리를 쳤던 사람이 잠잠해졌기 때문이다.
“···무슨, 무슨 짓을 한 거냐!”
비명이 그치자 조현극이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아니, 올리려고 했다. 바로 조현극과 나 사이에 자그마한 그림자가 끼어들지만 않았어도, 난 그에게 대롱대롱 매달려있었을 거다.
“움직이지 마.”
내 지친 얼굴을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쓸어줬다. 당연히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갈유월이었다.
“하. 지금 이 조현극의 앞길을 꼬마 계집 막는 거냐?”
“꼬마라고 하지마라. 늙은아.”
갈유월의 목소리가 내게 아득하게 들렸다.
“죽고 싶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늘했다. 애초에 성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강박적으로 규칙을 강요했던 이들이 소리를 지르고 멱살을 잡아 올리려 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저 사람이 잠자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바로 천주성주였다. 내 예상과는 많이 다른 생김새와 상태였다.
“···허허. 이게 선배를 대하는 정파의 예의인가?”
“선배로서의 행동을 하지 않고 선배 대우를 원해?”
조현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는 갈유월 대신 남궁연화를 바라봤다.
“말하지 않았나. 중원인들은 이제 정파라고 칭할 수 없는 버러지들뿐이라고.”
바로 조현극의 허리춤에서 검은 빛이 직선으로 갈유월의 목을 향했다. 내가 아는 갈유월이 막기는 힘든 속도였다.
콰쾅!
그래서 내가 막았다. 조현극의 칼과 내 칼이 부딪쳤다. 칼과 칼이 맞닿아 푸른 섬광이 비쳤다. 그 틈 사이에서 나와 조현극의 눈이 마주쳤다.
“한 번만 더 내 사람한테 칼을 들이대면···”
나는 거친 숨을 뱉으며 말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괴로움이 뭔지 알려주마.”
그때 침대에 누워있던 괴물 같은 얼굴의 사람이 움찔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움찔했다. 난 저 사람 내부의 기가 어떻게 흐르는지 알고 있으므로, 정신이 깨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어 놀라지는 않았다.
“···그만.”
그 상황을 끊은 건 남궁연화였다.
“그만하지. 자네나, 우리나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좋습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난 지금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남궁연화와 천주성 사람들은 성주의 발악 뒤처리를 하고, 우리에게 어디 머물지 안내해줬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난 나가자마자 갈유월에게 몸을 기댔다.
“흐앗!”
바로 갈유월이 몸에 벌레라도 기어가는 듯 소스라쳤다. 그렇게나 놀랄 일이었던가. 살짝 무안함을 느꼈다.
“···미안.”
“아, 아니. 많이 힘들어?”
갈유월은 자신의 몸의 위치를 바꿔 내가 편해지게끔 했다. 그리고 난 그 편안함에 잠시 눈을 감았다.
*
‘제발, 조용히 좀 해라.’
갈유월이 속으로 소리를 질렀다. 심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바깥으로 새나가는 것만 같았다.
지금 그녀의 가슴팍에는 금목환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새근거리는 걸 보니 잠을 자고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들까지는 아니어도, 금목환 정도의 거리면 들을 수 있을 거다. 지금 본인의 심장이 얼마나 빨리 뛰고 있는지 말이다.
“···하아.”
갈유월은 자신의 심장을 진정시키고ㅡ물론 진정은 안 됐다ㅡ정신을 잃은 금목환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땀에 푹 절어서 젖은 머리의 금목환은 갈유월의 가슴을 두방망이질하기 충분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진짜, 머리만 길면 언니네···”
그러고 보면 금목환이 나이가 한 살 더 많기는 했다. 그러나 애초에 반말로 시작한 사이니 다른 호칭을 붙이는 것도 이상했다. 만약 붙이려면 오라버니, 오빠나 가가(哥哥)···
펑!
하는 소리가 얼굴에서 들린 것만 같다. 왜 이러는 거야. 정신 차려. 여기는 무림맹이 아니고 천주성이었다. 당장 스승님인 종리운도 긴장하고 있는데, 지금 여기서 정신 잃은 남자애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으, 음”
그때 금목환이 신음소리를 냈다. 갈유월은 깜짝 놀란 다람쥐 눈이 됐다. 다행히 일어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 그만해···”
갈유월이 얼어붙었다. 금목환이 살짝 떨고 있었다. 지금 저 약하고 괴로워 보이는 목소리가 금목환에게서 나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냉정하다 못해 감정이 없다고 느꼈던 그였다. 물론 요즘 들어 조금씩 바뀌고 있다지만, 그건 오래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미약한 움직임이었다. 적어도 그는 자신 앞에서는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갈유월은 갓난아이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이끌었다. 자신보다는 큰 몸이었지만 우락부락한 근육덩어리들이 많은 중원에서는 얄팍한 몸이라 무겁지는 않았다. 금목환에게서는 아까 멎었던 식은땀이 다시 나고 있었다.
궁금했다. 어떤 과거를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강하며, 침착한지. 그리고 그렇게 강한 사람이 이토록 괴로워할만한 일은 또 무엇인지.
이 무뚝뚝한 녀석이 감정을 드러냈다는 것에 대한 호기심 뿐만은 아니었다.
*
사실 전생에 대해서 꾸는 꿈이 처음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진 몸에 흉터는 없다고 해도 영혼에 각인된 기억들이다. 쉽사리 잊혀질리 없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점은 꿈을 꾸면 꿀수록, 이번 생에 보낸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과거의 경험들과 멀어진다는 점에 있겠다. 오늘 꿨던 꿈은 여전히 괴롭기는 했으나 전보다 더 아득해진데다가, 부드러운 향마저 났다. 그건 내게는 굉장한 위안이었다.
“깼어?”
내가 눈을 뜨기도 전인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뜨니 다소곳이 무릎에 손을 모은 갈유월이 보였다.
“응.”
“그래. 잘됐네.”
갈유월은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부드러운 향이 났다. 그녀는 내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을 오물거렸지만 하지는 않았다.
난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흰색 일색의 방에는 내가 누워있는 침상 외에는 가구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난 문득 기억났다. 내가 갈유월의 몸에 기대어 정신을 잃었던 것을 말이다.
“고마워.”
“···뭐가.”
갈유월은 짐짓 불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는 날 쳐다봤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을 벌리고 멍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
“왜?”
“한 번만 다시 웃어봐.”
“웃어보라고?”
글쎄. 내가 웃었던 적이 있었나. 내가 모르겠다는 듯 말하자 갈유월은 머리를 도리 쳤다.
“아니다. 좀 괜찮아?”
“응. 괜찮은 것 같아.”
“정말로?”
갈유월의 눈은 진지했다. 난 잠깐 생각해보고 다시 대답했다.
“응. 괜찮아.”
난 그렇게 대답하다가 잠시 내가 무엇 때문에 정신을 잃었었는지 생각해봤다. 곧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괜찮지 않아.”
“어?”
“지금 천주성, 너무 위험해.”
내 말에 갈유월은 갸웃했다. 지금껏 놓치고 있었던 게 있었다. 천주성이 생긴 지는 꽤 됐다. 공식적으로 발족은 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들은 본인들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황금세가에 간자를 넣어 잠깐 침투했을 뿐, 정파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고작해야 모용세가를 점거한 정도.
내 기억에, 천주성은 이즈음에야 움직였다. 난 그저 때가 됐으니 움직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천주성주, 이렇게 놔두면 죽을 거야.”
그들이 움직였던 건, 천주성주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난 천주성주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봤다. 애초에 천주성주 본인의 의지로 살고 있는 게 아니라 천주성의 사람들이 약을 때려 부으며 억지로 살리고 있었던 거다.
천주성이라는 집단은 알았지만, 천주성주라는 사람은 은막에 가려져 있었다. 천주성주는 대체 어떤 사람이고,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
천주성주의 상단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독을 제압할 수만 있다면, 천주성주를 살리면 천주성이 불러일으킬 혼란을 원천 차단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난 침상 밑에 있는 내 짐을 뒤적거렸다. 붉은 함이 나왔다. 아무도 해석하지 못한 독이 나오는 혈기린의 반지.
천주성주의 몸에서 나오는 독은, 이 혈기린의 반지에서 나온 것과 같았다.